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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분석

한국의 ‘조폭경제’

룸살롱에서 벤처까지 ‘비계’와 ‘깍두기’들이 못 먹는 건 없다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한국의 ‘조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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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이후에도 검찰과 경찰은 조직폭력수사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무시로 조직폭력 특별단속을 실시했다. 더러는 무리한 수사로 빈축을 살 만큼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6월 사회관계 장관회의에서 조폭 특별단속을 지시한 바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주먹들은 조폭의 단속 근거인 형법상 범죄단체 구성요건에 엮이지 않으려고 조직을 가능한 한 슬림화하는 추세다. 과거처럼 수직적인 지휘체계를 갖추고 수십, 수백명의 ‘동생’들을 거느리며 세(勢)와 의리를 과시하기보다는 소수 정예화해 이권을 찾아나선다. 예를 들어 서울시경의 관리대상 조폭은 31개파 330명이다. 한 계파당 조직원이 대개 7∼8명선이고, 조직원이 가장 많은 계파라야 27명이다.

조직원 수가 적으면 조직관리 비용이 적게 들 뿐 아니라 기동성도 높아진다. 한 조직 안에서 ‘사채업 담당 3명, 유흥업소 담당 4명, 상가분양 담당 5명…’ 하는 식으로 전문화, 분업화하기도 한다. 신흥 조폭들은 이처럼 규모는 작지만 위력과시가 필요할 경우 인력을 동원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럴 때는 소규모 조직 간에 ‘인력 품앗이’를 하거나 ‘아르바이트 어깨’를 끌어모으는데, 통신수단이 발달한 데다 재력도 든든해 100명쯤 동원하는 데 반 나절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조폭들이 인원감축, 비용절감, 팀 시스템 도입, 인력 전문화, 아웃소싱 등 전형적인 기업 구조조정 방식을 통해 조직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원들이 ‘본적(本籍)’이나 ‘나와바리(활동구역)’에 구애받지 않고 ‘돈 냄새’를 좇아 이합집산하는 것도 예사다. 지난 8월 말 인천공항 부근에 경제자유구역과 관세자유구역을 조성한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된 직후 강원도 정선 카지노 주변의 일부 조폭들이 면세점 이권 등을 노리고 인천으로 몰려갔다는 정보가 경찰에 입수되기도 했다.

물론 조폭 출신이라고 해서 기업활동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이들 대다수가 공정한 시장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행사할 것처럼 위협함으로써 ‘파이’를 독식한다는 데, 또한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폭력조직의 활동자금으로 쓰인다는 데 있다.



‘Glocalization’

특히 지방의 경우 대표적인 토착 조폭들이 이권을 틀어쥐고 지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부산의 칠성파, 광주의 국제PJ파, 목포의 오거리파, 전주의 월드컵파, 청주의 파라다이스파·시라소니파 등이 그 예. 이들은 여전히 40∼60여 명의 대규모 조직을 유지하며 유흥업소에서 건설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한 경찰관의 말.

“얼마 전 서울시경 폭력계에 근무할 때 전북의 한 도시에서 발생한 조폭관련 사건신고가 접수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악명높은 조폭 두목 N씨와 관련된 사건인데, 피해자가 그 도시 경찰서나 전북경찰청을 놔두고 굳이 서울시경으로 신고한 것은 조폭들의 지역연고 때문이었다. 지역사회에선 시장, 군수, 검사, 경찰, 깡패들이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 서로 ‘형님’ ‘동생’ 하는 사이기 일쑤다. 그러니 지역 경찰에 신고했다간 자칫 깡패들에게 알려져 봉변당하기 십상이고, 수사를 한다 해도 행동대원 몇 명만 잡아넣는 식으로 축소되어 결국엔 신고한 사람이 그 지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지역화’와 더불어 기업형 조폭에게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추세는 ‘세계화’다. 지역화와 세계화의 병행, 이른바 ‘Glocalization(Globalization+Localiza-tion)’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가령 일본 야쿠자 ‘가네야마 구미’는 부산 칠성파와 연계해 1990년대부터 부산 일대에서 부동산 투자를 했고, ‘야마구치 구미’도 국내 조폭과 연계, 조직 자금을 한국으로 들여와 서울 강남 등지의 부동산을 담보로 연리 10% 안팎에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파 계열의 한 조직과 보성파 등은 홍콩과 마카오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폭력조직과 손잡고 도박자금 회수 등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네 마누라 신수가 훤하군”

예나 지금이나 조폭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입원은 유흥업소다. 그런데 과거엔 조폭이 업소를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거나 20% 정도의 지분을 넘겨받는 게 관례였던 데 비해 요즘은 조폭이 업소를 직접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 판매 마진이 워낙 높을 뿐 아니라 고도의 경영수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보니 ‘떡고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떡’을 탐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 때문에 업주를 위협해 조직원을 목좋은 업소의 영업부장으로 밀어넣고 돈줄을 쥐거나 아예 업소를 빼앗기도 한다.

서울 을지로 P나이트클럽 사장은 목포 출신 조폭으로부터 업소를 양도하라는 협박에 시달렸으나 거절했다. 그러자 어느날 밤 이 조직의 행동대장이 사장 집으로 뛰어들어가 날이 시퍼렇게 선 회칼을 목에 바짝 들이대며 “안 내놓으면 다 죽는다”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극도로 겁에 질린 사장은 다음날 아침 점잖게 차려입고 사무실로 들어선 행동대장의 ‘정중한’ 요구를 모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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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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