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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40代

“배고파 죽겠는데 세상은 다이어트만 권하네요”

‘진보 지향하는 고달픈 생활인’ 40대 23명 심층 인터뷰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배고파 죽겠는데 세상은 다이어트만 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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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스마트한 안철수에 호감, “투표까지는 더 지켜봐야”
  • ● 진보 지향하지만 생활인…‘네거티브 보팅’ 선호 현상
  • ●‘사오정’ 눈치에, 전셋값·사교육비 최고…‘노후 불안’이 가정불화로
  • ● 외로움에 샤워기 틀고 혼자 울어…“나이 든 40대 인정해야”
  • ● 가부장적 아버지와 비교하면 한숨…‘불륜’ 일탈행동 불러
  • ●‘87년 체제’에 대한 의무감, 다음 세대에 넘겨줄 시스템 고민
“배고파 죽겠는데 세상은 다이어트만 권하네요”
“먹고살기 바쁜데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발은 현실에 붙어있지만, 머리는 이상에 붙어있으니 갈등할 수밖에요.”

10월7일 오후 서울 당주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엄모(48·연구원)씨는 대한민국 40대를 한 단어로 정리하면 ‘끊임없는 갈등’이라고 했다. 중·고교 다닐 때는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박 터지게’ 공부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담배연기 마시듯 최루탄 연기 마셔가며 ‘박 터지게’ 데모했지만, 다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자신에게 “소 왓(So What)?”이라고 물으면 처진 배만큼 처량하단다.

담배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이는 그가 애처롭다고 느낄 때쯤, 동석한 임모(48·기업인)씨가 엄씨에게 술잔을 건네며 한마디 던진다.

“우리는 집에서도 갈등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 월급날이면 어머니는 돼지고기에 소주 한잔 올렸고, 형과 동생은 아버지께 존경의 눈빛을 마구 쏘아댔거든요. 집에서 식사시간은 곧 아버지 식사시간이었고요. 그런데 제가 옛날 아버지 나이가 되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애들 식사시간 지나면 밥 먹기 어려워요. 그래도 애들 공부시키면서 집 한 칸 마련해보려는데, 회사에서는 ‘사오정’이라고 눈치 주죠, 집에선 더 벌어오라고 하죠.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왜 자꾸 다이어트만 하라는 건지…. 샤워기 틀어놓고 울었다는 친구 얘기가 이해된다니까요.”

어느 사회나 그 사회를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허리는 있게 마련이다. 한국 사회에선 40대가 그 역할을 한다. 한국의 40대는 820만여 명. 전체 인구의 17.1%를 차지한다. 대학 학번으로 치면 82학번에서 91학번 사이(1963~1972년 출생자)다.



“배고파 죽겠는데 세상은 다이어트만 권하네요”
그들은 어릴 적 새마을운동 노래가 들리면 빗자루를 들고 집 앞을 쓸었고, 한 반에 60명이 넘는 교실에서 공부했으며, 대학 때는 수업보다는 데모하는 날이 더 많았다. 40대 중후반이 직접 민주화 시위를 이끌고 동참했다면, 40대 초중반은 선배들의 민주화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그들의 위업을 이어가려 했다. 그리고 40대는 ‘한국적 상황’을 극복하면서 기대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런 그들이 이제 또 다른 역할을 자처한다.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한국 정치구도를 흔들었던 ‘안철수 신드롬’. 안철수(49)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하며 신드롬은 막을 내렸지만, 그 충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돌풍의 중심 역시 40대다. 민주화 시위를 목숨 걸고 이끌며 4반세기 이어진 ‘87년 체제’를 만들었던 그들이, 지금은 다시 새로운 정치질서를 갈망하고 있다. 아직도 목이 마른 걸까.

기자는 이 문제에 천착하면서, 2011년을 살아가는 40대 23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9월28일부터 10월7일까지 진행된 인터뷰는 주로 퇴근 이후 저녁시간에 개별, 혹은 6명 집단 형태로 이뤄졌다. 그들은 회사원, 정당인, 자영업자, 교수, 사업가, 탤런트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지만, 혼란스럽고 치열했던 20대를 보냈고, 20대보다 더 치열한 40대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이제는 그 치열함을 내려놓고도 싶지만, 사회는 여전히 치열함을 강요한다며 허탈해했다.

기성세대 이름 달고 보수화되는 세대

“배고파 죽겠는데 세상은 다이어트만 권하네요”

1987년 6월 민주항쟁 도중 최루탄을 맞아 숨진 고(故) 이한열씨 영결식.

2011년을 살아가는 40대는 정치에 특히 할 말이 많았다. 이른바 ‘안철수 돌풍’과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그리고 지난해 경기도지사 후보에 이어 올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발언 순서를 정해줘야 할 만큼 논쟁이 뜨거웠다. 그들은 대체로 한국 정치에 대해 ‘아직 멀었다’고 평가했고, 상대적으로 기대가 컸던 야당의 무기력을 비판했으며, 함께 학생운동을 한 뒤 ‘젊은 피’로 제도 정치권에 진입한 인사들을 질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기성세대라는 이름으로 보수화돼가는 자신들의 모습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제법 익숙해진다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직장인 김경렬(46)씨의 말이다.

“‘안철수 돌풍’은 대안은 아니지만,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거죠. 왜 그렇느냐. 우리가 지지했던 사람들을 보세요. 87년 체제 이후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이 제도권 정치에 들어갔지만, 결국 지역 연고나 이념적으로 맞는 사람들-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지칭-밑으로 들어가면서 제 역할을 못했다고 봐요. 학생운동을 이끈 사람이 DJ에게 큰절을 하지 않나…. 가끔 국정감사 때 보면 목소리만 크고 피감기관 관계자에게 면박 주는 사람 대부분이 ‘직업 운동권’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스마트한’ 이미지의 안 원장에게 호감을 갖는 거 같아요.”

“오늘 신문을 보니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후보가 나경원 후보에게 9.1%P 앞섰다고 나왔어요. 그런데 40대 지지율은 박원순 55.3%, 나경원 32.3%입니다(한국일보 10월3일 여론조사 결과). 23%P 차이예요. 왜냐? 치열하게 살아온 40대가 볼 때는 ‘온실 속 화초’ 같은 나 후보가 탐탁지 않은 거죠. 박 후보도 사실 ‘안철수 지지’로 반짝 효과를 본 사람이잖아요? 무소속으로 나오면서 민주당에 기대는 모습도 좋게 보이지 않고요. 5년만 젊었서도 당연히 박 후보를 지지했을 건데 이젠 신중해졌어요.”(86학번 공무원 최모씨)

인터뷰이들은 안철수 원장의 비정치, 탈이념 이미지에 환호하지만, 대선후보로서 성장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데 공감했다. ‘안철수 돌풍’은 컴퓨터 보안 회사를 통한 성공신화, 상대적으로 토목·건축 이미지가 강한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비, 미래 지향적인 분야의 개척자, 20대와 소통하는 지식 전달자 같은, 신선하고 도덕적인 안 원장 개인의 매력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 호감도가 표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15명(65%)이 ‘더 지켜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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