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SM엔터테인먼트 사태’와 한국 연예산업

“스타는 자산이자 인간…재무적 접근 넘어서는 새 운영체계 도출해야”

  • 정해승│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RSM MBA tec515@naver.com│

    입력2010-02-02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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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적·산업적 영향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한국 연예산업은 이제 경영학계나 관련 전문가들의 사례연구 주제로 자리매김했을 만큼 세계가 주목하는 비즈니스로 떠올랐다. 그러나 성장 속도만큼이나 누적된 문제도 만만찮고, 특히 2009년은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체에 바람 잘 날이 없었을 만큼 가혹한 한 해였다. 그 가운데서도 SM엔터테인먼트그룹의 경우는 더욱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다른 대형기획사들이 휘말린 사건이 외부에서 비롯됐다면, SM 사건은 소속 연예인의 계약문제나 구성원 간 분쟁 같은 내재적인 문제로 인해 촉발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이래 한국 연예산업의 선두주자로 승승장구해온 이수만 회장과 SM의 2009년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글을 소개한다. 한국 연예 비즈니스가 맞닥뜨린 구조적 문제점을 재무와 운영체계 차원에서 접근한 필자는 유럽에서 MBA를 마치고 현재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업계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사태’와  한국 연예산업

    2009년 2월 서울에서 열린 동방신기의 ‘아시아 투어 콘서트-인 서울’. 동방신기는 3일 동안 열린 이 단독 콘서트에서 총 3만6000명의 팬을 불러 모았다.

    2009년 7월, 아시아 최고의 남성그룹인 동방신기의 멤버 세 사람(시아준수, 영웅재중, 믹키유천)이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들은 석 달 뒤 전속계약 일부의 효력정지 결정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12월에는 같은 소속사인 슈퍼주니어의 중국인 멤버 한경이 전속계약 효력부존재 확인 소송과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역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한경이 소장에서 제기한 내용은 동방신기의 세 멤버와 대동소이하다. 13년이라는 전속계약 기간과 수익 분배의 문제였다.

    동방신기는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 부당계약 관련 법정 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2009년 일본과 한국에서 900억원이 넘는 음원 매출을 기록해 최소 1264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로 일본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국내 시청자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2009년 한 해 동안 이들은 비, 빅뱅, 고현정, 유재석, 강호동 등 최고의 스타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린 국내 연예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국내 최고매출을 올린 인기그룹의 해체 위기 소식은 경제뉴스가 아닌 연예가 가십뉴스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감안하면 이 같은 흐름은 보다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 같은 아이돌 그룹은 그 브랜드만으로도 아시아의 팬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콘텐츠 비즈니스는 이제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도 관계가 깊은 산업인 셈이다.

    2009년의 SM사태가 의미심장한 것은 이 사건이 2001년 H.O.T 멤버들의 분쟁사례와 근본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의 눈에는 일종의 데자뷰인 셈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질과 그것을 운영하는 체계 사이에 중대한 부조화가 내재해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2000년대 들어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주먹구구식 ‘딴따라’ 사업에서 명실상부한 콘텐츠 산업으로 성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이 비약적 도약(quantum leap)을 이루려면, 산업의 본질과 그에 최적화된 운영체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스타’의 재무적 특성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이므로 먼저 재무적 고찰이 필수적이다. 연예 비즈니스를 투자와 회수의 관점에서 보자면 회수에 걸리는 시간이 다른 업종에 비해 길다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이는 앞서 얘기한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의 계약분쟁 주요내용이 전속계약 기간 문제였다는 사실과 그대로 연결된다.

    기업의 투자비는 크게 미래사업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비와 결정된 미래사업의 실행을 위해 토지, 설비 등에 투자되는 설비투자비(CAPEX·Capital Expenditure)로 나뉜다. 업종에 따라 이들 투자비의 비율은 다르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제약업처럼 상품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고 시장화 가능성이 불투명한 프로젝트가 많은 산업에서는 연구개발비가, 일반제조업에서는 설비투자비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SM엔터테인먼트 사태’와  한국 연예산업

    일본 도쿄 신주쿠 역 내에 걸린 동방신기 사진을 휴대전화에 담는 시민들.

    기업 CEO 입장에서 연구개발비의 비중도 높고 상품출시를 위한 초기투자비까지 높은 상품은 재앙에 가깝다. 현재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정확히 그 상태다. 10대 초중반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을 뽑고 5년 이상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세상에 아이돌 그룹을 내놓기까지는 100% 투자기간이다. 더욱이 이들 가운데 기대했던 재목으로 자라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투자비는 모두 매몰비용(sunk cost)이 된다.

    특히 SM의 캐스팅과 트레이닝 시스템은 세계적인 제약업체나 IT기업의 연구개발과정에 비교될 정도로 독창적인 프로그램이다. 이에 대한 매몰비용 리스크는 상당하지 않을 수 없다. 데뷔 후에도 수년간 투자기간이 이어지다 어느 정도 스타의 반열에 올라야 광고출연이나 공연 등을 통해 비로소 투자금이 회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회사는 연습생이 데뷔할 때 장기계약을 맺는 방식을 택한다. 데뷔 이전에는 철저하게 ‘을’일 수밖에 없는 연예인의 형편, 계약기간을 최대화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기획사, 투자비 회수기간이 늘어지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질,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 13년 장기 전속계약서인 셈이다.

