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작지만 강한’ 인제대학교

人性 갖춘 인재 키우는 21세기형 ‘선진 서당’

  • 글: 곽대중 자유기고가 bitdori21@kebi.com

    입력2003-09-26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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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지만 강한’ 인제대학교
    ‘강소국(强小國)’이란 용어가 이제는 일반적으로 쓰인다. 성공적인 공공개혁을 이루어낸 뉴질랜드, 부패 없는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는 핀란드, 노사(勞使) 화합의 모델로 자리잡은 네덜란드, 개방적인 경제 시스템과 강한 지도력을 갖춘 싱가포르 등이 강소국으로 꼽히고 있다.

    ‘인제(仁濟)대학교’는 굳이 용어를 새로 만들자면 ‘강소(强小) 대학교’라고 부를 만한 학교이다. 사람들은 인제대가 강원도 인제(麟蹄)군에 있을 것으로 오해하는데, 인제대는 경상남도 김해시에 본 캠퍼스를 두고 있다. 학교 이름은 대학설립의 정신적, 물질적 지주가 된 고(故) 백인제(白仁濟) 박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백(白)병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백인제 박사는 백병원의 설립자이며, 백병원은 인제대의 모태(母胎)이다. 백병원은 1932년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 주임교수로 외과치료 분야에서 단연 이름을 날리던 백인제 박사가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苧洞)에 자신의 이름을 따 ‘백인제병원’을 설립 운영했다. 그리고 해방 후인 1946년 12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익법인으로 재단법인 백병원을 재탄생시켰다.

    인제대는 1979년 ‘인제의과대학’으로 출발하였다.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것은 1989년의 일. 따라서 종합대학으로서 인제대의 역사는 15년에 불과하고, 현재 재학생은 9000여 명, 그동안의 졸업생은 1만6000여 명 정도다. ‘개교 반세기’ ‘100주년 기념’을 내세우는 유수의 대학에 비추어볼 때, 인제대는 이제 코 밑에 거뭇한 수염이 돋아나기 시작한 청소년인 셈이다.

    신흥 사립대의 대학서열 파괴



    이런 인제대는 2001년 5월 교육부가 ‘전국 182개 대학 종합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지금껏 들어보지도 못한 인제대가 이화여대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한 것. 경희대, 연세대, 인하대, 아주대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당시 교육부는 “평가결과를 기준으로 향후 정부지원금을 결정하겠으며 대학간 인수합병과 합리적 퇴출경로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언론들은 ‘신흥 사립대가 대학서열 파괴’ ‘무명의 인제대 2위로 약진’이란 제목의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당시 교육부 방침은 ‘교육에 투자를 하는 대학은 그만큼 지원해 더 발전하도록 돕고, 그렇지 않은 대학은 퇴출되도록 놓아두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인제대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재단이 학교에 그만큼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인제대의 법인 전입금은 매년 대학 전체 예산 중 25% 이상을 차지한다. 학생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55%, 국고보조금, 기부금 등이 나머지 20%를 차지한다. 거의 모든 사립대학이 대학운영자금의 80∼90%를 학생 등록금에 의지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인제대의 법인 전입금 비율은 연세대, 포항공대, 성균관대 등과 더불어 전국 최고 수준이다.

    또 학생 장학금 수혜율에서도 인제대는 선두권에 속해 있다. 지난해 재학생의 34%가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독특한 점은 기성회비 면제 같은 ‘반쪽’ 장학금을 수혜율에 포함시키는 타 대학과 달리 인제대의 모든 장학금은 전액을 지급하고 있다는 것.

    “우리 대학은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해 만든 인당 장학금과 인제연구장학재단 장학금, 인제민족대학육성 장학금, 성적우수 장학금 등 100여 종의 다양한 장학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62억원에 이르는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이는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최상의 교육여건을 제공한다’는 이사장의 뜻에 의한 것이죠. 조직 발전의 성공사례 분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리더의 자질과 철학, 헌신성’인데 우리 대학에도 이 점이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인제대 김성수(金晟銖·언론정치학부) 기획홍보처장의 말이다.

