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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요리사 박찬일의 양식당 이야기

경력 과장하는‘요리계 신정아’, ‘블로그 마케팅’에 속는 손님들

  • 박찬일│요리사·‘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저자│

경력 과장하는‘요리계 신정아’, ‘블로그 마케팅’에 속는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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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과장하는‘요리계 신정아’, ‘블로그 마케팅’에 속는 손님들
당시 한국에서 이탈리아 요리는 태동기였고, 당연히 쓸 만한 셰프가 적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큰 어려움 없이 헤드 셰프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식당 수준이 고르게 올라가고, 한국에서 제법 제대로 수련한 셰프가 꽤 나오는 요즘도 이런 일이 왕왕 생긴다. 역시 유학파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이게 함정 투성이다. 더러는 ‘요리계의 신정아’ 사태가 벌어진다. 경력 확인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일하던 식당의 인근 식당에서 셰프를 새로 뽑았다. 많은 이력서가 들어왔는데, 그걸 심사했던 한 주인은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박형. 유학 3년 만에 현지에서 주방장을 할 수 있어요? 이력서에는 그렇게 나와 있는데.”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시골이나 변두리의 조그만 카페테리아 수준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경력도 변변히 없이 무작정 요리학교를 나왔다고 현지에서 셰프 대우를 받았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언어 배우는 데 1년, 요리학교에 1, 2년 다닌 수준에서 어떻게 주방장을 한단 말인가. 예를 들어, 이탈리아인이 한국에 와서 요리학교를 나오고 한 3년 수련하면 그에게 번듯한 한식당의 주방장을 맡길 사람이 있을까. 하다못해 셰프나 주요 보직으로 일을 했다는 현지 식당에 전화 한 통화만 걸어봐도 알 수 있는 일을 말이다.

가공 블로거 내세워 집중 포스팅

적어도 나와 내 주변 후배들의 외국 경험에 비추어보면 한국인은 잘해야 5년 정도 지나서 셰프 드 파르티, 라인 담당 책임자를 했다면 아주 크게 성공한 사례라고 봐도 좋다. 특히 고급식당이라면 이 정도 보직은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외국인이 이 자리에 올랐다면 정말 대단한 실력파이며, 특히나 동양계 요리사인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굴러다니는 이 동네 이력서에는 툭하면 부주방장(수 셰프. 불어로 sous chef, 영어로는 under chief), 심지어 주방장을 했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야말로 ‘신의 손’이 아니고서야.



요리판에도 사대주의가 판치는 것이다. 실력 확인도 안 된 유학파 셰프에게 덜컥 식당을 맡긴다. 망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안다. 그러나 버스는 떠났고, 불판의 불은 꺼졌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많으면 10억원, 적어도 몇 억원의 비즈니스 머니가 들어가는 식당을 그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이 바닥 수준이다.

요즘 신종 플루가 유행한다지만 좀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식당가에 침투한 건 오래된 얘기다. 이른바 바이러스 마케팅이다. 독한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퍼진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로 입소문 마케팅을 이른다. 식당이 입소문 나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인위적으로 가짜를 만든다는 데 있다. 하루는 내가 일하던 업장의 사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박 셰프. 바이러스 마케팅이라고 들어봤어? 금시초문이라고? 글쎄, 요새 이거 안 하는 데 드물다고 하던데.”

나는 그에게서 꽤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알 만한 식당 여럿이 이 마케팅을 써서 꽤 재미를 보았다는 거였다. 무슨 대단한 방법을 쓰는 건 아니다. 블로거를 동원해 마치 자연스럽게 식당을 다녀간 것처럼 해서 인터넷에 포스팅을 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언론에 나온 맛집 기사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한 신문사 요리 담당 기자의 말처럼 식당 기사의 90%는 ‘신문사 안팎의 민원 처리’에서 비롯된 신뢰 상실의 결과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급속도로 떠오른 것이 블로그다.

언론사에서는 사실상 요리나 식당 전문기자를 키우지 않는다. 어느 언론사나 경제나 법률, 의료 전문 기자를 키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맛집, 요리는 전문기자의 몫이 아니다. 그러니 수준 낮은 기사가 양산되고, 소비자는 블로그에서 정보를 얻는다. 이런 상황을 역이용하는 게 바로 바이러스 마케팅이다. 대개 대여섯에서 열 명가량의 가공 블로거를 내세워 집중적으로 포스팅을 한다. 어떤 경우는 매일 그 식당에 들러 뉴스처럼 업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여러 명의 블로거가 공통적으로 호평을 한 식당을 선택하게 마련이고, 포스팅이 많을수록 더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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