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연-태초(太初)의 품으로 들어가다

  • 이희숙

    입력2011-10-20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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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logue

    카카두 국립공원(Kakadu national park)으로 보름간의 휴가등산을 떠나기로 했다. 인간문화의 흔적이 전혀 없는, ‘태초의 품’ 같은 깊은 산골짜기 안에서 그저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행 날짜가 가까워오면서 또 다른 기대가 생겨났다. ‘이번 여행에선 어떤 의미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였다.

    긴 세월을 살았으면서도 나는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소망하는 꿈이 무엇인지, 사는 목적과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누굴 사랑해야 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몰랐으며, 돈이 얼마가 있어야 행복한지, 또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가슴을 방망이질하는 분주함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채 특별한 유익함도 없이 무거워진 책임감에 지쳐가는 중년이 되었다.

    깊숙한 산속, 대자연의 심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우주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동안 방치했던 상처를 치유받고 진정한 기쁨이 어떤 것인지 찾아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인생이 ‘한 번뿐인 여행’이라면, 이번 등산 역시 가치 있는 인생의 짧은 여정이 될 것이었다.

    숨어 있어 보존된 천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대자연의 포로가 되었다. 인간이 생존만을 위해 숨을 쉬는 것이 아니듯, 자연 역시 아름다운 관계(連) 안에서 호흡하고 변화하며 생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람과 기후에 맞춰 물의 흐름이 바뀌고, 흐르는 물과 비 그리고 바람의 관계 안에서 바위 모양이 바뀌고 있었다. 물이 흘러가면서 작은 장애물을 넘어가는 소리는 아주 작은 변화에도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신음과 같았다. 모양과 색깔이 수시로 변하며 이동하는 구름은 행복과 번뇌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 수많은 별을 데리고 내려오는 겸손한 밤하늘에서 저항하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는 고요한 순리를 보았으며,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주 앉았던 동행들의 기쁘고 슬픈 이야기에서 내 삶의 일부분을 엿보았다. 산속에 사는 원주민들의 신비한 문화 역시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예기치 못했던 사건들이 발생해 곤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어깨를 빌리며 등산을 마칠 수 있었고 이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보름간 찍은 사진을 정리하다가 그 순간들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여행을 통해 내 삶의 형태가 얼마나 무미건조하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벅찬 계획 아래 살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자연 속에서 가슴 뛰는 열정의 순간에 치유와 축복이 가득한 마음속의 고향을 다시 찾아냈다. 그리고 갈망하지 않고 고요히 기다리는 겸손한 포로처럼 자유로운 승리자가 되는 순례자의 길도 생각해 보았다.

    태초의 땅, 그곳의 숭고함과 초자연적인 신성함 속에는 분명 우리 일행을 지켜보는 자연의 신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은 우리에게 경건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산이 간직한 고요한 신비는 그곳이 원주민들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 모두가 지켜야 할 지구의 마지막 땅이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번 등산은 내게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자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되었다.

    우리의 입산 목적지는 원주민(原住民) 관리 지역이어서 입산 조건과 입산 가능 인원 등이 무척 까다롭게 관리되고 있었다. 광대한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산 허가를 받는 데만 무려 3개월이 걸렸다. 우리 등산클럽의 명예회원이며 이번 등산의 인솔자인 지미와 몇몇 회원은 이미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등산로마다 다른 매력이 있어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카카두 등산은 겨울 비수기에 예약을 해야 비행기와 호텔비도 할인되고 식량을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을 통해 카카두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꼼꼼히 익혔다.

    카카두 국립공원(Kakadu national park)

    연-태초(太初)의 품으로 들어가다
    호주에서 가장 북쪽(Northern territory),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 잡은 열대지방이며 다윈(Darwin) 시에서 가까운 이 국립공원은 넓이가 프랑스와 맞먹는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고, 원주민들의 전설과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1984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공인되었고, 1999년 국제천연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976년, 호주 정부는 이 국립공원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국립공원의 절반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현재 국립공원에 사는 500여 명의 원주민은 연방 소유의 나머지 땅에 대해서도 관리권한을 신청한 상태다. 범람원의 평원이란 뜻의 ‘카카두’는 고원과 평원, 협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계절에 따라 좁은 산속의 협곡까지 조수가 밀려들어 범람원이 변화하는 경이로운 산이다.

    하늘을 나는 연이 되어

    등산은 일요일에 시작됐다. 나는 등산 전날 다윈 시를 관광할 계획으로 금요일 근무를 마친 뒤 저녁 7시경 비행기를 탔다. 다윈 공항, 지미가 보내준 계획서대로 빌리와 잭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자정이 넘어 호텔에 도착하니 카운터 입구에 방 열쇠 두 개가 우리 클럽 이름이 적힌 봉투에 담겨 있었다. 먼저 들어간 방은 후텁지근했다. 그래서 냉방장치가 잘 되어 있는 다른 방에 짐을 풀려고 하는데, 잭이 아무렇지 않은 듯 먼저 짐을 내려놓았다. 여자인 나에게는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남편에게 늘 우선순위의 대접을 받아온 나는 이 두 남자의 무례함에 어이가 없었다.

    움츠린 시드니의 겨울을 떠나 다윈에서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봄을 뛰어넘어 활기찬 여름이 온 듯했다. 감겨있던 모든 끈에서 풀려나 설레는 마음으로 홀로 나서는데, 자석에라도 끌려오듯 서먹한 사이인 두 남자가 양쪽 구석에서 다가왔다. 산들바람 같은 내 계획이 괘씸한 두 남자에게 방해받는다는 불쾌감에 기분이 잠시 언짢아졌다. 그러나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순간은 상대방 이상으로 내 힘이 빠져나가면서 죽어가는 시간이다. 고요히 생각해보면 이미 미움이 아니야”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서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며 “Hi” 하고 남자들을 반겨줬다. 그러나 나보다 목이 하나 더 있듯 키 큰 두 남자의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그들은 시큰둥하게 나를 쳐다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평생에 몇 번 없을 여행인데, 자라목같이 웅크린 이런 남자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기왕이면 내 마음을 찰랑거리게 할, 그런 남자들과 동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우리 일행이 모인 곳은,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쳐들어 상쾌한 그런 커피숍이었다. 머리카락이 살랑 흩날릴 정도의 산들바람과 향기로운 커피 한 잔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았는데, 한가롭게 차려진 별식까지 덤으로 나와 마치 귀족이라도 된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아침을 먹는데 문득, 돈을 아끼려고 여행 때마다 남편의 눈치를 봐가며 음식보따리를 싸들고 다니던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아이들에게 더 풍요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허전해졌다.

    잭은 커피만 주문했다. 건장한 체격과 미국식 억양의 맑은 음성에 정확하고 간결한 언어를 사용하는 그였지만, 면도를 안 해 히끄무리한 턱밑 수염 때문인지 그의 인상은 침울하고 피곤해 보였다. 빌은 늘 바나나뮤즈나 뜨거운 초콜릿을 마시는데 오렌지 주스를 주문하며 내 시선에 어깨를 으쓱했다. 몇 년을 함께 등산하다보면 회원들의 웬만한 습관은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나는 그와 오랫동안 여러 번 등산을 해왔다. 길 건너편에 자전거대여점이 보여 일어나 가보려 하는데, 귀에 익은 높은 톤의 콧소리가 수선스럽게 들려왔다.

    “Here you are!”(여기 있구나!)

    고개를 돌리자 턱밑으로 쪼여 맨 찌그러진 회색 헝겊모자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줄무늬가 있는, 쭈글거리는 허름한 흰색 면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다 해진 운동화를 신은 그랜이었다. 그 옆에는 그랜의 파트너인 로이도 있었다. 반짝이는 하얀 피부와 수선스러운 음성을 가진 그랜은 언제나 거침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여자였다. 그랜과 로이는 해외로도 등산을 자주 다니는 사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늘 흥미로운 면을 보곤 했다.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상의하는데 빌이 공중전화 부스로 걸어갔다. 늘 혼자인 그가 여행지에서 전화를 하는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나와 그랜은 자전거를 빌려 관광 지도를 보면서 시내를 돌기로 약속했다.

    다윈에서의 하루

    다윈은 동서양의 희망봉이라 할 정도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축복받은 도시로, 그동안 동서양을 잇는 등대 역할을 해 왔다. 다윈은, 1911년에 찰스 다윈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명칭이라고 한다. 찰스 다윈은 18세기 후반의 생물학자로 진화론과 유전이론의 창시자이며 동시대를 살다간 문학가 벤조 피터슨과 함께 호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세기 진화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호주로 들어왔고 호주 생태계를 진화이론에 응용했다. 한편 호주의 자원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은 다윈의 우성이론을 통해 그들만의 우월주의로 백호주의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원주민들을 통제하고 중국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다. 그랜은 호주가 원주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박물관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곳이었다. 그랜은 망설이지 않고 어린아이 손에서 빵 반쪽을 뺏다시피 얻어와 나에게도 나누어줬다. 그녀는 상대방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떨결에 “yes”란 응답을 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물위에서 빵 조각을 들고 있으니 잉어 종류의 물고기들이 튀어오르며 빵을 받아먹었다. 물고기들은 새들이 날아오는 낌새를 진동이나 그림자로 느끼면 물속으로 잽싸게 숨었고, 펠리컨은 주위를 돌다가 그런 물고기를 재빠르게 한 마리씩 채갔다. 자연박물관은 그 지역에 처음으로 자리 잡은 주민이 자산을 기증해 지어졌다고 한다.

    식물원에선 희귀한 난 종류와 여러 종류의 식충식물이 눈에 띄었다. 뚜껑을 벌려 곤충이 안으로 들어오면 서서히 닫아버리는 표주박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보일 듯 말듯 아주 작은 이끼꽃이 개미를 쌈 싸먹는 식충식물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런 쬐끄마한 게….

    식물원 한 곳에선 결혼식이 있다며 출입을 금지한다. ‘내 아이들 결혼식도 이곳에서?’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다른 한쪽에는 창문 방향을 조정해 태풍중력을 조절하게 만들어진 견고한 조립식 사무실이 전시되어 있다. 1974년 성탄일 아침에 시속 217㎞로 불어대는 폭풍으로 다윈에서는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70% 가량의 주택이 파괴되었다.

    점심 때가 되어 햄버거를 사 먹겠다고 하자 그랜은 “저녁이 되면 잘 먹을 텐데, 왜 돈을 쓰냐”며 치즈와 햄을 넣어 만든 빵 반쪽을 나눠준다. 역시 잔돈을 세는 그녀답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용 선박들을 정착시키는 과정을 지켜본다. 먼저 바닷물을 빼내고 배를 들여놓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지루했으나 흥미롭게 지켜보는 그랜을 독촉할 수가 없었다. 바람막이가 없는 육지의 맨 꼭대기이므로 폭풍 대비를 든든히 한다. 일 년에 단지 몇 번 비행기를 타고 와서 휴가를 보내는 선박주를 대신해 관리인이 가끔 가동을 한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 상상 못하는 여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태초(太初)의 품으로 들어가다
    “충동적이며 철딱서니 없는 촌닭마누라의 역마살 때문에 모기밥이 되게 생겼네.”

    구시렁대며 심통 부리는 아빠의 말을 듣던 다섯 살짜리 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아빠가 차안에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서 저 넓은 하늘TV를 볼래? 집의 텔레비전보다 더 크고 좋은 프로그램이야. 우리가 나가서 잘게.”

    아빠를 한마디로 꼼짝 못하게 만들 줄 알던 아이들이 보고 싶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면 어른인 우리보다 더 식견이 넓었던 그때의 일곱 살과 다섯 살짜리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내 얼굴엔 지금 행복한 미소가 저절로 퍼진다. 밤하늘을 좋아해서 우주항공사가 되겠다던 아들은 법을 공부했으나 글을 쓰고, 바다를 좋아해서 해양동물사가 되겠다던 딸은 의사가 되었다.

    “얘들아, 고마워….”

    모두 일찍 잠이 들었나보다. 너무 조용해 잠을 깼다. 달빛 아래 모기장들이 보인다. 언제 돌아왔는지 엎드려 누운 세라의 모습이 모기장 안으로 훤히 들여다보인다. 잠꼬대를 하면서 뒤척인다. 한국 여자로 본다면 억센 팔자를 가진 여자다. 하지만 세라는 언제나 웃는다. 그녀의 딸과 내 아이가 같은 병원에 근무한다는 것을 알고는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영국에서 온 이민자로 난민고등학생들 교육심리상담을 하는 심리학자다. 중국인인 전남편이 젊은 중국여자를 만나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막내가 돌도 채 되기 전에 떠난 후 혼자 다섯 아이를 키우다가 호주로 이민을 왔다. 나와 동갑이지만 런던의 악센트가 강한, 배려심이 많은 언니 같은 여자다.

    ▼ 여행 3일째

    아침 7시 전에 출발하면 섭씨 19~24℃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경쾌하게 걸을 수 있다. 낮이 되면 다시 32~35℃로 올라가 푹푹 찐다. 가끔 반가운 흰 구름이 보이고 작은 먹구름도 한두 개 보이지만 멀리 비켜간다. 올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강우량이 1300㎜나 된다고 했다.

    곳곳에 맑고 깊은 물이 있어 잠시라도 물속으로 들어가 더위를 식히는 여유를 즐긴다. 물만 보면 옷을 벗는 세라와 제임스, 그녀는 아이가 다섯이나 되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팽팽한 탄력으로 신이 빚은 멋진 예술품을 보여준다. 넓은 계곡에서 아주 좁은 협곡을 지나기도 하고, 가시 있는 풀숲도 지나고 휘파람 소리 나는 갈대밭도, 소낙비 소리를 내는 사탕수수밭도 헤치며 걷는다. 험한 바위산도 오르고, 모래밭을 걷기도 하며, 산 깊숙이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낮은 계곡에 도달했다. 한 마리의 바다거북이 헤엄을 치고 있다.

    “지대가 낮아 짠물이 들어오는 강이므로 짠물악어도 있을 위험이 있으니 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어.”

    지도를 보며 지미가 말한다. 그늘 아래서 점심을 먹고 쉬지만 눈앞에 보이는 시원한 강물이 더위를 견디기 힘들게 한다. 세라와 제임스가 맞장구를 친다.

    “악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몸만 적시고 나와도 될 것 같아.”

    그랜까지 들어갔다 나오고 나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가 물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악어다!” 로저가 장난을 친다.

    “가엾은 돔, 로저, 너, 너무했다. 애 얼굴을 봐라, 새파랗다.”

    세라가 로저에게 면박을 준다.

    “그 정도 속도로는 악어밥이 될 테니 종종 뛰는 연습을 해두는 것이 좋겠어.”

    보통 짠물악어는 4~7m크기로 사람을 통째로 삼킨다. 악어는 교활한 동물이다. 2~3m 가까이 올 때까지 사람들이 전혀 낌새를 느끼지 못하게 바닥에 바짝 붙어 기어와서는 시속 65㎞로 달려든다. 바다낚시를 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의 얘기도 종종 들을 수 있다. 나는 바다낚시를 갔다가 상어에 물려간 친구의 남편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편의 실종을 믿을 수 없는 친구는 시체라도 꼭 보게 해달라고 구일기도(가톨릭식 기도)를 했는데, 기도가 끝나는 날 다윈에서 연락이 왔다. 낚시대회에서 젊은 청년의 낚싯줄에 끌려온 상어의 배가 유난히 불룩해서 해부를 해보았더니 팔 하나가 잘린180cm 키의 상하지 않은 남자시체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시드니 상어가 다윈까지 올라간 것이다.

    해가 기울 때까지 걸었다. 협곡으로 내려와 모래밭에 자리를 잡았다.

    저녁을 먹고 요가를 한다. 집중력을 한곳에 모아 흐트러지는 정신을 맑게 해준다. 그랜과 모린은 젊은 무용강사 이상으로 유연했고 끈기도 대단하다. 나도 요가를 하지만 실은 초등학교 때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배운 국민체조가 근육과 순환기를 돕는 운동으로 지금 건강한 내 하루를 지켜준다고 하자 모두 가르쳐달라고 한다.

    한밤중, 얼굴로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에 눈을 떴다. 어수선한 소리와 함께 얼굴이 젖는다. 머리 전등들이 바쁘게 번쩍인다.

    “계곡이 좁아 금세 물이 넘칠 수 있으니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겠어.”

    지미의 불빛만 따라 울퉁불퉁한 길을 정신없이 걷는다. 지미도 놀란 듯하다. 우기엔 천둥과 번개로 뒤덮이는 산을 다윈 시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겨울엔 비가 오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방수용 전등도 모두 소용이 없다.