    ‘인제대는 곧 백낙환’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인제대의 성공비결로 백낙환(白樂晥) 이사장의 역할을 꼽는 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이름을 딴 대학을 설립했지만, 막상 백인제 박사는 개교를 보지 못했다. 백인제 박사는 백낙환 이사장의 백부(伯父)로, 6·25때 백 이사장의 부친인 백붕제(白鵬濟) 변호사와 함께 납북되었다. 주인이 사라진 백병원은 백인제 박사의 큰아들 백낙조(白樂朝·2000년 1월 작고), 백붕제 변호사의 큰아들인 백낙환, 두 사촌형제가 헌신을 다해 현재의 위치까지 성장시켰다.

    백낙환 이사장의 인제대에 대한 애정은 ‘지독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백 이사장은 “병원의 존립근거는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환원하는 데 있다”며 “백병원의 모든 수익은 인제대의 발전에 쓰여야 한다”고 말한다. 병원의 규모 확장에 욕심을 낼 만도 한데 “사람을 더 잘 치료하는 것도 사회에 대한 환원이지만, 더 많은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사회환원”이라는 생각이 그의 변함없는 소신이다. 백이사장은 일주일의 절반은 병원, 나머지 절반은 김해까지 차를 타고 내려와 대학에서 보낸다.

    “이사장은 뒤에 앉아 속된 말로 ‘물주(物主)’ 역할이나 하는 게 점잖지 않느냐”는 질문에 백이사장은 “그것이 오히려 대학 본래의 취지와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사장은 대학을 설립한 법인의 대표로서 대학이 본래의 설립 목적대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대학의 CEO인 총장과 이사장이 얼마나 뜻이 잘 맞느냐, 이것이 대학 리더십의 중요한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뚝심 이사장과 온화한 총장의 만남

    백낙환 이사장은 인제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던 1989년 초대 총장에 취임해 2000년 3월까지 대학의 기틀을 다졌다. 이어 유니세프(UNICEF, 국제연합아동기금) 활동으로 유명한 이윤구(李潤求) 박사가 현재까지 총장직을 맡고 있다. 이윤구 박사가 2대 총장으로 선임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문스러워했다. 일선에서 물러나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백이사장이 아닐텐데 과연 “백낙환과 이윤구가 서로 ‘코드’가 맞겠느냐”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살아온 길을 돌이켜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환자의 몸에 메스를 대는 형이하학(形而下學)적인 의술에 평생에 바쳐온 백이사장이라면,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경력에서 알 수 있듯 형이상학(形而上學)적 사유에 매달려온 이총장이다. 백이사장이 불도저처럼 조직을 이끄는 ‘뚝심의 리더’라면, 이총장은 ‘영국신사’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인화(人和)형의 리더’이다. 정치권과 각종 사회단체의 러브콜도 모두 마다하고 오로지 병원과 대학에만 매달려온 백이사장이라면, 이총장은 유니세프에서 이집트, 인도, 방글라데시 지역대표를 맡아 낙후한 국가에 지원활동을 펼쳤고 현재도 경제정의실천연합회 통일협회 이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흥사단 민족통일운동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는 마당발 사회활동가이다.

