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단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링에 오른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0-01-08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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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홍만과 싸워도 이길 자신 있다
    • 나는 루저(loser), 최강의 무술 주짓수는 루저들이 해야 하는 운동
    • 진료 마치고 울산에서 대전으로 달려가 나이트클럽 야간경기 출전
    • 공포감 뒤에 오는 안도감
    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울산파이트짐은 지하 1층에 있었다. 말이 체육관이지 그래플링(Grappling·엉켜 싸우기)이 가능한 매트 하나와 옷 갈아입는 공간이 고작이다. 매트 한구석에 샌드백이 매달려 있고 매트 밖으로 벤치프레스와 석유난로가 놓여 있다. 그 주변에 헤드기어와 글러브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정면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다.

    우리의 주인공은 곧바로 웃통을 벗었다. 처음 봤을 때 체구가 작아(키가 170㎝가 안 돼 보였다) 실망했는데 뽀빠이처럼 우람한 상체 근육을 보면서 조금 안도(?)했다. 그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앞니가 하나 빠져 있는 것도 신뢰감을 주는 데 한몫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물어보니 경기 도중 펀치에 맞아 나간 것이라고 한다.

    김정훈(42). 그는 의사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울산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그는 낮에는 고상한 의사 선생님이다가 밤이 되면 격투가로 변신한다. 매트 위에서 구르고 샌드백을 두들긴다. 단순히 취미 삼아 운동하는 게 아니다. 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종격투기 대회에 출전하는 의사다. 주로 밤에 운동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쯤은 점심시간을 이용한다. 오늘은 특별히 ‘신동아’ 취재팀을 위해 시간을 더 냈다. 진료는 다른 의사에게 맡기고 왔다. 촬영이 끝나면 물론 병원으로 돌아가 다시 의사 가운을 입을 것이다. 그는 이 체육관의 고문이다. 낮 1시가 다 돼가지만, 식사는 아직 안 했다. 밥을 먹고 운동하면 토하기 때문이다.

    “기자님도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촬영을 위해 부른 스파링 파트너들이 하나 둘 체육관에 모습을 나타냈다. 먼저 그보다 10㎝는 커 보이는 사내와 붙었다. 그의 전공은 주짓수(Jiu-jitsu). 실전 최강의 무술로 꼽히는 주짓수의 뿌리는 일본의 유도다. 브라질에서 발전했다고 해서 브라질리안 유술(柔術)이라고도 한다. 주된 기술은 관절기와 조르기다. 잡고 메치는 유도의 기술에 팔다리를 비틀고 목을 조이고 관절을 꺾는 기술이 더해졌다고 보면 된다.



    그와 상대는 상체를 수그린 채 붙었다 떨어지기를 되풀이했다. 머리를 잡아 아래로 짓누르기도 하고 다리를 잡아 넘어뜨리기도 했다. 매트 위에서 안고 구르고 내던져지기를 몇 번. 썰렁하던 체육관은 곧 열기로 뒤덮였다. 쉭쉭 거친 숨소리와 더불어 엷은 땀 냄새가 빠르게 번져나갔다.

    잠깐 쉬는 동안 그가 말했다.

    “마흔이 넘으니까 프로대회에는 안 끼워줍니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프로대회에도 나갈 생각입니다.”

    두 번째 스파링 상대는 외국인이었다. 랜스키 알텀(29)이라는 러시아인으로 현재 울산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다. 전공은 한국 무기. “아까 건 몸 푼 것이고 진짜 스파링은 지금부터”라고 김씨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처음보다 강도 높은 스파링이 전개됐다. 키가 178㎝쯤 돼 보이는 랜스키는 날렵했다. 두 마리의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상대의 몸을 넘어뜨리기 위한 거친 몸싸움이 계속됐다. 어느 순간 랜스키가 두 다리로 김씨의 상체를 휘감아 엎어뜨린 후 암바(arm bar·팔 관절 꺾기)를 시도했다. 김씨가 견디기 힘든 듯 탭(tap)을 했다. 탭이란 상대방이나 자신의 몸, 혹은 바닥을 두드리는 것으로 항복을 뜻한다.

    그가 일어난 후 스파링이 재개됐다. 이번엔 그가 랜스키에게 트라이앵글 초크(triangle choke)를 시도했다. 두 다리로 상대의 목과 한 팔을 조여서 숨을 막히게 하는 기술이다. 이번엔 랜스키가 탭을 했다. 두 사람은 이어 기무라(kimura), 롤링 니바(rolling knee bar) 따위의 기술을 선보였다. 기무라는 두 다리로 상대의 팔을 고정시켜 꺾는 기술이고, 니바는 상대의 다리 하나를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고정시켜 무릎관절에 손상을 입히는 것이다.