    “이런 건기(乾期)에 비가 오는 것은 나도 처음 겪는 일이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에 대한 믿음이 있다. 또한 며칠 사이에 체력도 좋아졌고 어떤 모험이든 할 수 있다는 각오도 되어있다. 몇 년 전에도 장맛비에 발이 묶인 일이 있다. 거친 물살이 무서운 속도로 계곡을 채우며 빠르게 넘실대는데 먹을것도 남지 않고, 구조경찰대도 속수무책이어서 이틀이나 기다려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을까. 이럴 땐 함께 어울려서 텐트를 치면 개인적인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혼자 해결하는 게 습관이 된 싱글들이다. 내가 속해 있는 또 다른 가톨릭등산클럽이라면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제임스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젖은 옷을 벗어 물을 짜내고 다시 입었다. 마른 옷은 아껴둔다.

    어둠과 빗소리 속에 전등불만 희미하게 움직일 뿐이다. 모두 무사한지 제임스가 확인을 한다. 세라는 빌이 있는 곳에서 대답을 한다.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쏟아지는 비가 들이치지는 않는다. 말하기 좋아하는 제임스와 잭은 밤을 새울 모양이다. 추위를 견디며 졸고 앉았다가 어느새 어설픈 잠이 들었다.

    ▼ 여행 4일째

    바위 사이의 작은 나뭇가지에 천막들이 간신히 매달려 있다. 지미가 보물인 양 목에다 걸고 다니는 지도를 이젠 눈에다 담고 다니는 듯하다. 멀리로 비켜가던 작은 뜬구름 하나가 이런 큰 비를 몰고 되돌아올 줄은 생각지 못했나보다. 그 작은 구름 안에 담겼던 비를 다 쏟아냈을 텐데도 여전히 주르륵 소리를 내고 있다. 체온으로 옷이 마르지 않는다. 추위에 떨며 시리얼을 아침으로 먹었다. 감트리의 젖은 껍질로 불을 지피기도 하는데 그런 나무도 없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이렇게 그리울 수가….”

    텐트를 접고 빗속을 걷는다. 몇 발짝 사이로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시고 찬란하게 반짝이는 맑고 파란 하늘이 나타난다. 마음도 상쾌하고 맑아졌다. 모닝티를 마시려고 바위를 찾았다. 커다란 검은 뱀이 아침 일광욕을 하고 있다. 타이페이라는 이 독사에 물리면 네 시간 내에 온몸에 독이 퍼지며 점차 근육마비가 오고 사망하기에 이른다. 등산회원 중에 독사에게 물리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회복하는 데 1년이 넘게 걸린 경우도 있었다. 응급처치로 압박붕대를 바로 감았고, 무엇보다 건강하고 체격이 큰 사람이었기에 병원으로 옮기는 동안 독이 퍼지는 시간을 벌었다. 차츰 손발에 감각이 없어지며 몸 전체를 움직일 수 없었고 혀도 움직일 수 없었으나 눈동자와 정신만은 말짱했다고 한다. 부츠와 다리 보호대는 단단해서 뱀의 이빨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독사는 허벅지까지도 튀어오른다. 그 산에서 뱀을 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호주엔 참으로 도마뱀이 많다. 나무 사이를 건너뛰는 도마뱀, 공룡같이 흉측한 모습의 도마뱀도 있고 어린아이 크기의 고아나도마뱀이 나무에 올라가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한다. 3000종류가 넘는다는 도마뱀에서 우주인 만화모델을 찾는다면 상상을 초월할 작품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귀엽게 생긴 작은 도마뱀 종류는 우리 집 거실까지 들어오는 내 딸의 소꿉친구이기도 했다. 딸은 부드럽고 간지러운 작은 도마뱀을 손에 쥐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엘리자베스’라고 불렀다. 나는 가끔 도마뱀을 잡아 어린 시절 딸의 흉내를 내며 ‘엘리자베스’하고 불러본다.

    점심 때쯤 당도한 곳은 사탕수수밭이다. 배낭 속에 들었던 음식도 꺼내어 말리고 부츠도 벗었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은 사탕수수밭 속에서 얼굴 없이 말을 주고받으며 휴식을 취한다. 다시 높은 지대로 걷는다. 멀리 펼쳐진 평야의 지평선이 하늘에 닿아있다. 그 위에 원주민의 전설로만 해석될 기둥 같은 바위가 여기저기 솟아있다. 티 하나 없이 맑고 반짝이는 파란 하늘 아래 길게 누워있는 바위산의 등줄기를 밟으며 말없이 걷는다. 땀을 흘리는 내 숨소리가 마치 우주의 무거운 숨소리로 들린다. 모두의 얼굴이 밝아진다.

    “아!”

    찬란한 아름다움이다. 베토벤의 합창이 들리는 듯 한동안 넋을 잃는다. 울퉁불퉁한 사암으로 이뤄진 높은 바위를 쓰다듬으며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커다란 다섯 계단의 연이은 호수 아래로 가득가득 채우고도 넘치며 흐르고 있다. 그 많은 물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큰 소리를 내지 않고도 다음 호수로, 또 다음 호수로 아낌없이 흘려 보내고 있다. 절묘한 바위의 모형과 호수의 물이 설명할 수없을 만큼 아름답다. 호수 안은 석회암과 화강암이 섞인 듯 단단하고 붉은 회색을 띠고 있고 물 밖의 바위는 수억만 개의 벌집 모양으로 오돌돌 엉키어 있다.

    “특이한 바위의 모양은 오랫동안 비바람과 물로 인한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거야.”

    사진을 찍던 로저가 가까이 서 있다.

    “그렇지, 어젯밤처럼 세차게 빗방울이 천년만년 떨어졌다면 바위에 구멍을 낼 만도 할 거야.”

    보이지 않는 아픔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우리는 경이롭다고 한다. 참고 견디어낸 사랑도 그런 것일까? 친구가 아들 결혼식을 마치고 한 말이다

    “그동안 살면서 몇 번을 남편과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했었는지 몰라. 그런데 아들 결혼식장에서 나는 내가 잘 참아온 보람을 느꼈어.”

    어느새 호수로 뛰어내린 로이와 세라가 한참 만에야 물개처럼 물 위로 떠오른다.

    “물이 얼마나 깊은지 어둠 속까지 내려갔던 것 같아.”

    맨발로 내려가던 나는 돌가시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나와 부츠를 신었다.

    물속에는 꼬리가 없는 인어도 보이고, 털 없는 물개들도 있고, 돌고래처럼 물을 뿜으며 튀어 나오는 잭과 빌도 보인다. 모든 것이 장관이다. 사진을 찍는다.

    물속으로 뛰어내리고 그리고 가볍게 떠오르는 물고기 같은 모습을 위에서 지켜보다가 어느새 그 아름다운 장관에 끌리어 나도 아래로 내려와 옷을 벗는다.

    바위에 걸터앉아서 들여다본 물속의 바위 모양과 색이 맑은 유리창 같다. 나는 바람 넣은 빈 포도주통을 들고 물속의 바위로 올라섰다. 몇 발 들어서자 이미 깊은 검은색으로 아무것도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발 하나를 물속 허공에 넣자 깊은 물의 부력으로 발이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밀려나온다. 두려움으로 숨이 헉헉 막힌다. 원주민들이 모시던 물속의 커다란 무지개뱀(불라神)의 영이 그 아래 있을 것 같은 두려운 생각도 든다. 잭이 손을 내민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물에 그냥 맡겨두면 뜨게 되어 있어. 내가 이 카카두에서 책임지고 수영을 가르쳐줄게.”

    물로 들어가니 나는 가랑잎같이 가볍게 돌려진다. 잭의 도움으로 폭포 밑으로 들어간다. 폭풍우 속에 휘둘리듯 나는 물속에서 이리저리 소용돌이쳐진다. 헉헉대다 간신히 나와 선글라스를 끼고 물가에 걸터앉아버렸다. 잭이 따라 나와 곁에 앉는다. 털 없는 속살 펭귄이 물속에서 나온다. 그의 모습을 보며 얼떨결에 킥킥 웃는다.

    “저기 무지개가 떴어.”

    계곡 아래에서부터 하늘로 이어져 건너편 산으로 선명한 일곱 가지 색의 고운 무지개가 다리를 만들고 있다. 얼떨결에 벌집같이 뾰족한 가시돌을 디디다가 쩔뚝대는 벌거벗은 펭귄이 보인다.

    “저기 좀 봐, 짠물악어가 있어. 아마 5m쯤 되는 것 같아.”

    망원경으로 계곡을 내려다보던 로이가 소리치며 아래를 가리킨다. 협곡 가장 아래, 식인악어 두 마리가 물 위에 긴 얼굴을 내놓고 떠 있다. 짠물 식인악어는 바다에서 계곡까지 올라와 폭포가 있는 곳에 와서 멈추고 지대가 높은 곳까지는 올라오지 않는다. 멀리서라도 아주 못생긴 악어를 보게 되었다. 발걸음을 옮긴다. 더욱 출출한 저녁이다.

    스파게티를 끓이는 냄새, 수프를 만드는 냄새…,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나는 마른 잡채에 물을 조금 부어 끓이고 불고기 말린 것도 물에 적셔 불 위에 구우니 구수한 냄새가 일품이다. 방금 만든 잡채 이상으로 쫄깃한 맛이 기막히다. 잡채라면이 왜 없는지 모르겠다. 세라의 완두콩과 코스코스를 섞고 마른 햄을 넣어 끓인 죽도 맛있다. 저녁을 먹고, 불똥을 휘젓던 신티아가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시를 읊는다.

    I love a sunburnt country, A land of clear blue skies, ……

    I love those far horizons

    but then I can′t see for when I try to view them.

    The rain falls down on me.

    ….

    나는 햇볕에 탄 붉은 땅을 사랑한다. 맑고 푸른 하늘의 땅….

    저 지평선 너머를 사랑한다

    저 멀리 지평선 끝으로, 바라보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 위로 비가 내린다.

    ▼ 여행 5일째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흐른다. 좀처럼 땀이 나지 않는 내게 이곳이 준 선물이다. 체내의 찌꺼기가 모두 빠지는 듯 개운함을 느낀다. 마른 나뭇가지들이 얽힌 벌판을 헤치며 걷다가, 조그만 바위나 작은 그늘이라도 만나면 모두가 드러누워버린다. 무더위에 간혹 피어있는 작은 꽃은 아장대며 걷는 아기의 웃는 얼굴과 같다. 열대지방에서만 서식하는 초목들과 습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들, 평야의 마른땅에 피어있는 들꽃, 끊임없이 흥미롭다. 커다란 바위같이 단단하게 우뚝 지어진 흰개미집이 널려있다. 물을 만나 옷을 벗는 홀가분함과 물속에 뛰어들었을 때의 상쾌함이란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난 후의 후련함과 비교할 수 있을까?

    걸어야 할 목표량을 매일 조금씩 늘려가는 듯하다. 쉬는 시간이 짧아지고 횟수도 줄어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위에 끌려가며 가랑잎이 몇 개씩 달린 마른 숲을 헤쳐나가는데 우뚝 솟은 큰 바위가 보인다. 큰 바위들이 서로 포개져 거대한 건물 형태를 이룬 붉고 어두운 바위가 으스스하게 보인다. 로이가 들러보자고 한다. 흰개미 집을 그늘 삼아 멈춰 선다. 제임스가 “그냥 가자,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혹시 우리가 침범해선 안 될 원주민들의 영신을 모시는 장소일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호기심도 일고, 두렵기도 한데 로이는 마른 가지 사이로 사라진다.

    “원주민들은 바위에 벽화를 그릴 때도 큰 소리로 신에게 먼저 고하고 그렸어. 행여 신이 원하지 않는 곳이나 원하지 않을 때 그림을 그리면 신이 노해 천둥이나 번개, 홍수로 큰 피해를 보게 한다는 전설이 있어.”

    “그렇다면 조심하는 게 좋겠네. 우리가 영의 세계를 알 수 없는데 위험을 초래할 필요는 없지. 그래 그냥 가자.”

    세라가 동의를 하자 신티아가 말한다.

    “악의 없는 호기심인데 무슨 죄가 되겠어. 나는 가보고 싶어.”

    로이가 심각한 얼굴로 돌아온다.

    “만일 보고 싶으면 따라와봐. 좀 이상한 것이 있어.”

    머뭇대며 줄줄이 따라나선다. 제임스조차 따라나선다.

    삐죽이 처마가 있는 동굴 입구다. 모두들 멈춰 섰다. 키가 큰 로이의 팔도 겨우 닿을까 하는 높은 바위 사이에 굵은 뼈들이 소장되어 있다. 모린은 열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의 뼈라고 하고, 그랜은 동물의 뼈일 것이라고 했으나 어떤 동물이 그 길이의 곧고 긴 뼈를 가지고 있는가, 또 누가 저 높고 좁은 곳에 올려놓을 수 있겠는가, 등등 여러 의견이 나온다. 아무도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 시드니로 돌아가서 알아보자는 결론을 내린다. 제임스는 따라온 것을 후회하는 듯하다.

    화강암이 깔린 계단식 바위 층층으로 물이 흘러내린다. 미끄럽다. 조심스레 낭떠러지의 작은 바위 틈사이로 내려간다. 로이가 등짐을 받아 내리고, 로저의 도움을 받아가며 바위틈을 빠져나와 내려가고도 또 하얀색의 사암이 깎아내려 생긴 아주 좁은 길을 돌았다. 한참 아래로는 급하게 흐르는 깊은 물이 있다. 돌벽에 붙어서 건너야 하는 좁은 길에 어떻게 그렸는지 돌벽화 ‘아기 낳는 여자’가 크게 그려져 있다.

    “색상이 화사하고 선명한 것으로 보아 오래된 그림 같아 보이진 않는데….”

    배낭을 비닐봉지 안에 넣고 한 사람씩 물로 뛰어내려 물결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간다. 나는 또 깊은 물에 자신이 없었다. 바위틈에 몸을 비벼가며, 작은 나뭇가지에도 의지하며 내려간다. 목이 따끔거린다. 초록개미들이 목으로 잔뜩 옮겨왔다. 손에 잡히는 대로 입안으로 넣었다. 새콤달콤 비타민이 입안에서 녹는다. 내 배낭은 누군가 먼저 옮겨갔다. 깊고 센 계곡물은 자꾸 나를 물결대로 돌려가려고 한다. 그랜이 나를 끌며 헤엄을 친다. 늘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산짐승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숲 속에 여러 모양의 배변이 많았고 숲 속에 큰 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을 물길로부터 따라가면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여우는 우리를 보자 달아났으나, 작은 산돼지는 우리 일행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멍청하게 생긴 웜벳은 발톱이 길고 체력도 좋아 여기저기 땅을 뒤집어놓기도 했다. 우기(雨期)엔 바닷물을 따라 바닷물고기가 계곡까지 들어온다. 여름철엔 장마가 지고 겨울철엔 메마른, 더구나 돌산으로 된 이 척박한 땅에 원주민들이 남아 있으려고 하는 것은 깊은 자연이 감추고 있는 풍요로운 자산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 여행 6일째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출출해졌을 때 말린 견과류를 나눠 먹는 즐거움도 무한한 행복이다. 가끔 보이는 거미줄은 창공에다 정교한 수를 놓은 듯 황금색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황금거미줄을 튕기면 기타소리만큼이나 탱탱하게 들린다. 자동차의 안테나도 황금거미줄에 걸리면 부러진다고 한다.

    “작은 수컷거미는 큰 암컷의 등에 업혀 다니다가 암컷의 식량이 된다.”

    “여자들이 무서워 장가를 안 가나?”

    다들 깔깔대며 웃는다. 맑은 물에 빨간색의 야비(아주 큰 가재)가 잡아가란 듯이 넙죽이 나와 있다. 그러나 돌 밑에 숨어있던 고향의 작은 가재가 주는 정겨움은 없다. 점심을 먹고 작은 폭포 밑에서 물마사지를 받았다. 세라는 허리가 좋지 않고 나는 오래전 다친 목과 왼쪽 어깻죽지 근육이 뭉쳐있다. 장맛비처럼 쏟아진다. 다양한 풀잎의 향과 에너지를 쓰다듬어서 쏟아져 내리는 물결이 얼마나 강렬한지 다듬이질로 펴지듯 피로로 뭉쳤던 근육이 쭈욱 펴지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유 시원해!”

    쭈그리고 앉아 물마사지를 받고 있는 우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빌이 보인다. 그는 나를 편하게 생각한다. 세라는 허리디스크가 있어 등짐을 멜 때마다 높은 바위를 찾지만 그런 바위가 늘 있는 것은 아니다.

