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한음의 뉴스 사이언스

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hanmail.net

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2/4
잘 퍼질 완벽한 환경

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충남 아산시가 1월7일 무인항공방제기로 축사소독에 나서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국으로 구제역이 퍼지면서 피해가 여간 심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중국, 일본, 대만, 러시아, 몽골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이렇게 심하지 않았다. 왜 우리나라만 이렇게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을까?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급속히 퍼진 이유가 분뇨차 때문이라는 잠정적인 역학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분뇨 수거 차량이 안동에서 경기로 분뇨를 수거해 나르면서 구제역이 경기도로 퍼졌다는 것이다.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외국에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금 퍼지고 있는 구제역 균주가 지난해 일본에서 발생했던 균주와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각국의 대책은 거의 동일하다. 발생한 지역을 격리하고 그 지역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것이 그것이다. 주변 약 3㎞ 지역에 집중적으로 방역 활동이 펼쳐진다. 실제로 구제역이 발생하자마자 신속히 완벽하게 격리한 뒤 방역과 살처분을 하면 구제역을 막는 데 효과가 좋다. 아니, 19세기 이래로 세계 각국에서 전통적으로 써온 이 방법이 지금까지 구제역의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방법은 신속한 살처분과 완벽한 격리에 성패가 달려 있다. 문제는 완벽한 격리가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람과 차량의 왕래가 뜸하고, 축사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별문제가 안 될 것이다. 19세기에 살처분 방식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이 덕분이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가축 사육 두수가 늘어나면서 분뇨와 사료, 각종 물품을 운반하는 사람과 차량의 왕래도 늘어났다. 그뿐 아니라 지금은 전국에 차가 안 다니는 곳이 없을 정도다. 국내뿐이 아니라 해외로도 사람과 물자가 꾸준히 오간다. 게다가 단위면적당 사육되는 가축 수가 늘어나면서 전염병이 가축 사이에 금방 퍼지게 됐다. 비좁은 공간에서 자라는 가축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질병에 취약한 편이다. 특히 한국은 국토가 좁고 가축들이 좁은 축사에서 오밀조밀하게 사육되는 경향이다. 그러니 한국에는 사실상 구제역바이러스가 퍼질 완벽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축산업의 성장에 비해 방역 예산과 인력은 미비한 수준이다. 여러 해 동안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예산과 인력의 낭비가 될 테니, 쉽게 늘릴 수 있는 여건도 못 된다.

발생한 지역 바깥으로 구제역이 퍼지지 않았다면 행운이라는 표현마저 쓸 수 있을 것이다. 방역 대책의 허술함은 그것대로 지적해야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이미 구제역이 얼마든지 퍼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큰 피해를 보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구제역으로 심한 손실을 입은 바 있다. 앞으로 어느 나라든 그럴 수 있다.

돈과 위신 때문에 살(殺)처분?

예나 지금이나 구제역의 주된 대책은 ‘살(殺)처분’이다. 살처분은 산 동물을 죽이거나 기절시켜서 땅속에 묻는 것을 의미한다. 거부감이 덜한 단어를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문외한이 언뜻 들으면 잘 알아듣기 힘들다.

더욱이 죽은 뒤 배가 부풀어 묻은 땅이 들썩거리는 일이 없도록 배까지 갈라야 한다니 듣기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살처분 대신 매몰 처분이라는 용어를 쓰는 모양이다. 가축들을 죽여서 묻어야 하는 일을 직접 하는 사람들은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만두겠다고 하고, 심한 정신적 충격에 후유증을 겪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방법을 꼭 사용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정부가 구제역 확산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꺼낸 대책인 백신 접종을 미리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2/4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hanmail.net
목록 닫기

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