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공동주택 거주가 보편화된 시대엔 층간 소음, 애완견 사육, 이불 털기, 발코니 흡연, 누수 등 크고 작은 이웃 간 갈등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속 시원한 기준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다. TV 개그 프로그램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애정남)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을 것이다. 실제 일어났던 이웃 간 분쟁사례를 통해 해결방법을 모색해본다.
잠 설치게 하는 층간 소음
#1 지난 5월 경남 창원의 모 아파트에서 밤낮없이 들리는 위층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이루던 허모씨가 홧김에 자신의 집에 있던 LPG가스통에 불을 붙여 집이 전소했다.
#2 2010년 7월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4층에 살던 송모씨는 3층 발코니에서 담배연기가 올라온다며 아래층 주민에게 가스분사기를 발사했다.
#3 지난 5월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이웃 함모씨가 키우는 35㎏ 골든리트리버 개로 인해 공포를 느낀다며 법원에 개 사육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공동주택의 층간 바닥충격음을 경량충격음과 중량충격음으로 구별하고 있다. 경량충격음은 식탁을 끄는 소리 또는 60㎏ 이하의 물건을 떨어뜨릴 때의 바닥충격음과 같은 것을 말하고 중량충격음은 60㎏을 초과하는 물건에 의한 바닥충격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 규정을 초과하는 소음이 날 경우 주민은 시공사를 상대로 보수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주택건설기준규정이 2004년 4월2일에 시행됐기 때문에 그 이전에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아파트는 이 규정에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이 규정이 시행되기 전에도 ‘공동주택의 바닥은 층간 바닥충격음을 충분히 차단할 수 있는 구조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음을 들어 피해배상을 결정한 바 있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 간 인정이 사나워지는데 따지고 보면 이웃끼리 다툴 일이 아니라 오히려 힘을 합쳐 시공사와 싸워야 할 일이다. 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전에 환경부 산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바닥시공이 제대로 되어 있는데도 위층 주민이 뛰거나 쿵쿵거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각 지방의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분쟁조정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아파트 아래층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면 그 연기가 바람을 타고 위층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이럴 경우 위층 주민은 담배연기를 피하기 위해 창문을 열지 못하는 등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불 털기는 반대의 경우다. 윗집 주민이 베란다에서 이불먼지를 털면 그 먼지가 아랫집의 열린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가게 된다. 담배연기나 이불먼지를 맞아야 하는 집에 임산부나 아기가 있다면 마냥 참고만 있을 수 없는 문제다.
사람이 사는 공간에는 일정한 간격이 필요하다. 수평적인 간격은 눈에 금방 띄기 때문에 법으로도 잘 정비돼 있다. 아파트의 경우 동 간 간격을 확보해 옆집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고 있다. 수직적인 간격은 수평적인 간격과 비교할 수 없이 좁다. 그러나 지붕과 바닥에 가려져 있어 쉽게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관련 법 규정이 매우 허술하고 느슨하다. 베란다 흡연과 이불 털기는 가구 간 수직적 간격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 공동주택 건축술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계속될 구조적 문제라고 하겠다.
최근엔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아파트에서 키우는 가구가 늘고 있다. 애완동물 사육을 금지하는 일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대부분의 아파트관리규약은 이웃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의무 정도만 부과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 8월 타워팰리스의 골든리트리버 소송 건에 대해 개 사육 금지 가처분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이 판결을 두고 아파트의 애완견 사육이 전면 허용되는 것으로 해석해선 안 될 것이다.
법원은 입주자자치기구나 위탁관리업체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입주민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문제의 골든리트리버가 짖지 않고 온순하다는 점도 반영했다. 만약 개가 큰 소리로 짖거나 공격성을 보인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하겠다.
이웃 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서로 협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물론 바람직하다. 이불 털기는 특정 시간대를 지정해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큰 소리로 짖는 애완견은 성대수술을 받게 할 수 있다.
그래도 안 풀릴 땐 아파트관리규약에 의한 조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 표준 공동주택관리규약은 “공동생활의 질서를 지킬 의무”라는 막연한 규정만을 두고 있어 구체적 분쟁해결기준으로 삼기에 한계가 있다. 입주자회의가 원활하게 운영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체적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층간 소음은 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만 담배연기나 이불먼지 같은 사안은 처리대상에 포함되지 않다. 결국 마지막엔 법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민법은 이웃의 생활에 고통을 주는 행위에 적용하는 법규를 가지고 있다. 즉, 민법 제217조는 “토지소유자는 매연, 열기체, 액체, 음향, 진동 기타 이에 유사한 것으로 이웃토지의 사용을 방해하거나 이웃거주자의 생활에 고통을 주지 아니하도록 적당한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정중하면서 단호한 내용증명
아파트 이웃 간 분쟁의 대부분은 217조에 의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조항을 위반해 이웃의 생활에 고통을 준 경우에는 불법행위가 되므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이러한 위법행위로 인해 이웃의 소유권이나 점유권을 방해하는 것이므로 해당 행위의 중단을 법원에 청구할 수도 있다.
217조를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경우 송사가 남발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조 2항에는 이웃이 참아야 할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웃의 음식점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풍기더라도 이것이 음식점의 용도에 맞는 불가피한 결과라면 어느 정도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는 경우에는 법적 조치가 가능함은 물론이다.
우리 국민 정서상 이웃에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과 같다. 상호 양보에 기초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합의도출을 위한 노력은 아무리 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법원으로 가기 전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내용증명을 한 통 보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송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국민 대다수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시대에 이웃 간 분쟁해결기준이 이렇게 빈약하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정부가 ‘애정남’처럼 나서서 시급히 관련 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공동주택 거주자 간 불필요한 갈등이 더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