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빈집을 찾아 일곱 번 이사를 했으니 지리산의 예저기를 살아본 셈이다. 전남 구례의 피아골과 문수골과 섬진강변, 전북 남원의 실상사, 경남 함양의 칠선계곡 입구,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 근처 마을 등등. 최소 1년 이상을 살아야 그 마을의 지수화풍을 읽을 수 있고, 뭐라도 조금 쓸 수 있었으니 한 번 이사를 할 때마다 졸작이지만 시집이나 산문집 한 권 정도는 낸 셈이다. 굶어죽지 않고 잠시 머물다 떠나는 집 한 채, 한 번 이사에 책 한 권이면 돈은 안 되지만 밑천도 별로 들지 않는 참으로 멋진 장사가 아닌가.
이제는 빈집 구하는 데도 거의 달인 수준이 되었으니 우편집배원 아저씨에게 “그 마을 할머니 돌아가시면 알려주세요. 내가 살러 갈 테니” 하고 굳이 부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번에 새로 이사한 집도 멀리 섬진강 건너에서 매화 필 무렵에 ‘필’이 꽂혀 찍어놓은 집이었다. 그것 참, 살다보니 ‘반풍수’의 눈으로도 척 보면 앉을자리가 보이고 빈집인지 아닌지, 빨랫줄에 무언가 나부껴도 산 자의 것인지 죽은 자의 것인지 대충 알게 되더라는 말씀이다. 이 또한 내 소유의 붙박이 집이 없기 때문에 누리는 호사가 아닌가.
그러는 와중에도 전국의 이곳저곳과 5대강 등 2만 리 이상을 걸어봤고, 모터사이클로 한반도 남쪽의 국도며 지방도며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70만㎞, 지구 열다섯 바퀴 이상의 거리를 달렸으니 여한이 없다. 그렇다고 멈출 것인가. 아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싸돌아다닐 것이다.
지리산의 큰 골짜기만 해도 30개 정도가 되니 다 살아보려면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더라도 30년은 걸린다. 그러니 끔찍하지만 최소한 일흔 살은 넘게 살아야 할 터이고,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타고 야영을 하며 전국의 비포장도로를 다 가보려면 대충 잡아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니 이 또한 만만한 일생지대사가 아닌가. 꼭 성취해야만 맛인가. 딱히 생을 걸 정도로 이보다 더 필이 꽂히는 것도 없으니, 그냥 한번 가보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집을 못 가지거나 안 가지거나 버림으로 해서 얻은 집이 훨씬 더 많았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듯 못하는 듯 사실은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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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철새는 따로 집이 없다. 날마다 도착하는 그 모든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는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텃새보다는 철새가 더 우주적이지 않은가. 외로울 땐 외로워할 줄 알고, 슬플 땐 슬퍼할 줄 알고, 기쁠 때는 기뻐할 줄 아는 ‘영혼의 집’ 또한 그러하고 그러하리라 믿어보는 것이다.
내 인생의 온몸을 던지는 번지점프는 해방이자 자유였다. 삼백 가닥의 고무줄을 단칼에 끊어버리고 방외(方外)의 해방 기류에 몸을 맡긴 채 유유히 헤엄을 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즐거운 추락이자 행복한 자유낙하였다. 철새는 집이 없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