    “빌, 아무도 자진해서 세라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내가 목디스크가 있잖아. 세라를 볼 때마다 안타까워. 곁에 있을 땐 좀 도와줄 수 있겠어?”

    빰 맞아가며 훈수 둔다고 했던가. 내가 좀 그런 사람이다. 한국 아줌마답게 오지랖이 넓다. 하여간 그 후부터는 세라가 배낭을 멜 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빌이 다가온다. 그는 나의 눈인사를 확인한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모래밭에 도착했다. 나무들은 긴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에는 동물들의 흔적이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다. 호수 건너편엔 사암으로 된 절벽에서 작은 폭포들이 떨어진다. 아직 한낮이다.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룻밤만 머물기엔 아까운 곳이다. 뒤늦게 도착한 모린이 투덜대며 우리 터로 들어온다.

    “제임스가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아놓기로 했는데 너희들이 먼저 왔어. 이곳밖에는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없어. 너희들이 양보하고 다른 데로 옮겨줘.”

    남에게 아쉬운 말을 좀체 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가 무례하기보다 가엽게 보인다. 지쳐 보이는 사람과 연장자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한국 사람인 내가 세라를 설득한다.

    “세라, 그래 우리가 옮기자. 모린이 많이 피곤해 보인다.”

    “양보할 것이 따로 있지, 저 여자(she)는 합당한 이유도 없이 막무가내로 억지를 쓰고 있어. 강요당하는 양보는 할 마음이 없어.”

    세라는 다시는 안 봐도 될 사람처럼 냉정하게 말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웃던 두 사람이다. 나는 두 사람의 기(氣) 싸움을 지켜본다. 결국 모린이 옮겨간다. 손목을 다친 후 계속 넘어지며 지친 상태에서 자존심까지 다쳤으니 어떻게 회복할지 안쓰럽다.

    모린은 등산을 시작한 지 20년이 됐다. 예순이 넘었지만 독일 태생이어선지 체격이 크고 단단하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건축에 참여했다는 명성이 있는 건축가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밀회를 즐기는 것을 알고 사랑한 만큼 배신감도 커졌다고 했더랬다. 잡지회사 광고 디자인 책임자였던 그녀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취미로 시작한 도자기 굽기가 이젠 부유층 사이에 소문나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그녀는 모든 등산회원의 개인 신상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고 일하여 다방면으로 전문가다.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는 또 한 가지가 있다. 모린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금박으로 쓴 예쁜 글씨가 담긴 등산사진을 넣은 카드를 보낸다. 그런 그녀는 내게도 특별한 사람이다.

    별은 보이지 않고 하얀 구름만 가득하다. 그 구름 사이에서 보이는 달은 서러울 만큼 더 하얗다. 외롭게 떠있던 하얀 달이 어디로 가려는지 구름 사이를 급히 달린다. 집을 떠나온 지 일주일째, 시간도 달리는 듯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오늘은 또 몇 십 리 유랑의 반복,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누군가 나그네의 길은 새로운 풍경을 펼쳐가는 보행이며 소유하지 않는 길이라고 했다.

    구름은 여전히 내 눈 위에서 멈추지 않고 달리는데 멀리 가지도 못했다.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나도 가족을 떨어져선 며칠 못 가는구나…. 다들 잘 있겠지?”

    모린의 아픔

    모린의 손목이 많이 부어올랐다. 다친 손으로 지팡이를 사용할 수도 없고 균형을 잃어 자주 넘어진다. 지미가 모린에게 짐을 분담시키자고 설득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고집을 피운다. 그러곤 일찍 모기장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수프를 끓여 모린에게 갔다.

    “내가 오질 말았어야 하는데 왔어. 실은 존(큰아들)이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보고 왔거든. 정신병이야말로 무서운 전염병이야. 대학교를 다니던 큰아들이 학교도 가지 않고 이상해져 야단만 쳤지. 의사를 찾았어야 했는데, 나는 속수무책으로 좌절과 혼란으로 절망하고 있는데 미련한 남편은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비서였던 젊은 여자에게서 위안을 받고 싶어했어. 아들은 증세가 심해질 뿐이었고, 집안에 전염병처럼 슬픔이 퍼지기 시작했지. 낮에는 자고 밤에는 자지 않고, 시간이나 청결 그리고 점차 책임이나 윤리에 대한 개념도 없어져 갔어. 그 당시만 해도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질 못했거든. 차츰 나도 쉴 곳을 찾아 등산을 시작했고 등산을 하며 힘을 얻었어. 그렇게 내가 조금 물러서니 큰아들이 오히려 내게 다가오더군. 지금도 약을 복용하며 잔디 깎는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 또 발작할지 몰라. 등산을 하며 많은 생각을 했어. 아이들로 인해 갖고 있던 내 높은 자만이, 큰아들로 인해 아래로 내려왔지. 내가 아들에 대한 기대를 접지 못하는 동안 혼자 고통스러웠을 아들을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이제는 그냥 살아만 있어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 언젠가 아들이 ‘어머니, 어머니가 나를 보고 아파하지 않으시니 나를 누르던 돌이 치워진 기분이 들어요’ 하더군. 나는, 나만 가슴 아파하는 줄 알았는데 내 아들이 엄마인 나한테 미안해서 가슴 아파하는 줄은 몰랐었거든….”

    “… ….”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 아픔의 깊이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고집과 강한 힘이 그런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내가 처음 산을 찾을 무렵도 그랬지만, 지금도 산속의 밤에서 많은 답을 찾는다. 늦은 밤의 모임, 네 명은 달이 밝아서 더 신명이 났는지, 밤 깊은 줄 모르고 속삭인다. 계곡 넓은 바위 위에 모기장들이 쳐 있다. 이층 침대도, 건넌방도 있는 옹기종기 모인 바위방이다. 밤새 코고는 사람, 잠꼬대하는 사람…, 휘영청 밝은 달빛이 대낮 같은데 저렇게들 깊은 잠을 자고 있을까? 잠이 오지 않는 긴 밤이다.

    “내 아이들은 나로 인해 어떤 아픔을 갖고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잠을 깨었다. 그런데 고요해진 한밤중에 세라의 모기장이 비어있다.

    여행 8일째 ▶ 목발 짚은 빌

    물보라가 물결 위에 잔잔히 하늘댄다. 바위 위에 아주 커다란 새가 있다. 두루미 종류로 보이는데, 흰색 가슴 바탕에 길고 푸른 목을 가졌으며 날개와 다리는 검은색과 빨간색이다. 우리는 관심도 없는 듯 우아하게 목을 길게 빼고 물가를 유유히 걸어서 숲 속으로 들어간다.

    “아마 호주 북쪽지방, 특히 이 산에서만 서식하는 자비루(Jabiru)일 것 같아.”

    로저의 말을 받아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빌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비루란 오랜 세기 동안 변형되지 않고 멸종되지 않은 새인데….”

    150㎝, 보통 아이들 키까지 큰다고 하는데 저 새는 아직 어린 새인가?

    개미떼처럼 줄을 지어 걷는다. 잔풀이 엉기성기 있는 곳을 지나는데 앞서가던 로저가 나를 멈춘다.

    “조심해, 이 개미집 밟으면 아마 너를 시드니까지 쫓아올 거야.”

    개미의 집을 건드리면 개미들이 몰려나와 껑충껑충 뛰며 따라온다. 다리가 길어 10㎝까지 뛴다고 한다. 검은색과 갈색으로 얼룩져 있으며 입은 메뚜기처럼 사납게 생겨 물리면 금세 부어오르고 잘 털어지지도 않는다.

    빌이 징검다리를 건너뛰다 미끄러지며 발목에 타박상을 입었다. 금세 부어오르는 발목을 보자 입술마저 하얘지더니 주저앉는다.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바위 밑에서 찬물 찜질을 해주고 붕대를 감아줬다. 제임스, 로이 그리고 로저가 그의 짐을 나누어 진다. 마침 모린에게 짐만 되던 지팡이를 빌려 짚고 쩔뚝대며 걷는다. 모린과 빌을 지켜보던 지미는 일찍 캠프 장소를 정한다. 아직 한낮이다. 커다란 동굴이 있고 벼랑으로 떨어지는 폭포 아래로 커다란 호수가 있다. 동굴 안이 원주민들 삶의 터전이었던 듯 많은 벽화가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으나 대체적으로 동물들의 그림이다. 색상으로 보아 오래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로저의 설명이다. 특히 원주민들이 상상하는 창조신인 뱀그림이 있다. 메뚜기 모양 더듬이가 있고, 두 눈만 있는 얼굴에 긴 몸체는 물고기 뼈 모양으로 되어있고 꼬리부분엔 또 다른 몸체가 붙어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원래 목적지였던 긴 폭포가 있는데 빠르면 해 지기 전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지도를 보며 말하는 짐의 말에 신티아가 “다녀와요, 그리고 돌아올 때 내가 지도를 보면 안될까요?”라고 말한다.

    모린과 빌 그리고 쉬고 싶다는 세라만 남겨두고 모두 나섰다.

    한낮의 무더위지만, 오랜만에 등짐이 없으니 나는 듯 홀가분하다.

    깜짝 놀랐다. 우리와 모습이 같은 물체가 불쑥 나타난다. 눈을 깜박거리고 보니 그들도 사람이다. 일주일 만에 만난 사람이 낯설다.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고 그들도 반가워한다. Willys 등산관광업체로 비싼 비용을 받지만 보통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을 안내하며 목을 돌리지 못할 만큼 무거운 짐을 진 젊은이가 식사를 제공한다.

    어디선가 산 전체를 무너뜨릴 듯한 괴성이 들린다. 엉금엉금 기어서 벼랑 아래를 내려다본다. 300m 이상 될 듯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였다. 맞은편 절벽산과 몇 천 년에 걸쳐 서서히 벌어진 거리는 족히 100m 이상이 된다.

    4만년 전에 물 위로 올라오며 변형된 지구의 한 부분이다. 아래로는 부서진 바위들이 또 서로 붙어 커다란 수영장이 된 것이 보인다. 그런 형태의 물받이들이 아래로 까마득히 몇 개 내려다보인다. 절벽을 조금 내려가니 25m 길이의 거대한 역암 수영장이 있고 벼랑 중간 동굴들도 있다.

    “저 동굴들 안의 벽화들은 몇 천 년 전에 그려졌고 저 아래 지층의 아름다움이 극치라고 한다는데…, 지미, 다음엔 저 안에 들어가는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굴 안으로 들어가긴 쉽질 않은가봐. 준비 없이 내려갔다가 그냥 올라왔다고 하더군. 가보면 좋긴 하겠는데….”

    “자세히 알아보고 준비해서 한번 내려가보자고.”

    암벽타기를 많이 하는 로이에겐 해볼 만할 것이다. 가시같이 뾰족한 사암동굴 안에는 삼림지대의 공동체, 즉 새들의 둥지가 있고, 앵무새, 굴뚝새, 박쥐는 벼랑을 안식처로 삼고 있고 뱀이나 큰 동물 침입은 제한되어 있다. 돌아오는 길은 신티아가 나침반을 들고 인솔한다. 몇 번 고개를 넘으면 이미 방향감각을 잃어 돌아서길 몇 번 했으나 신티아는 침착하게 잘 해내고 있다.

    시드니에서의 자북(磁北)은 11도에서 읽는데 이미 이곳은 13도로 읽어야 할 만큼 시간과 거리가 차이가 난다. 해가 저문 뒤에야 캠프로 돌아왔다. 세라가 반기며 빌에게서 수두꼬를 열심히 배워 잘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모린은 멀리 텐트를 쳤을 테고, 빌은 바위에 기대어 책을 읽는다. 이미 수영장에선 모기들이 내 피로 파티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파게티 말린 것을 물에 불려서 끓였다. 부자 유대인들처럼 바위 위에 비스듬히 누워 저녁을 먹는다. 일류 이탈리아 식당 스파게티 맛도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오늘 밤은 인솔자가 특별 메뉴를 대접하는 날이다. 이 산악회에선 인솔자가 회원들에게 모닥불 만찬을 한번 대접하는 것이 전통이다. 지미가 준비해온 가루를 그랜이 반죽하고 로이와 잭이 새까맣게 그을린 깡통에 저어가며 끓이는 동안 지미는 말린 사과를 물에 불려 찢어 익어가는 케이크 위에 얹는다. 군침을 흘리며 뜸이 들길 기다린다. 하늘에서 별들도 눈을 반짝인다. 새까만 깡통에서 케이크가 뜸이 들고, 찻잎도 우려내고 커피 물도 끓는다. 신티아의 마술 주머니가 열리고 그윽한 향의 촛불이 바위 한가운데서 살랑댄다. 호스티스를 자처하는 그랜의 더러워진 긴 인조손톱도 케이크를 먹으려는 우리의 입맛을 떨어지게 하지 못한다. 우주도 잠이 들어야 하는 한밤중, 깊은 산중에 가냘픈 촛불 앞에 둘러앉아 스펀지 사과케이크에 곁들여 커피까지 마신다.

    기분이 좋아진 모린의 하늘거리는 꽃무늬 치마가 여름밤을 한층 매혹적이게 한다. 신티아가 빌을 바라보며 소곤대듯 말을 건넨다. 불빛아래 다정한 눈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자인 내가 보아도 매혹이 된다.

    ‘Yes 혹은 No’로 대답할 수없는 질문에 빌은 보통 입을 열지 않는다. 세라가 빌에게 케이크를 들고 와 앉는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달빛 아래서 이어질 그들의 대화를, 호기심으로 지켜보려 했는데 아쉽다. 빌이 일어나 자리를 옮긴다. 아름다운 무대의 문이 아쉬움과 함께 닫힌다. 신티아는 나에겐 초면이다. 신티아는 북쪽 지역의 시장 비서를 하는 한편 관광담당 책임도 맡고 있다. 나와 동갑으로 쉽게 친해지며 결혼에 실패한 이유를 말했었다. 신티아와 나는 사생활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내게는 과거가 사생활이 되고 신티아는 미래에 대한 타인의 관심을 싫어하는 듯하다.

    “친절하고 잘생긴 미국 남자를 사업관계로 호주에서 만나 결혼해 망설이지 않고 미국으로 따라 들어갔지만 이혼한 남자였고 아들이 둘이나 기다리고 있었어. 보석으로 나를 설득하더니 차츰 의처증 증세를 보이며 일하는 여자에게 쇼핑까지 시키고 나를 집안에 가둬두었어. 그에게서 아이 둘을 낳고 전 부인의 아이들까지 넷을 키웠지만 견딜 수 없어 혼자 호주로 도망을 쳤다가 국제법으로 소송을 해 아이들을 찾아왔어. 그 사람은 어려서 죽은 어머니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떠날 것이란 두려움에 갇혀 있었어. 나도 전 부인도 그리고 자식들도 소유물처럼 취급하다가 난폭해지기도 했지. 그런데 나도 철없이 남자에게 빠져 일찍 결혼했는데 모전여전이야. 내 딸이 지금 그래. 가까이 살았는데 싸움이 잦아서 차라리 이혼을 하라고 집으로 데려다놓았지. 지금 네 살 된 손녀딸과 여자만 셋이 한집에 살아. 지금까지 두 개의 직업을 갖고 열심히 벌어서 마련한 작은 집도 은행융자를 다 갚아 이젠 큰 욕심 내지 않으면 하고 싶은 여행쯤은 망설이지 않아도 돼. 그리고 주말마다 카이악킹, 자일, 동굴탐험, 거기다 행글라이딩도 하지.”

    이런 매력적인 여자를 곁에 두고도 잡지 못하는 남자들이 안타깝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곳엔, 신티아에게 어울리는 남자도 내 자유를 찰랑거리게 할 남자도 없다.

    산속의 시

    호수에서 층층으로 떨어지는 물이 우리를 대신해 행복한 노래를 부른다. 물 한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잭의 모기장이 하얀 요정처럼 걸려 있다. 밤하늘의 모든 별도 우리의 정담에 귀를 기울이며 바위 위로 모여든다. 요리조리 뒹굴며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웠다. 그리운 고향집, 엄마 무릎에 누워 별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이런저런 이야기…, 촛불은 다 타버리고 책을 읽을 수 없는 로이가 누가 시를 읊어 보겠느냐고 한다.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카메라를 만지고 있던 로저가 “벤조 피터슨의 시인데 기억이 확실치는 않아”라고 말한다.

    침묵을 열며 시가 낭독되었다.

    The daylight is dying away in the west,

    The wild birds are flying in silence to rest

    One leafage and frondage where shadows are deep

    They past to it′s bondage-

    The kingdom of sleep



    한낮의 밝은빛이 서쪽으로 사라지고,

    들새들 휴식을 찾아 침묵 속으로 날아가버렸다.

