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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도교문명의 뿌리 칭청산(靑城山)

香煙 그윽한 푸르름 속, 天師의 자취를 좇다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2000년 도교문명의 뿌리 칭청산(靑城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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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교가 중국의 국가·사회 질서, 학문과 기술을 통치자의 입장에서 규명하려 했다면 도교는 종교적 요소를 바탕으로 이를 민중의 입장에서 대변해왔다. 이렇듯 민중의 정서가 흠뻑 밴 도교를 모르고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한다.
  • 그러니 중국문화를 살펴보려는 이들에게 도교의 본산 칭청산을 품은 청두는 더없이 매력적인 여행지다.
2000년 도교문명의 뿌리 칭청산(靑城山)

온통 푸르름으로 뒤덮인 칭청산의 산문

중국의 내륙도시 청두(成都)에는 볼거리가 아주 많다. ‘삼국지’에 유비의 군사(軍師)로 나오는 제갈공명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 중국의 저명한 도교 사원인 청양궁(靑羊宮), 당대의 시인 두보(杜甫)가 한때 머물렀던 두보 초당, 팬더 등 이 지역 특유의 동물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청두 동물원, 3000년 전의 제사 터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해놓은 싼싱뒈이(三星堆) 박물관, 백화점과 부티크 가게들이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청두 최고의 번화가 춘시루(春熙路)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교외에는 이보다 더 많은 볼거리가 있다. 인근 100km 이내에 세계문화유산만도 네 곳이나 있는 것이다. 중국 불교 성지의 하나로, 선경(仙境)으로 이름이 자자한 어메이산(蛾眉山)과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높이 71m)인 낙산대불(樂山大佛), 2200년 전의 치수(治水)시설인 두쟝옌(都江堰), 그리고 중국 도교의 고향인 칭청산(靑城山) 등이 바로 그것이다.

도교는 신선사상에 뿌리를 둔 중국 자생의 종교로 중국의 역사와 풍토, 지리적 조건하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20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노자(老子)를 개조(開祖)로 하고 장도릉(張道陵, 본명은 張陵·?∼156)을 교조(敎祖)로 하는 도교는 그 역사적 전개과정이 유교와 비슷하지만 내용상으로는 큰 차이를 보여왔다.

유교가 중국의 사회 및 국가 질서, 그리고 학문과 기술을 통치자 혹은 지배자의 입장에서 규명하고자 했다면 도교는 종교적 요소를 중심으로 사회적 질서와 틀, 학문과 기술 등을 민중의 입장에서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바탕에 민중의 정서를 깔고 있어 도교를 모르고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때문에 중국문화를 탐방하려는 이에게 청두는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가 된다.



‘天賦之國’의 도시

청두는 흔히 ‘천부지국(天賦之國)’이라 불린다. 그만큼 먹을 것이 풍족하다는 뜻이다. 당대의 시인 이백(李白)이 ‘촉도난’이란 시에서 “아아, 촉(蜀)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은 푸른 하늘을 오르기보다 더 어려워라”라며 그 지형의 험난함을 읊기도 했던 청두 일대가 먹을 것이 풍족한 땅이 된 데에는 두쟝옌이 큰 역할을 했다.

두쟝옌이란 전국시대 촉나라 태수였던 이빙(李氷)이 아들 이랑(李郞)과 함께 청두 교외를 흐르는 민강(岷江)에 기원전 256년 설치한 수리시설을 말한다. 당시 이곳은 진(秦)나라 땅이라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저력 또한 촉의 풍부한 물자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날 청두시는 그때의 번성함을 되살리려 디지털 기술을 육성하는 하이테크 단지를 오래 전부터 조성해 우수한 인력과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2200년 전에는 치수가 최고의 하이테크였지만, 지금은 디지털 기술이 그에 해당된다며.

청두의 여행사에선 두쟝옌과 칭청산을 하루에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대중교통편으로 그 두 곳을 직접 찾아다닌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왕복 교통비와 점심식사, 입장료 등을 포함해 80위안(1만2800원)이었는데,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청두 시내를 한바퀴 돌면서 예약 손님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가까운 두쟝옌부터 찾았다. 길이 잘 닦여 있어 차는 마음껏 속력을 냈다. 1시간 뒤에 두쟝옌시에 도착했다. 도시는 꽤 컸다. 버스 정류장 앞 로터리에는 이빙 부자(父子)의 모습을 새긴 커다란 소상(塑像)을 세워 ‘두쟝옌의 도시’임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었으나, 버스는 스쳐지날 뿐 멈추지 않고 곧장 숲이 울창한 산속으로 달려갔다. 강변으로 가야 할 텐데 차는 반대로 산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차가 섰다. 그때에도 강은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안내원이 나눠준 입장권을 들고 숲속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갔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향해 들린 날렵한 처마와 검은 기와지붕,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잡다한 인물상과 신상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왜 하늘과 만나는 지붕 위에다 저토록 요란한 장식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 있는데, 피부가 해맑은 열아홉 살 안내원 덩양(鄧陽)은 그것이 ‘이왕묘(二王廟)’라고 일러줬다. 이왕묘는 이빙 부자를 모신 사당. 세로로 ‘이왕묘’라 쓴 편액은 빙옥상(憑玉祥)의 글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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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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