    “중년에게 좋은 운동입니다. 기자님도 할 수 있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가 말했다. 아까부터 몸이 근질거리던 터라 주저 없이 그의 상대로 나섰다. 그가 기자에게 몇 가지 관절기를 가르쳐줬다. 그의 기술이 들어오자 어깨에 참기 힘든 통증이 밀려왔다. 새삼 지능적이고 효율적인 무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스파링을 벌이고 있는 김정훈씨.

    랜스키는 러시아의 국민무술이라 할 만한 삼보도 익혔다. 한국의 씨름과 비슷한 삼보는 세계 이종격투기계의 황제로 군림하는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주짓수를 배운 지 2년6개월 됐다는 랜스키는 주짓수가 최고의 무술이라고 치켜세웠다.

    김씨와 랜스키는 기자의 요청에 따라 그래플링에 타격기를 겸하는 MMA(Mixed Martial Arts·종합격투기) 스파링을 펼쳤다. 두 사람은 마우스피스를 끼었다. 랜스키는 발차기도 능숙하게 했다. 반면 김씨는 주로 주먹을 사용했다. 머리를 숙이고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상대의 펀치와 발차기를 피했다. 권투선수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위빙(weaving), 혹은 더킹(ducking)이었다.

    그의 벗은 몸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다음 상대는 그의 이종격투기 스승이라는 김준용(22)씨. 그는 2005년 국내 이종격투기 대회에 참가했던 실력파로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정훈씨에게 주짓수 기초 기술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키는 작지만 역도선수처럼 상체가 떡 벌어진 김준용씨는 빠르고 힘이 넘쳤다.

    “실전에서 통하더라”

    김정훈씨가 주짓수에 빠져든 것은 36세 때인 2004년이었다. 당시 그는 준종합병원인 울산시티병원 가정의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한창 스트레스가 심할 때였다. 환자 가운데 주짓수 시합에 출전하던 선수가 있었는데, 그가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라며 주짓수를 권한 것이 계기였다. 김씨처럼 몸이 둥글둥글하고 조그마한 사람이 익히기에 딱 좋은 운동이라면서. 해보니 과연 작은 사람이 하기에 적합한 무술이었다.

    “주짓수의 매력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지렛대 원리예요. 작은 사람이 자신의 몸을 지렛대 삼아 큰 사람을 이기는 겁니다. 주짓수를 잘하려면 관절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그런 점에서 주짓수는 과학, 의학과 상통하는 무술입니다.”

    유도와는 어떻게 다를까.

    “유도보다 훨씬 섬세한 운동이죠. 유도는 엎어뜨리면 끝이잖아요. 하지만 주짓수는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밑에 깔려도 이길 수 있다는 것, 깔아뭉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 키가 164㎝밖에 안 되는 엘리오 그레이시가 당대의 격투가들을 다 이겼잖아요.”

    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김정훈씨가 관절기 공격을 하자 기자의 팔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주짓수의 대부로 불리는 엘리오 그레이시는 수많은 실전 대결을 통해 주짓수의 강력함을 입증한 전설적인 무도가다. 1993년 미국 덴버에서 열린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1회 대회에서 내로라하는 거구의 타격가들을 꺾고 우승한 호이스 그레이시가 바로 그의 아들이다. 오늘날 주짓수가 세계 최강의 무술이라는 명성을 얻은 데는 호이스 그레이시가 UFC 1회에 이어 2회와 4회 대회까지 제패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호이시의 형 힉슨 그레이시는 450전 무패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세계 최대의 이종격투기 대회인 UFC에서는 지금도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프랭크 미어, 파브리시오 베흐돔, 조르주 생 피에르 등 주짓수 고수들이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캐나다 국적의 한국계인 데니스 강의 주무기도 주짓수다.

    “입식타격에서는 아무래도 작은 사람이 불리해요. 그렇지만 주짓수는 달라요. 제가 최홍만과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팔 하나만 꺾으면 되거든요.”

    대단한 자신감이다. “실전에서 써먹어봤느냐”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아파트에 사는데, 위층에서 내는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서 얘기 좀 해보라”는 아내의 성화에 올라갔다가 번번이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내려오곤 했다. 위층 남자가 90㎏대의 거구였기 때문이다. 주짓수를 배우고 나서는 가서 당당히 얘기했다. 멱살잡이까지 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대등해졌다. 시끄러운 소리도 사라졌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막장 싸움’

    한번은 길 가다 하급생들의 돈을 뺏는 불량 고등학생을 혼내줬다. 태클과 메치기로 간단하게 제압했다. 친구 중에 조폭이 있어 조폭들 싸움에 휘말린 적도 있다. 두어 번 관절기 공격을 하자 상대가 “말로 하자”며 두 손 들었다. 막상 얘기를 해놓고는 쑥스러운지 변명이라도 하듯 이렇게 덧붙였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싸움은 피해야 합니다. 격투가로서 할 짓이 아니죠. 저는 무도인의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화제가 된 루저(loser) 논란에 빗대어 루저로 자처했다.

