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아이리스’
‘NSS’와 ‘공화국(북한)’‘아이리스(IRIS) 조직’은 서로 대립적 관계이지만 국가주의는 이 셋을 관통한다. 박철영(김승우 분)은 아이리스 조직의 음모에 맞서 ‘공화국’을 구원한다. 핵 테러단의 캡은 원격 기폭에 실패하자 “광화문으로 직접 가서 터뜨린다”고 말한다. 부하들이 “우리 모두 죽자는 얘기입니까”라고 반발하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의 죽음으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면 조국과 인민은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드라마 ‘아이리스’와 미드 ‘24’는 서로 다른 길을 간다. ‘24’의 후반부 시즌으로 갈수록 미국 대통령은 ‘위선주의자’‘겁쟁이’‘딸과 불화를 겪는 어머니’‘테러에 비참하게 죽는 약자’로 자주 묘사된다. 미국 대통령은 ‘정의의 수호신’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끌려 내려온다. 대신 그 자리는 ‘휴머니즘’이 채운다. 잭 바우어는 대통령과 국가를 위해서가 아닌 단지 ‘많은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대량살상무기와 맞선다.
‘포스트 포디즘’의 자화상
‘아이리스’의 ‘정치 메시지’를 구성하는 두 번째 구조는 ‘자본의 지배 구조’다. ‘NSS’와 ‘공화국’‘IRIS 조직’에서 각각 활약하는 주인공들은 비록 소속은 다르지만 ‘최고의 정예요원’이라는 공통된 캐릭터를 갖고 있다. 평균적인 수준의 직장인들에 의한 단순대량생산(포디즘·Fordism)은 이들 엘리트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조직 내에서 폭넓은 자율권을 행사하고 풍족하게 보상을 받으며 창의적으로 활동한다.
최승희는 툭하면 내규를 어기지만 조직은 이런 정도의 일탈을 용인한다. ‘융통성’은 현대의 자본이 고급 노동력을 포섭할 때 사용하는 유명한 전략이다. 궁극적으로 회사는 이들 정예요원들로부터 최고의 생산성을 이끌어내고 이들 요원을 거대한 지배구조에 종속시키는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을 구현한다. 주인공들은 회사가 무엇을 요구해도 해내고 만다. 그리고 이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가끔은 “우린 괴물이 될지 모른다”(김현준-최승희)고 자각하긴 하지만 말이다.
‘초경쟁사회’인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은 ‘회사의 전사(戰士)’가 되어가고 있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주인공들은 이들의 자화상이나 다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