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철의 권재진 돈봉투 발언은 거짓말” (권재진 친구 노병수)
- “이국철은 권재진 관련해 이성 잃은 듯” (前 SLS 계열사 고문 이치화)
- 3년간 5억 차에 싣고 다녔다?…새로운 의문
- 이상득 보좌관 대면 주선 노모씨에 계열사 매각
- 이국철 “노씨 모른다” 석연치 않은 否認
이국철 SLS회장이 10월2일 권재진 법무장관의 입장을 밝혀달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회장은 기자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고졸 철도기능직 출신으로 불과 40대 후반의 나이에 SLS중공업(철도차량과 선박블록 제조), SLS조선, SP로지텍, SP산업, SP해양, SLS캐피탈, 부인저축은행, 디자인리미티드 등 SLS그룹을 일궜다고 했다. 개인 자산인지 회사 자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1조원의 부(富)를 쌓았다고 설명했다. SLS라는 그룹명은 바다(Sea)-땅(Land)-하늘(Sky)의 약자. 스케일이 남다른 ‘고졸 신화’로 보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는 귀를 의심케 할 정도의 ‘운명의 반전’이었다. 2009년 검찰(창원지검)의 수사 및 SLS조선의 워크아웃이 진행되면서 그의 제국(帝國)은 모래성처럼 스러져갔다. 그는 “이제 제대로 남은 기업이 거의 없다”고 힘없이 말했다. 사실 조그마한 건물의 한 층을 쓰는 그의 사무실은 그룹의 본사라고 하기에 너무 초라했다.
그는 ‘산업은행’을 성토했다. 기업의 회생을 도와주기는커녕 기업 사냥꾼 노릇을 한다는 얘기였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그는 기업을 잃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기자는 ‘사정은 안됐지만 기삿거리는 안 된다’고 냉정하게 판단했다.
무너진 제국(帝國)과 메가톤급 폭로
그런데 최근 이 회장은 정국(政局)의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이 정권 실세인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억대의 상품권과 현금 뭉치를 주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권재진 법무부 장관 및 모 검사장급에게도 청탁했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을 접대했다고 폭로했다. 구속하면 리스트를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특정 언론 인터뷰에선 “여권 최고 실세에게 신재민의 10배를 더 줬다”는 메가톤급 내용을 쏟아낸 것으로 보도된다.
야당은 ‘이국철 게이트’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거론된 당사자 중 일부는 이 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국철 회장을 “제2의 김대업”이라고 비난했다.
신 전 차관이 일부 상품권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으므로 이 회장의 폭로가 완전히 허구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폭로자 중 일부는 진실과 허구를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과장하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이 회장의 폭로는 그의 사생활 차원을 넘어 사회에 큰 파장을 미치는 공공의 영역이 되었으므로 어디까지 진실한 것인지, 더하거나 감추는 것은 없는지 검증해보기로 했다.
이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받자마자 ‘또 기자냐’는 듯 “지금 전화 받기 어렵습니다. 끊습니다”라고 말했다. 요즘 그의 사무실로는 기자들이 밀려들고 그는 매일이다시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두 시간 반씩이나 인터뷰 시간을 내 주던 예전의 그가 아닌 것이다. 이어지는 대화 내용이다.
▼ 잠깐만요. 제가 옛날에 한번 찾아뵈었잖아요? 기억하시나요?
“(기억이 나는 듯) 네~ 네~ 네.”
▼ 긴히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말씀하세요.”
▼ 뵙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오세요, 그럼.”
▼ 언제 가면 되나요?
“지금 오면 돼요. 앙드레 김 바로 뒤 건물이요. (지난해 기자와 인터뷰했던) 거기서는 쫓겨나서요. 월세 못 내 여기로 이사했어요.”
“앙드레 김 바로 뒤 건물이요”
▼ 앙드레 김이 어딘가요?
“앙드레 김은 신사동에. 인터넷 치면 바로 나와요. 예. 예. (전화를 끊음)”
이 회장을 만나 진술을 들어봐야 하는 사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권재진 장관’ 건, 다른 하나는 ‘익명의 여권 최고 실세’ 건이었다. 둘 다 거명 인물이 보통 폭발력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회장에게 전화했을 때는 두 사안과 관련한 새로운 진술이나 자료를 취재해둔 상태였다.
