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호

잔혹하고 끔찍한 10대들의 살인놀이

일곱 번째 르포 : 범죄의 재구성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0-07-30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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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하고 끔찍한 10대들의 살인놀이
    경찰로 20년 일하면서 이렇게 끔찍한 사건을 본 적이 없다고 마포경찰서 형사과장은 말했다. 사람을 죽여 한강에 유기한 아이들은 조사받으면서도 희희낙락했다.

    사탄의 인형

    강기슭에 한국스카우트연맹 요트가 정박해 있다. 때 이르게 핀 코스모스 꽃잎이 흩날린다. 양화대교는 보수 공사 중이다. 인부들이 교각을 손보느라 분주하다. 자재, 폐기물이 떠내려가는 걸 막고자 다리 서쪽 100m 지점 수중에 막이를 설치했다.

    6월12일 남아공월드컵 한국 첫 경기가 열렸다. 그날 밤 이곳엔 비가 내렸다. 물이 불어서 유속이 빨랐다.

    6월17일 아침, 한강엔 안개가 짙었다. 오전 7시30분께 야간조 2명이 마지막 순찰을 돌고자 배에 올랐다. 순찰정은 5인승 모터보트다. 한강경찰대 야간조는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일한다.



    길이 130㎝ 물체가 인부들이 설치한 막이 안쪽으로 떠올랐다. 순찰정이 이 물체를 건져 올린 시각은 오전 7시50분.

    누군가 자전거에 물건을 실을 때 쓰는 로프로 물체를 묶은 뒤 한강에 내던졌다. 포장으로는 카펫(carpet)을 썼다. 물체를 묶은 매듭은 단단했다. 칼로 아래쪽을 끊었다. 발바닥이 보였다. 한강경찰대는 ‘20대 변사체 발견’이라고 보고했다.

    사진으로 남은 발바닥은 흰색 양말을 여러 켤레 덧신은 것 같다. 발톱에 바른 빨강 패티큐어가 선명하다. 불어터진 흰 발과 빨간색 발톱이 대조를 이룬다.

    시신은 눈을 부릅뜬 채 세상을 노려보고 있다. 영화 ‘사탄의 인형’에 나오는 처키를 닮았다. 얼굴이 물에 불어서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불어난 흰자위가 섬뜩하다. 등짝은 피멍 범벅이다.

    죽은 사람은 새우처럼 등 굽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양쪽 발목이 로프로 묵여 있다. 왼손, 오른손은 아래쪽 정강이에 한데 묶여 있다.

    목젖 아래엔 세로 9㎝ 가로 5㎝ 크기의 상처가 있다. 칼로 도려낸 흔적. 물에 덧난 상처는 여자 성기 외음부(外陰部)를 닮았다. 손가락은 온전했다. 신원을 확인할 단서가 남은 것이다. 시신을 유기할 때 손가락을 자르는 예가 많다고 형사가 말했다.

    살인자는 시신을 두 겹으로 포장했다. 노란색 요로 시신을 말아 감은 뒤 카펫으로 감쌌다. 노란색 요엔 꽃그림이 그려져 있다.

    포장을 풀자 붉은색 벽돌 2장, 시멘트 조각 7개가 나왔다. 슬리퍼 안경 휴대전화도 남아 있었다. 10원짜리 동전 5개, 불에 탄 이쑤시개도 발견됐다. ‘○○동 방위협의회 전방견학 및 추계야유회’라고 적힌 수건도 나왔다.

    이런 잔인한 짓을 누가 저질렀나.

    부모가 뭐하는 사람이래요?

    잔혹하고 끔찍한 10대들의 살인놀이
    비탈이 가파르고 길다. 계단 오르기가 버겁다. 등짝이 땀으로 범벅이다.

    서울 서대문구 ○○동 ○51번지 1호는 구멍가게다. 아주머니들이 콩국수를 만들어 나눠 먹는다. 늦은 아침 식사다.

    “아이들이 친구 때려죽인 거? 알지. 어른 꼭대기에 있어. 못 혼내. 해코지하거든. 걔네들이 공터에 모여서 담배 피우는데, 무섭다니까. 어른이고 뭐고 뵈는 게 없어. 2○호는 아래쪽인데. 형사 양반이구먼.”