    그러나 은퇴 후 미국 딸의 집에서 조용하게 지내고 있던 이총장을 ‘픽업’한 사람은 바로 백이사장이었다. 이총장과 행사장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백이사장이 갑작스레 전화를 해 “인제대학교 총장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이총장은 농담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생각을 좀 해보겠다”는 이총장의 말에 “이게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시고 과감히 받아들여달라”는 백이사장의 간청이 이어졌다. 이총장은 본인의 표현대로 ‘징병당하듯’ 총장에 발탁됐다. 4년이 지난 지금 서로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니 “오래 전부터 같이 살아온 사람처럼 호흡이 척척 맞는다”고 한다. 백이사장은 “이총장의 경력을 보고 한눈에 ‘우리 대학에 제격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음은 이총장의 말.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으면 거의 비슷한 생각을 비슷한 시기에 이사장도 갖고 있는 거예요. 애초에 서로의 의중을 맞춰볼 필요가 없었죠. 처음 인제대 총장 명패 앞에 앉았을 때 ‘이게 나에게 어울리는 옷인가’란 의구심이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 전부터 나를 위해 존재했던 자리를 찾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평생 빈국(貧國)을 다니며 봉사하는 일을 하다가 늘그막에 현실세계의 이런저런 부조리도 발견하겠구나 싶어서 사실은 독한 마음을 먹고 왔습니다. 그러나 인제대는 이만큼 투명하고 깨끗한 교육기관은 없다고 보증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국가와 도시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대학교를 방문해보면 된다. 그 중에서도 대학 ‘도서관’을 가장 먼저 들러보라고 권한다. 도서관의 수준을 보면 이 대학이 전망이 있는지, 인재를 육성하려는 진심이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인제대의 ‘백인제 기념도서관’은 하드웨어적 측면에서 전국 최고 수준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장서와 각종 자료를 전산화하여 완벽한 DB를 구축한 것은 물론, 열람실을 연중 24시간 개방한다. 멀티미디어센터에 있는 멀티미디어실, 영상세미나실, 미디어 편집·제작실의 각종 장비는 전자제품회사의 홍보관에 들어온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초현대식으로 갖추어놓았다. 도서관을 설계할 때부터 “최고가 아니면 갖다놓지 말라”는 백이사장의 불호령(?)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학교관계자들은 “시설보다는 교육내용이나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한다.

    ‘작지만 강한’ 인제대학교

    1996년 8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열리는 ‘낙동강 살리기 환경정화운동’에 백낙환 이사장과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다.

    최근 인제대가 가장 의기양양해하는 부분은, 대다수 지방대학이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등록률이 매년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22일 마감된 2004학년도 1학기 수시모집 등록결과, 인제대학교는 98.9%의 등록률을 기록했다. 매년 4∼5%씩 상승해 이제는 등록률이 거의 100%에 육박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만큼 학교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경상남도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부산·경남지역 이외의 신입생이 35.8%를 차지, 지방대로서는 최고 수준의 타지(他地)학생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 비율 역시 매년 3∼4%씩 상승하고 있다. “지방대학이 아닌 전국중심대학으로 발전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총장이 직접 전국의 고등학교를 돌며 학교를 홍보하는 등 대학의 모든 힘을 집중한 결과”라고 차인준(車仁濬·의학과) 부총장은 그 비결을 설명한다.

    종합대학의 총장이 고등학교 교실을 다니며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생들을 독려하고 대학을 소개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윤구 총장은 이에 대해 “국제기구에 근무하면서 내가 얻은 교훈 중 하나는 몸소 실천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것”이라고 말한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쾌적하게 짓는 일도 잊지 않았다. 현재 인제대 기숙사의 수용인원은 2000여 명. 전체 재학생의 20% 이상이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는 규모다. 체력단련실을 비롯한 각종 휴게시설, 컴퓨터실, 어학실습실, 음악감상실, 독서실 등을 갖추고 있는 기숙사의 별명은 ‘캠퍼스 안의 호텔’. 기숙사에서 학점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생활영어, 생활일본어, 컴퓨터 활용교육 등 ‘0교시 특별수업’을 실시하는 것도 인제대 기숙사의 특징이다.