먼저 전자와 관련해 이 회장은 “지난해 그룹계열사 고문인 이모씨를 통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권재진 장관에게 회사구명(救命) 로비를 시도했다”고 10월2일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이 회장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이국철 회장은 최근 거의 매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폭로를 이어갔다.
권 장관 건과 관련해 이 회장은 10월7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선 추가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이른바 ‘검찰의 권재진 비호의혹’이다.
“(SP로지텍 고문인) 이모씨가 대구 소재 대학 총장인 노모씨를 만나러 간다기에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2006년엔가 2007년엔가 경찰의 이 대학 압수수색 때 총장실 서랍에서 권재진 이름으로 된 돈 다발이 나왔는데 당시 검찰에 있던 권재진이 경찰을 협박해 수사를 무마시켰다’고 말했다. (내가) 그것을 검찰에서 진술했는데 김아무개 부부장 검사가 빼버렸다.”
이 회장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선 “이씨로부터 ‘권 장관과 둘이서 두 번 만나고 노씨와 함께 셋이서 한 번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권재진 의혹에는 이모씨, 노모씨, 강모씨 등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기자는 이들의 진술을 다 받아내어 이 회장의 주장과 비교해보기로 했다. 당시 이 회장 계열사인 SP로지텍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권재진 장관을 만나 구명청탁을 했다는 이모씨는 이치화 퍼플코어㈜ 사장이다. 이 사장은 “내가 권 장관을 만난 적이 없다”면서 “이국철 회장이 이성을 잃은 것 같다”고 반박했다. 이 사장은 대구지역 모 언론사의 자회사(광고기획) 전무 출신이다. 다음은 이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대구에서 스크린골프장도 운영해왔다면서요?
“수성구 황금동에. 700평 정도 됩니다.”
▼ 골프장에 방이 하나 있다면서요? 접견실 같은 거요. 거기로 여권 정치인들이 자주 들렀다고 하던데요?
“네네. 국회의원들. 한 번씩. 교통이 좋다보니까요.”
▼ 여권에 인맥이 넓으셔서 이국철 회장 측이 회사 구명을 부탁한 것으로 볼 수 있겠군요.
“오래전부터 이국철이를 좋아했어요. ‘고졸 학력으로 대기업을 이룬 게 대단하다. 대구출신이니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해오고 있었죠. 이국철이 ‘나는 평생 쇳덩어리만 만졌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없다.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어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힘이나마 내가 해보겠다고 했죠.”
‘권재진 의혹’ 사건의 이면
▼ 그래서 권재진 장관을 만나 구명을 부탁했나요?
“권 장관을 알기는 압니다. 상대편은 나를 잘 모를지 모르지만. 대구지검 근무시절 나를 자문위원으로 임명해준 적이 있고 여러 사람 있는 데서 식사 한 번 했어요. 이런 정도밖에 모릅니다. 대신 나는 노병수 전 영남외대 총장(이국철이 노모씨로 지칭한 사람)은 잘 알아요. 노 전 총장은 권 장관과 경북고 동창으로 절친해요. 그래서 노 전 총장에게 ‘SLS 건을 권 장관에게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 전 총장은 ‘한번 해보자’고 긍정적으로 답변했어요. 그러나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 권 장관에게 이야기를 넣지 않았다고 해요.”
▼ 이국철 회장은 이치화 고문으로부터 ‘권 장관을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요.
“이 회장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어요. 노 전 총장이 움직이지 않으니 권 장관을 만날 수 없었죠. 이 회장에게 민정수석실의 다른 사람(행정관급)을 만났다는 얘기는 했어요. 이걸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것 같아요. 권 장관과 관련해 이국철 회장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이성을 잃은 듯해요. 자기 편리한 대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이 회장 측으로부터 2010년 6억원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골프장 사업으로 사채를 많이 지게 됐어요. SLS 구명활동에 전념하는 차원에서 SP로지텍 감사로 임명돼 활동비조로 월 300만원 정도 받았어요. SP로지텍에서 1억원 정도 여유자금이 있는데 쓰겠느냐고 해서 그러자고 했어요. 이어 이 회장의 친구인 강모씨가 재미교포 여성의 5억원도 빌려 쓰라고 해서 이 돈도 빌렸습니다. 이 여성이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어요.”