    “저, 루저입니다. 키 작고 못생기고. 주짓수는 루저들이 해야 하는 운동입니다. 약자의 운동입니다. 미국 FBI에서 인정했잖아요. 여성이 남성을 이기는 유일한 무술이라고. 아이들이 생기면 꼭 주짓수를 가르칠 겁니다(그는 아직 아이가 없다).”

    166.7㎝에 71㎏이라니 루저라면 루저다. 작은 사람들은 키에 예민하다. 기자가 “166㎝요?”라고 확인하듯 되묻자 그가 큰일 날 소리한다는 듯 “166.7㎝입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태어날 때 2.8㎏의 미숙아였다.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그의 건강을 유별나게 챙기긴 했지만 작은 체격과 약한 체력은 어쩔 수 없었다. 운동을 아주 안 한 건 아니지만, 격투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릴 때 어머니의 권유로 탁구와 레슬링을 조금 하고 대학 다닐 때 여자사범이 예쁘다는 이유로 국술을 몇 개월간 배운 게 다다.

    그는 울산에서 태어났지만 9세 때 부산으로 이사 가서 대학교까지 거기서 다녔다. 학교 다닐 때 불량 학생들에게 맞기도 하고 돈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는 “그때는 운동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할 정도로 나약했다. 그때 나를 때렸던 애들이 지금은 피한다”며 웃었다.

    의대에 진학한 것은 생물과 화학을 좋아해서였다. 군의관으로 입대한 그는 제대 후 울산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개업은 2005년에 했다.

    2004년 그가 입문할 때만 해도 주짓수는 한국에서 그다지 알려진 무술이 아니었다. 그는 울산 주짓수 동호회에 가입했다. 이들은 초등학교 체육실이나 태권도장을 빌려 운동을 했다. 학생과 직장인이 많아 주로 밤 시간을 이용했다. 회원들은 도장에서 무도를 연마하는 한편 1주일에 15㎞씩 구보를 하고 근력을 강화하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현재 동호회원 수는 50명 안팎. 최고령이지만 그의 체력은 젊은이 못지않다. 턱걸이를 한 번에 100개씩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매트에서 ‘막장 싸움’을 벌인다.

    도장에서 훈련하다보면 자잘한 부상을 입게 마련이다. 눈 주변이 찢어지고 팔다리 관절을 다치곤 했다. 귀 모양도 흉하게 변했다. 아내가 극력 반대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간호사와 환자들은 의사가 특이한 운동을 한다고 그저 신기해했지만. 그는 큰 시합에 나갈 때는 아내에게 비밀로 했다. 부상을 당하면 자동차 운전하다가 다쳤다고 둘러댔다. 120㎏의 거구 파트너와 훈련하다 갈비뼈가 나간 적도 있다. 요즘은 아내의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다. 부부는 시간 날 때마다 태화강변을 걷는다. 7~8㎞ 걸으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오줌똥 싸는 기분이었다”

    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주짓수 동호회 울산파이트짐 동료들과 함께.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가 김정훈씨.

    3개월 훈련하고 시합에 출전한 걸 보면 대단한 배짱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경기에 나섰을까.

    “주짓수는 단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증명하는 무술입니다. 그래서 시합에 참가했습니다.”

    대전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열린 X-FIGHTER 대회가 그의 데뷔무대였다. 경기시간은 밤 10시 반. 병원 근무를 빼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울산시티병원에서 퇴근하자마자 대전으로 차를 몰았다. 이 경기에서 그는 상대의 길로틴 초크(guillotine choke)에 걸려 2분45초 만에 패하고 말았다. 길로틴 초크는 상대의 머리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운 상태에서 위팔로 상대의 목을 감아 조르는 공격이다. 상대는 그보다 15세 어린 20대 초반의 힘 좋은 젊은이였다. 그는 경기운영 미숙과 겁먹은 것, 두 가지를 패인으로 꼽았다.

    2006년과 2007년엔 한국브라질리언주짓수대회에 출전해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출전선수도 적었고 한 번 이기고 동메달을 땄던 것”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2008년 1월 제1회 슈토아마이종격투기대회에서 그는 출혈에 따른 TKO패를 당했다. 이때 앞니 하나가 부러졌다. 이 대회 제5회 때도 나갔다가 판정패했다.