    기숙사는 인덕재(仁德齋), 백양재(百養齋), 양현재(養賢齋)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 중 양현재는 ‘인재 잉글리시 타운(Inje English Town)’이라는 별칭을 갖고 건물 운영도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170명 정원인 이 기숙사는 말 그대로 ‘영어가 공용어’인 기숙사이다. 물론 무조건 영어만 사용하라는 강제조항은 없지만, 어느 정도 영어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선발되어 유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 저녁에는 특별한 영어수업을 실시하는데, 10번 이상 결석하면 기숙사에서 퇴사해야 한다. 양현재 학생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정명철(鄭明哲)씨는 “최근에도 여러 대학이 벤치 마킹하러 찾아온다”고 귀띔했다.

    양현재에는 현재 9명의 외국인 학생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해외에 입양되었다가 다시 모국을 찾은 학생들이다.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노르웨이 국적을 갖고 있는 이 학생들은 인제대만의 ‘해외입양인 모국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입학했다. 2001년부터 실시된 이 프로그램은 해외 입양인들이 인제대 기숙사에 머물면서 한국어, 한국역사, 한국풍물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한국 학생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영어교사 역할도 한다.

    지난 6월말 양현재의 문을 두드린 미국 국적의 나리 베이커(Nari Baker) 양은 “늘 한국에 와보고 싶었는데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당장 신청했다”면서 “한국어를 잘 못하고 생활습관에 차이가 있어 아직은 많은 점이 어렵지만, 내가 태어난 땅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낙환 이사장과 이윤구 총장이 가장 열성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는 환경보호운동과 북한지원활동, 그리고 인성교육이다. ‘낙동강 살리기 환경정화운동’은 인제대와 백이사장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큼 유명한 운동이 되었다. 1996년 8월부터 백이사장은 매달 한번씩 열리는 이 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울에서 김해까지 내려온다. 재학생과 교직원 수백 명이 일렬로 서서 트럭 몇 십대 분량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장관은, 지금까지 60여 회를 이어온 인제대만의 전통이자 김해시의 시민운동으로 승화되었다.

    이윤구 총장 취임 이후에는 ‘우리바다살리기운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 운동은 2000년 12월31일부터 2001년 1월 1일까지 1박2일 동안 남해군에서 처음 실시되었는데, “연말연시에 학생들이 얼마나 참여하겠느냐”며 시큰둥했던 주변의 예측과는 달리 지원 학생이 대거 몰리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후 매년 학생과 교직원이 항·포구 및 해안가에 모여 방치된 각종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인제대는 또한 북한어린이들에게 ‘생명의 빵’을 보내는 운동에도 열심이다. 평안북도 정주(定州)군에 빵공장을 설립하여 학생과 교직원들의 성금으로 빵을 생산, 북녘 어린이들에게 공급하는 것. 정주는 백낙환 이사장의 고향이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주 땅에 백병원을 설립하여 인술을 펼치는 것이 생전의 꿈”이라고 되뇌인다. 이러한 백이사장의 꿈은 ‘범종단 북한수재민돕기 추진위원장’으로 1990년대 중반 발이 닿도록 북한을 드나들며 식량지원 운동을 펼쳤던 이총장의 뜻과도 일치하여 인제대 주요 사업의 하나가 되었다.

    최근 인제대 입구에는 희한한 현수막이 걸렸다.

    ‘금연실천 인제학우 결의대회’

    주최자는 인제대 총학생회이다. 정치적인 구호가 섬뜩하게 적힌 현수막이 즐비한 여느 대학과 다른 모습이 한편 어색해 보이면서도 ‘신(新) 학생운동’에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제대는 대학으로서는 최초로 지난해부터 캠퍼스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선포했다. 강제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간혹 담배를 피우는 학생이 보이기도 하고, 대학신문에는 ‘흡연자의 권리’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대학과 비교해 흡연자를 보기 어렵고 화장실이나 복도가 쾌적하다. 교직원의 89%가 이미 비흡연자이다.