▼ 이 돈을 구명활동에도 썼나요?
“사채 변제에 전액 썼다는 것은 이 회장 측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근저당 말소 등 기록으로도 다 입증됩니다.”
이 사장은 권 장관을 만나진 못했지만 여권의 여러 인사를 상대로 SLS 구명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이 회장 측이 내게서 월 1200만원씩이나 이자를 받아갔다. 사채 이자보단 쌌지만 서운했다. 고문료는 몇 달 들어오더니 말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이 신재민 같은 거물과도 가까운지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를 돕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내 능력으론 도저히 구명이 안 되겠다’고 하자 이 회장 측이 빌린 돈과 밀린 이자를 갚으라고 민·형사 소송을 낸 것”이라고 했다.
이치화 사장의 주장에 의하면 ‘권재진 의혹’은 이국철 회장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건이다. 즉, 이국철 회장 측은 이치화 사장의 능력 정도를 고려한 편의(수개월치 고문료와 사채보다 조금 싼 이율의 고리 대출)만을 제공하고 이 사장을 구명활동에 활용해보려고 했으나 이 사장이 권재진 접촉에 실패하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관계를 청산하고 소송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2006년 9월 경남 통영 SLS조선 전경.
“니 가나?” “간다”
▼ 이치화 사장을 권재진 장관에게 소개해 줬나요?
“이치화 사장 말로는 이국철이라는 사람이 진짜 억울해 보이긴 했어요. 그 큰 그룹이 다 날아가버렸으니. 그러나 민정 쪽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닌 것 같고. 권재진한테는 만나서는 물론이거니와 전화, 문자 등 SLS의 S자도 이야기한 것 없습니다.”
▼ 그러나 이 회장 얘기는 전혀 다른데요.
“이국철이가 자꾸 오해하고 거짓말하고 이러는데…. 나는 이국철 한 번 본 적도 없어요. 나는 이분이 그룹 회장이라고 해서 70쯤 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젊은 친구인 줄 처음 알았고. 나와 같이 박창달(자유총연맹 총재) 사무실에도 갔다고 하는데 나는 박창달도 한 번 본 적이 없습니다. 이국철에게 돈을 받거나 커피 한 잔 얻어먹은 사실도 없어요.”
▼ 법적 대응을 할 생각은?
“다른 일 같으면 굉장히 화가 났을 텐데 이 일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이국철이 억울하기는 억울해 보이더라고요. 더 이상 추가적인 게 없으면 그냥 보고 있으려고 합니다.”
▼ 이국철 회장은 이치화 사장에게 들었다면서, ‘지난 압수수색 때 총장님 책상에서 권재진 돈봉투가 나와 외압으로 무마시켰다’고 말하는데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전 대구에 있고 권재진은 검사여서 전국을 돌지 않습니까? 대구 친구 결혼식 있으면 권재진과 내가 ‘니 가나?’ ‘간다’ ‘축의금 좀 해도’ 이렇게 해서 내가 권재진 축의금을 대신 내줬어요.”
▼ 돌려주나요?
“그럼요. 바로 송금하는 경우도 있고 며칠 뒤 만나서 주기도 하고.”
▼ 그런데 취재해본 결과 압수수색에서 봉투가 여러 개 나왔다고 하는데요.
“그때 권재진이 서울북부지검 근무하던 시절에 대구에 내려왔어요. 권재진이 ‘니가 일일이 내 이름 써서 축의금 내려니까 귀찮겠다’면서 자기 이름이 찍힌 검찰 사무실 봉투 몇 장 가지고 와서 ‘앞으로 이 봉투에 담아 축의금을 내달라’고 한 겁니다. 압수수색 때 이 봉투들이 압수된 것이고요.”
이국철 회장에게 봉투를 언급했다는 이치화 사장은 “노 전 총장과 권 장관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설명해주려 말해준 사례인데 이 회장이 그런 식으로 이용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오해할 수 있겠죠”
이국철 회장의 친구이자 직장부하인 강모 디자인리미티드 사장이 이치화 사장에게 5억원을 빌려준 것과 관련해 통상적인 금전거래와는 다른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강 사장은 인터뷰에서 전 재산인 5억원을 3년 동안 차에 넣어두고 다니다 친구인 이 회장을 위해 이치화 사장에게 빌려준 것이라고 했다. 강 사장과의 대화내용이다.
