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에 또 와. 넘어질라. 다치니까 걸어가…. 또 와도 돼.”
배 할머니는 이촌2동의 연탄불 때는 아파트에 오랫동안 살았다. 한강대교 북단 한강로 서쪽의 이촌2동을 서부이촌동이라고 부른다. 한강로 동쪽의 이촌1동은 동부이촌동. 서부이촌동엔 가난한 이가 살았고, 동부이촌동엔 부자가 살았다. 이촌2동엔 지금도 초등학교가 없는 대신 무허가 건물이 많다.
할머니는 1999년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입주권을 받았다. 건축비를 낼 엄두가 안 나 딱지를 팔려다가 고민 끝에 빚을 내 분양을 받았다. 결국 전세를 끼고 33평형 아파트를 얻었다. 전세보증금을 내줄 방법이 마땅치 않아 지금껏 삼각지에 살지만 할머니는 부자다. 서부이촌동 아파트가 8억~9억원을 호가한다.
국제업무단지 앞마당인 서부이촌동 수변지역엔 워터프런트가 조성된다. 메트로폴리탄 한복판에 ‘서울항’이 들어선다. 한강-경인운하-황해를 잇는 물길로 여객선이 물살을 가른다. 용산-여의도를 모노레일이 달린다. 용산민족공원-국립중앙박물관-남산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그린웨이(Greenway)다. 쪽빛 청사진대로라면 그렇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부이촌동은 어수선하다. 국제업무단지의 조망권을 확보하고자 아파트가 수용되기 때문이다. 지은 지 10년 안 된 아파트도 헐린다. 마을엔 ‘용역 개에게 생선(재산권처분동의서)을 맡기면 가시 발라서 버린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서부이촌동수용개발반대주민연합, 서부이촌동통합개발반대주민연합은 ‘반대파’다. 그런데 조직되지 않았을 뿐 사람 수는 ‘수용파’가 더 많다. ‘재산권처분동의서’를 낸 사람이 6대 4 비율로 더 많다. 주판을 놓아본 결과에 따라 주민들의 의견이 갈린다. ‘반대파’ ‘수용파’의 다툼도 벌어진다.
50대 남자가 ‘청암 최익현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공인중개사 최익현씨와 대화를 나눈다. 7년 전 서부이촌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는 ‘수용파’다. 배 할머니 집보다 위치가 좋아선지 3억5000만원에 구입한 33평형 아파트가 13억원을 넘어섰다.
“입주권을 받아서 이 동네에 계속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분이 적은 사람들만 반대하는 거예요.”
서부이촌동 아파트는 호가만 있을 뿐 거래되지 않는다. 2007년 8월31일이 보상 기준일로, 그날 이후 아파트를 산 사람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공인중개사 최씨는 “거래가 없어 죽을 맛이다. 빨리 결론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대파’는 입주권을 받더라도 건축비를 내는 게 부담스럽다. 건축비를 포함하면 지금 아파트를 파는 게 ‘이득’이라고 여긴다. 시행사는 도우미를 고용해 ‘반대파’를 일대일로 설득해 재산권처분동의서를 받고 있다.
같은 골프연습장을 다니는 주민들이 철도기지창과 담을 맞댄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콩나물국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수은주가 영하 10℃ 밑으로 떨어졌다. 주민들 나름의 계산은 제가끔 엇갈린다. 송지훈(49)씨는 “정신 사나워 못 살겠다. 조용히 살고 싶다. 예전이 더 좋았다”면서 웃었다.
사람들은 한강로에서 돈에 울고, 돈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