    올라온 비탈을 거꾸로 내려갔다. 왼쪽으로 중산층, 서민이 사는 아파트가 서 있다. 아파트와 ○51번지는 쇠로 만든 담장으로 생활권을 분리했다. ○51번지는 노후한 주택이 밀집한 저소득층 거주지. 서울에 이런 곳이 남아 있나 싶다.

    C양 집을 찾기가 어렵다. 구멍가게가 또 있다. 가게 주인이 전화로 소주 독한 거와 박카스를 주문한다. 순한 소주는 잘 안 팔린단다. 주인에게 C양 집을 물었다. 아주머니가 세수하고 가라며 물을 내준다. 팔을 씻겨주면서 웃는다.

    “요즘은 순찰차가 매일 돌아. 예전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남자들이 아침부터 막걸리를 마신다. 해가 중천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대취한 이가 있다. 구멍가게 앞엔 ‘○○제○○구역 관리처분 계획, 원안 가결’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집주인들이 재개발을 추진한다고 남자들은 말했다.

    계단이 뻗은 골목은 낮에도 음침하다. 폭이 1~3m가량인 비탈길을 따라 집이 빽빽하다. 살인사건은 ○51번지 2○호에서 일어났다.

    C양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엔 CCTV가 설치돼 있다. 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을 목적으로 달았다고 한다. 골목길 계단에는 고양이똥 천지다. 똥마다 똥파리가 앉아 있다. 파리 떼가 계단을 기어 다닌다.

    먹고살기 버거운 이들은 이웃집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몰랐다. C양과 같은 골목에 사는 40대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녀가 짝으로 계단에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우기에 한마디했더니 욕을 해대면서 덤비더군요. 사고 칠 줄 알았어요. 부모가 뭐하는 사람이래요?”

    C양 집 현관 앞엔 소주병 5개가 나뒹굴었다. C양의 부모는 도배 일을 한다. 집을 비우고 지방으로 일 떠날 때가 많다. 한 달 넘게 집을 비운 적도 있다. C양 아버지는 “집에 있기가 무섭다. 딸이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고 말했다.

    C양 집은 비좁았다. 동굴처럼 생긴 집은 작은방 2칸과 세탁실이 전부다.

    김치볶음밥

    미성년 변사자(變死者)는 지문을 등록하지 않아 신원 확인이 어렵다. “희생자가 3일 동안 맞은 데다 물에 불어서 얼굴이 선풍기아줌마처럼 변했다”고 경찰관은 말했다.

    경찰은 한강에서 건져 올린 변사자 손에서 지문을 떠 조회를 요청했다. 운이 좋았다. 변사자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어 지문을 등록한 것이다. 사망자는 열다섯 살 K양.

    처음에 경찰은 K양 아버지를 용의선상에 뒀다. 딸을 내버려두다시피한 데다 부녀 사이가 나빴기 때문이다. 시체유기는 면식범 소행인 때가 많다.

    K양 아버지는 딸이 C양과 어울려 다녔다고 경찰 조사에서 말했다. 경찰이 ○○동 C양 집을 수소문해 찾았다.

    경찰은 C양 집에서 시신을 한강에 버릴 때 쓴 것과 똑같은 ‘○○동 방위협의회 전방견학 및 추계야유회’라고 적힌 수건을 발견했다. 한강에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붉은색 벽돌, 시멘트 조각도 C양 집 근처에서 찾았다.

    용의자는 6월18~20일에 검거됐다. C양을 비롯해 A양 Y양 L군 J군 Y군을 체포했다. C양 Y양 L군 J군은 15세, A양은 16세. Y씨는 19세다.

    K양과 가해자들은 부모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C양 집에 자주 모여서 놀았다. K양이 “○○이, ○○이, ○○이가 헤프다. 남자와 너무 많이 잔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6월10일 새벽 1시 C양은 여느 때처럼 K양을 집으로 불렀다. A양, Y양, L군, J군도 합류했다.

    이들은 인터넷 메신저로 만나 친구가 됐다. Y양과 피해자는 같은 교회를 다녔다. L군은 죽은 K양의 남자친구, J군은 가해자 C양의 남자친구. 시체를 유기할 때 참여한 19세 Y씨는 피해자의 교회 친구인 Y양과 사귄다.