    이러한 정책에도 역시 의사인 백이사장의 지론이 작용했다. 인제대의 신입생 모집 팸플릿은 특이하게도 ‘인당(仁堂) 백낙환의 건강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소식(小食), 다동(多動), 금연(禁煙), 절주(節酒).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 담배 끊고, 술을 절제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법이라는 말이다. 뒷면에 조그맣게 학교 소개를 적어놓고, 거의 모든 지면을 이러한 건강법 안내에 할애하고 있다.

    “유능하고 똑똑한 인재가 들어와도 인성이 바르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이사장님의 뜻을 반영한 홍보물입니다.”

    김명준(金明俊) 홍보과장의 말이다.

    인제대 곳곳에는 ‘바르게 삽시다, 웃으며 인사합시다, 책을 많이 읽어야 사람이 됩니다, 담배를 끊읍시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백이사장과 이총장이 강조하는 인성교육의 4대 항목이다. 이 총장은 “인제대 졸업생이라고 하면 가슴이 따뜻한 사람, 늘 다정하게 웃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꾸준히 심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예 ‘인성교양 학사학위’를 만들어냈다. 학점 총계가 일정 정도 되는 학생들 가운데 대학에서 정한 봉사활동 시간과 추천도서를 필독하면 별도의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실시된 이 제도는 아직 홍보가 부족해 3∼4명의 학생만 수료했을 뿐이지만, 향후 수료자에 대해 취업추천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확산시켜나간다는 방침이다.

    의용공학의 선두주자

    백병원을 모태로 하고 있는 만큼 인제대는 의학 및 의생명공학 특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학과는 국내에서는 아직 그 이름이 생소한 의용(醫用)공학과. 의학과 공학이 접목된 신학문으로 의료기기 및 의용재료 등을 심도 있게 가르쳐 의용공학 전문인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생명공학대학 김영곤(金榮坤·의용공학) 학장은 “의료정보, 의료기기, 생체역학, 의용재료 등으로 의용공학 분야를 세분화하여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대학은 인제대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에는 의용공학 분야의 전문인력이 부족한 형편. 덕분에 정부와 각종 의료기관에서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으며, 졸업생 전원의 취업도 보장되고 있다.

    인제대의 디자인대학은 신입생 모집에서 ‘실기시험’을 가장 먼저 없앤 것으로 유명하다. 인제대는 개설 첫 해부터 수학능력시험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입시학원에서 공식대로 가르쳐준 실기시험으로 디자인 감각을 측정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은 컴퓨터가 모든 디자인 툴(tool)을 실행할 수 있어, 붓이나 펜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디자인이 가능합니다. 시대가 변했으면 신입생 선발방식이나 교육방식도 바뀌어야지요.”

    디자인대학 유연식(柳然植·제품인터랙션디자인 전공) 학장의 말이다.

    인제대의 취업률도 전국 대학 평균과 비교할 때 월등히 높다. 교육인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인제대의 취업률은 82.2%로 3년 평균 취업률이 80%를 넘었다. 이는 전국 대학 평균 취업률을 20%나 상회한 수치다.

    손병기(孫炳基·경영학부) 소장은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김해공단에 인접하고 있는 지리적 요건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지난 2000년부터 실시된 ‘Job Initiative+10’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취업률을 10% 늘리자는 목표로 시작되었죠. 이 프로그램에 따라 각 학과 단위까지 위원회를 구성하고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산업현장을 뛰어다녔습니다. 그 결과 최근 3년 사이에 취업률이 비약적으로 올랐습니다. 물론 우수한 학생들이 인제대를 선택했고, 교수님들이 현장위주, 경험위주의 학습을 실시한 게 가장 큰 비결입니다.”

    최근 인제대는 대학의 새로운 이미지를 위해 ‘사랑과 정이 넘치는 대학’이라는 표어를 만들었다. 각종 기관과 여론매체의 대학 종합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점한 기록을 자랑하기보다는 ‘인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두겠다는 뜻이다. 인제대를 나설 때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성경의 한 구절이 입안을 맴돈다. 이름 그대로 ‘어짊(仁)으로 세상을 구하길(濟)’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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