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가운데)은 ‘맞춤형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19번째 월드컵 본선에 오른 32개국은 조별 리그 대진표를 확정하고 본격적인 월드컵 준비에 돌입했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노리는 태극전사들은 유럽의 그리스, 남미의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함께 B조에 속했다.
유럽 맹주들을 피한데다 각 그룹 최강자를 비켜가 최악의 조 편성은 아니다. 브라질·포르투갈·코트디부아르와 G조에 속한 북한, 네덜란드·덴마크·카메룬과 E조에 포함된 일본, 독일·세르비아·가나와 D조에서 경합할 호주의 사정과 비교하면 수월한 대진이다.
본선에 참가한 32개국 중 절반에 포함돼야 하는 월드컵 16강은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만만한 목표가 아니다.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올바르게 파악한 후 창을 예리하게 벼리고, 방패를 든든히 세워 상대가 빠져나오지 못할 진법을 완성해야 한다.
역대 월드컵에서 어김없이 유럽 2개 팀과 상대한 한국은 8번째 출전 만에 색다른 대진표를 받았다. 각기 다른 대륙인데다 천양지차의 스타일을 지닌 개성 강한 팀들과 조별 리그에서 마주한 것이다. 한국 축구가 남아공에서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하려면 경기 때마다 팔색조처럼 변화해 그들의 약점을 꿰뚫는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허정무(54)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를 ‘위대한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완전히 이길 수 있는 팀도 없지만, 못 이길 팀도 없다. 남은 6개월간 맞춤형 전략을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국 축구는 2010년 남아공에서 사랑처럼 황홀하고 커피보다 향긋한 승리를 맛볼 수 있을까? 아니면 이별의 고통보다 더 시린 패배감을 안고 돌아올까? 허정무호(號)가 야심차게 준비하는 ‘맞춤형 전략’을 미리 들여다본다.
▶▷ 허정무, “적이 공세 취할 때 그것을 역이용하겠다”
#그리스 깨기① ‘레하겔을 읽어라’
12월9일 허정무 감독의 집을 찾았다. 허 감독은 그리스가 우크라이나와 치른 남아공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 경기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그는 “역시 레하겔은 달라지지 않았다. 단순한 전략으로 상대가 힘을 쓰지 못하게끔 조이다가 예리하게 역습한다. 선수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은데도 그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레하겔은 역시 대단한 지도자다”라고 말했다.
레하겔의 그리스가 유로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때 허 감독은 대회가 열린 포르투갈에 있었다. 리스본에서 그리스가 역습 한 방으로 23경기 무패를 달리던 지네딘 지단의 프랑스를 꺾고 준결승에 오르던 날 그는 이렇게 호평했다.
“프랑스는 알고도 당했다. 그리스는 체격 좋은 선수들을 앞세워 스위퍼 시스템으로 제대로 된 팀을 만들었다.”
그리스 축구의 옛 별명은 ‘매맞는 소년(whippnig boy)’. 왕자 대신 매를 맞는 소년이란 뜻인데 축구에선 매번 지는 팀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그리스는 유럽 축구의 동네북으로 불리던 최약체였다.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오른 1994년 미국월드컵 때는 단 1골도 넣지 못하고 10골을 내줬다.
메이저 대회 언저리에 닿지도 못하던 그리스는 2001년 독일 출신 오토 레하겔(71) 감독을 영입한 후 환골탈태했다. 어느 누가 포르투갈·체코·프랑스 등을 연거푸 꺾고 유럽 챔피언에 오르리라고 기대했을까. 결국 그리스를 깨기 위한 첫 단추는 레하겔 감독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