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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기업경찰’ 공정거래위

개혁의 기수인가 성장의 걸림돌인가

  • 글: 고기정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koh@donga.com

기로에 선 ‘기업경찰’ 공정거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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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위가 칼을 간다. 그러나 칼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정위와 재계의 대립이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다.
  • 공정위는 여전히 기업을 단속과 지도의 대상으로 보고, 기업은 공정위의 ‘존재 의미’를 의심한다.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향후 한국 경제가 어떤 노선을 걷느냐에 달렸다.
기로에 선 ‘기업경찰’ 공정거래위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앞줄 왼쪽)이 손길승 전경련 회장(앞줄 오른쪽) 및 대기업 총수들과 모임을 갖고 있다(6월12일 전경련회관).

9월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개혁 전도사’로 통하는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과 손길승(孫吉丞)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등 경제 5단체장이 참석한 오찬 회동이 있었다. 통상 정부와 재계의 공식 회동은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읍소, 탄원하거나 특정 지침을 수용하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분위기를 띠게 마련.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양측의 팽팽한 긴장이 회의장을 짓눌렀다. 공정위가 지난 8월 발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때문이다. 핵심 내용은 계좌추적권(금융거래정보 요구권) 연장과 출자총액 제한제도 개편.

‘체질개선’ vs ‘시장자율’

재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표되자마자 이례적으로 정부에 대한 ‘총력투쟁’을 선포한 터였다. 내년 2월 만료되는 공정위 계좌추적권의 시한 연장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출자총액 제한제도도 반드시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곁들여졌다.

하지만 강위원장은 “상대방이 정직해야 대화가 되는 법”이라며 재계의 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였다. 결국 이날 회동에서도 양측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앙금만 남겼다.



강위원장은 “계좌추적권이 연장되지 않으면 부당 내부거래 혐의가 적발된 기업들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위협했다. 박용성(朴容晟) 대한상의 회장은 “지갑을 열어보겠다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다”며 계좌추적권 연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같은 견해차는 결국 기업에 대한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공정위는 기업을 단속과 지도의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계좌를 추적해서라도 부당 내부거래를 적발하고 기업의 소유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제2의 외환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재계는 ‘시장자율’을 내세운다. 소유구조가 나빠 수익성을 위협하면 기업이 알아서 고치는 것이지, 정부가 왜 간섭하느냐는 항변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의 체질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돈 버는 데 지장이 있으면 누가 뭐라기 전에 기업이 먼저 제 살을 깎아낸다. 부당 내부거래 조사도 외국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규제”라며 반박한다.

양측의 논리를 어느 한 쪽이 맞고 다른 쪽은 그르다는 이분법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어차피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재계의 논리가 시장원리라는 불가역성에 근거한다면 공정위의 논리는 정부 규제 완화라는 대세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지금과 같은 규제를 3년만 해보고(시장개혁 3개년 계획) 그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자는 단서를 달고 있다.

그럼에도 재계는 더 이상 공정위의 칼날을 묵묵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기업이 바뀐 만큼 공정위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공정위는 기업의 논리대로 구시대의 산물이자 그 자체가 역설적으로 개혁의 대상일까. 아니면 시장경제의 공정한 룰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일까. 공정위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 그리고 그 방향에 대한 고민의 축소판이 되고 있다.

신군부가 만든 재벌 견제 기구

공정위는 1981년 4월3일 옛 경제기획원의 내부 기구로 탄생했다. 1960년대 초부터 산업간 불균형이 확대되고 독과점 시장구조가 심화되면서 공정거래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지만,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1979년 2차 오일쇼크가 몰고 온 불황은 공정거래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력한 여론을 형성했다.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급등함에 따라 물가관리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게 표면적인 논리였지만, 실제로는 정부 주도형 경제에서 민간 자율의 경제 질서로 나아가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를 정부가 수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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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기정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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