▼ 돈 주인을 재미교포 여성이라고 소개했다는데….
“돈을 안 갚을까봐 다르게 이야기했습니다.”
▼ 채무자에게 돈 주인을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한 거네요?
“그렇죠.”
▼ 5억원을 빌려줄 때 이국철 회장과 상의한 적 있습니까?
“상의라는 게 어떤 거죠? 상의한 적은 없고. ‘이치화 사장이 정관계 인사를 많이 알고 있으니 회사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나. 이 사장이 개인적으로 사채가 많으니 빌려주자. 그러면 SLS 구명에 적극적으로 붙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죠.”
▼ 5억원을 구명활동에 썼나요?
“그건 아닙니다.”
▼ 모두 이치화 사장 사채 갚는 데 썼네요?
“네. 차용증도 받았고 이자도 받았고. 로비자금이면 누가 이자 받겠어요?”
▼ 정리하자면 SLS 구명활동에 돈이 들어간 건 아니지만 구명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취지에서 빌려준 거네요?
“그렇습니다.”
이국철 SLS회장이 10월7일 압수수색장면을 촬영하려는 취재진을 막는 검찰측 수사관을 제지하고 있다.
“나와 이국철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친굽니다. 저는 SLS조선소 관리담당자로 있었고요.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수표나 계좌이체가 편리할 텐데 굳이 5억원을 현금으로 준 이유가 있나요?
“제가 개인적으로 문제가 좀 있습니다.”
▼ 그럼 집에다 보관하고 있었나요?
“아닙니다. 차 트렁크에요.”
▼ 얼마나요?
“3년 정도 됩니다.”
▼ 신용불량 비슷한 건가요?
“좀 그런 게 있어요.”
▼ 본인 명의 자산은 없나요?
“없습니다. 자산.”
▼ 현 직함은 어떻게 되나요?
“올 1월경부터 디자인리미티드라는 SLS계열 가구공장 사장으로 되어 있어요.”
▼ 지분도 갖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혀. 저는 그냥 월급사장인데 월급 한 푼 못 받고 있습니다.”
▼ 지난해 돈 빌려줄 땐 어떤 일을 했나요?
“별로 하는 일 없었어요.”
▼ 그런데 전 재산 5억을 친구를 위해 빌려준 건가요?
“그렇죠.”
▼ 돈을 빌려준 뒤 이치화 사장으로부터 ‘권재진 장관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아뇨. 이치화 사장은 이국철 회장과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내게 ‘자리를 비키라’고 하더라고요.”
▼ 본인 돈을 5억원 대셨으면 돈 받아간 사람으로부터 구명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히 들어보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민정수석이라든지 이런 데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거든요. 별 관심도 없고요.”
▼ 이치화 사장은 ‘돈을 빌려준 취지가 이 회장 구명을 위한 것이니까 결국 이 회장 돈이 아닌가’라고 의심을 하는데요.
“의심을 하겠죠. 내가 그를 속이기 위해 여자를 데리고 갔었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보기에는 이국철 회사를 위해, 즉 이국철을 구명하기 위해, 이국철이 돈을 준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권재진 장관과 관련한 이국철 회장의 폭로내용은 뚜렷한 입증근거가 없거나 사실관계가 맞지 않은 것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 이 사장이 노 전 총장의 중개로 권 장관을 실제로 만났다고 하더라도 돈이 오간 것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다. 이러함에도 이 회장은 “6억원” “구명로비” “돈 다발” “협박” “수사무마” 등의 용어를 권 장관과 연결짓는 맥락으로 사용함으로써 턱도 없이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밝힌 5억원은 오히려 이 회장 측을 향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이 회장은 본인이 제기한 여권 실세 관련 의혹은 적극적으로 봉합하려는 모양새다.
“렌터카와 자본금 넘겨”
이 회장은 10월5일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신 전 차관에게 건네진 금품은 ‘여권 최고 실세’에게 전달된 것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9월27일 서울중앙지검 국감에서 “(정권 실세의 측근인) 박모씨와 문모씨에게 현금 30억원과 SLS그룹 자회사 소유권을 넘겼다는 구체적인 자료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10월12일)도 다음과 같이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 회장이 작성한 자필 진정서는 ‘박씨와 문씨가 찾아와 회사를 되찾아주겠다고 접근하자 이 회장이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금품을 전달했다’고 적혀있다.”
