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쿨~하게 갈라서는 젊은 부부 新풍속도

갈등 생기면 조율 대신 이혼 선택 할인점 마일리지까지 ‘내것’ ‘네것’ 철저히

  • 박은경│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1-10-20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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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자 10명 중 4명은 20~30대
    • 맞벌이 젊은 부부 재산분할 비율 갈등
    • 이혼까지 부모에게 의존하는 마마걸·마마보이
    • 협의이혼 NO, 재판이혼 YES
    쿨~하게 갈라서는 젊은 부부 新풍속도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혼소송 중 서울가정법원에서 마련한 부모교육을 받는 모습.

    “우리 사무실이 누구 때문에 굴러가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왜 자꾸 나더러 이기적이래?”

    “누군 뭐 할 말이 없어 그간 참은 줄 아나? 당신이 원한다면 제대로 싸워주지!”

    30대 변호사 부부의 이혼 공방전을 그린 MBC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의 한 장면이다. 시청자는 이 드라마를 보고 “재밌다” “웃기다” 같은 시청소감을 밝힌다. 하지만 현실의 이혼은 다르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이혼자 10명 중 4명은 20~30대 젊은 남녀다. 지난해 이혼 부부 11만6858쌍 가운데 자식이 없는 부부가 46%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요즘 젊은 부부들에겐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셈이다. ‘지고는 못 사는’ 자존심과 오기가 발동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법원으로 달려가는 젊은 부부가 많다.

    전북 전주에 사는 A씨(30)는 2009년 5월 아내 B씨(29)와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첫아들을 얻은 뒤부터 다툼이 시작됐다. 아기 건강을 위해 애완견을 다른 집에 보내자는 뜻을 아내가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 평소 자신의 월급과 채무관계를 밝히지 않는 아내를 믿지 못하던 A씨는 이 일 이후 B씨를 더욱 불신하게 됐고, 협의이혼을 결심했다. 문제는 이후 더 커졌다. 아내가 금전적인 요구 없이 순순히 이혼에 응하는 게 수상했던 A씨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 것. “친자가 아니다”라는 통보를 받고 격분한 A씨는 협의이혼 신청을 취하하고 재판이혼을 위한 소장을 접수시켰다.

    ‘내것 네것’ 확실한 교통정리



    이처럼 갓 결혼한 부부의 이혼이 많아지면서 법원 주위에서는 새로운 이혼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재산 분할에서 한 치의 양보가 없다는 점이다. 과거 부부들은 부동산과 금융자산, 현금 등 굵직한 재산에 대한 분할 방법만 합의하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요즘 젊은 부부들은 패물 등 귀금속과 자동차, TV와 컴퓨터 등 가전제품, 침대와 장롱 등 가구까지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지 일일이 따진다. 책과 영상물, 음반 등 부부가 함께 모은 애장품과 함께 기르던 애완동물을 누가 가질 것인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백화점이나 할인매장 등에서 적립한 포인트와 항공마일리지를 어떻게 나눠 가질지에 대해 다투는 경우까지 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10년간 활동해온 이윤수비뇨기과 이윤수 원장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각종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현찰로 여긴다. 언제든 쓸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이혼할 때 공평하게 나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이혼 전문 변호사 박보영씨도 “요즘 젊은 부부 중 상당수는 이혼할 때 재산 증식 기여도를 따지지 않고 절반씩 나눠 갖는 걸 공평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미국 뉴욕 주의 경우가 그렇다. 이혼할 때 부부가 각자 번 돈을 제외하고 결혼 후 불어난 재산을 절반으로 나눈다. 우리 젊은이들도 점점 이런 서구적인 시각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사이버상담실 게시판에도 ‘공평한 분배’에 대한 질문이 많다. 이혼소송 중인 30대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상담자는 “결혼 직후 시부모가 경차를 남편 명의로 사줬다. 이 차의 현재 시세가 700만원인데, 재산분할 대상이 되나? 될 경우 얼마나 받을 수 있나?”라고 물었다. 협의이혼을 고려 중이라는 30대 남성은 “집과 적립식 펀드, 보험 등이 모두 아내 명의로 돼 있다. 이혼을 요구한 건 아내 쪽인데 재산 분할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가전제품과 생필품은 어떻게 분할해야 할지 알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젊은 부부가 이처럼 재산분할을 놓고 시시콜콜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는 ‘내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주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동의 재산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 기간이 짧은 만큼 축적된 재산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다. 30대 초반의 동갑내기 커플 C씨와 D씨가 협의이혼을 하고도 두 달째 동거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C씨는 “이혼합의서를 작성할 때만 해도 아파트를 판 뒤 매도액을 절반씩 나눠 갖기로 했는데, 막상 시세를 알아보니 매도액의 절반으로는 전세를 얻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별수 없이 당분간 함께 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신 이들은 안방은 아내, 작은방은 남편이 쓰고 거실과 욕실, 주방은 공동으로 쓰며 생활비와 관리비는 절반씩 부담하기로 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서로의 사생활에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부모 입김에 좌지우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젊은 부부들은 이혼에 앞서 이혼문제상담소 혹은 변호사를 찾는 경우도 많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18년째 활동하며 경기도 분당에서 상담사무소 ‘김영희 부부컨설팅’을 운영 중인 김영희 대표는 “상담소를 찾는 부부를 연령별로 구별하면 30대가 가장 많고, 40대가 뒤를 잇는다. 젊은 부부들은 상담 문화에 익숙해서, 이혼 법정에 서기 전 자신들의 문제가 뭔지 들여다보려 하는 것 같다. 경솔한 이혼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쿨~하게 갈라서는 젊은 부부 新풍속도

    최근 20~30대 젊은 부부의 재판이혼이 크게 늘고 있다.

