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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컨슈머의 세계

세 업체에 ‘이물질 햄’ 허위 신고 인상 험악한 지인 대동해 협박

  • 김희연 | 신동아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블랙 컨슈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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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이 제기되면 기업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때도 있다. 문제가 크게 퍼져나가느니, 일정 수준에서 보상을 해주고 마는 것이다. 업체에서는 쉬쉬하지만,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한 지인을 데리고 와서 보상을 요구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소비자도 없지 않다고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블랙 컨슈머의 첫 번째 특징은 적정한 수준의 보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블랙 컨슈머는 같은 제품으로의 교환이나 제품 가격에 상응하는 환불에 만족하지 않는다. 제품 사용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에 따른 의료비 등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금액을 요구한다. 두 번째 특징은 언론이나 인터넷에 제보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표명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비자 피해보상 규정을 뛰어넘는 무리한 요구를 하며 협박하는 소비자는 기업의 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 식품업체의 가공 햄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허위 신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30대 남성 고객이 방송국과 식약청에 신고하겠다고 해당 업체에 접촉해왔다. 업체 측이 바로 다음날 방문해 식품 수거를 요청했으나 고객이 거부해 사진만 찍었다. 다시 사흘 후 제품생산 담당자가 확인할 수 있었으나 눈으로는 판별이 어렵고 원인도 불명확했는데, 업체 측에서는 보상 합의를 할 의향이 있었다.

이 남성은 햄의 성분 분석을 거부하며 8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신고 열흘 만에 기업 측은 공정상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원칙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또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이 의심스러워 조사를 해보니 비슷한 내용의 신고가 다른 업체 두 곳에도 들어와 있었다. 결국 이 남성은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역시 ‘쥐식빵’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범죄 사례에 해당한다.

‘판정 불가’ 사례 40%



법정까지 가지 않고는 블랙 컨슈머의 의도를 가려내기란 쉽지가 않다. 식품에 이물이 들어간 사례만 집중적으로 살펴봐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식약청은 매년 식품에 이물이 들어간 것으로 보고된 사례를 발표한다. 현재 통계가 잡혀 있는 2010년 상반기(6월)까지 총 4217건이나 된다. 기업체 보고가 2815건, 소비자 신고가 1402건이다. 기업체에 신고가 들어오면 식약청에도 보고하도록 돼 있어 이대로 처리하는 기업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물질의 종류는 벌레가 1위로 37.7%인 1591건이다. 뒤이어 금속 10.2%, 플라스틱 6.6% 순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조단계와 유통단계에서 들어간 것이 각각 9.3%이고, 소비단계에서는 755건 23.0%이다. 이물이 들어간 것으로 가장 많이 보고된 식품은 면류이고, 다음은 커피류다.

기업과 소비자 간 시비는 판정 불가로 처리된 이물에서 일어난다. 2010년 상반기 식약청 판정 불가 사례는 1301건으로 신고 건수 전체의 39.6%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이물을 분실했거나, 훼손했거나, 판정이 어려운 경우가 포함된다. 또한 조사를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면류를 취급하는 식품업체 관계자는 “면은 150℃의 고온에서 튀기고, 스프는 영하 40℃ 이하에서 냉동건조하기 때문에 온전한 형태의 벌레 같은 것이 나오기는 힘들다”면서도 “원인불명으로 처리되면 소비자가 ‘내가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블랙 컨슈머라는 얘기냐’며 강하게 항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을 찾아와 보상 금액으로 1억원을 요구하던 고객이 한국소비자원과 식약청에 조사를 의뢰하고 기업 전담팀이 제조와 유통 과정을 설명하는 단계에서 누그러진 일도 있다고 한다.

식품은 식약청 관할이지만 소비자 피해는 한국소비자원이 담당한다. 한국소비자원은 우선 소비자 상담을 받고 분쟁조정국 관할하에 검사와 조사로 사실을 확인해 합의를 유도한다. 기업과 소비자가 합의에 실패하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가고, 추가 조사 등을 거쳐 조정을 결정한다. 여기에서도 한쪽이 불응하면 재판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보상 기준도 정해져 있다. 식품의 경우 용량이 부족하거나 이물이 들어갔을 때는 교환하거나 환불을 받을 수 있다. 부작용이나 파손 사고에 대해서는 치료비나 경비를 지급한다. 품목마다 방문판매법, 공정거래법, 제조물책임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보상 기준을 마련해놓았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정 사례를 살펴보면 보상 액수가 블랙 컨슈머의 기대만큼 높지 않다. 변질된 음료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 대한 배상금액이 20만원, 뜨거운 커피로 인한 화상 치료비가 64만원 등이다. 커피 사례의 경우, 소비자는 향후 성형수술 등을 이유로 500만원을 청구했으나 구체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보상금을 노린 블랙 컨슈머가 끼어들 틈이 많지는 않은 셈이다. 그 대신 기업 이미지 훼손을 무기로 뒤에서 협박하는 악질적인 사기 행위가 가끔씩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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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연 | 신동아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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