    사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나뭇잎 하나하나가 수면의 노예가 된다.

    밤의 왕국은 저 높은 밤하늘의 별들이 지켜주고

    그것들은 또 너의 품 안에서 잠이 든다.

    오, 아름다운 밤이여!

    그대의 영광이 찬란히 펼쳐지면 이 살림지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이 된다.

    잠이 오지 않는다. 달빛 아래 하얀 모기장들이 고요하다. 큰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조금 보일 뿐이다. 하얀 달빛 아래 거대한 검은 나무도 침묵한다.

    ▼ 여행 9일째

    넓고 깨끗한 바위에 모기장을 쳤다. 그늘이 적당히 있는 곳이다. 그늘에 누워 책을 읽는다. 작은 나무에 초록개미가 많이 있다. 새콤달콤, 초록개미를 양심의 가책도 없이 섭취한다. 몸통은 붉은색이고 하체는 녹색이며 물리면 따갑긴 하지만 가렵진 않다. 비타민C를 충분히 섭취했다. 캠프파이어에 모여 차를 마시며 마늘과 레몬 그리고 생강으로 양념해 말린 생선을 구웠다. 침을 흘리는 일행과 나누어 먹는다. 신티아는 캐러멜커스터드를 한참 저어가며 만들고 말린 딸기를 불려 예쁜 그릇에 담아 내놓는다. 딸기의 향긋한 냄새가 그녀를 닮았다. 세라의 단어맞히기 게임에 모두가 참여한다. 어려운 동의어를 잘 찾아내는 사람은 빌이다. 그는 듣지 않는 척하고 있다가 아무도 맞히지 못하면 혼자 중얼거린다. 모두들 놀라는 눈치다. “빌, 너는 진주를 물고 있는 조개야”라고 그를 띄워줬다.

    그랜은 저녁식사 때 쌀을 푹푹 끓인 뒤 물을 쭉 따라내고 밥알이 따로 돌게 해서 먹는다. 나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쌀밥을 짓고 시금치나물을 무치고 미역국도 끓였다. 세라는 옥수수와 완두콩에다 참치를 넣어 끓인다.

    저녁을 먹으며 지미가 무거운 입을 연다.

    “클럽등산이 있는데 해마다 숫자가 줄어. 평균 연령도 높아지고 있어 걱정이야. 젊은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지미의 얘기를 듣고 한마디씩 거든다.

    “그 이유는 젊은이들이 집 장만 하느라 여유가 없고 휴가를 외국으로 나가기 때문이지.”

    “등산객이 줄어들면서 깊은 산의 등산로는 아예 숲으로 덮여 없어지고 있어. 그것도 문제야.”

    잠이 깨었다. 휘영청 밝은 달에 주위를 한참 둘러본다. ‘꽥꽥 꽥꽥’, 기분 나쁜 독두꺼비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다. 웅덩이 안에 득실거리는 징그러운 사탕수수두꺼비(Cane toad)를 합동으로 돌로 쳐서 죽이긴 했지만, 정부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그들을 어찌할까. 독두꺼비는 맹독을 지닌 동물이기에 원래 사탕수수밭의 딱정벌레 퇴치용으로 하와이에서 도입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호주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골칫거리가 됐다. 북부 지방의 농작물과 가축에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머리 뒤쪽 독샘에서 내뿜는 독은 3m가 넘는 악어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맹독이라 멋모르고 집어삼킨 악어들이 전멸 위기에 있다고 한다.

    달빛이 산속의 구석구석을 투명하게 비추고 있다. 세라의 모기장이 비어있다. 하얀 달이 카메라 렌즈처럼 보이고 그 렌즈의 초점이 집으로 맞춰진다.

    “엄마가 없으면 아빠는 너무 조용해져, 잔소리가 그리운가봐.”

    남편은 군대에서 지긋지긋하게 텐트잠을 자고 무거운 등짐을 졌었다며 등산을 싫어했다. “역마살 낀 촌닭이나 실컷 돌아다니라”면서. 그런 남편이 내가 수술한 후 등산을 못 해 안달하자 “어느 놈팽이에게 눈이 팔렸는지 적당한 놈이면 인수인계해주러 가 봐야지”라며 등산을 따라나섰다. 남편은 나의 역마살을 존중해준다.

    남편과 나는 사뭇 다른 사람 같지만, 아이들을 보면 우리가 서로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늘 싸우지만 돌아서면 보고 싶은 친구임을 아이들도 알고 있다. 원수처럼 밉지만, 원칙을 어기더라도 꼭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 부르기도 전에 곁에 와 있는 그 마당쇠가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다.



    여행 10일째 ▶ 잭의 사고

    등산클럽 기록에 길이 남을 사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쿨핀 협곡의 북쪽 지류(northern tributary of Koolpin Creek)를 걷는다. 오전 10시, 잭이 디디고 내려선 작은 바위가 흔들리며 넘어졌다. 한쪽 무릎엔 깊은 상처가 났으나 오히려 다른 쪽 무릎이 몸을 지탱하지 못한다. 가방에서 응급용품을 꺼내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주었다. 빌이 짚던 모린의 지팡이가 잭에게로 옮겨갔다. 빌의 짐은 본인에게 돌아가고 잭의 짐을 나눠서 진다. 앞서가며 장애물을 다 치워줘도 한 시간에 1㎞도 못 걷는 느린 행보가 계속된다. 멈추고 또 멈춘다. 붕대가 자꾸 흘러내리자 그랜이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비싼 붕대를 내어놓는다. 지도를 살피던 지미가 “쉬운 길로 가려면 일정도 방향도 전면으로 바꿔야겠어”라고 말한다.

    점심때가 되어서 가까스로 50m 폭포 아래까지 내려온다. 잭이 누울 그늘이 마땅치 않자 신티아는 요술 가방에서 양산을 꺼내 그늘을 만들어준다. 무릎이 부어올랐고 통증으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고 한다.

    오후 2시 반, 넓은 모래밭에 배낭을 벗자마자 모두들 물로 향한다. 로이와 잭 그리고 빌만 자리에 남았다. 나는 빌의 특별대야를 빌려 잭의 땀을 씻어주고 셔츠와 양말도 빨아 널어주었다.

    “고마워, 어떻게 보답을 하면 좋을지….”

    “그럼 재미있는 이야길 해봐요.”

    “즐거운 이야긴 없지만, 내가 실은 우울증으로 직장을 팽개치고 돌아다니는 중이야. 이곳에 아들이 가라고 해서 왔어. 계리사는 너무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야. 나는 아버지가 가족을 책임지기 싫어 일찍 자살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나도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아. 두렵고 불안하지.”

    생각해보니 나도 내 딸이 부엌을 치워놓은 걸 보고 내가 치웠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를 닮은 내 자식을 나무라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며 어이없이 웃는다. 자신에게 아픈 곳이 있을 때는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의 회색수염을 바라본다.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아내가 다른 남자한테 가지 않았으면….”

    가족으로부터 받는 사랑과 신뢰의 힘은 밖에 나가서도 자신감을 갖게 한다. 붉은 해가 커다란 나무 뒤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한 사람씩 일어나 새까만 깡통에 물을 채워 다시 불 가까이로 모여든다. 불을 피울 나무를 모으는 일은 제임스, 로저, 로이, 신티아 그리고 제인의 몫이다. 제인은 신티아와 한 지역의 같은 등산클럽 회원으로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다.

    “세계 각국을 다 다녔지만 아직 한국은 못 갔어. 홀어머니와 재미있게 살다보니 결혼할 시기도 놓쳤고….”

    크고 헌 부츠를 끈을 묶어서 신었고 배낭도 색이 바랬으나 그녀의 표정만은 늘 신선했다. 등산여행을 할 때는 지역공동체에서 어머니를 돌봐준다. 환자 가족까지 배려해주는 복지혜택이 좋은 나라, 사람들의 인권을 귀하게 여기는 호주, 이곳에서 사는 나는 분명 행운아다.

    지미의 숨겨진 첫사랑

    개똥벌레가 날아다닐 것 같은 로맨틱한 한여름 밤의 모래밭, 모닥불 빛에서 진짜 순한 얼굴들이 보인다. 오늘따라 지미가 말문을 연다.

    “내 막내 남동생은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 둘째형인 나에게 상의를 했었어. 그가 교통사고로 죽고 난 후 난 조카들을 만나러 매주 찾아갔었는데….”

    지미는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지미, 너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래?”

    “그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니야.”

    세라가 지미의 눈치를 살피며 나에게 핀잔을 준다. 모두 조용히 그의 반응을 기다린다. 침묵이 잠시 흐른다.

    “나는 한 번도 기회가 없었어. 그런데 동생이 죽고 나서 내가 오랜지(지역이름)로 주말마다 들르곤 했는데. 언젠가 조카들이 나에게 아빠가 되어달라고 했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이 사는 남자가 조카들과 제수씨를 돌보기 시작했지. 조카와 제수씨가 주말마다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이후로는 가지 않았어. 지금은 그 둘이 결혼해서 잘 살아.”

    침묵이 흐른다. 좋은 남편, 훌륭한 아버지가 됐을 사람인데 안쓰럽다. 세라의 말이 옳았을까? 타인의 단순한 호기심이 본인에겐 자칫 상처가 될 수도 있는데, 혹시 지미는 누구에겐가 그런 사연을 털어놓고 싶지 않았을까?

    이번엔 그랜이 나에게 말한다.

    “돔, 너 오랜지 가봤니?”

    오랜지란 마을은 시드니에서 자동차로 3시간가량 떨어진 면소재지 정도의 시골이다. 그곳에 호주의 3대 문호로 불리는, 18세기 영미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산에 대한 글과 시를 많이 남긴 작가 ‘벤조 피터슨(Banjo Paterson)’의 집터가 있다. 그가 집필하던 집은 헐렸지만 그 자리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월칭 마틸다(waltzing matilda)’란 시와 ‘스노이 리버에서 온 남자(the man from the snowy rive)’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월칭 마틸다는 한국의 아리랑과 같은 대표적인 호주의 민요로 호주에서 영어를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노래다. 고요한 달빛 아래서 슬프고 외로운 방랑자가 부르던 여덟 절로 된 긴 노래다.

    Once a jolly swagman camped by a billabong

    Under the shade of a coolibah tree and he sang as he watched and

    waited till his billy boils.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Waltzing Matilda….

    오래전 괴나리봇짐 나그네가 빌라봉 옆에 캠프를 했다네,

    쿨라바 나무 그늘 아래 깡통에서 물이 끓는 동안 노래를 불렀네,

    나와 마틸다의 춤을 추지 않겠는가? 누가 나와 춤을 추겠는가?

    춤을 추자, 춤을 추자….

    호주가 심각한 불경기를 겪던 1891년, 양을 기르던 목축업자들이 무리한 세금에 불만을 호소하고 총을 든 경찰을 피해 괴나리봇짐만 들고 산속으로 도망간다.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결코 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산속에 숨어 살던 나그네, 호주의 슬픈 민요다. 지금도 산속에 광부로 끌려간 죄인들이 굵은 쇠사슬에 발목이 묶인 채 잠을 자던 큰 바위가 있다. 시드니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도로도 죄수나 처음 호주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채찍을 맞아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배를 타고 퍼스로 들어와 남쪽 아델라이드를 거쳐 해변을 타고 시드니로 걸어서 올라오던 많은 중국 사람이 길에서 쓰러져 죽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는 지상천국이라고 불리는 이 호주도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라다. 다민족 국가로 자부심을 키워가는 이 호주도, 내가 이민 올 무렵만 해도 가난하고 슬픈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 괴나리봇짐을 멘 나그네가 홀로 새까맣게 그을리고 찌그러진 깡통에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외로운 광경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말을 탄 경찰들이 숲 속에 하나둘 나타나자 빌라봉으로 뛰어들어 자살하고 그 빌라봉에서는 나그네가 부르는 슬픈 노래가 들린다는 전설이다. (Billabong은 산속에 고여 있는 물을 말하고 Coolabahs tree는 북호주에서 자라는 유클립투스 종류다)

    세라가 모기장을 나가는 소리에 잠이 깼다. 휘영청 밝은 달빛에 모기장들이 무덤같이 적막하고 슬프게 보인다.

    ▼ 여행 11일째

    눈을 뜨고도 상큼한 아침이 좋아 하늘을 보며 누워 있다. 빌이 오더니 내 모기장을 걷는다. 잭의 걸음이 늦어져 3시간 동안 겨우 2㎞를 걷는다. 짐이 로이와 지도를 보고 상의하더니 “그동안 시간을 너무 지체해 잘못하면 시드니로 돌아갈 비행기 탑승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토요일에 도착하려면 쿨핀 골짜기(Koolpin Gorge)로 들어서야 하는데 잭이 도저히 갈 수가 없어. 아무래도 위성구조신호를 보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한다.

    현재 시간은 오전 11시30분, 클럽에서 빌려온 긴급구조무선신호기(Emergency Position-Indicating Radio Beacons)를 높은 곳에다 놓았다. 시드니에선 응급폭죽을 터뜨리거나, 인솔자가 직접 산을 빠져나가 신고를 한다. 처음으로 사용하는 무선신호기다. 헬리콥터가 내릴 수 있도록 나무 부스러기와 잡풀을 치우고 사방 20m 넓이의 공터를 만들어놓았다. 이곳에는 발만 담가도 금세 흙탕물이 되는 웅덩이가 있다.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앉아 책을 읽기도 한다. 지루한 기다림에 지친다. 무작정 기다린다. 잭은 헬리콥터 비용을 염려했다.

    “헬리콥터 비용을 여행자보험에서 부담해 주려나, 아니면 얼마나 될지 모르겠네?”

    “나도 산에서 헬리콥터로 구조된 경험이 있어요. 정부가 1만2000달러를 부담해주고 나머지는 내 개인 의료보험이 해결해줘요. 내 아들도 히말라야 등산하다 다쳐 카투만두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의사 진단서로 여행보험 몬디알(Mondial)은 병원비는 물론 오빠를 데리고 온 내 딸 왕복 비행기 요금과 호텔 비용까지 지불해주었어요.”

    현재 시각 오후 4시, 헬리콥터 소리에 긴장을 하고 반가워하는데 먼 하늘 끝에서만 들리더니 멀어져간다. 산속의 밤은 더 빨리 온다. 캠핑 장소가 마땅치 않아 두 팀으로 나누었다. 행여 나타날 헬리콥터가 쉽게 알아보도록 불을 더 크게 피웠다.

    현재 시각 오후 6시, 이미 달이 환하다. 헬리콥터 한 대가 전보다 더 가까운 하늘에서 돌고 있다. 우리는 전등을 흔들고, 나무에 불을 붙여 높이 흔들며 신호를 보냈지만 또 다시 떠나가버린다. 기다리다 지쳐 각자 모기장 안으로 들어간다.

    현재 시각 오후 8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헬리콥터가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몇 바퀴 돈다. 난리법석을 떨며 신호를 보냈으나 헬리콥터는 방향을 돌려 떠나버린다. 맥이 빠진다. 헬리콥터가 돌아와 우리 위를 다시 한 바퀴 돌더니 500m 거리쯤에서 야광이 숲 속으로 떨어진다. 다시 우리 위를 돌았다. 야광을 따라 숲 속을 뒤져 상자를 찾아 열어보니 무선전화기와 4ℓ짜리 물 두 병 그리고 응급상자가 들어있다.

    “오버, 오버, 지금은 어두워 헬리콥터가 내릴 수 없으니 내일 아침 동이 트는 대로 도착할 것이다. 비상구조신호를 꺼두었다가 환자의 상태가 위험할 경우엔 다시 틀어놓아라, 오버.”



    여행 12일째 ▶ 헬리콥터로 구조된 방랑자

    동이 트기 전부터 모였으나 더위에 지치고 다시 버림받은 슬픔에 잠긴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멀어져 간다. 바람도, 구름도 숨을 쉬지 못하는 뜨거운 한낮이다. 늘 무엇인가 기다리며 사는 게 사람이지만,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숨도 쉬지 못할 태양 아래를 헤매는 고통과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잭이 다리를 절룩대며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내 곁에 와서 앉는다.

    “돔, 그동안 고마웠어. 너 이 더운 날씨에도 물을 충분하게 마시지 않는 것 같아. 네 물병은 너무 작아. 이거 내가 쓰던 것이지만 괜찮아.”

    “짐을 줄이기 위해서 작은 물병을 갖고 왔어요.”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나에겐 문제가 되진 않지만 모두 내 물병이 작다고 했다.

    “나는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아서 아주 덥기 전엔 물을 잘 안 마셔요.”

