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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틀린 것 또 틀리고 멋대로 첨삭까지

  • 글: 리동혁 在中 자유기고가

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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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판 삼국지들은 왜 똑같은 오류를 반복할까. 좋은 판본을 손에 넣었다 해서 반드시 좋은 번역이 나오는 건 아니다. 여러 가지 판본과 관련 자료들을 갖추고, ‘삼국지’ ‘후한서’ ‘자치통감’과 같은 정통 역사서를 공부한 다음, 중국 고대문화와 군사제도까지 두루 연구해야 비로소 ‘삼국지’를 번역할 자격이 있다. 웃으면서 시작해 울면서 끝난다는 ‘삼국지’ 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삼국지’의 한글판은 여럿 있지만 아무리 시원찮은 번역물이라도 ‘갑이 을을 죽였다’가 ‘갑이 을에게 죽임을 당했다’로 바뀌지 않았으니, 무용담이나 줄거리만 보자면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 그러나 작품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좋은 번역은 읽기 편하고, 원작의 맛을 살리며, 남들이 비슷한 작품을 옮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침서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이문열 ‘삼국지’의 오류를 지적한 책 ‘삼국지가 울고 있네’를 막 펴내려는 시점에 황석영씨가 6년간 품을 들여 원본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 원전에 충실한 ‘삼국지’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존 한글 ‘삼국지’에 실망이 컸던 만큼 제대로 된 ‘삼국지’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역시 기존 한글판 ‘삼국지’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답습하고 있었다.

한글판 ‘삼국지’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썼다고 하는 삼국지 해설 혹은 부록에서부터 틀린 곳이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삼국지’ 연혁을 다루는 글에 약방의 감초처럼 끼여드는 자료가 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의 ‘교아시(驕兒詩)’에 나오는 두 마디와, 북송의 문학가 소식(蘇軾, 1036~1101, 호 東坡)의 ‘동파지림(東坡志林)’에 나오는 한 단락이 그것이다. 이들은 자주 인용되나 해석은 뒤죽박죽이다.

즉 귀여운 아들을 자랑하는 이상은의 ‘교아시(驕兒詩)’가 황석영 ‘삼국지’ 해제에는 ‘버릇없는 아이’(10권 255쪽)로 바뀌었다. 또 어떤 이가 소동파에게 아이들이 유비를 좋아하고 조조를 싫어한다고 하면서, “이로써 군자와 소인의 영향은 백 대를 지나도 끊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以是知君子小人之澤, 百世不斬)”라고 한 말이 이문열 ‘삼국지’ 부록에는 소식의 말로 변했다(1권 372쪽). 더욱이 장정일, 김운회, 서동훈 공저의 ‘삼국지해제’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는 자신이 편찬한 ‘지림(志林)’에서 ‘삼국지’처럼 군자와 소인을 구별한 책은 백세가 지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삼국지해제’ 30쪽, 김영사 2003년 3월 1판 1쇄)

중국어를 바로 알거나 이상은의 ‘교아시’ 전문을 찾아보고, ‘동파지림’을 보았더라면 이처럼 황당한 해석이 나올 리 없다. 소설 ‘삼국지’는 소동파가 백골로 변한 뒤 200년쯤 지난 원나라 시대에 나왔다는 것쯤이야 ‘삼국지’ 애호가들에게 상식 아니겠는가.



최신 한글 판본인 황석영 ‘삼국지’를 중심으로 한글 ‘삼국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봄으로써 ‘삼국지’의 제 모습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중국에서는 ‘삼국연의(三國演義)’로 알려졌으나 서술의 편리를 위해 ‘삼국지’로 지칭한다.

이상한 원전 해석, 일러두기부터 틀려

황석영 ‘삼국지’는 원서의 판본부터 꼼꼼히 골랐다고 한다. 언론 보도는 이렇게 적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국내 번역본들은 대개 대만 삼민서국(三民書局)에서 나온 ‘삼국연의’를 원본으로 삼았지만, (황석영씨는) 1999년 중국 상하이에서 나온 ‘수상삼국연의’를 원본으로 했다. ‘수상삼국연의’는 청대에 나온 모종강본 삼국지의 번잡한 가필을 바로잡고 명대 나관중의 원본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판본으로 꼽힌다.”

보통 명대 나관중 원본이라면 나관중이 엮은 가정본(嘉靖本, 1522년 출판)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를 가리킨다. 필자는 1986년에 상해고적(上海古籍)출판사의 간체자 문자표본(전2권, 1980년 4월 초판 1쇄, 1984년 6월 초판 3쇄)을 샀고, 2003년에는 고서와 형식이 거의 같은 인민문학출판사 영인본(전8권, 1975년 7월 초판 1쇄)도 갖췄다. 개인적으로는 나관중본을 더 좋아하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석영 ‘삼국지’를 펼쳐보니 일러두기의 설명은 기사와 달리 다음과 같았다.

“이 책은 중국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발간한 간체자(簡體字) ‘삼국연의’와 이를 번체자(繁體字)로 바꾼 강소고적(江蘇古籍)출판사의 ‘수상삼국연의(繡像三國演義)’를 저본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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