    이색적인 것은 이처럼 합리적이고 개성 강한 젊은이들이 이혼 과정에서 부모의 의견에 크게 휘둘린다는 점. 박보영 변호사는 “최근 2~3년 사이에 이혼 여부를 부모가 결정하는 사례가 확연히 늘었다”고 했다. 결혼 후에도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마마걸·마마보이가 많은데다, 경제적으로까지 부모에게 의존하는 이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딸도 최고로 공부시키고 당당하게 키웠다. 왜 내 딸이 손해 보면서 참고 살아야 하느냐”며 기세등등한 장모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시달리는 젊은 사위가 적지 않다. 과거에 흔히 보이던 ‘고부갈등’이 ‘장모-사위 갈등’으로 확대된 양상이다. ‘선남선녀 커플’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며 호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치른 E씨(38)와 F씨(35)도 그런 사례다. 아내 F씨는 혼수 준비에만 수억원을 들였고 지참금도 2억원을 가져갔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5년 만에 파국을 맞았다. 발단은 부부싸움을 하던 중 남편 E씨가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에게 시시콜콜 고자질을 한 것. 이에 분개한 F씨는 곧장 아파트 다른 동에 사는 친정으로 달려갔다. 아들과 딸에게서 각각 부부싸움 소식을 접한 양가 어머니가 곧장 이들 부부의 집으로 들이닥치면서 결국 부부싸움은 집안싸움으로 번졌고, 두 사람의 이혼으로 이어졌다. 박성만 서울가정법원 공보담당 판사는 “요즘 젊은 부부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며 자라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부모도 자식을 키우면서 들인 공이 작지 않기 때문에 결혼 후까지 자식 생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부부갈등에 양가 부모가 끼어드는 사례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친구 소개로 만나 2년 연애 끝에 결혼한 G씨(40)와 H씨(36)도 집안싸움 끝에 이혼한 사례다. 이들의 갈등은 2010년 설 연휴에 깊어졌다. H씨가 암 투병 중인 시어머니를 집에서 돌봤음에도 불구하고 시집 식구들은 잔소리만 퍼부었다. 설상가상으로 명절 음식을 장만하다 허리를 다쳤지만, 누구 하나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H씨가 시집 식구들과 말다툼을 벌이자 G씨는 아내에게 사과를 종용했다. H씨가 다시는 시집 식구를 만나지 않겠다고 맞서면서 시작된 이들의 싸움은 양가 집안싸움으로 번져 이혼소송에 이르게 됐다. 서울가정법원은 이혼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부부 모두가 서로 이해하려는 책임을 소홀히 했으므로 두 부부의 위자료 청구는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중년 이상 부부는 한쪽 배우자의 잘못이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젊은 부부는 양쪽 모두의 잘못으로 깨지는 경우가 흔하다. 앞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참을성이 부족하고 갈등 해결의 의지나 능력이 모자라 이혼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법원이 위자료 청구를 기각하는 사례가 많다.

    쌍방 책임 이혼

    재산분할에서도 젊은 부부의 이혼은 중년 이상 부부와 다른 부분이 있다. 중년 이상 이혼 부부의 상당수는 아내가 전업주부다. 가계 수입을 남편 혼자 번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원은 10년 넘게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자녀가 둘 이상 있는 경우 남녀 양쪽에 비슷한 수준으로 재산을 분할하는 게 보통이다. 가사와 자녀양육, 부부 공동 재산 형성에 기여한 주부의 역할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반면 젊은 부부의 경우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가사와 육아는 아내가 더 많이 부담한 사례가 많다. 그래도 재산분할은 대체로 비슷한 수준에서 정해져 억울해하는 여자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전체 이혼 건수 가운데 협의이혼이 차지하는 비율이 75.2%로 전년보다 1.0% 감소했다. 재판이혼은 24.8%로 1.0%가 늘었다. 이혼 종류를 구분하기 시작한 199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법원에 따르면 재판이혼은 2008년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했다. 박성만 서울가정법원 공보담당 판사는 “법원이 과거에 비해 협의이혼을 까다롭게 확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부부가 법원에 출석해 이혼 의사를 밝히면 바로 협의이혼 확인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혼 신청 후 3개월의 숙려기간을 두고, 부부 사이에 양육권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이혼을 보류한 채 양육 조서를 써오게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졌다. 박보영 변호사는 “이혼을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법원이 이혼숙려제도를 마련했는데 요즘의 이혼 세태를 보고 있으면 혼인 자체를 심사숙고하게 만드는 제도가 필요할 것 같다. 지금은 남녀 어느 한쪽의 신고만으로 혼인이 성립될 만큼 혼인 절차가 간단하다. 혼인은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라 한 가정을 책임지는 일이라는 걸 남편 교육, 아내 교육을 통해 사전에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혼인신고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희 부부컨설팅’ 김영희 대표는 “이혼 상담을 해보면 젊은 부부들은 평등의식이 강하고 굉장히 영리하다. 때가 덜 묻어 자기 잘못을 바로 인정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 잘못을 인식하면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거기까지 가면 화해 가능성이 높다. 이혼자의 80%가 후회한다는 통계가 있는 만큼 갈등을 겪는 부부들은 법원에 가기 전 경험 많은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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