‘박모씨와 문모씨에게 현금 30억원과 SLS그룹 자회사 소유권을 넘겼다’는 의혹의 단서와 관련해 취재한 결과, 이 회장이 SLS계열사인 경북 경산시 소재 SP로지텍㈜의 자산을 서울 서초동 소재 D사㈜에 넘긴 사실을 확인했다. 업계 관계자는 “SP로지텍의 렌터카(80여 대) 사업 등이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이국철 회장도 SP로지텍을 D사에 넘긴 사실이 있는지에 대한 ‘신동아’의 확인요청에 그렇다고 했다. D사는 2010년 6월경 렌터카, 선박대여업 등을 추가사업으로 법인등기부에 등재했다. 등기부에 따르면 D사의 유일한 임원은 박지원 의원과 일부 언론이 거명해온 ‘문OO(42·경북 김천)’으로 돼 있었다. D사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문OO이 D사의 대표라고 했다.
▼ SP로지텍 인수한 거요.
“네.”
▼ 이 회사(D사)는 렌터카 영업 하나요?
“네.”
▼ 80여 대?
“네.”
▼ 자본금 30억 대략 그 정도?
“네.”
▼ 인수할 때 그렇게 인수한 거죠?
“네. 그런데 정확한 사안은 확실히 모르고요.”
▼ 문 대표님이 고향이 김천이고 포항에서 활동한 분이 맞나요?
“제가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SP로지텍의 법인등기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와 관련 한 M·A전문가는 “보통 법인 인수 시 합병등기를 하는데 경우에 따라 안 할 수도 있다. 법인의 외형은 놔두고 내부 자산만 인수받으면 등기부에는 표시가 안 된다. 상장사가 아니면 이러한 자산매각인수를 공시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신동아’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30억원 플러스 자회사와 무관”
박지원 의원과 일부 언론이 거명한 박모씨는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박모 보좌관이다. 박 보좌관, D사의 문 대표, 이국철 회장은 문 대표의 연결로 함께 만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보좌관은 10여 차례 전화나 메시지를 넣어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한 번 통화가 이뤄졌지만 그는 “바쁘다”고 끊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고 질의 내용을 밝혔음에도 응해오지 않았다. 이에 박 보좌관과 대화한 적 있는 안성모 ‘시사저널’ 기자를 인터뷰했다. 안 기자는 박 보좌관과의 대화 녹취록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 보좌관은 문 대표, 이국철 회장 등 3인이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시점과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SLS 민원을 듣는 자리였고 문 대표가 중재해 성사된 자리였다고 했다. 문 대표는 이보다 6개월~1년 전 처음 만났다고 했다. 식사자리에서 여러 사람에게 명함을 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 식사자리가 어떤 성격의 자리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30억원 플러스 자회사’와 관련해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했다.”
이상의 취재 결과, 야권과 일부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과 관련해 이상득 의원 보좌관과 D사의 문 대표, 이 회장이 SLS 민원 건으로 만났고 이 회장이 자회사를 문 대표 측에 넘긴 것은 확인되고 있다. 이 의원 보좌관은 ‘30억원 플러스 자회사’와 같은 의혹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였다. 국회의원 보좌관이 민원인을 만나는 것은 의례적 업무일 수 있으므로 이 보좌관은 공연한 의혹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의 태도는 이 사안과 관련해 개운치 않은 맛을 남기고 있다. 그는 ‘신동아’ 인터뷰에서 “신 전 차관에게 건네진 금품은 ‘여권 최고 실세’에게 전달된 것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자신의 발언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에 대해 ‘시사저널’ 측은 이 회장의 관련 발언내용은 녹취를 토대로 가감 없이 쓴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 회장은 이 의원 측과 노씨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했다. 이 의원의 보좌관을 노씨와 함께 만나고 자회사를 노씨 측 회사에 넘겼음에도 양측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 배경에 대해 의구심이 일 수 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모 여권 고위인사의 동생에 대해 특별한 근거를 대지 않고 추가의혹을 갑자기 제기했다.