    “두뇌가 목마르다고 신호를 보내는데도 물을 마시지 않으면 이미 세포는 가뭄이 들어 지치게 된다네. 또 그런 상태가 오래되면 차츰 갈증조차 느끼지 않게 되고, 그러면 이미 지친 두뇌가 신호를 잘 보내지 못하고 또한 전달신경도 둔해진 탓이라 몸에 수분이 없어지고 위험한 상태 직전에서야 목이 마르는 걸 알게 돼. 이런 더위 속에서도 그 작은 물병으로 버티는걸 보면 수분이 고갈돼 있을 것이야.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에 비해 물을 더 많이 마시는데, 너 겉만 젊어 보이는 거 아니야?”

    그가 웃었다.

    “수분 섭취를 못한 세포라…, 늙는다는 것은 세포의 활동이 줄어 감각도 둔해진 것이라고요?”

    모린이 말을 받는다.

    “등산할 때나 근육통에도 물을 많이 마셔야 근육이 이완되고, 고통을 감내하는 에너지도 더 생겨. 좋은 물이란 우리가 섭취해야 할 기본적인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인데, 산속의 물은 필요한 미네랄이나 마그네슘 등이 많이 들어 있으니 많이 마셔둬.”

    호주 육지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1974년 미친 듯이 쓸고 간 폭풍에도 홀로 견디어 남은 작은 집이라고 한다. 부엌에선 자원봉사 할머니가 관리비를 벌기 위해 구수한 케이크와 차를 팔고 있다. 방과 방 사이엔 중간만 가린 사립문이 있고, 초기 장교 가족이 입었던 치렁대고 주름이 많은 옷이 보관되어 있다. 뒤뜰에는 돌로 만들어진 절구통이 있다. 밀과 보리를 찧어서 빵을 만들던 옛날 호주 여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돌담에는 일본군의 총알이 뚫고 지나간 구멍이 있다. 조용한 나라의 평화를 깨뜨리고 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남편을 앗아갔을 일본군의 총탄자국은 보존하면서도 이 나라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을 존경하듯 대한다. 친절하며 예의가 바르고 요란하지 않으며 특히 그들이 만든 물건에 신뢰가 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해가 서쪽으로 기운다. 배를 타고 40분쯤 나가면 지구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며 가장 커다란 붉은 해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찬란하게 저무는 저녁 해를 꼭 보고 싶었으나 그랜은 진주조개시장도 볼 겸 등산에서 돌아온 뒤 다시 오자고 한다. 일요일에만 열리는 진주조개시장에선 바다에서 바로 끌어올린 조개가 거래된다. 운이 좋으면 조개 속에서 자연 진주를 얻기도 하고 싼값에 자연산 진주와 인조 진주를 구입할 수도 있는 곳이다.

    세라

    내 방에 세라가 들어와 있다. 등산회원이 400명이 넘고보면 일 년에 한두 번도 만나지 못하는 회원이 대부분이다. 그녀와는 세 번째 만남이다. 자전거 하이킹을 함께 했었고, 협곡등산 라일로(공기를 불어넣은 보트) 타기를 함께 했었다. 그때 나는, 깊고 빛이 없는 어둠 속으로 라일로의 공기마개가 빠지는 바람에 어둠 속 깊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는데 그녀가 되돌아와 자기 것을 내게 주고, 공기 빠진 무거운 내 라일로를 끌고 굴속을 헤엄쳐 나온 적이 있다. 도움을 받아 고마워했던 마음이 되살아나 무척 반가웠다.

    지미

    얼굴 도장을 찍기 위해 이번 여행의 인솔자인 지미의 방에 들렀다. 그는 제임스와 함께 있었다. 눈을 바로 보지 않는 것은 노총각의 수줍음 때문이라고 해둔다.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비밀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계산으로 반짝이는 눈과 지극히 겸손하고 순결해 쉽게 사람들에 맞서지 못하는 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미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신중함과 진실함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답을 찾아내며 자신의 의견을 진실하고 간단한 단어로 함축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이기에, 나는 지미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다. 준비물을 확인해봐도 되겠냐며 지미가 나를 따라온다. 나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음식을 여유 있게 준비했고, 과일도 싸게 구입해 건조기에 조금씩 말려두었다. 지미는 자신의 손을 저울인 양 음식의 무게를 잰다. 말은 안 했지만 그가 매우 안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임스

    제임스도 오랜 등산친구다. 친구란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이 통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다. 자그마한 키와 천진한 눈빛에 굵은 바리톤 음성을 가진 그는 사십대의 대머리총각이다. 턱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써야만 인물이 난다. 나는 그가 인솔하는 등산에서 그의 6인용 자동차 합승객이 된 적이 있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등산모임에서는 합승을 권장하는데, 부담 없는 성격 때문인지 언제나 그의 차에 합승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마지막 만찬

    동행이 될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마지막으로 와인을 곁들인 기름진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로비로 나오니 세라와 빌이 다른 방향에서 다가온다. 나를 기다렸다는 것은 나를 귀중히 여긴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저녁바람에 내 마음이 산들댄다.

    시내에 있는 미첼가식당의 거대한 고목 아래 100여 명이 앉아있다. 식탁 사이사이에 놓인 작은 관목 화분들이 정글 분위기를 낸다. 촛불을 밝힌 식탁에 13명이 둘러앉았다. 시끄럽지 않은 밴드까지 나를 매혹한다. 내일을 준비하느라 어제와 오늘을 슬프게 했던 가족에게 또 미안해진다. 나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쉽게 ‘퐁당’ 빠지는 철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기로 한다. 집이 거미줄 박물관이 되어도 자신이 앉을 자리만 찾으면 그만인 남편이나, 이젠 말싸움하기에도 지치는, 내가 우아한 성녀(聖女)가 되기를 기대하는 아이들, 그리고 내 뒤통수를 따라다니는 친구들과 직장동료들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정말 후련한 자유다.

    자유는 신선한 공기와도 같다. 나는 저절로 호들갑스러워진다. 자유란, 어떤 믿음 안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싶은 것이며 서로에게서 느슨하게 물러서는 것이 아닐까. 오늘 이 자유가 더 달콤하고 신선한 것은 그들이 여전히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으로 내 자유를 위한 축배를 든다. 기분 좋게 취해 마음이 찰랑대는데, 머리 위의 나뭇잎도 덩달아 살랑거린다. 인솔자인 지미가 등산 계획을 설명했다.

    계획된 등산로는 Gunlom-Barramundie Creek-Cascade Creek-Koolpin Creek-Koolpin Gorge-Koolpin camping Area-ford across South Alligator River 였다. Gunlom부터 Cascade Creek the country 까지는 지도상 매우 험악한 산이며 지미도 초행이지만 먼저 다녀온 등산가를 통해 모든 정보를 입수해두었다고 한다.

    신티아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다가온다. 꽃분홍색 숄을 빌려달라고 한다. 눈에 띄는 색의 옷가지를 모두 여기저기 나무 위에 걸어놓는다. 한 시간 후, 헬리콥터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신티아와 제인 그리고 제임스가 안방처럼 다듬어놓은 곳으로 헬리콥터가 착륙하고 조종사와 물리치료사 그리고 원주민 산림감시원이 헬리콥터에서 내린다.

    “장소를 잘못 전달받고 왔다가 무선전화기 연결 채널도 몰라 다시 다윈으로 돌아가 캔버라로 연락하느라고 시간이 걸렸습니다.”

    20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위성통신경보기에 대해 설명해준다.

    “모든 항공기는 조난수신기 접속장치가 설치되어 20㎞ 반경 내 지나가는 항공기가 있다면 바로 접선이 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엔, 인공위성 조난기 몇 개에 신호가 잡히면 우선 가까운 터미널로 연결되는데 보통 조난기가 한 바퀴를 도는 데 한 시간이 걸리고, 또 신호가 잡힌 후에라도 범위를 점차적으로 좁혀가는 데 24시간까지 걸릴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다윈의 응급구조대에 전화를 했더니 그들은 여러분이 이 산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국립공원 관리 책임의 부실함을 불평하더군요. 누군가 이 산에 들어온 것을 공식적으로 미리 연락받고 행선지를 알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들어오시기 전에 신고했다면 그들이 왜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 크기만하고, 남한의 5배나 되는 카카두 국립공원의 깊숙한 산속에서 무릎을 다친 등산객 하나를 찾아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인공위성의 위력이 놀랍기만 하다. 한편 만일 응급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간호사가 잭의 상처를 치료하고 헬리콥터에 태운다. 한 사람의 빈자리가 허전했으나 나눠질 등짐으로 몸은 부담스럽다. 일을 치르고 난 뒤의 어수선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계획했던 프리징계곡(Freezing Gorge)을 포기하고도 늦게야 다음 캠프장에 도착했다. 나중에 들은 소식으로 잭은 자비루(Jabiru)에 있는 작은 의무소에서 다시 응급 헬리콥터로 다윈의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무릎 뼈에 금이 갔고 목발을 짚고 퇴원해 시드니로 돌아가 그 다음 날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우울에 겹겹이 싸여 있던 그가 이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행복하길 바란다.

    잭이 떠나고 이혼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끊임없이 수다를 늘어놓는 그랜은 “이혼한 전 남편도 술친구가 필요할 땐 집으로 찾아온다”고 말한다.

    “남자들은 이혼한 걸 꼭 후회하지. 그리고 이혼한 남자들이 다 빈털터리가 되어 새로운 여자들한테 빌붙어 살면서 더 비참해지거든.”

    그녀의 무례한 수다에 로이의 눈빛도 무례해진다. 내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남편을 노려볼 때의 눈빛이다.

    내 남편은 내가 사람들 앞에서 말실수를 하면 말없이 귀를 문지르는, 본인도 모르는 습관이 있다. 그랜의 수다는 악의가 없지만 로이의 침묵은 날카롭다. 남의 실수가 나의 거울이 되고 다른 남자들의 부족한 인격을 보면서 나는 내 남편이 내 아이들의 아버지인 것이 자랑스럽다.

    여행 13일째 ▶ 중상 입은 제임스

    암벽화를 보러 가는 중이다. 험한 골짜기를 피해서 경사진 바위산을 오르게 되었다. 숲이 우거져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바위를 넘어 올라가야만 한다.

    지미와 로이가 앞서 바위를 올라간 뒤 여자들이 망설이고 있다. 착한 제임스, 몸집도 작으면서 자신의 무릎을 내어놓는다.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모린이나 세라, 그리고 다리는 길지만 겁이 많은 빌, 모두가 무거운 부츠를 신은 채 그의 가냘픈 무릎을 밟고 작은 어깨를 누르며 바위를 올라간다.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저렇게 가냘픈 다리를 어떻게 밟아?

    신티아와 제인은 도움 없이 올라가고, 나도 제임스의 무릎을 밟았다. 갑자기 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제임스가 보이지 않는다.

    로저가 재빨리 뛰어내려가 제임스를 부축해 올라온다. 무거운 발들이 짓밟은 다리가 후들거리며 발을 헛디디고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체력이 감당할 수준을 넘었다. 제임스는 괜찮다고 하지만 얼굴은 창백해 보였고 말이 없어졌다.

    200년 정도 된 암벽화에는 미라처럼 두 눈과 코만 있는 얼굴, 아이들과 어른들의 붉은 손자국, 손가락이 한두 개씩 없는 손, 아기 낳는 모습, 코가 크고 성기가 큰 남자, 캥거루 외의 동물들, 부메랑이나 그들의 사용했던 사냥기구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들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어.”

    지미의 설명이다. 모두가 윤곽이 확실치 않은 실루엣 그림인 것으로 미루어 역사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바위의 천장에 그려진 그림은 비가 새 스며들어 금이 가고 깨어져 보수한 듯 색상이 다르다. 로저는 암벽화가 그려진 시대와 당시 사용된 물감도 알고 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붉은색 그림을 남긴 건 이곳 부족일 거야. 오차라는 곡물로 만든 붉은 물감으로 그려졌으며, 인간과 가장 밀접한 피의 색으로 어떤 색보다 인간 속성에 가까운 색이지. 붉은 손바닥은 인간의 현존을 상징하며, 손가락이 하나 없는 손 그림을 새긴 것은 가까운 가족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야.”

    아무런 거침없이 살던 그들의 고향, 그들만의 감정과 사랑으로 전설과 예술을 담은 이 신비의 숲, 인류의 긴 역사와 문명을 보여주는 그들의 신성한 구역에서 우리는 과연 침범자일까 아니면 그들을 세상에 알려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일까?

    “다른 곳에는 돌을 파서 그린 그림도 있어. 그런 판화는 주로 소년들의 성교육을 위해 사용됐지. 이곳서 멀지 않은 곳엔 아직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특수 지역이 있는데 외부인은 들어갈 수가 없어.”

    지미와 로저가 설명한다. 내내 조용하던 제임스가 창백한 얼굴로 나에게 살짝 다가온다.

    “돔, 옆구리 쪽 가슴이 조금 아픈데 괜찮겠지? 갈비뼈라도 부러졌을까?”

    호흡을 깊게 해보라고 했다. 호흡에는 큰 문제가 없다.

    “갈비뼈가 부러졌더라도 폐를 찌른 것은 아닐 것이야. 별다른 대책이 없으니 최대한 움직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붕대를 감아보자. 많이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지미에게 말해 짐을 나누도록 해.”

    “아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점심 휴식을 하고 얼마 걷지 않았는데 제임스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힘없이 쓰러진다.

    “진통제의 양이 많았을 가능성이 있으니 잠시 잠을 재우자.”

    약사인 그랜의 제안대로 한 시간쯤 자고 제임스가 다시 일어났다. 제임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어디를 다쳤을까 가늠해본다. 강가에서 바위를 넘으려던 그가 다시 힘없이 뒹굴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두들 우왕좌왕하지만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짐을 공평하게 나누어 지기로 한다. 손목을 다친 모린과 몸집이 작은 나는 환자를 돌봐야 된다고 면제를 받았다. 식량이 다 비워졌어도 그가 기본적으로 넣고 다니는 비상용품이 많다. 세라가 나에게 와서 불평한다.

    “본인이 다쳤을 때 남에게 신세를 졌으면 저도 자기 몸집에 맞게 짐을 나누어 져야지, 빌은 작은 덩어리만 하나 달랑 들고 갔어. 돔, 네가 말해봐.”

    “빌은 겁이 많은 사람이야. 그에게 말하는 대신 내가 나누어 질까?”

    그러자 이번엔 당황한 빌이 나에게 온다.

    “난 아직 발목이 아파. 잭의 짐만도 무리가 되는데 제임스 것까지 나누라고 세라가 화를 내….”

    점심을 먹고 제임스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지미는 쉽고 빠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나선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일행 몇 명은 한참 후 지미가 뻘건 토마토 같은 얼굴로 돌아오고 제임스가 정신을 차린 듯 보이자 “천천히라도 걸어야지, 자꾸 쉬다보면 비행기를 못 탈 거야”라고 재촉한다.

    나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보니 마음에 놓이질 않아 지미에게 긴급구조요청을 하자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 제임스가 괜찮다며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곧 비틀거리더니 힘없이 쓰러진다. 이제는 의식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서두르며 앞서가고 그의 뒤를 따르던 나와 로이 그리고 로저가 그를 들어 그늘에 옮겨 누였다. 그는 눈을 뜨지 못한다.

    “로이, 찬 물수건을 갖고 와. 그리고 로저, 제임스 다리를 바위에 올려줘.”

    의식은 있는 것 같으나 입술이 창백했고 눈도 뜨려 하지 않는다. 그의 옷을 올리고 배를 두드리니 팽팽하게 잘 당겨 만들어진 북소리가 난다.

    “제임스, 내가 보여? 어디가 아파? 소변은 언제 보았지?”

    “I am OK.”

    내출혈이란 짐작이 갔으나 이 깊은 산중에서, 너무나 엄청나 생각조차 하기가 두려웠다. 숨도 찼을 테고 심히 아팠을 텐데, 방광이 차서 나는 소리이길 바라며 소변을 보라고 했다. 움직일 수 없는 그를 로저와 로이가 부축해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소변을 보게 했다. 조금 시원해진 듯하다고는 했으나 배에서는 여전히 북소리가 난다. 일행이 되돌아오고 나는 빌에게 다시 긴급구조요청을 하자고 말했다.

    “헬리콥터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이틀 후 집으로 돌아가려면 오늘 중으로 어떻게든 이 산을 빠져나가야 해. 그러려면 조금씩이라도 걸어서 나가야 해.”

    그의 상태를 모르는 일행들은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긴급구조무선을 사용한다 해도 잭의 경험으로 또 얼마를 기다리게 될지 모르니 속도를 늦추더라도 걸어 나가야 해.”

