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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3각 파워게임의 전말

기무사·현역·외부인사 얽힌 긴장관계…국방개혁 앞두고 ‘폭풍전야’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국방부 3각 파워게임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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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들어진 이유

국방부 3각 파워게임의 전말

2008년 7월 조계종을 비롯한 전국 각지 사찰의 스님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 시국법회’를 마친 후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실세 중의 실세’류우익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고교 동기동창이자 인척관계인 김종태 기무사령관의 발탁을 두고 임명 초기부터 뒷말이 무성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청와대 독대보고에 대한 일련의 소문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반면 야전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작전통’ 이상희 전 장관의 경우 기무사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 초기의 긴장관계가 주로 기무사와 국방부 인사들 사이에서 빚어진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7월 하순 김 사령관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예방한다. 공식명분은 신임 인사. 그러나 당시는 이미 취임 후 4개월 이상 지난 시점으로, 공교롭게도 한승수 총리가 총무원장을 예방한 직후였다. 이른바 ‘종교편향’ 논란과 맞물려 촛불시위 동참을 고려하던 불교계에 ‘우호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작업으로 비치기에 충분한 정황이었다. 이러한 행보가 과연 기무사령관의 직무에 포함되는지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분위기’에 진노해 있던 당시 청와대의 눈으로 보자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다.

이즈음 김 사령관은 이명박 대통령 본인을 포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에게 이른바 ‘독대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독대 횟수는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게 당국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이지만, 당시 김 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보고 사실이 널리 전해지면서 청와대와 군 주변에서 기무사의 위상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이름하여‘문고리 권력’이었다.

김 사령관이 이렇듯 적극적인 행보를 펼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는 이상희 당시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여권 관계자들 사이의 불편한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강직한 군인’이라는 이 장관의 성격이 청와대와 군 사이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장관직의 ‘정무적 특성’과 잘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막 쏟아져 나오던 시점이었다. 2008년 3월의 장성급 인사와 관련해 이 장관이 청와대의 ‘의중’을 신경 쓰지 않고 독자적으로 인사안을 만들어 올렸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청와대와 당시 국방부 수뇌부 사이의 벌어진 틈에서 상대적으로 청와대와 가까웠던 기무사령관이 ‘정무적 행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는 게 국방부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도 ‘고민거리를 알아서 챙기는’ 김 사령관의 움직임이 싫을 이유가 없었으리라는 것. 이후 제기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김 사령관의 독대 보고 채널을 계속 유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사이버방호사령부의 정치학

‘실세 사령관’으로서 그의 평판은 기무사 내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취임 이후 김 사령관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기무사 전역자들의 재취업 문제. 자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관련업계에서는 곤혹스럽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높아진 위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기회가 생긴 기무사 관계자들의 사기는 급속도로 상승했다. 숙원이었던 새 청사 입주를 마무리한 것이 2008년 11월의 일. 이 무렵 군 주변에서 “기무사가 요즘 너무 잘나간다”는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2009년 9월 초 불거진 기무사의 이른바 ‘민간인 사찰’ 의혹과 사이버방호사령부 논란은 이러한 분위기와 연관해 해석할 수 있다.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기무사 측은 ‘군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조사했던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군 관련성’의 범주를 지나치게 폭넓게 잡고 있다는 반론이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앞서 설명한 대로 2008년 이후 기무사령관이 직무범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운 영역까지 활동범위를 넓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점에 공개된 기무사의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방안은 2009년 7월 디도스 공격으로 주요기관의 홈페이지가 다운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당시 기무사가 국방부에 보고한 방안은 평시의 사이버테러 방어와 유사시 역해킹 공격을 모두 포함하는 파격적인 기구의 창설이었다. 총 500명 규모로 편성해 기무사 예하부대로 둔다는 방안에 대해 정치권은 곧바로 민간사찰 가능성을 우려하고 나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 비판의견은 약간 각도가 달랐다. 이미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에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 있는데 기무사가 새 조직 창설을 주장하는 것은 ‘과잉 의욕’이라는 지적이었다. 디도스 공격으로 사이버테러 방어의 중요성이 증가했다면 정보본부 산하 조직의 규모와 예산을 늘리는 것이 옳지, 기존의 조직을 기무사로 통합해 새로 부대를 만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일이라는 요지였다.

공교로운 것은 기무사가 이렇듯 복잡한 처지에 처했을 때 김태영 장관이 새로 부임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 직할부대인 기무사는 원칙적으로 장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 앞서 설명했듯 기무사가 그간 활동공간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청와대와 이상희 전 장관 사이의 불편한 기류 때문이었지만, 신임 장관 임명을 계기로 청와대 관계자들이 ‘새로운 지형’을 그리려고 하자 국면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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