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 전문 기자인 제임스 만이 펴낸 책 ‘레이건의 반란(The Rebellion of Ronald Reagan)’.
레이건과 수전 매시는 이 만남을 통해 ‘뜻이 맞는 사이’로 발전했다. 매시는 러시아 전문가였지만 일류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레이건은 매시가 전해주는 소련에 대한 설명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중앙정보국(CIA)에서 올리는 소련 정보 보고서의 스타일을 싫어했다. 대학원 논문 쓰듯 소련의 군사·정치·경제·사회 분석을 담은 문서는 이미 일흔 줄에 들어선 레이건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면 매시가 전하는 모스크바 정세에는 ‘사람 냄새’가 있었다. 소련의 일반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반세기가 넘은 공산당 지배에 대해 소련 인민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또 외부 세계는 어떻게 보는지 생생한 이야기가 있었다.
수전 매시의 남다른 인생 역정도 레이건의 이목을 끌었다. 스위스 출신 부모를 둔 매시는 1950년대 미 해군장교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문제는 아들 로버트가 혈우병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조그만 상처가 생겨도 피가 멎지 않는 혈우병은 매시로 하여금 혈액 제공자와 병원을 찾아 전전하게 만들었다. 그 후 매시는 성인학교에 등록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혈우병을 앓는 아들을 둔 엄마로서 뭔가 그 심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에 여덟 차례 소련을 방문한 매시는 70년대 ‘불새의 나라(Land of Firebird)’ 등 몇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러시아 역사를 다룬 이 책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 후 매시는 아홉 번째로 소련에 가고자 했지만 소련대사관은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그전에 매시가 펴낸 소련의 망명 시인을 다룬 책이 당국의 비위를 거스른 것이다.

1985년 11월20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왼쪽)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틀간 가진 정상회담을 마치면서 악수하고 있다.
이후 소련 문제를 담당하게 된 콥은 매시의 친필사인이 들어 있는 책 ‘불새의 나라’를 소련 측 당국자들에게 선사하기 시작했다. 1983년 봄 매시는 뉴욕 주재 소련대표부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을 받게 된다. 뉴욕의 소련대표부에서 매시가 만난 사람은 게오르기 아르바토프였다. 당시 KGB 소속이었던 아르바토프는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오른팔이었다. 매시가 비자 문제를 꺼내자 아르바토프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신청해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