    양보를 하지 않는 그들에게 화가 난 내가 소리쳤다.

    “내출혈이라고 확실히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야? 모두들 가더라도 제임스는 더 이상 움직여서는 안 돼. 다 가면 나 혼자라도 남겠어. 짐, 어서 긴급구조무선기를 다시 띄워요.”

    제임스가 다시 혼수상태에 빠지려는 듯 힘없이 눈을 감자 지미가 제임스에게 “제임스, 네가 선택해, 어떻게 할까?”

    “I can′t make it.”

    나중에 그의 말로는 그 당시 아무것도 생각할 수도 없었고,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고 했다.

    오후 2시15분, 지미는 어떤 결정이나 의견을 말할 때 시계를 보고 시간을 말하는 습관이 있다. 로이가 제임스가 보이고 헬리콥터가 내릴 만한 장소를 찾아 긴급경보기를 놓으러 산으로 올라간다. 모두들 나를 영웅 대우해주며 떠날 준비를 한다. 지미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돔, 고마워, 우리가 앞서 가서 긴급 연락하는 방법을 찾을게.”

    “돔, 내가 여행사에 연락해서 비행기 시간을 바꿔놓을게.”

    “난 지금 그런 말 하나도 안 들려, 마음대로 해.”

    막상 남겠다고 즉흥적으로 말을 뱉었으나 가슴은 방망이질을 하며 안 된다고 한다.

    첫째는 만일 그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나 혼자 이 밤을 어떻게 보내나. 둘째는, 돌아가는 다음 날 딸아이가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는데 햇병아리 의사로 동동대는 것을 보고 떠나온 것도 미안한데 엄마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게 한다면 딸은 걱정할 것이다. 셋째, 만일 산짐승이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으로 울음이 터지려 한다. 왜 하필이면 내가 자원을 했나. 나도 가야 하는데 무엇이 나를 묶고 있는가? 이런 많은 생각이 교차하며 나는 시험에 들고 있다. 그때 산에서 내려온 로이가 “나도 돔과 함께 남을게”라고 말한다. 나도 모르게 눈앞이 환해진다. 그리고 나는 결국 눈치를 보며 일행에게 내 입장을 말한다.

    “실은 나도 가야 돼. 내 딸이 모레 해외로 가는데 가봐야 해.”

    그러나 위독한 상태로 응급 간호가 필요한 사람, 외롭고 두려운 사람을 두고 내가 꼭 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앞선다. 그러나 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란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제임스의 애처로운 눈빛과 작별인사를 하는 내 비굴한 눈빛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결국 제임스를 떠난 나는, 강가에 누워 있는 제임스가 아주 작게, 그리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아다보았다.

    지미는 마지막 도착지인 남쪽 여울 악어강캠프(ford south alligator river Camp) 장소로 걸음을 재촉한다. 우리 앞을 부지런히 걸으면서 우리가 뒤따를 수 있도록 표시를 한다고 한다. 보통 등산길은 돌을 모아 방향을 표시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모린과 로저가 전에 왔던 도착 장소라고 하지만 홍수 때마다 하천의 물이 넘치며 바위 위치도 바뀌고 나무들도 자란 모양이 달라 그들의 기억과 상관없이 산속은 변형되어 있다. 로이와 로저가 지도를 본다.

    처음 카카두 산으로 들어서면서는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자연경관에 반했고 넘고 넘어서도 끝없이 펼쳐진 넓고 광활한 평원에 감격했다. 그리고 그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살다간 그들의 역사, 언젠가는 그들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갈 이 땅에서 무더위에 적응하느라 바빴는데 거듭되는 사고로 어느새 보름이 지났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고, 그것도 서둘러야 하는 귀갓길에서야 이 광대한 풍경의 벼랑과 폭포의 경관 그리고 오직 이 산속에서만 생존하는 동식물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폭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평야의 지평선이 하늘에 닿는 넓고 아름다운 땅만을 기억에 담아, 잠깐이지만 평화로운 자연 속의 한 생명체로 살다가 어느새 문명의 감옥, 닭장 같은 세상 속으로 서둘러 되돌아가고 있다. 마지막 몇걸음을 앞에 두고 뒤를 돌아다본다.

    마지막 일정인 불라장캠프(buladjang camp)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저물고 있다. 지미가 와 있다. 마침 그곳에 캠핑을 온 다윈의 소방대원 일행을 만나 그들의 위성무선기를 빌려 응급구조대에 연락했고 두 시간째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지미가 빈손으로 급히 오느라 먹을 것이 없을 터라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땅콩과자 두 개를 모두 주었다. 그는 작은 호의에도 크게 감사해하는 겸손한 사람이다.

    소방대원 일행 중에 간호사가 있었다. 모린이 넘어지고 자빠지며 찢어진 여러 군데의 상처를 보여준다. 무릎 상처는 매우 깊다. 인내심이 대단히 강한 여자다. 그들의 냉장상자에 든 시원한 맥주도 권했다. 모린의 음성이 커지기 시작한다.

    마침 Mary River의 응급실 간호사와 산림요원이 들것을 가지고 차에서 내린다. 무선연락을 받고 자비루 의무소로 연락을 해보았으나 그때까지도 긴급구조 접속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호를 받는 대로 헬리콥터도 출발하지만 한 대밖에 없는 헬리콥터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우선 그들이 걸어서 들어간다고 한다. 그들에게서 의무와 책임감을 넘어선 고귀한 인간애를 볼 수 있었다.

    다시 안내를 해야 하는 지친 지미의 얼굴에 낙담의 빛이 스친 듯했지만 그들을 앞장서 계곡으로 들어간다. 지미 같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얻어 마신 달콤하고 시원한 코카콜라 한잔에 피로가 풀린다. 캄캄한 산속에서 잠자리를 찾아 나선다. 공원에선 텐트를 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앞쪽으로는 악어가 살고 있다는 경고문 판이 세워져 있다. 텐트 칠 장소를 찾아 달빛 아래를 헤맨다.

    “그냥 공원에 치면 안 되나?”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싶은 얄팍한 유혹이다. 미국의 부자 워런 버핏은 정직한 결정을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선 세상의 법으로 문제가 되는지를 보고 다음 날 신문에 발표되었을 때 부끄럽지 않으면 그것이 정직한 결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모래가 있는 맹그로부(바다 늪지대에서 자라는 나무) 숲 속에 악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악어가 나타난 적은 아직 없었다고 소방대원은 말해준다. 악어가 다닌 흔적도 없어 밤중에 모래사장을 걸으며 모기장 칠 만한 장소를 찾는다.

    맹그로부 나무가 있는 늪은 물고기나 새들에게 먹이와 생존공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오염된 공해물질을 나무뿌리로 다 흡수해 환경보호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추워서 더욱 쓸쓸한 밤, 석영처럼 맑고 빛나는 하얀 달이 긴 모래사장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다. 자유로움을 그리워했던 나는 나그네의 설움을 깊이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도 낄낄거리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데 악어 밥이 되진 않겠지? 내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에 맡겨야지”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를 찾아 제각기 모기장을 쳤다. 추위에 잠이 오지 않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나, 밤새 더 하강한 기온에 잠이 깼다. 달이 밝아 훤히 들여다보이는 멀지 않은 모기장 속에 세라가 또 보이지 않는다. 악어가 왔다간 건 아닐 텐데. 바람막이도 못되는 모기장 속에서 추위를 견디다 못해 굴러다니는 썩은 나뭇조각을 몇 개 주워다 불을 피웠다. 너무 추워 잠이 오지 않아 달빛 아래서 걷고 있었다는 세라가 돌아온다. 함께 불 앞에 앉았다. 그날 저녁은 기온이 6℃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마지막 밤, 불 앞에 쓸쓸히 앉아 있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을 여는 우렁찬 소리도 없고, 모두의 안녕을 확인하는 눈도 없으니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모닥불을 피웠다.

    모래 위에서 나뒹구는 나뭇조각을 모아 붙여놓은 불에 몸은 데워지지 않고 얼굴만 익는다. 이제 거울을 보면 주름지고 검게 그을린 얼굴에 실망할 것이다. 긴 머리를 뒤집어 앞으로 내려 요란하게 빗는 세라의 모습이 낯설게 보인다. 멀리서 카메라 앵글을 조준하는 빌도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짐을 챙겨 공원으로 가니 지미와 로이가 도착해 있다. 지미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헬리콥터로 제임스를 실어간 뒤였다. 그는 매우 지쳐있다.

    우리를 데리러 오는 버스가 있는 데까지 나가려면 세 시간 남짓 더 걸어야 했다. 지미를 염려한 소방대원 일행이 남쪽 악어강(South Alligator River)까지 자동차로 데려다주었다. 그들과 작별하고 잠시 더위를 식힐 겸 강물에서 놀고 있는데 맑은 물에 사는 작은 민물악어가 보인다. 강이라고는 하지만 건기라 물이 겨우 무릎 위에 찰 정도다. 1m도 안 되는 작은 새끼 악어가 울퉁불퉁, 눈을 껌뻑대더니 물속으로 들어가 빠른 동작으로 사라진다. 죽은 악어새끼도 바위 위 썩은 나무에 걸려 있었다. 독두꺼비를 먹고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민물악어는 대체로 2m까지 자라며 산 위의 계곡까지 올라와 살고 있지만 사람에게 위협이 되진 않는다.

    원주민 산림감시원

    지프가 먼지를 일으키며 강가에 와서 멈춘다. 군청색 옷을 입은 키가 작고 영특해 보이는 까만 원주민 여자가 차에서 껑충 뛰어내린다. 우리를 마중 나온 산림감시원이라고 한다. 그녀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어머니 땅에서 기억에 남을 역사 여행을 잘했기를 바랍니다. 여행이란 개인의 생각과 능력에 따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사건에 대처하며 인상적인 경치를 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이번 여행이 많은 도움이 됐길 바랍니다.”

    그곳을 “Our mother land, 우리 어머니의 땅”이라 부르며 그녀는 신비의 자연과, 문화와 놀람이 있는 곳, 그들의 영산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국제산림보호교육을 많이 받으러 다니고 호주 대표로 외국으로도 나가 어머니의 땅을 알린다고 했다. 어린 소녀인 그녀가 유창한 영어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놀랐다. 머리도 빗지 않고 살이 찌고 술에 취해 있는 원주민의 모습을 상상하던 내게 질문이 있느냐고 한다.

    “당신들은 벌레나 모기에게 물려 가려울 때 응급조치를 어떻게 하지요.”

    “뜨거운 물찜질을 해보세요.”

    모두 많은 질문을 했는데, 세라는 “나는 당신들이 모든 땅을 하루속히 되돌려받기를 바랍니다”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 산이 독립된 그들만의 땅이라는 굉장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국립공원 내에서 우라늄 광산 개발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와 그로 인한 환경파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는 말도 했다. 그 영산을 영원히 보존해야 한다는 굳은 각오가 담긴 검은 두 눈에서 두려움의 그늘을 언뜻 느낄 수 있었다. 산이 좋아 찾아 들었을 뿐이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숭고한 4만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온 셈이다. 문득 독립투사 유관순의 하얀 얼굴이 그 작은 여자의 검은 얼굴 위로 스쳐간다.

    산을 나오며

    등산에서 가장 큰 환희는 어려움을 넘어서고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라고 한다. 그랬다. 그 산에다 제임스를 두고 나와 허전했지만 긴장했던 마지막 며칠을 보내고 나서 얻은 안도감과 휴식은 대청소를 하고 나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 취하는 행복과 같았다.

    꾸밈없는 자연을 닮아 번화(繁華)하지 않고 자유스러운 마음들, 그들은 곁에 있으면서도 내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는 그림자와 같아 나는 마음껏 자유로웠고 함께 있어 좋은 친구들이었다. 호텔에 도착해 오랜만에 샴푸로 머리를 감고, 화장도 하고, 향수도 바르고 일행들은 병원을 찾아갔다. 제임스는 비장의 출혈이 심해 이미 다섯 병의 피를 수혈했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나를 간호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셨어. 연세 많은 어머니를 지금도 힘들게 해서 많이 미안해, 돔. 어디 한국 여자 하나 찾아봐주겠니?”

    그 신비의 산속은 자연의 섭리와 우주의 조화에 맞춰 비바람을 겪으며 보이지 않게 여전히 변화하며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섭리 속에 산다는 것은 각기 다른 조건에서도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산속의 모든 아름다운 신비와 함께 내 소망들을 다 알아내기엔 너무 짧은 여행이었고 준비가 부족했다. 나는 그 산으로 되돌아가리라는 각오를 하며 가벼워진 빈 배낭을 벗는다.

    연의 자리

    부담스러웠고 도망치고 싶었던 내 자리, 해방감으로 출발했지만 보름간이나 비워둔 내 자리, 남편과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찾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차츰 그리워졌다. 이제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 넓은 하늘이 되어 가족들을 깊은 관심으로 바라보고, 구름같이 아름다운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서운해하지도 않을 것이며, 하염없이 쏟아지는 폭포처럼 사랑도 아낌없이 주고, 큰 나무의 그늘처럼 위로도 해주며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이면서도 굳건한 바위처럼 내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넓은 호수가 되어 내 안에서 모든 것을 벗어던질 수 있는 그런 자유로움을 줄 것이다. 자연이 내게 보름간 준 가르침을 실천해볼 것이다. 함께 있어 좋은 사람. 물처럼, 하늘처럼, 구름처럼 자연을 닮은 사람, 그리고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동행이 있는 이상 더 이상의 바람이 없을 것이다.

    당선소감

    연-태초(太初)의 품으로 들어가다
    이희숙

    ● 1952년 강원도 출생

    ● 1985년 가족과 호주로 기술이민

    ● 국립병원 심장검사실 근무, 현재 통역사로 활동

    ● 한맥문학 2010년 5월호 단편소설 ‘흙다리가 있는 풍경’

    좋은 글이 많았을 텐데, 제 글이 채택되었음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심사위원님들께서 제 글을 끝까지 읽으셨다는 것도 감사할 일인데 이렇게 인정까지 받게 되니 저의 기쁨이 넘칩니다. 처음 전화를 받고는 어리둥절해 실감이 나지 않았으나,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아이들의 격려에 꿈이 아닌 현실이길 바랐습니다.

    이제 제 글이 한국의 대표 월간지인 ‘신동아’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조리 없이 감성으로만 쓴 글이지만 많은 사람이 즐겁게 읽고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처음엔 짧았던 보름간의 일기를 저 자신을 위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인간에게 끊임없이 사랑과 꿈을 주는 자연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나아가 우주와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모든 사랑이 한마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을 누구 한 사람이라도 같이 나눌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 저의 꿈이 몇 십만 배 이상으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저의 꿈을 기억해주신 우주의 주인께, 그리고 제 삶에 힘을 주시는 모든 동행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다윈에서 출발

    일요일, 한 치 앞의 미래도 못 보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던가, 아들이 운동을 하다가 다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오웬은 아쉽게도 시드니로 돌아가야 했다. 오웬을 뺀 12명이 대절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아침 6시30분, 다윈 시에서 출발해 얼마 되지 않아 버스는 황량한 벌판을 달린다. 잡풀만 자라는 점토의 황야에선 아침 해도 일찍 뜨거워진다. 운전기사는 텅 빈 도로를 달리다 간혹 작은 물체라도 눈에 띄면 열심히 설명한다. 3시간을 달리는 동안 그랜, 제임스 그리고 모린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신경을 써도 알아듣기가 어려운데, 버스 안에서는 그들의 대화 내용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이 사람들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도 대화가 되나보다.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일찍 안경을 써야 하는 망막구조를 갖고 있다는 안과의사의 말을 들은 적 있는데, 혹시 청각신경도 우리보다 우수한 것일까 아니면 입술 모양만 보고서도 이해하는, 겸허하게 듣는 자세를 교육받은 때문일까. 신기하다. 그들의 말소리는 조용하고 차분해 수두꼬(숫자 맞춰넣기)에 열중하는 빌에게도, 책을 읽고 있는 지미와 로이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문득 한국 사람들 같으면 노래를 부르거나, 단체기도를 하거나 뭔가 열심히 한다는 명목 아래 개인의 침묵과 고요함을 무시하고 달달 볶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무슨 큰 비밀을 알려준다는 듯 옆사람 눈치를 봐가며 귓속말로 속삭여 주위 사람을 굴욕적으로 만드는 한국 사람,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까지 꼭 들어야 한다는 듯 큰 소리로 말해 불쾌하게 하는 중국 사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때는 ‘말’이라기보다 ‘떠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3시간을 달린 운전사는 다리도 펼 겸 아침식사를 하자고 캐트린(Caterin)이란 마을에서 차를 멈춘다. 여행 전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도 실컷 먹고, 스테이크를 한 번 더 먹거나, 코카콜라에다 감자튀김까지, 마지막 식욕을 채우기 위해 모두 흥분해 있다. 세라는 전날 식당에서도 싼 것만 고르더니 오늘은 가방에서 비스킷 하나만 꺼내 먹는다. 문득 다섯 아이의 부양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의 쓸쓸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다름 아닌 내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약간 우울해진다.

