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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파리 오트 쿠튀르 ‘황색 돌풍’ 일으킨 디자이너 김지해

“명품 ‘지해’ 브랜드 파워 3년내 ‘애니콜’처럼 키워낼 자신”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파리 오트 쿠튀르 ‘황색 돌풍’ 일으킨 디자이너 김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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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트 쿠튀르 ‘황색 돌풍’ 일으킨 디자이너 김지해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선보인 김지해씨의 의상들. 위사진은 2002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한일월드컵을 기념하는 의미로 만든 축구공 문양 드레스로 전세계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자그마한 키에 노랗게 염색한 머리, 검은 바지 정장에 붉은색 스카프. 디자이너 하면 떠오르는 화려하고 ‘엘레강스’한 여인의 느낌보다는 장난기 가득한 톰보이 같은 모습이다. 아니나다를까, “어릴 적 유별나게 옷을 좋아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바느질 한번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여자아이들이 그렇잖아요. 화려한 옷 입은 마론인형을 좋아하고 옷 그림 그려서 종이인형에 입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래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다섯 살 때부터 집 근처 인왕산을 헤매고 다니면서 전쟁놀이를 했죠.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1년 내내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애들 있죠? 그게 바로 저였어요. 남자 점퍼 같은 것만 걸치고 다녔죠.”

한의사로 한시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천자문을 익히고 동양고전에 관심을 가졌다는 김씨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87년 일본유학을 떠날 때까지 대학교수가 되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 하지만 문학공부를 위해 밟은 일본 땅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한 청년과 마주치게 된다.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습하고 더운 여름날이었어요. 길 건너편에서 특이한 복장을 한 남자가 걸어오는 거예요. 잉글랜드 전통의상처럼 두꺼운 치마에 옷핀이 수천 개 꽂혀 있고 발에는 가죽장화를 신었어요. 시선을 올려 그 남자의 상체를 살펴보니 갖가지 색깔로 염색한 펑크머리를 하고 있었죠. 그동안 저는 옷이란 몸을 가리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를 본 순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죠. 아, 저것도 옷이구나. 여름에도 겨울 옷을, 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구나. 옷으로 저렇게 개인의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나도 내 삶의 틀을 깨뜨릴 수 있는 옷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 종일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는 명문 와세다대 입학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도 그 남자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과감히 대학을 포기하고 일본 최고 권위의 의상학교인 문화복장학원을 찾아갔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와 요지 야마모토가 다닌 학교예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바늘을 잡았죠(웃음). 하지만 급속도로 빠져들었어요. 당시 부학장이 제 담임선생님이었어요. 그분은 강의 때마다 학생들이 만든 의상 중 좋은 것을 골랐는데, 유난히 제 옷이 많이 뽑혔어요. 그 때마다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옷’ ‘소매가 살아 있는 옷’이라고 칭찬하셨죠. 그곳에서 2년 동안 공부했어요.”

문화복장학원의 커리큘럼은 보통 3년 과정이다. 하지만 2년 후 담당교사는 그에게 ‘하산’을 명했다. ‘더 가르칠 것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곧바로 일본의 의류회사인 D그룹에 입사해 1991년 프랑스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그의 인생은 또 한번 전환점을 맞게 된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프랑스에서 저는 열심히 일했어요. 정말 제 능력의 200%를 쏟아냈죠. 그런데 바이어들이 김지해를 보는 게 아니라 회사만을 본다는 걸 알았어요. 일본 회사에 있으니 내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였죠. 자존심이 상했어요. 또 이렇게 있다간 정말 회사 속에 매몰되고 말겠구나, 나만의 옷을 만들 수 없겠구나 싶었죠.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곧바로 사표를 냈죠.”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를 붙잡기 위해 온갖 수단이 다 동원됐다. 그가 회사에 가져다준 수익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원래 너처럼 의리가 없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그는 결심을 굽힐 수 없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결심은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하지만 곧 더 큰 시련에 부딪혔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하는데,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었어요. 무엇보다도 회사의 방해가 문제였죠. 제 바이어들에게 ‘저 친구는 갑자기 회사를 나간 의리 없는 사람이다. 거래하지 말라’며 모함도 했고요. 정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죠.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어요. 하지만 지금 돌아가면 영원히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머리를 빡빡 밀어버렸어요. 그러면 창피해서라도 한국에 돌아갈 엄두를 못 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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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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