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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남북 현대사의 10대 비화-마지막회

휴전선 넘어 고폭실험 확인한 3인의 정보요원, 그러나 포착 못한 ‘관 속 원심분리기 설계도’

북한 핵 개발

  • 오세영| 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휴전선 넘어 고폭실험 확인한 3인의 정보요원, 그러나 포착 못한 ‘관 속 원심분리기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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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넘어 고폭실험 확인한 3인의 정보요원, 그러나 포착 못한 ‘관 속 원심분리기 설계도’

2006년 11월 공개된 파키스탄의 가우리 미사일.

핵 확산 방지를 위해 결성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세계 각국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NPT에 가입하면 의무적으로 IAEA의 사찰을 받아야 한다. NPT에 가입하지 않으면 경제제재를 비롯해서 미국의 강력한 응징을 각오해야 한다.

북한은 소련의 권유에 따라 1985년에 NPT에 가입하면서 IAEA의 사찰을 받을 의무를 지게 됐다. 그러나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북한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사찰을 거부했다. 더 이상 미룰 까닭이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할 계획을 세웠다. 1994년의 한반도 위기, 이른바 ‘1차 북핵 위기’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이 극적으로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한반도는 가까스로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됐다. 합의 결과 북한은 플루토늄 제조가 가능한 기존의 흑연 원자로를 폐기하는 대신 재처리가 어려운 경수로 건설을 이해 당사국들로부터 지원받게 되었다. 경수로가 완성되는 동안에는 중유를 공급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제네바합의는 결과적으로 NPT 의무를 불성실하게 이행한 나라에 큰 보상을 해준 꼴이 되고 말았다. 북한은 제네바합의를 통해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둬들였다. 특유의 장기인 벼랑 끝 전술이 빛을 발한 것이다. 전쟁의 먹구름은 걷혔지만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이렇듯 제네바합의로 인해 북한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게 됐고, 플루토늄이 없으면 핵폭탄을 제조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고폭실험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의혹은 한국 정보기관에서 제공한 토양 분석을 통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북한은 왜 고폭실험을 하는 걸까. 혹시 제네바합의 전에 핵폭탄 제조에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이미 확보해놓은 것일까. 그렇다면 이는 제네바합의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 된다. 제네바합의는 원자로 봉인 이전에 추출했을지 모르는 플루토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



더욱이 제네바합의의 허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미국이 금창리 시설을 놓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무렵인 1997년 12월, 파키스탄의 육군참모총장 제항기르 카라마트 장군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 커넥션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은 제네바합의에 또 하나의 허점이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핵폭탄은 탄두 이상으로 운반수단이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B-29 폭격기에서 핵폭탄을 투하했지만, 현재로서는 신뢰하기 어려운 방법이 됐다. 탄두를 장착해 발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 중요해진 이유다.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경량화된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을 모두 갖고 있어야만 진정한 핵보유국으로 불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은 1993년에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기반으로 하는 최대 사정거리 1500㎞급의 노동미사일을 자체개발하면서 미사일 강국으로 부상했다. 1500㎞라면 일본도 사정권에 들어가는 준중거리 미사일이다. 주변국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 미사일은 무기일 뿐 아니라 효자 수출품목이기도 했다. 주요 고객은 이란과 파키스탄. 북한은 기술수출에도 적극적이어서 파키스탄의 가우리 미사일과 이란의 샤하브 미사일 개발에 적극 관여했다. 이란은 이라크와, 파키스탄은 인도와 날카롭게 대립하던 중이었으므로, 그들에게 장거리 미사일을 제공하는 북한은 든든한 후원자였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필요로 하는 파키스탄은 반대로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갖고 있었다. 이미 파키스탄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평가받는 상태였기 때문. 사실상 보유국이란 말은 언제든지 핵 실험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미국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핵실험을 강행하지는 못했지만 파키스탄의 기술력은 이미 핵실험이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상대국 인도도 마찬가지였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을 보유하게 된 일련의 과정은 핵 확산의 속성을 명확하게 보여준 실례였다. 중국은 1960년대 소련과 갈등을 겪으면서 핵을 보유하게 됐다. 소련과 맞서려면 중국도 핵무장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핵을 보유하자 이번에는 중국과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던 인도가 핵 개발에 나섰다. 인도가 핵 개발에 나서자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와 날카롭게 대립하던 파키스탄도 서둘러 핵 개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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