    꽃밭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동묘지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아담한 비문들이 있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자신보다 남을 위해 전쟁터로 나선 장한 이들이 가지런한 무덤 속에서 평화모임이라도 하고 있는 듯 고요하다.

    건롬 국립공원(Gunlom park)

    수양버들 가로수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연못엔 부채 모양의 녹색잎들 위로 소녀 심청의 영혼을 담은 듯 보이는 연꽃들이 다소곳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밤에만 피거나 한낮에 잠시 피는 보통 연꽃과 달리 열대지방에서만 자라는 이 연꽃은 1년 내내 꽃이 피며 원주민의 사철식량으로 쓰인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은 오래전엔 금광촌이었다. 매년 금을 채취하는 시합도 열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지루한 한낮의 졸음을 참으며 버스는 다시 열기가 지글대는 빈 도로를 달려 카카두 공원에 우리를 남겨두고 보름 후를 약속하며 떠나갔다. 섭씨 34도의 더운 날씨라고 지미가 온도계를 보며 말해준다. 인적이 없는 텅 빈 잔디 위로 물뿌리개가 돌고 있다. 시선을 끄는 정열적인 빨간색 짧은 반바지에 노란셔츠, 그 위에 밀집모자를 쓴 신티아가 뿜어나오는 물의 둥근 궤적을 따라 두 팔을 벌리고 걸으며 더위를 식힌다. 티 없이 파란하늘 아래 잘 다듬어진 푸른 잔디와 그녀의 원색 옷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낸다. 가까이서 보면 흠뻑 젖은 얇은 천의 노란 블라우스 안으로 검은색 브래지어가 훤히 비친다. 통통한 탄력과 고운 복숭아색의 발그스레한 양 볼은 한창 달콤함을 뿜어내고, 감칠맛나는 부드러운 음성은 아주 매력적이다. 시샘인지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 살짝살짝 눈길이 간다. 산속의 자연도 깜빡 반할 것 같은 아름다움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매력과 부끄러움은 다를 것이다. 남편의 헌 셔츠 소매를 자르고 접어 입은 내 차림새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창조신화

    산으로 올라서는 입구에 그곳에 살던 원주민과 관련된 신화를 적은 안내판이 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여행을 하며 만들어놓은 길 중에 어머니의 땅이라 이름 붙여준 곳이 ‘카카두(Kakadu)’이다. 그들의 창조신은 남편과 함께 그곳을 돌며 계곡의 강이나, 작은 연못, 들꽃들을 창조하고 그들의 아이들을 그 종족에게 영신으로 보내 필요한 법과 언어, 사냥하는 법, 식량을 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창조신이 산을 다 돌고 나서 멈추어 쉬다가 커다란 바위로 변했다. 그 신 외에도 무지개 뱀 블라신, 번개신, 땅의 어머니 신들이 있어 그 신들이 가르쳐준 방법으로 원주민들은 그 땅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연-태초(太初)의 품으로 들어가다
    열대지방의 겨울, 섭씨 35도의 건조한 계절(dry season)에 보름간의 의식주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태초의 품으로 들어간다는 모험심으로 들뜨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보름 후에나 나올 수 있는 미로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나는 어느새 무사히 되돌아 나올 수 있도록 기도를 하고 있다. 나를 맡길 수 있다는 것은 목숨을 건 사랑이고 믿음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무거운 짐까지 지고, 350m의 급경사를 오르자니 이건 죽음에 가까운 형벌이다. 힘들어 죽겠다고 하자 제임스가 말한다.

    “Be sorry but feel strong.”

    힘든 산을 오르며 오래전에 그가 멈춰 서서 한 말이 있다

    “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중이야.”

    꼬꾸라져 굴러 떨어질 것같이 경사진 길을 내려갈 때면 멈춰 서서 이렇게 말했다.

    “명상(瞑想)하는 중이야.”

    더울 땐 커다란 나무나 바위를 만지며 “만물의 정기(精氣)를 느낄 수 있어, 원기(元氣)가 살아나고 더위의 열기도 식혀주거든. 너도 해봐”라고 했다.

    더위는 견딜 만했다. 원주민 신화로만 설명될 특이한 모형의 사암, 예술적인 형상의 커다란 모래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힘든 것을 잠시 잊기도 했다. 동양 사람들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는 회원들은 내가 일행의 평균나이를 줄여준다고 했지만, 처음엔 체격과 체력이 빈약한 탓에 일행에게 폐를 끼치기도 했다. 체중의 25%에 달하는 등짐을 만드느라 밤에는 추워 달달 떨었고, 더위에 지쳐 내 등짐을 회원들이 나눠 져야 할 때도 있었다. 이번에도 짐이 많아 걱정했지만, 처음엔 반나절만 걸을 것이고, 양식도 줄어들 것이며 점차 체력도 강해질 것이라는 말에 안심했다. 무엇보다 지미가 인솔하는 산행이라 믿을 수 있었다.

    산속에서 짐승들만 따라다니던 파리가 사람을 만나자 반갑다는 듯 아귀처럼 덤벼들었다. 스노마운틴 남쪽 산에는 매미만한 행군(marching) 파리가 많은 데 비해 북쪽엔 작은 파리가 많다. 얼굴로 성가시게 덤벼드는 파리를 피하려고 모자에 달린 베일을 내렸다. 늘 긴바지를 단정하게 입는 빌을 제외하곤 모두 반바지에 부츠와 다리 보호대 차림이다. 양말에 붙는 풀가시가 뱀보다 더 싫다고 하는 지미와 로저는 짧은 헝겊으로 만든 다리보호대를 했고 로이와 그랜은 버려야 할 구멍난 볼리(bolly)를 신었다. 등반이나 자일을 할 때 눈의 역할을 하는 발바닥이 얇은 볼리가 등산에선 무릎에 무리가 가긴 하지만 그들에겐 익숙한 듯하다. 내 등산용품은 국제적이다. 처음 등산을 시작할 때 싼 것만 샀다. 차츰 틈만 나면 등산용품 가게를 둘러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젠 그럭저럭 등산용품이 창고를 채워간다.

    고갯마루 입구로 들어서니 비바람에 침식되어 굳어진, 기기묘묘한 모양의 퇴적암들이 눈에 들어온다. 긴 세월을 거치며 자갈이나 진흙이 모래와 섞이면서 자연이 만들어놓은 작품이었다. 서로 다른 물질들이 섞여 만들어진 바위들은 다민족 국가를 지향하는 호주의 멋진 미래를 보여주는 듯했다.

    큰 바위 사이로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다. 자연 속에 인간세상이 그대로 들어있다. 쭉 뻗어 올라간 나무는 건장한 젊은이를 보는 것 같아 뿌듯하고, 죽어가다 힘겹게 재기한 나무는 역경을 잘 견뎌낸 고귀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보는 듯 하다. 또한 기이하게 변형된 나무에선 개인의 특성과 생명의 고귀함을 볼 수 있다. 드러내지 않고 끊임없이 창조되는 자연의 겸손한 숨결에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산등성을 오르자 녹청색의 깊은 호수(billabong)가 있다. 인솔자는 감상도 하기 전에 ‘첨벙’ 소리를 내며 호수에 뛰어든다. 이내 진흙이 물 위로 퍼지고 모두들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되어 나온다. 몇 발짝 걷지도 않았는데 옷은 다 말라버리고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헐떡댄다.

    바위산을 넘어서자 곧바로 키가 2m 넘는 케인(사탕수수) 밭으로 들어섰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걸었다. 바위산으로 올라서자 폭포소리가 들린다. 힘이 솟는다. 그러나 아찔하게 날카로운 산등성마루의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이다. 구르지도 않고 그대로 공중을 날아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모린과 빌이 내려오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기다림이 필요했다. 50~60m나 되는 절벽에서 요란스레 쏟아지는 물을 붉은색 바위가 받아 아래로 조금씩 흘려 작은 개울을 만든다. 모두가 환호한다.

    “야호….”

    폭포소리도 놀란 듯 조용해지고 우리의 환호소리만 울려 퍼진다. 우리가 흥분하며 좋아하는 것을 보는 지미, 공치사를 하지 않는 표정이다. 그는 서두르지도 드러내지도 않으며 모든 회원을 살핀다. 내가 지미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에게서 ‘Yes’ 만 보아왔고, 무엇보다 그의 언어가 늘 정중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산에서도 사막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란 믿음도 있다.

    “나는 지미를 안아주고 싶을 만큼 너무 행복해.”

    세라는 무뚝뚝한 지미 대신 살가운 제임스를 안아준다.

    “오늘은 여기서 캠프를 치자.”

    모두 배낭을 던져놓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훌렁 벗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미 익숙해진 클럽의 전통이지만 사방이 트인 곳에선 더 적나라한 알몸들이다.

    “아유 좋아라, 아~ 시원해….”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멀리 물위를 떠다니는 모자만 보인다. 가끔씩 올라오는 하얀 속살들은 과연 천상의 작은 물새들 같다. 짙푸른 하늘, 그곳에 닿을 듯 높은 바위산, 절벽 사이마다 싱그러운 풀들의 향기를 씻어 담으며 맑고 시원한 폭포는 아낌없이 떨어지고 있다. 호숫가 바위의 수상식물들은 욕조에 구비된 향초 같다.

    그 호수는 높고 파란 하늘을 얼마나 깊이 담았는지 짙은 남색이다. 깊은 물색에 질려 물가에서만 맴돌 뿐이지만 내 마음은 호수 위에서 두둥실 떠다닌다. 배영하는 자세로 누워있으면 어느새 나는 한 마리 물새가 되어 파란 하늘을 마음껏 난다. 내 마음은 활짝 열린 창문이다.

    나는 산속에서 상쾌한 물결이 맨살에 와 닿는 느낌을 아주 좋아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 갓 태어난 듯한, 새로이 창조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자연과 친구가 되어 부끄럽지도 뻔뻔하지도 않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물속에 머리를 담근 채 물고기 흉내도 내고, 작은 돌멩이를 들춰 가재도 찾아본다. 그렇게 아이들 흉내를 내는 건 어린 시절 소망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 오빠를 잃은 아버지의 엄한 통제 속에서 친구들은 홀랑 벗고 물속에서 깔깔대는데 나만 덥게 느껴지는 나일론 원피스를 만지작대며 부끄러워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부드럽고 간지러운 물의 촉감을 느끼며,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시켜주던 어머니의 손길을 떠올린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면서, 내게 본질적으로 잠재해 있는 열정을 물속에서 춤추며 자유롭게 풀어본다. 어머니 품을 떠난 이후부터 쌓인 듯한 긴장감이 해소되는 체험을 한다. 열심히 산다는 구실로 무조건 팽팽하게 긴장하며 마음 안에 가둬뒀던 불안이 장난치듯 찰랑대는 물에 부서지며 상처 많은 나를 치유한다.

    모린한테선 아직도 건강한 젊은 남자만큼이나 단단해 보이는 젊음이 보인다. 신티아는 수영복을 입었고 제인은 겉옷을 입은 채로 수영한다. 이 클럽의 새로운 회원이라 홀랑 벗는다는 것이 불편하겠지만 이 산에서 나갈 때쯤에는 변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빌, 어서 들어와, 너무 좋아, 돔 너는 뭐해?”

    세라의 높은 목소리가 요란한 폭포소리에 곡예를 타듯 들려온다. 모든 시선이 물가에서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엉거주춤 서 있는 빌에게 모인다. 젊고 키가 큰 남자가 벌거벗은 몸으로 서 있다. 갱년기를 넘기는 여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야릇한 감정을 느낄 텐데, 빌은 오히려 어린아이 같은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빌이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자 제임스도 망설이지 않고 훌렁 벗어던지고 폭포 안쪽으로 들어간다. 오래전 거리낌없이 벗은 제임스를 보고 누에고치 번데기를 팔던 포장마차를 떠올렸던 게 기억난다.

    로저는 낚싯대 없는 줄을 물속에 던져두고 있다. 주말등산에서 그가 낚은 물고기로 생선구이 파티도 하지만 국립공원인 이곳은 낚시가 금지되어 있다. 다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진도 찍고 일기를 쓰려고 물에서 나왔다. 사방을 둘러보니 고요했던 대자연이 돌아온 방랑자를 위해 축제를 치르느라 행복으로 넋을 잃은 듯했다.

    대자연의 미소가 나에게도 전해온다.

    “Smile is contagious!”

    작은 돌멩이로 물수제비를 떴다. 세 번을 튀면서 깊은 물에 여운을 남긴다. 로저가 던진 돌멩이는 다섯 번을 뜬다. 어린아이들의 놀이는 어디서나 비슷했던 모양이다. 어진 표정에 순한 음성을 가진 쉰 살가량의 노총각인 로저는 내 딸의 수학 선생님이었다. 그는 산에서 나오면 우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처음에는 사이가 아주 다정한 부인과 통화하는 줄 알았다. 남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딸이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다.

    “보통사람인 그가 장가도 안 가고, 이상하지 않아? 혹시 동성애자 아닐까?”

    “엄마는 남이 어떤 애정관을 갖고 있던 왜 참견하려 해?”

    화를 내며 비난하지만, 딸은 지나치는 말로 이렇게 알려준다.

    “그 학교에선 허락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는 특히 (동성애자가) 아니야.”

    더위를 식히고 물에서 나오는 그들에게서 자연을 닮은 젊음과 매력이 느껴진다. 젊음과 매력은, 희망으로 반짝이는 얼굴에 긍정적인 밝은 표정, 고르고 규칙적인 생활로 자리 잡은 육체에서 나온다. 나는 사람들 체형을 보면서 다림질이 잘된 옷과 다림질이 안 된 옷을 입은 사람들로 상상하곤 한다. 또한 환자들의 체형을 보고 생활방식이나 직업을 맞혀보기도 했다. 편한 대로 섭취만 하고 연소시키지 못한 곡선, 체질적으로 신진대사가 잘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식사와 일상생활이 충실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고른 몸매와 윤택이 나는 탄력적인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요가와 등산을 하고 나서부터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특히 유난히 추위를 타던 내가 등산을 하고부터는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도 춥지않다. 그 모든 변화 덕일까, 주말을 산에서 보내고 나오면 긴 휴식을 한 듯 월요일에 신선한 마음으로 출근해 내 자신이 매력적인 직장인으로 생각된다. 내가 산을 찾기 시작한 이유는 모험 속에서 삶의 기쁨을 찾기 위해서다. 기쁨의 조건엔 영양, 운동, 물, 햇빛, 절제, 공기, 휴식 그리고 우주의 주인에 대한 신뢰 같은 게 있을 것인데, 이 산속에는 모든 게 갖춰져 있다.

    모기장을 치기 시작한다. 바닥이 고르고 다른 사람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 거리에 모닥불이 가깝고 모기장 줄을 맬 수 있는 나무가 있으면 최상이다. 세라가 모기장을 함께 치자고 한다. ‘함께’ 하려면 협상과 절충을 해야 하는데, 그만큼 긴장할 수밖에 없다. 세라의 제안이 썩 내키진 않지만 거절할 핑계가 없다. 결국 우리는 모닥불과는 거리가 멀지만, 고운 모래가 있는 아늑한 작은 언덕을 택해 모기장을 쳤다. 양쪽 나무에 끈을 묶어 망사로 된 화려한 침실이 나란히 만들어졌다. 모기장을 모래로 눌러 뱀이나 들쥐, 독개구리 그리고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배낭도 들여놓고 에어매트(공기침대)에 공기를 넣어 잠자리를 준비한다. 머리전등과 모기약, 책 그리고 저녁식사 거리를 들고 모닥불이 피워질 곳으로 간다. 작은 책을 무거운 짐 속에 넣어 왔지만 읽지 않을 것이다. 세라는 배낭 속의 모든 음식을 꺼내 햇빛 아래 쭉 널어놓았다. 내 식량은 남편이 한 끼씩 꼼꼼히 밀봉해주었다. 모기약을 바르고 책을 뒤적이다가 짧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거나, 땔감을 주우러 흩어진다. 모두가 행복한지를 살펴보는 지미의 셔츠는 원래 푸른색의 무늬였는데 어느새 땀에 절어 흙갈색으로 변해 있다. 한쪽으로 뒤틀려 있는 바지, 순한 곰 같고 성실한 소년처럼 보인다. 내 것을 주면서도 더 줄 것이 없을까를 생각하는 그의 깊은 배려를 보면서 나는 바그너의 ‘순례자’에서 탄호이저가 부르는 진실된 탄원의 기도소리를 듣 듯 그의 진실된 마음을 느낀다. 그는 내 남편과 많이 닮았다.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제임스와 모린의 말소리가 들린다. 운동화 바닥창이 떨어져 끈으로 묶고 걸어야 했던 일, 한쪽 안경알이 빠져 잘 걷지 못했던 사람, 비싼 선글라스를 잃어버려 찾으러 되돌아가던 일 등을 얘기한다.

