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은 태광산업 측이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만찬장 사진 다수(多數)를 증거로 제출했다. 박연차 전 회장 진술 외엔 증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사진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이 공방을 벌였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으며 만찬장 사진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회장의 양복에서 (안주머니에 돈 봉투가 들어 있는 것 같은) 윤곽이 드러나긴 하지만 2만달러가 든 봉투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 대목까진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건을 재론한 까닭은 공개되지 않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다,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과 관련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줘서다.
디지털 증거로 장난친 검찰
디지털 포렌식이란 디지털카메라, PC, 휴대전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CCTV 같은 디지털 기기의 정보를 수집·복구·분석·보존해 법적 증거로 활용하는 학문 혹은 기술을 가리킨다.
디지털 파일 복원술은 황우석 논문 조작, 삼성 비자금 특검 등 굵직한 사건 때마다 맹활약했다. 신정아 스캔들 때 검찰은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e메일로 주고받은 연서(戀書)를 복구하면서 진실에 다가섰다.
박진 의원 사건으로 되돌아가보자.
박연차 전 회장은 2008년 4월20일 베트남 국회의장 초청 만찬이 열린 신라호텔 3층 화장실 앞에서 2만달러를 건넸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태광산업 측이 촬영한 만찬장 사진을 확보했다. 사진 파일엔 촬영 시각과 박 전 회장 동선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외부기관에 이 파일들의 분석을 의뢰했다.
박 전 회장 진술대로 안주머니에 돈 봉투가 들어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는 과학과 수학이 동원됐다. 검찰의 의뢰를 받은 기관은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안주머니에 돈 봉투가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를 임의로 사용했다. 돈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분석된 사진만 법정에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법원은 이 같은 사실을 몰랐으나 “2만달러가 든 봉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올바르게 판단했다.
디지털 증거는 ‘아’ 다르고 ‘어’ 다를 때가 많다. 조작하기도 쉽다. 디지털 포렌식 기술이 발달할수록 디지털 증거를 둘러싼 다툼도 는다. 미국, 유럽에선 이 분야 능력을 갖춘 변호사가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호기심에 동해서 전문가를 수소문했다.
이상진(46) 고려대 정보경영공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권위자로 손꼽혔다. 지난해 11월17일 경찰청이 주관한 대한민국 사이버치안대상 시상식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동안 다수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걸 경찰청이 치하한 것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한봉조(60) 변호사. 이 교수의 반대편에 서 있다. 디지털 증거를 분석해 의뢰인을 변호한다.
자, 지금부터 이상진 교수와 한봉조 변호사를 강사 삼아 디지털 포렌식의 세계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