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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고국 무대 선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춤추는 순간 난 ‘강철 나비’가 돼요”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고국 무대 선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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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무대 선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출국 당일 새벽, 인터뷰 시간을 내준 강수진.

-단명(短命)에다 고통스럽기까지 한 무용을 선택한 데 대해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아뇨, 진짜 행복해요. 다음 생에도 발레를 선택할 거예요. 일생에 딱 두 번 힘들어서 후회해본 적이 있긴 하죠.”

수진은 초등학생 때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1년6개월 동안 미국·캐나다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수진에게 발레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사람은 어머니 구근모씨. 어머니의 권유로 선화예중 때 발레를 붙잡았다. 발레를 늦게 시작한 수진은 180도로 벌어지지 않는 다리를 ‘찢기’ 위해 잠들 때도 토슈즈를 신고 다리를 벌려 벽에 붙이고 잤다. 아침에 눈을 뜨면 혼자 힘으로 다리를 오므릴 수 없어 언니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수진은 발레를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이화여대 주최로 열린 발레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후 유학생을 선발하러 온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 교장 마리카 베소브라소바의 눈에 띄었다.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세운 국제적인 발레 교육기관. 마리카 교장은 수진의 아버지에게 ‘10만명의 발레리나 중에 한 명 나올까말까한 천재’라고 추켜세우며 유학을 권유했다. 마리카의 예측은 정확했다. 지금도 수진은 자신을 발굴해 키워준 마리카 선생의 생일 때면 모나코로 날아간다.

수진은 모나코 발레학교에서 한동안 적응하지 못해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울 때가 많았다. 한번은 밤새 트렁크를 싸 마리카 교장을 찾아갔다. 마리카 교장은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마다 피한다면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예술가가 될 수 있겠냐”며 수진을 설득해 주저앉혔다.



발레 힘들어 한때 자살 충동

두 번째 고비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들어간 뒤 찾아왔다. 언어, 음식, 인간관계, 발레실력에서 벽을 느낀 데다 잦은 발목 부상으로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 입단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솔로는 고사하고 군무(群舞)에조차 변변히 끼이지 못했다. 식탐(食貪)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느라 몸무게도 10kg이나 불었다. 자주 울었다. 극장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수진은 다시 피나는 연습으로 실력을 향상시켰다. 마침내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솔로 역을 맡았고 1993년 1월에는 주역 발레리나의 반열에 올랐다.

“2년씩 지속된 두 번의 슬럼프 때는 정말 발레를 그만두고 싶었죠. 몸이 너무 아프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행복해요. 저에게 재능을 주고 이 아름다운 예술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남자 무용수는 단명한다고 했는데 몇 살까지 할 수 있나요.

“남자 무용수는 서른다섯을 넘기기 힘들어요. 저희 발레단에도 쉰 넘은 사람이 있지만 힘든 역은 안 하죠. 보통 남자 무용수가 그만두는 이유는 허리 때문이에요. 여자 무용수를 들고 춤을 춰야 하거든요. 허리 통증 때문에 그만둬요. 우리야 자신만 돌보면 되잖아요. 남자들이 들어주니까.”

-여성 발레리나의 체중이 무거우면 남자 무용수에게 부담을 주겠군요.

“자기를 위해서나 파트너를 위해서나 체중관리를 잘 해야죠. 물론 몸무게보다 코디네이션(조화)이 더 중요하지만. 남자 무용수들은 ‘몸이 가벼운 발레리나라도 코디네이션이 안 되면 힘들다’고 말해요. 남자 무용수와 여자 무용수가 호흡을 맞춰야 하거든요.”

터키인 남자 무용수와 결혼

수진은 2002년 독일에서 터키인 매니저 툰치 셔크만과 결혼식을 올렸다. 툰치는 같은 발레단의 남자 무용수였다. 둘의 관계는 동료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애인으로 발전해갔다.

수진은 1995년경부터 툰치와 결혼하기 위해 부모의 허락을 받으려 했지만 아버지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딸을 외국인에게 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아버지 재수씨의 딸 사랑은 지극하다. 한국 기자들은 아버지를 통해 독일의 강수진과 접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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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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