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시 별량면 죽전마을 앞 갯벌의 동틀녘 풍경. 순천만의 넓은 갯벌은 주민들의 문전옥답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을 한둘쯤 가슴속에 품게 마련. 선암사는 필자에게 늘 사무치도록 그리운 곳이다. 사계절의 세밀하고도 뚜렷한 변화를 오롯이 담아내는 오솔길이 그립고, 절 입구에 서서 빙그레 웃어주는 나무장승도 그립다. 절 주변을 에워싼 숲과 그 숲 바닥을 뒤덮은 차밭, 그리고 언제 찾아도 고아한 절집도 사무치게 그리운 것들이다. 그러니 선암사를 한번 찾아가면 발길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하릴없이 선암사 경내를 소요하다가 송광사로 넘어가는 산길로 들어섰다. 조계산의 산허리를 에돌아가는 이 호젓한 산길에서는 짧은 시구들이 연신 뇌리를 스치고, 잠시나마 세속의 온갖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길동무가 없어도 외롭지 않다. 이름 모를 새소리와 소슬한 바람소리,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딱히 송광사를 염두에 두고 나선 길은 아니었기에 중간께의 갈림길에서 천자암으로 내려섰다. 수령 800년의 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가 눈길을 끄는 천자암에서 점심공양까지 마친 뒤에야 다시 길을 나섰다. 아득한 추억 속의 고향마을 같은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거쳐 벌교읍내로 발길을 돌렸다.
벌교는 보성 땅에 속하지만, 생활권은 오히려 순천시에 가깝다. 그래서 선암사-낙안읍성-순천만 갈대밭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라면 번잡한 순천시내보다 한적한 벌교읍내에 숙소를 정하는 게 좋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유명한 벌교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일제 당시의 건물과 민초들의 삶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게다가 드넓은 갯벌과 기름진 들녘 사이에 자리잡은 덕에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맛집이 즐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