    소녀들은 “왜 험담을 했느냐”고 추궁하면서 K양을 두들겨 팼다. 이종격투기에 나오는 것처럼 무릎으로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K양의 남자친구인 L군도 구타에 가담했다. 사귀는 여자친구를 때린 것이다.

    폭행은 6월12일 오후 4시 반까지 60시간 넘게 이어졌다. 가해자들은 때리고, 쉬고, 먹고, 자기를 반복했다. 날마다 구타 강도가 더 세졌다. “K양에게도 먹을 걸 줬다. 김치볶음밥을 해서 먹였다”고 가해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명탐정 코난

    가해자 쪽이건, 피해자 쪽이건, 귀가하지 않는 자식을 찾아 나선 부모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피해자 아버지 K씨는 “딸이 아버지 말보다 친구 말을 더 잘 들었다. 자주 그래서 그러려니 했다”고 말했다. “심심찮게 가출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연락할 때까지 실종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K양은 월드컵 한국 첫 경기가 열리기 두 시간 전인 오후 6시30분쯤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가해자들은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경찰조사에서 말했다.

    사람이 오랫동안 맞으면 죽는다. 경찰은 수사 초기 K양이 칼에 찔려 죽은 것으로 보았다. 목에 남은 상처 때문이다. 경찰의 추정은 사실과 달랐다.

    잔혹하고 끔찍한 10대들의 살인놀이
    K양이 죽은 후 Y양이 남자친구 Y씨를 불렀다. Y씨와 살인자들은 시신을 처리할 방법을 논의했다. “소각장에 버린다” “야산에 묻는다” “톱밥처럼 만든다” “한강에 버린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강에 내다버리기로 결정하곤 인터넷을 검색했다. 양화대교 근처가 수심이 깊다는 걸 웹에서 확인했다.

    유일한 성인인 Y씨가 중학교 때 일본 만화영화 ‘명탐정 코난’에서 본 적이 있다면서 시신에서 피를 빼 무게를 줄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C양을 세탁실로 옮겼다. 칼로 오른쪽 아킬레스건 주변 혈관을 땄다. 생각과 다르게 피가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추가로 목젖 아래쪽을 칼로 그었다. 목젖 아래 겉살, 속살이 여자 성기 모양으로 갈라졌다.

    청소년들은 노란색 요, 붉은색 카펫으로 소녀를 포장했다. 시신을 강물에 가라앉게 하고자 벽돌과 시멘트 조각도 챙겼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 “○○이가 사라졌다. 아버지와 싸웠다면서 울먹인 뒤 돌아갔다. 이후엔 ○○이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로 입을 맞췄다.

    장례식도 조촐하게 치렀다. 한 녀석이 무당인 친척한테 배웠다면서 제를 올리자고 했다. 이쑤시개에 불을 붙여 향을 대신했다. 저승 갈 때 노잣돈으로 쓰라고 시신 곁에 10원짜리 동전 5개를 뒀다. 귀신이 괴롭힐까봐 제를 올렸다고 한다.

    서울엔 6월13일 아침까지 비가 내렸다. Y양 J군 Y씨가 카펫과 요로 포장한 K양의 시신을 짊어지고 택시를 탔다. 택시운전자에겐 “학교에 숙제로 낼 조각상”이라고 둘러댔다. 나머지는 집에 남아 방, 세탁실에 묻은 혈흔을 지웠다.

    Y씨, Y양, J군은 오전 6시30분 양화대교 북단에 도착했다. 특수절도 3범인 J군은 체중이 103㎏이다. 형사들도 위협을 느낄 만큼 체격이 건장해 20대로 보인다.

    택시에서 내린 이들은 양화대교에 올라타 200m를 걸었다. 다리 위에서 시멘트와 벽돌을 포장 안에 넣고 로프로 단단히 묶었다. 한강변은 한산했다. 일요일 아침인데다 빗줄기가 굵어서다.

    Y양 J군 Y씨는 시신을 한강에 버린 후 C양 집으로 되돌아왔다. Y양은 교회로 주일예배를 보러 갔다. 나머지 아이들은 오후 9시까지 밤에 못 잔 잠을 잤다.

