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사 김규만(53)씨가 2006년 티베트 자전거 여행 동반자를 구하며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해발 5000m가 넘는 세계의 지붕. 고산증세로 외지인은 제대로 걷기도 힘든 그 땅을 김씨는 MTB(산악자전거)로 횡단했다. 희박한 산소가 폐, 심장, 허벅지 근육을 괴롭혀 호흡은 거칠어지고 페달은 헛돌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계속 달렸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고행’에 스스로를 ‘내팽개쳐왔다’지 않은가. 파키스탄 카라코룸 하이웨이(Karakorum Highway), 중앙아시아 타클라마칸 사막, 인도 라다크…. 거칠고 황량한 세계 곳곳도 일찍이 그의 MTB 아래로 흘러갔다. 한겨울의 에베레스트산을 오르고, 독도를 요트로 다녀오기도 했다. 마라톤·울트라마라톤·트라이애슬론은 수시로 완주한다. 취미는 요트세일링, 행글라이딩, 급류카약, 산악스키…. 겨울에는 빙벽을 타고, 여름엔 암벽에 오른다. 내 몸을 엔진으로 삼지 않는 탈것이 싫어 지금껏 차는 한 대도 사지 않았다.
강추위로 한강이 얼어붙은 1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그는 검은색 MTB를 탄 채 인터뷰 장소로 나왔다. 밸러클라버(눈만 빼고 머리와 얼굴, 목 전체를 가려주는 모자)를 벗자 발그레 상기된 얼굴이 드러났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이렇게 바람 부는 날 자전거를 타면 힘들지 않나요?
“좀 춥긴 하지만 모자 쓰고 옷 잘 입으면 괜찮아요.”
그는 아침 바람을 뚫고 막 산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주말에는 으레 MTB 산행을 한다. 여유가 있으면 한강으로 요트를 타러 가거나 상암동 하늘공원에서 마라톤 훈련을 하기도 한다.
▼ 일주일 내내 일하고 주말에는 또 그렇게 다니시는 거예요?
“그러게 말이에요. 나한테 무슨 성격 결함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하하하. 소리 내 웃는다. 스스로 ‘마조히스트’ 같다고까지 한 사람에게 더 말해 뭐 하겠는가. 특이한 건 외모만으로는 그가 못 말리는 익스트림 스포츠광이라는 걸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울뚝불뚝 근육이 솟은 체격이 아니라, 겉보기엔 백면서생 한의사 같다. 자전거를 타고 나오지 않았다면 그가 화려한 경력의 ‘김규만’이라는 걸 아마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제가 변변치 못해서 그래요. 못생긴데다 키도 작고…. 옛날에는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몸 이렇지, 성격 급해서 말 더듬지…. 뭐 하나 봐줄 게 있어야 말이죠.”
그런 뜻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데,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나는 부족하다’고 먼저 깔고 시작하는 게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인 듯했다. 정미소 집 9남매 중 일곱째 아들,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자식으로 태어난 게 콤플렉스의 시작이었다. 위에서 눌리고 아래서 치받히며 10대부터 20대 초중반까지, 인생의 황금기를 자학(自虐)으로 보냈다. “격정적인 성격에 야심만 커서 현실과 이상 사이 괴리감을 술로 채워 넣었다. … 너무 못난 나를 생각할 때면 가슴속 깊이 꺼이꺼이 울음이 튀어나왔다.” 그가 직접 쓴 청춘 시절의 기억이다. 군 제대 후 뒤늦게 진학한 한의대에서 요트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지금도 이렇게 방황하며 살았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