    복제의 붕괴, 현장의 증가

    투자비 회수기간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뮤직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영업이익률이 상당히 높은 분야였다. 1만원 이상 하는 CD의 제조단가가 몇백원에 불과하던 시절에는 김건모, 신승훈 등 대형 가수들이 밀리언셀러를 낼 때마다 빌딩 한 채분의 수익이 발생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음악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이 같은 공식은 철저히 붕괴했다. 음반의 최다판매량이 한 해 10만장 선에 머물고, 디지털 음원 판매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수익이 이동통신사로 들어가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코스닥 우회상장 열풍이 불면서 이미 스타가 된 소속 연예인에 대한 계약금과 이익분배율은 눈덩이처럼 올라갔다. 영업이익률은 더욱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었다.

    음반이나 음원 판매로는 영업이익률을 개선할 수 없는 기획사들은 연예인들을 활용한 부가사업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바로 광고와 행사다. 더 많은 광고와 행사 출연을 위해서는 방송에 더 많이 출연해 얼굴을 알려야 한다. 음반 한 장으로 대박을 칠 수 있던 시대는 끝난 것이다. 2009년 1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거물 박진영은 프랑스 국제음반박람회(MIDEM)에서 “우리는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스타를 만든다…회사 수입의 50%는 광고수입이며 방송과 영화, 음원 수입이 나머지 50%”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렇듯 당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역량이었던 초상권과 저작권이 복제되어 유통되는 사업은 이제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대체가 불가능한 스타가 현장에 참여해야 하는 일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로 인한 스타들의 피로 누적은 감정싸움으로까지 이어지고, 그 과정은 설득과 동의보다는 명령과 복종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10대였던 아이돌이 20대가 되어 비즈니스의 냉혹함을 깨닫는 순간, 이들은 팬이라는 강력한 이해관계자를 등에 업고 계약에 대한 불만을 폭발하기에 이른다.

    상황을 여기까지 살펴보고 나면, 이제 문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운영체계로 넘어간다. 바로 조직과 시스템이다. 이 비즈니스에서 스타들은 단순한 피고용인이 아니다. 기획사의 피고용인은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 경영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스태프들이다. 스타를 재무제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도리어 초기에 지급한 계약금에서 발생한 일종의 무형자산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흔히 스타가 이적하면 언론은 그 계약금 규모를 놓고 호들갑을 떨지만, 냉정하게 보자면 계약금은 계약기간 동안 무형자산 감가상각이라는 형태로 차감된다.

    제조업의 틀을 적용하자면 스타는 음반이나 음원을 만들어내는 생산설비의 역할도 한다. 스타는 직접 노래를 불렀을 때 생기는 실연권과 작사·작곡에 참여했을 때 생기는 저작권의 형태로 수익을 분배 받는다. 이들의 실연과 창작이 음반의 판매량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스타는 가장 중요한 생산설비인 셈이다.

    무형자산, 생산설비, 서비스용역

    마지막으로 공연, 광고, 방송출연 등은 서비스용역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기획사에서 스타의 역할은 복제가 불가능하고 재고를 미리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비스 사업의 속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스타는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무형자산은 상표권이나 특허권 같은 무형의 물질이며, 생산설비는 대부분 기계이고, 용역서비스는 콜센터 직원, 컨설턴트, 광고기획자 같은 피고용인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스타는 특허도, 기계도, 피고용인도 아닌 독립된 주체다. 따라서 기존의 조직관리나 무형자산 관리방식을 고스란히 따른다면 분쟁의 발생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돌 스타들은 대부분 화려한 세계에 대한 동경과 남이 알아봐주는 유명세를 목표로 연예인이 된 이들이다. 그들이 스타로 등극한 20대 초반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여성적 매력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이고, 청소년 시절에는 금지됐던 음주나 유흥업소 출입이 합법화되는 시점이다. 특히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하다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어울린다. 그들의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여럿이 함께 서로를 비교하며 경쟁하는 일이고, 늘 대중의 시선에 노출돼 있다.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20대 초반의 아이돌 스타가 그간 받아온 처우를 앞으로도 10년 이상 더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노예계약’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데는 이런 과정이 있다.

    새로운 화두

    한국의 제조업과 건설업, 중공업이 그간 세계 시장에서 보여준 성공사례는 감동적이었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또한 이들 업종처럼 글로벌화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세계 시장 진출이 없이는 산업적 측면에서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한국이라는 좁은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해왔다. 긴 시간 이어진 그 고민의 끝에서 이들이 세계 시장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을, 그리고 이제 실행에 나선 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창업자이자 프로듀서를 겸하며 미국 시장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원더걸스를 빌보드 핫100차트에서 76위에 올려놓은 박진영의 JYP, 2005년 동방신기를 일본 시장에 신인으로 진입시켜 2009년 오리콘차트 연간 랭킹 3위에 올려놓은 이수만의 SM은 모두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전략방향을 도출해내고 그 성공사례를 만들어온 업계의 선두주자이다.

    ‘SM엔터테인먼트 사태’와  한국 연예산업
    정해승

    1970년 서울 출생

    연세대 졸업,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RSM MBA 졸업

    현재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기업에서 기획업무 담당

    저서 : ‘엔터테인먼트 경제학’


    그러나 기업 활동의 최종적인 성공은 전략적 고민이나 마케팅에서의 승리만으로는 달성되지 않는다. 제도와 운영, 인사와 조직, 재무 등 일련의 운영체계가 선순환 구조를 이뤄야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2009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우수한 전략을 수립한 기업이 운영체계상의 디테일에서 실패했을 때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콘텐츠의 질은 이미 아시아 최고수준을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수한 질과 양을 자랑하는 내용물을 과연 어떤 용기에 담아낼 것인가, 이것이 바로 2010년의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새롭게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화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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