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호

성악가 최현수의 토마토 스파게티

식탁에 펼쳐지는 지중해의 香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4-11-24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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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상상을 자극하는 먹을거리가 있다. 와인은 술 익는 프랑스 포도농장을, 카레는 인도의 힌두교 사원을 떠오르게 한다. 스파게티에 뿌려진 올리브유와 바실리코(바질)의 산뜻한 향은 중년의 바리톤을 이탈리아 유학생 시절로 돌려보낸다.
    성악가 최현수의 토마토 스파게티
    1986년 베르디 국제콩쿠르 1등, 1988년 파바로티 국제콩쿠르 우승, 1990년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성악부문 1등…. 성악가 최현수(46·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가 정상에 오른 국제콩쿠르는 무려 13개에 이른다.

    ‘바리톤의 시인’ ‘한 세대를 풍미할 진정한 베르디 바리톤’이라는 극찬이 항상 그를 따르는 수식어다. 하지만 최씨는 스스로를 고독한 길을 걸어온 ‘외로운 늑대’라고 말한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온갖 고난 속에서 홀로 인생을 개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로부터 두 가지를 물려받았다. 강인한 체력과 지독한 가난. 튼튼한 소화기관과 강한 폐는 노래를 부르는 데 최고의 선물이었다. 가난은 그에게 역경을 견디고 헤쳐나가는 끈기와 인내를 선사했다.

    5녀1남 중 막내, 외동아들로 태어난 최씨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말보다 노래를 먼저 배웠을 정도.

    “믿을지 모르겠지만 걷기도 전,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의 자장가, 나를 당신 무릎이나 옆에 뉘이고 뜨개질하면서 부르던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너무도 편하고 좋았습니다. 누나들도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가르쳐줬죠. 모두가 음악과 미술 문학 등 예술에 소질이 있었어요. 가난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누나들은 평범한 주부가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있을지 모르죠.”



    그가 네 살쯤 됐을 때다. 누나들은 학교에서 배운 ‘산타루치아’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의 외국 가곡을 그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그를 무대에 세웠다. 분장까지 시켜서 다락에 올려진 그는 미닫이문이 열리면 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했다. 물론 반응은 뜨거웠다. 그의 첫 무대였다.

    부모는 그가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상상하고 미래를 꿈꾸는 자유를 허락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시절, 기계 만지기와 격파, 차력, 권투 같은 격렬한 운동을 좋아하던 그는 어느 순간 음악에 영혼을 빼앗겨버렸다. 음악이 없었다면 일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최현수씨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하지만 계획 없이 밀어붙이는 ‘불도저’식은 아니다. 중학교 때 그는 10년 계획을 세웠다. 10년 후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놓고 거슬러 내려오면서 계획을 정리해보니 오늘 무엇을 얼마나 공부해야 할지 답이 나왔다. 분해와 조립의 원리와 비슷하다. 완제품을 분해해서 조립하는 과정을 계획으로 세웠다는 이야기다.

    성악가 최현수의 토마토 스파게티

    지독히 가난했다.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믿을 건 오직 실력뿐. 최현수의 지나온 음악인생은 외로움 속의 몸부림이었다. 그는 그 고독한 길을 계속 걸어갈 작정이다. 가슴으로 노래를 부르며.

    경제적 여건이 받쳐주진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를 하나씩 조립해나갔다. 고교시절, 종이건반을 교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피아노를 익혔고, 점심시간이면 음악실로 달려가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부르며 즉석 콘서트를 열었다. 그의 콘서트는 고교 1학년 때부터 졸업 때까지 계속됐다. 처음에는 청중이 한두 사람뿐이었으나 졸업공연에는 수십 명이 몰렸다. 결국 그는 개인레슨 한 번 받지 않고 연세대 음대 실기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그의 대학생활은 오로지 음악공부와 피나는 연습뿐이었다. 매일 오전 7시에 등교해 통금 직전까지 연습에만 매달렸다. 세계적 성악가의 음반 5000여장을 섭렵하며 그들의 호흡법과 발성법을 익혔다. 졸업할 무렵 그의 레퍼토리는 1000여곡이 넘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비행기 티켓은 편도 한 장. ‘꿈’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때가 1984년. 유학 기간에 그는 한국 유학생들과 담을 쌓고 살았다. 이탈리아 교회에서 만난 목수, 청소부, 시인, 법률가 등 다양한 직종의 이탈리아인들이 그의 친구였고, 음악이 그의 유일한 생활이었다. 그 시절 그가 자주 즐기던 음식이 바로 스파게티다. 특히 토마토 스파게티는 그에게 이탈리아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물에 (천연)소금을 넣고 끓인다. 약간 짭짤한 맛이 날 정도가 적당하다. 물이 끓으면 올리브유를 조금 부은 후 스파게티를 넣어 삶는다. 면은 1인분에 150g 정도가 적당하다. 올리브유를 넣는 이유는 면을 익힌 후 꺼낼 때 서로 엉겨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면에 따라 다르지만 8~9분 정도 익히면 충분하다(면 포장지에 끓이는 적정시간이 표시돼 있음). 면이 다 익으면 꺼내 찬물에 넣어 식힌다.

    소스는 더없이 간단하다. 잘 익은 생토마토를 믹서에 간 다음 올리브유와 바실리코(바질)를 잘게 잘라서 섞으면 된다. 바실리코는 이탈리아 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야채다. 산뜻한 향과 맛으로 식욕을 돋우는 효과가 있다.

    삶아낸 스파게티를 접시에 담아 준비된 소스를 뿌려 먹으면 생토마토의 상큼한 맛과 바실리코의 향이 어우러져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혀에 감돈다. 여기에 얇게 썬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를 겹쳐서 먹는 것도 별미다.



    성악가 최현수의 토마토 스파게티

    최씨 부부와 후배 조봉현(바리톤) 안은영(소프라노)씨부부가 토마토 스파게티로 점심을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최현수씨는 이탈리아 유학 2년 만에 동양인 최초로 베르디 국제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날, 이탈리아 한국 유학생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쁨에 들떠 축제의 노래를 합창했다. 2년 후인 1988년 미국 파바로티 국제콩쿠르에서는 무려 170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위로 10년, 아래로 10년과 경쟁해 이겼다. 한 세대를 평정한 것이다. 그리고 1990년 세계 3대 국제대회의 하나인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영예의 1등에 올랐다.

    카네기홀 공연, 전미 순회공연 등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제의를 받고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음악은 살아온 길이자 존재의 의미다. 남은 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지에는 끝이 없습니다.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인생도 끝나는 것이지요. 나를 기억할 사람들에게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자기 발전을 위해서 살다 간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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