    2009년 10월에는 제10회 슈토아마이종격투기대회에 나가 스페셜 매치를 치렀다. 스페셜 매치로 진행된 것은 대회 최고령 선수와 최연소 선수의 대결이었기 때문. 최고령은 그였고 최연소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어느 대회에서든 늘 최고령 선수였다. 5분 2라운드로 치러진 이 경기에서 그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대회 성적만 놓고 보면 자질이 그다지 특출해 보이진 않는다. 이런 지적에 대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길로틴 초크 패-TKO패-판정패-무승부로 경기 내용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며 “요즘 타격(기)을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국내 유일의 이종격투기 의사 김정훈

    의사 가운을 입으니 거친 격투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기자는 대학 시절 교내 권투시합에 나간 적이 있다. 그때 배운 건 기초체력의 중요성이었다. (변명 같지만) 덩치가 훨씬 컸던 상대에게 판정패로 지고 나서 권투도장을 찾았다. 몇 달 동안 기본기를 익히고 나서 사범을 졸라 링에 오른 적이 있다. 그 체육관 소속 프로선수의 스파링 파트너로 말이다. 직업이 트럭기사인 그 선수는 당시 프로 데뷔 후 4전 4KO승으로 질주하던 유망주였다.

    그날 기자는 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감했다. 그 참담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밖에선 넓게만 보이던 사각의 링이 왜 그리 좁던지. 한번 구석에 몰리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원투 좌우 연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머리가 빙빙 돌았다. 2라운드 중간에 사범의 만류로 그만두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다른 스파링 파트너처럼 실신할 뻔했다. 얼마 후 기자는 자질 부족을 인정하고 권투를 그만뒀다. 시작한 지 6개월 만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은 두렵지 않았을까.

    “처음엔 저도 링에 오르는 게 두려웠습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한동안 링에 오를 때마다 오줌똥을 싸는 기분이었죠. 깔끔하게 기절하면 위험하지 않지만, 스탠딩 상태에서 맞다보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때가 있어요. 내가 여기 왜 와 있지, 하면서. 지금도 대회 나가기 전날엔 긴장됩니다.”

    ‘내 나이에 이런 걸 해냈구나’

    그가 링에 오르는 이유는 뭔가. 40대 중반까지 선수로 뛰겠다는, 그 무모하고 위태로운 의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 도대체 의사가 뭐가 아쉬워서 이종격투기 대회에 나간단 말인가.

    “공포감 뒤에 오는 안도감입니다. 내 나이에 이런 걸 해냈구나, 하는. 지더라도 마음이 편안하고 희열을 느껴요. 의사라고 다 ‘땡 보직’이 아닙니다. 저는 의약분업 세대 의사입니다. 생각만큼 의사 월봉이 그리 높지 않아요. 개업을 한 후에도 많이 벌지 못합니다. 생활에 치이다가 링에 올라갔다 내려온 후의 안도감으로 몇 달을 버티곤 합니다. 의사들이 스트레스 푼다는 게 고작 술 먹고 골프 하고 룸살롱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것보다는 저처럼 운동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인터뷰가 끝난 후 자동차로 20분쯤 걸리는 그의 병원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까지 웃통 벗고 매트에서 뒹굴던 야성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안경을 끼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점잖은 태도로 환자를 맞는다. 진료실 책상에 주짓수 훈련교본이 펼쳐져 있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구입했다는 영문판 교본이다. 하루에 40~50명의 환자가 찾아오는데, 쉬는 시간에 틈틈이 본다고 한다.

    “가장 가슴 아플 때가 TV에서 이종격투기에 대해 쉽게 얘기할 때입니다. 선수는 누구나 목숨 걸고 링에 오릅니다. 일본은 격투가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존경하는 격투가를 묻자 늘 자신보다 큰 선수와 맞붙는다는 일본의 쇼지 아키라를 꼽았다. 국내에서는 박원식(23)씨를 최고로 내세웠다. 최근 일본의 인기 이종격투기 대회인 ‘DREAM’에 진출한 박씨는 그간 일본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왔다. 둘 다 주짓수 고수다.

    김씨는 현재 대한의사협회 홍보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진료와 운동의 조화를 보여주는 새로운 의사상(像)인 까닭이다. 의사협회는 그의 선수활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의료일원화 특별위원회와 울산시의사협회, 울산시 의사 격투후원회에서도 홍보와 더불어 물질적 후원을 한다고 한다.

    그보다 몇 살 더 먹은 기자가 물었다. 지금 시작해도 되겠느냐고.

    “저를 보면 아실 겁니다.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주짓수는 인생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40대에 하기에 딱 좋은 운동입니다. 나이 들어간다고 우울해하지 말고 거친 운동으로 땀 빼고 나면 희열을 느낄 겁니다.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죠. 엘리오 그레이시는 90세 때 20세 청년에게 이겼습니다.”

    그의 말투와 표정은 시종 진지했다. 가끔 입 가리고 웃을 때를 빼고는.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앞니 빠진 그의 입과 문드러진 귀가 자꾸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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