이미 우리 사회의 뉴스 메이커가 된 이 회장이 과하게 의혹을 제기하거나 본인이 한 말을 사리에 맞지 않게 봉합하려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해치거나 거명된 당사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폭로자의 발언의 진실성을 꼼꼼하게 평가해야 하며 그의 입만 쳐다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다음은 이국철 회장 사무실에서 가진 이 회장과의 단독 인터뷰 내용이다.
“나는 모른다고!”
▼ SP로지텍. 렌터카 영업하는 회사 아닙니까?
“아니. (그러나 SP로지텍의 법인등기부에는 자동차대여 사업이 명기되어 있다.) 아. 그 할 이야기가 뭡니까?”
▼ SP로지텍이 매각됐잖아요. D사에 매각이 됐는데.
“응.”
▼ D사 등기부에 따르면 노OO이라는 사람이 단독이사로 되어 있는데. 이상득 의원 측과 함께 만난….
“(중간에 말을 끊으며) 모르겠어요.”
▼ 이상득 의원 측과….
“(다시 말을 끊으며) 나는 모른다고!”
▼ 이치화 사장이 권재진 장관을 만났나요?
“만났어요. 두 번 자기가 직접 만나고. 난 그렇게 들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내가 말단공무원서부터 언론사 오너서부터 응? 이렇게 만나고 온 사람인데. 이건 월간지(가 다룰) 사안은 아니잖아? 이거는. 지금은 방송이 다 다루고. 지금은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어요. 이제는 공식적으로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어.”
▼ 네.
“이 사건이 워낙 크기 때문에 아까 뭐, 뭐, 그런 건 다 지엽적인 거예요. 신재민 자체가, 이만한 종이라면, 신재민 자체가 (종이에 펜으로 점을 찍으면서) 딱 요거야. 딱.”
▼ D사에 (SP로지텍을) 매각한 사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그 회사에 물어봐요. 나는 모르니까. 취재해서 그 뒷감당 어떻게 하시려고요. 뒷감당 어떻게 하시려고 그래?”
▼ 네.
“그게 초점이 아니고 초점은 OOO(모 여권 고위인사 △△△의 동생)이라고.”
▼ 왜 그렇죠?”
“OOO이 대한민국의 내놓으라고 하는 인사(人事)를 거기서 다 해요. 역삼동 4층 건물에다 사무실 얻어놓고 국세청 검찰 국정원 다 거기로 출근해요. 모든 인사는 거기서 벌어진다고.”
▼ 그분 직업이 뭔데요?
“△△△의 동생. 아까 내가 이야기했잖아.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거기를 취재해봐.”
▼ OOO을 만나신 적 있나요?
“아니, 나는 모르는 사람이죠. 그러니까 내가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하는데 거기서 물어보면 되지. 법조기자들 모아 놓고 공개적으로 하는데. 내가 공개적으로 다 이야기를 해요. (특정) 기자 한 사람한테만 하면 언론사에서 다 이리로 오거든. 검찰청이 텅텅 비어. 그래서 보통 여기에…(여직원에게 ‘오늘 몇 명 왔노?’라고 묻자 여직원이 ‘인원수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함) 그러니까 월간중앙도 여기서 살다시피 하고 월간조선도 그렇고. 그러나 내가 대응을 안 해주잖아. 그러니까 그때(지난해 인터뷰 당시) 취재하라고 했더니 안 하고. 지금은 다른 것 취재하지 말고, 내가 봤을 때는, SLS 사건만, SLS가 붕괴된 것이, SLS사건이 왜 이렇게 됐나, 그것만 취재해.”
“공문 보냈어. ‘장난하지 말라’고”
▼ 전(前) 정부 때도 SLS가 조사 받았나요?
“무슨 소리야? 현 정부 책임이지. 현 정부가 대놓고 공격하잖아요. 산업은행, 검찰, 청와대, 수출보험공사, 감사원, 또 어디야 금융위원회. 그러니까 기자들이 신재민으로 가다가 지금 워크아웃으로 다 돌아서지. 워낙 판이 커요, 이 판이. 무슨 말인지 아시죠?”
▼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여권 최고 실세에게 신재민 전 차관의 10배를 줬다는 말을 했는데.
“(손사래를 침)”
▼ 기사가 허위라고요?
“내가 ‘시사저널’에 공문을 보냈어요. 장난하지 말라고. 법적으로 고발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