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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는 집이 없기에 더 자유롭다

  • 이원규│ 시인

철새는 집이 없기에 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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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을 소유하지 않는 대신 모터사이클을 집으로 삼았으니, 나는 집을 등에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아니라 집을 타고 다니는 한량처사가 되었다. 되도록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리 잠만 자다가 일어나 주먹밥을 싸들고는 산짐승처럼 지리산 골짜기들을 헤매고 다녔다. 생의 한철 돈도 없이 내리 3년간을 참 잘 놀았다.

그동안 빈집을 찾아 일곱 번 이사를 했으니 지리산의 예저기를 살아본 셈이다. 전남 구례의 피아골과 문수골과 섬진강변, 전북 남원의 실상사, 경남 함양의 칠선계곡 입구,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 근처 마을 등등. 최소 1년 이상을 살아야 그 마을의 지수화풍을 읽을 수 있고, 뭐라도 조금 쓸 수 있었으니 한 번 이사를 할 때마다 졸작이지만 시집이나 산문집 한 권 정도는 낸 셈이다. 굶어죽지 않고 잠시 머물다 떠나는 집 한 채, 한 번 이사에 책 한 권이면 돈은 안 되지만 밑천도 별로 들지 않는 참으로 멋진 장사가 아닌가.

이제는 빈집 구하는 데도 거의 달인 수준이 되었으니 우편집배원 아저씨에게 “그 마을 할머니 돌아가시면 알려주세요. 내가 살러 갈 테니” 하고 굳이 부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번에 새로 이사한 집도 멀리 섬진강 건너에서 매화 필 무렵에 ‘필’이 꽂혀 찍어놓은 집이었다. 그것 참, 살다보니 ‘반풍수’의 눈으로도 척 보면 앉을자리가 보이고 빈집인지 아닌지, 빨랫줄에 무언가 나부껴도 산 자의 것인지 죽은 자의 것인지 대충 알게 되더라는 말씀이다. 이 또한 내 소유의 붙박이 집이 없기 때문에 누리는 호사가 아닌가.

그러는 와중에도 전국의 이곳저곳과 5대강 등 2만 리 이상을 걸어봤고, 모터사이클로 한반도 남쪽의 국도며 지방도며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70만㎞, 지구 열다섯 바퀴 이상의 거리를 달렸으니 여한이 없다. 그렇다고 멈출 것인가. 아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싸돌아다닐 것이다.

지리산의 큰 골짜기만 해도 30개 정도가 되니 다 살아보려면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더라도 30년은 걸린다. 그러니 끔찍하지만 최소한 일흔 살은 넘게 살아야 할 터이고,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타고 야영을 하며 전국의 비포장도로를 다 가보려면 대충 잡아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니 이 또한 만만한 일생지대사가 아닌가. 꼭 성취해야만 맛인가. 딱히 생을 걸 정도로 이보다 더 필이 꽂히는 것도 없으니, 그냥 한번 가보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집을 못 가지거나 안 가지거나 버림으로 해서 얻은 집이 훨씬 더 많았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듯 못하는 듯 사실은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았다.

철새는 집이 없기에 더 자유롭다
李元圭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계명대 경제학과 중퇴

지리산학교 교사대표, 순천대 문예창작과 강사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저서 :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 산문집 ‘지리산 편지’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등

신동엽창작상,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그리하여 ‘철새는 따로 집이 없다. 날마다 도착하는 그 모든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는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텃새보다는 철새가 더 우주적이지 않은가. 외로울 땐 외로워할 줄 알고, 슬플 땐 슬퍼할 줄 알고, 기쁠 때는 기뻐할 줄 아는 ‘영혼의 집’ 또한 그러하고 그러하리라 믿어보는 것이다.

내 인생의 온몸을 던지는 번지점프는 해방이자 자유였다. 삼백 가닥의 고무줄을 단칼에 끊어버리고 방외(方外)의 해방 기류에 몸을 맡긴 채 유유히 헤엄을 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즐거운 추락이자 행복한 자유낙하였다. 철새는 집이 없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다.

신동아 201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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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는 집이 없기에 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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