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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MB의 ‘역사적 소명’

MB의 ‘역사적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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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적 성장은 이루었지만 정신적 안정을 얻기에 대한민국 사회는 지나치게 갈등적이다. 고속성장을 이루는 데 바탕이 된 강한 평등의식은 급속하게 진행되는 빈부 양극화 아래서 계층 간 갈등을 첨예화하는 독소로 작용하고 있다. 뿌리 깊은 지역주의는 여전히 사회의 질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으며, 부자가 존경받지 못하는 풍토 또한 천민자본주의의 구습과 맞물려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킨다.

우파 성장론자들은 반(反)기업정서를 탓하지만 일부 재벌의 2세, 3세들이 회삿돈을 빼돌려 해외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는 등의 작태를 근절하지 못하는 한 보편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하물며 그런 재벌의 총수가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래서 검찰이 수사에 머뭇거리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중첩된 여러 요인 중에서도 대한민국 사회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최대 요인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있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그가 추구했던 가치에 대한 평가야 어떠하든 가치 실현을 위한 리더십이 미숙하고 분열적이었다는 점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노무현의 가치’를 대체로 인정하지 않거나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가.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CEO(기업 최고경영자)형 리더십이다. 절차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경험을 중시하는 실용주의도 가미된다. 청계천 성공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4대강도 문제없다는 식이다.

이제는 여기에 ‘역사적 소명(召命)’까지 부가됐다. 욕먹어도 좋다, 인기 없어도 상관없다. 오로지 나라의 선진화를 위해 나의 길을 가련다. 나중에 잘했다는 소릴 들으면 되지 않나. 비판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며 그런 비판여론쯤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무시하거나 통제되어야 마땅하다. 여러 차례 공언한 약속을 깨고 국민에게 사과를 하면서까지 세종시 원안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양심’(이 대통령은 양심상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할 수 없다고 했다)의 차원을 넘어선 역사적 소명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 권력을 가진 지도자로서 대통령은 부박한 민심만 좇아선 안 된다. 미래를 위해 때론 여론을 거스르는 결단을 해야 한다. 역사적 소명을 위해 눈앞의 정치적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격렬한 반대에 의연하게 맞서는 용기도 보여줘야 한다.



1930년대 초 미국의 대공황기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보수파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뉴딜정책을 수행함으로써 미국경제를 파탄의 위기에서 건져냈다. 그 외에도 지도자의 결단이 역사의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례는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이 사례로 들기 좋아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도 하나의 예다.

하지만 지도자의 결단이 반드시 역사적 소명에 근거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업적 쌓기나 정파적 이익을 위한 독선일 수도 있다. 더구나 아무리 역사적 소명이라고 해도 다수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조차 생략한 채 건설공사 공기 단축하듯 밀어붙인다면 부실공사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건 둘째 치더라도 비민주적 절차에 대한 저항과 사회세력 간 갈등으로 세상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개발독재가 먹히는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다시 역사로 돌아가자.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게 반공(反共)은 시대적 소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당 정권은 반공을 무기로 독재와 부패를 일상화했다. 4·19혁명은 그래서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재론할 지면은 없다. 명백한 것은 그의 근대화 노력이 민주화의 토대가 됐다고 할지언정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마저 호도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80년 5월 광주항쟁’에 대한 얘기도 길게 할 여유는 없다. 한 가지 지적한다면 전두환 신군부가 저지른 만행이 대한민국에 자생적 좌파를 출현시켰고, 그 후유증이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이다.

MB의 ‘역사적 소명’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오늘날 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은 무엇인가. 경제성장과 빈부 양극화 완화다. 선진화의 초석을 깔기 위해 개헌도 해야 하고, 행정구역도 개편해야 하고, 교육제도도 바꿔야 하고, 우파정권의 재창출도 이뤄내야 한다지만 ‘성장을 통한 골고루 잘사는 사회’야말로 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시대적 역사적 소명이다. 2010년 우리 경제는 5% 이상 성장하지만 고용사정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성장과 분배의 상충하는 목표를 이루는 최선의 방책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종시와 4대강 사업도 이 역사적 소명의 하위개념이자 실천수단일 수 있다. 하위개념과 실천수단에 집착해 조급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정작 목표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빚어서야 되겠는가. 새해에는 보다 긴 호흡으로 역사적 소명을 생각하기 바란다.

신동아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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