    벽돌, 시멘트가 부족해서였을까, 인부들이 설치한 막이 탓이었을까. 시신은 나흘 후 강물 위로 떠올랐다. ‘명탐정 코난’에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은 없었나보다.

    C양, A양, Y양, J군은 살인 및 시체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폭행 가담 정도가 약한 K양의 남자친구 L군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시신 유기만 도운 Y씨에 대해서는 검찰이 5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L군, Y씨는 불구속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전공별 수업은 언제부터 해요?

    C양은 경찰서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관리해온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해 이런 글을 남겼다.

    “저, 유학가요. 보고 싶어도 참아주세요~”

    경찰이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 폐쇄를 요청해 지금은 이 미니홈피가 웹에서 삭제됐다. C양이 글을 올린 후 미니홈피가 열려 있던 짧은 시간 동안 C양 지인들이 글을 남겼다.

    J양은 “언니 잘 다녀와. 보고 싶을 거야. 건강해. 오면 연락해”라고 적었다. K군은 “최소한 사과는 하고 가라”고 했다. “평생 죄책감 갖고 살아라” “용서 같은 거 바라지 마라” “네가 ○○이 죽였지”라는 댓글도 있었다.

    C양의 고등학교 동창 2명도 댓글을 달았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C양은 학교를 자퇴했다.

    “학교 자퇴하고 조용히 살지. 인생 어떡하려고.”

    “반 아이들이 걱정 많이 한다. 처음엔 믿기 싫었는데. 실망이 크다. 자퇴하고 그런 짓하고 다니면…. 정신 좀 차려.”

    가해자인 C양 A양 Y양 L군 J군, 죽은 K양은 학교를 자퇴하거나 장기 결석 중이다. 조부모와 살거나 부모가 이혼한 결손 가정 아이들이다. “범행은 끔찍한데 본인들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수사팀 관계자는 말했다.

    열다섯 살 소년소녀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 노래방 유흥가에서 놀았다. C양이 다니던 PC방은 1시간 사용료가 600원이다. 선입관인지 모르겠으나 PC방엔 비행 청소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비공개로 이뤄진 현장 검증에 나온 소녀들은 가냘프다. C양은 특히 얼굴이 앳되다. 어린이 티가 남아 있다. 누가 이들을 살인자로 키웠을까.

    ○○동 M고등학교에서 만난 H중학교 동창생은 “나쁜 아이는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C양을 기억했다.

    C양은 ○○구에 위치한 E고등학교에 다녔다. 기술인을 양성하는 의료기기 전문 특성화 학교다. 서울 강남에 터 잡은 명문고교만큼이나 시설이 좋다.

    C양도 학교에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입학 전 학교 홈페이지에 학교생활과 관련해 질문한 몇 안 되는 학생이다. “전공별 수업은 언제부터 하느냐”는 C양의 질문에 교사는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다”고 무뚝뚝하게 답했다. “교복 사진을 웹에 올려줄 수 있느냐”고도 물었으나 교사는 답글을 달지 않았다.

    E고는 의료기기에 특화한다고 해놓고 학생들에겐 입시 교육을 강조한다. 비슷한 공부 실력을 가진 인문계고 학생보다 내신 점수를 높게 받으니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거다. 능력보다 학위, 학벌이 더 중요할 때가 많으니 이런 교육 방침은 옳은 방향인지도 모른다. 이 학교 교사는 C양에 대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 다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학교 다니는 걸 싫어했다”고 말했다.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적응하게 하는 게 학교가 할 일 아닐까.

    부모도, 사회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동 살인 및 시체유기 사건은 “가정과 사회의 방임이 낳은 끔찍한 비극”이라거나 인터넷 문화, 유해매체 탓이라고 했다.

    잔혹하고 끔찍한 10대들의 살인놀이
    청소년 강력범죄(살인 강도 방화 강간)가 급증세다. 2007년 1850건에서 2008년 2322건, 2009년 2786건으로 증가했다.

    저마다 제 할 일에 바빠 공동체가 붕괴하고 있는 건 아닐까. C양 집에서 살인을 저지른 10대들에겐 부모도, 이웃도, 학교도, 사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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