    잭의 텁수룩한 모습을 보면서 ‘이젠 우울한 사람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나는 타인을 판단하는 편협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미는 등짐에 기대서 지도를 본다. 로이와 그랜은 책을 읽고, 물을 좋아하는 세라는 물속에서 나와 빗질을 하고 있다. 빌은 파란색의 공기튜브에서 양말을 빨고 있다. 그는 남이 갖지 않은 등산용품을 제일 먼저 구입하고 새것처럼 간수한다. 누가 손을 대기라도 하면 눈을 깜빡거린다. 세라가 빌에게 말을 걸며 그릇을 만지자 빌은 못 들은 척하며 가버린다.

    하늘과 땅, 그리고 나

    해가 지고 새들마저 둥지로 돌아갔는지 산속에 고요함이 자리를 잡는다. 차츰 고즈넉해져가며 어둠이 기척도 없이 안개처럼 덮여온다. 그림처럼 고요하다. 내 영혼이 설레는지 심장도 멈춘 듯 고요하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듯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그곳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했다. 내 안에서 하늘과 땅의 만남이 있으려나보다. 이렇게 홀로 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 앞에 마주 앉는다. 더 가까이 그분의 숨소리를 듣는다. 이런 고요함을 기도라고 하고 침묵의 대화라고 할 것이다.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말도 없이 편안함, 이런 침묵이 영원히 지속된다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이 기도인 줄 알았다. 다급한 내 기도를 늘 그분은 알아들으셨고 또 많은 것을 받아냈다. 그런데 그런 기도로 얻어낸 소원이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일시적인 성취일 뿐 그것은 완전한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려서, 아버지가 처음으로 구해다 심어놓은 토마토에 작은 열매가 맺혔는데 향기가 특이했다. 나는 아버지의 추억과 함께 그 비릿한 냄새를 지금도 좋아한다. 모두가 토마토가 익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나는 몰래 몇 개를 따 숨어서 맛을 보았다. 그 토마토의 떫은맛은 지금 내게 묵상의 씨앗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렇게 미리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려 한다. 그분과 마주 앉아 있으면 그분의 때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은 내 소망을 모두 모아 깊은 세월에 묻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내게 줄 것이다. 나를 통해 창조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나도 우주가 되는 것이다. 나는 우주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고요함을 유지하려 아주 많이 연습해야 한다. 그러면 우주도 내 침묵의 기도에 귀 기울여줄 것이다. 나는 내 기도가 설익은 토마토가 되지 않도록 기다리는 것을 배울 것이다.

    “돔, 저녁밥 만들자.”

    세라가 부른다. 이 말에 하나둘 모닥불 앞에 모여들었다. 건조기에 말린 재료들이 다채롭다. 고기, 감자, 생선, 콩, 채소…. 대기가 식으니 깡통에 넣고 끓인 더운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높은 밤하늘과 침묵하는 대지 사이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내 심신이 고마움을 느낀다. 하얀 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에 하얀 점이 하나씩 나타나더니 어둠이 짙어가면서 차츰 반짝이기 시작한다. 밤하늘도 파랗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느새 별이 가득한 하늘이 내 머리 위로 내려와 있다. 잠시 달이 구름 뒤로 들어간 사이에도 별빛과 모닥불빛에 둘러앉은 얼굴들이 환하게 보인다. 행복해 보이는 그들을 보며 더 친근한 마음이 들어 설레기까지 한다. 이들의 겸손이 존경스럽다. 나는 외국사람의 영어발음에 짜증스러울 때가 있는데 이들은 내가 서두르며 주절거리는 말도 경청해주고 잘도 알아듣는다.

    먼저 명당자리에 모기장을 친 빌은 앵앵대는 모기소리가 싫다며 어느새 모기장 속으로 들어갔다. 내 몸은 모닥불 곁에 있으나 시선은 별빛이 총총한 스크린으로 향한다. 컴퓨터 앞에 앉은 남편이 떠오른다. 가엽고 그립다. 그가 없어 오히려 내가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잡고 있는 긴 줄 끝에 달려있는 연(鳶)인가보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그가 연 끈을 놓았기 때문일까? 그도 나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을까? 그는 이렇게 멋대로 돌아다니는 나를, 나 자신보다 더 걱정하는 사람이다. 내 자유를 인정해주는 그의 믿음으로 인해 오히려 줄에 매인 연처럼 그를 돌아보게 되는 귀소본능이 일어난다. 그것이 내 삶에 중심이 되고 있음을 새삼 생각해보게 한다. 나를 묶는다고 몸부림치던 나! 나 혼자만 자유롭고 싶어 빠져나왔지만 그들이 그립다. 그립다고 하면 그들은 나를 비겁하다고 할 테니 그냥 자유로운 연이 되어 마음껏 보름간을 날아보려 한다.

    밤공기에 머리가 맑아져 잠은 오지 않았지만, 내일을 위해 모닥불 곁에서 소곤대는 말들을 뒤로 하고 별빛만으로 내 모기장을 찾았다. 멀리서 독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세라, 제임스, 로저 그리고 잭의 소곤대는 소리도 고요한 밤하늘 아래선 의미 없는 개구리 소리로 들린다. 그들은 외로움을 뱉어내고 있는 것일까? 별들이 그분의 어깨에 매달려 내려와 있고 나는 그분의 품에 안긴다.

    ▼ 여행 2일째

    “Boiling water!”(물 끓는다!)

    제임스의 우렁찬 음성이 여섯 시를 알린다. 제일 먼저 아침의 문을 여는 새들도 아직 둥지에서 나오지 않은 고요한 아침이다. 깊은 산속의 우주가 안개 속에서 실눈을 뜨고 뿌연 기운으로 서서히 동을 틔운다. 물안개가 덮여있다. 아침 명상을 한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목디스크로 인해 아침에 깨어나면 늘 머리가 무거워 먼저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두통이 나를 겸손한 기도의 자세로 이끈다.

    산에서 맞는 아침, 땅의 겸손과 우주의 깊은 사랑을 들이마시며 자연에 지극히 감사하고 가족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동행들의 무사한 하루를 기원한다. 이왕이면 세계평화도 기원하고 싶지만, 나는 아직….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남자들은 이미 김이 오르는 찻잔을 들고 있다. 세라는 숱 많은 긴 머리를 뒤엎어 빗질을 한다. 나는 빗의 무게도 줄일 겸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왔다. 세라는 막내가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만 남겨두고 나온 첫 휴가라고 한다. 그녀는 소중한 듯 하늘도 올려다보고 산도 바라보며 걸어 다니며 왼손으로 시리얼을 먹는다. 제임스의 친절로 내 깡통에서 물이 끓고 있다. 지미는 이미 식사를 마친 듯 지도를 보고 있다. 빌은 모자의 주름을 펴고 먼지를 털고 있다. 늘 보아오던 그의 준비된 아침 모습이다. 모린은 보이지 않는 외진 곳에 텐트를 치고,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 출발장소인 모닥불가로 올 것이다. 신티아와 제인은 텐트를 접고 있다. 신티아의 물건들은 지갑까지 거의 다 빨간색이다. 고요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 안에 오히려 더 뜨거운 불길이 타고 있을까?

    7시! 아침 해가 이미 우주에 더위를 가득 풀어내고 있다. 지미가 지도와 나침반을 목에 걸고 앞장을 서고 로이가 마지막 숫자를 채운 한 줄의 행렬이다. 평지이긴 하지만 마른 숲이 우거지거나 높은 사탕수수숲이라 뒤처지면 앞사람을 놓쳐버린다. 새싹이 있는가 하면 낙엽이 떨어지는, 사철이 함께 있는 숲이다. 지미가 멈춰 일행을 확인하고 다시 출발한다. 방향을 되돌린다. 지나온 흔적을 알 수 없는 숲을 되돌아 걷는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건너편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바위가 보인다. 원주민들이 100여 신 이상을 모시는 영산으로 유명한 노우아랭지 바위(Nourlangie Rock)라고 한다. 바위가 크고 넓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뚝 끊기는 벼랑이고 아래서 올려다보면 병풍처럼 길고 장엄하다. 철분이 많이 섞인 듯 붉은 역암과 대리석같이 하얗고 작은 바윗돌이 조화를 이룬다. 그 바위산은 몇 천만 년 전에 해면 위로 솟아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흰색과 회색, 붉은색과 크림색 화강암과 대리석이 섞인 바윗돌이 커튼처럼 여러 줄로 내려진 모양이 거대하고 화려한 유럽의 궁전 같았다. 시드니에는 주로 사암이 많은데 이곳엔 역암이 많고 색깔도 다양하다. 차츰 지형의 변화와 그 형성 과정에 흥미를 갖게 된다.

    Nourlangie Rock

    세계적인 미항으로 손꼽히는 시드니 하버(항만)가 원래는 계곡이었다고 한다. 빙하기에 얼음이 녹으며 골짜기를 채운 것이 240㎞의 긴 해안으로 540㎢의 넓은 바다를 이루었다. 지미가 몇 년 전에 다녀간 바위 아래 깊은 협곡엔 층계식으로 연결된 좁다란 벼랑들이 있는데 우기에 광대한 물이 저장되었다가 건조기엔 영구적인 빌라봉(billabong), 고인 물구덩이가 되어 연꽃이나 수련이 자라 원주민의 식생활을 해결했다고 한다. 연꽃이 있는 곳엔 민물악어도 있어 그들의 주식이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꽃밭에 추하게 생긴 악어라! 사막의 야생화로 연약한 연꽃이 있는가 하면 무서운 짠물 악어도 있는, 아름다움과 두려움의 조화. 이 산에서만 볼 수 있는 천연의 어울림이다. 바위를 날렵하게 타고 로이와 로저가 땅 아래로 내려간다. 그들이 까마득히 멀리 보인다. 바위산의 한귀퉁이일 뿐인 생명도 없는 바위 아래서 움직이는 우리 존재가 개미만큼이나 무력하게 느껴졌으니 원주민들이 두려움으로 공경할 만도 했다.

    점심으로 비스킷에 땅콩 잼과 베지마이트(veggie-mite)를 발라 먹는다. 베지마이트는 채소즙과 이스트 추출물로 만든 흑갈색의 크림이다. 비타민이 많이 들어 새콤짭짤한 맛이라 호주의 어린이들이 좋아해 채소와 친구를 의미하는 이름이 붙었다. 나도 먹고 나면 입안이 개운해 여행갈 때면 필수품처럼 챙긴다. 모두들 거대한 암석이 제공하는 시원함과 편안함에서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내가 이 바위산을 넘어갈 길이 있는지 보고올게”, 빌이 말하자 “나도 갈게요” 하며 신티아와 제인이 따라 나섰다. 나도 따라나섰다. 마른 숲 속의 바위나 나무조차 모두 섬뜩한 생각이 든다. 바위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작은 길을 찾았다. 바로 앞서가던 빌이 보이지 않아 깜짝 놀라곤 한다. 꼬불꼬불 올라가는 바위산 중턱쯤에서 넘어가는 길을 찾은 것 같다고 한다. 제인이 보이지 않는다.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다.

    “돔, 너는 나를 따라오고, 신티아, 너는 저쪽으로 내려가다가 그녀를 만나면 소리를 쳐.”

    좀처럼 무서움을 타지 않는 나도 머리칼이 곤두선다.

    “너희들이 보이지 않아, 신티아, 너를 불렀는데, 내 소리 못 들었어?”

    미로를 찾아 나가는 게임도 아니고 카타쿰바처럼 비밀굴 속도 아닌데 바로 곁에서도 듣질 못했다니 더욱 원주민의 영신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일행에게 돌아와 짐은 앞사람을 놓치지 말고 바로 뒤따르라는 주의만 준다.

    끝자리로 처지기 시작한 모린이 바위산을 얼마 오르기도 전에 투덜댄다.

    “바위가 너무 높아서 기어오르려면 내 무릎이 성하게 남아나질 않겠어. 이렇게 힘들면 얼마 못 가고 결국은 다시 돌아가야 할 거야. 난 돌아서 갈 거야.”

    모린의 속도에 걸음을 맞추어 걷던 제임스가 지미를 부른다. 다시 내려와 바위산을 끼고 돌려니 시간도 걸리지만 모린이 기대했던 만큼 그 길도 쉽지가 않다. 작은 돌들이 미끄러져 굴러 내린다.

    “아이쿠.”

    갑자기 커다란 몸집의 모린이 미끄러진다. 지팡이에 달린 끈을 손목에 끼고 걷다가 미끄러질 때 끈이 손목에 휘감기며 다친 모양이다. 그녀는 내게도 지팡이의 끈을 손목에 걸기를 늘 강요했었다. 손목에 감고 있다가 잘못 휘둘리면 뒷사람이 다칠 수도 있고 자신도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가 있을 때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지미가 지도를 다시 본다. 모린과 빌은 좀 더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두 사람만 보낼 수 없는 착한 제임스가 그들을 따른다. 제임스는 법관인 쌍둥이와 달리 어려서 몇 번의 수술을 거치며 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인쇄소 직공이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덕분인지, 그의 신체적 조건에 인내심이 생겼는지 그는 늘 남을 배려할 준비가 되어있다. 빌은 위험을 강행하며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그에게 “넌, 젊은데 왜 더 흥미로운 등산을 하지 않아?”라고 했더니 “사고 확률이 높은 곳을 피하면 사고란 있을 수 없어. 난 모험은 싫어”라고 말했었다.

    그런 면은 그가 컴퓨터 시스템분석가란 전문 직업을 갖고 도심지의 한가운데 고급아파트에 산다는 것과 어딘지 남다른 표정과 상반돼 보이지만 그처럼 자기 논리가 확고하고 또 신념대로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자갈에 미끄러지지 않을까, 마른 나뭇가지를 잘못 잡아 가지가 부러지면서 굴러 떨어지지는 않을까, 바위가 굴러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 긴장은 되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다. 평원 멀리로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이 보인다. 바람조차 더위에 지친 시간, 제임스 일행을 기다리며 좁은 바위 사이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이렇게 험한 곳인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것이야.”

    잔뜩 화가 난 모린의 말소리에 잠이 깼다. 빌과 제임스도 많이 지쳐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지친 몸을 끌고 허덕대는데 폭포소리가 들린다. 바로 건롱 폭포(Gunlom waterfall)다. 아름답게 꾸며놓은 듯한 커다란 천연 수영장에서 개울로 떨어지는 30m 높이의 폭포가 화강암 바위를 요란스레 치면서 떨어진다. 인공적으로 꾸밀 수 없는 보물이다.

    “오늘은 여기서 캠프를 치자.”

    모두들 황홀해하며 등짐을 벗는다. 뜨거운 날씨에도 견디는 잡풀들과 작은 관목들이 있다. 세라와 함께 모기장 칠 곳을 찾았다. 모두 작은 가지들이라 부러질 것 같다. 개울로 내려가는 작은 언덕에 거대한 고목(Gum-tree 종류)이 있다 비바람을 겪으며 천년이나 된 듯한 고목은 바람결을 따라 무늬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두 개의 가지로 시작해 다섯 사람이 안아야 할 만큼의 굵기로 자랐다. 이리저리 꼬여 올라가는 가지 끝으로 파란 잎들이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찰랑대며 바람을 부른다.

    “아마 300~400년은 넘었을 거야.”

    로저는 호주에서 나는 식물이나 새에 대한 지식이 많다. 모두들 옷을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내가 풀숲 가까이 얕은 물로 들어서자 모기가 냉큼 와서 시식을 한다. 가려움과 통증의 차이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개울에는 작은 송사리가 떼 지어 다니고, 풀숲에는 빨간 고추잠자리가 모여 다닌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 뒤의 바위 안쪽으로는 이끼와 수상식물들의 배치가 절경이다. 자색천으로 하체를 감고 양말을 빨아 주름까지 펴며 널고 있는 빌에게 세라가 너트를 건네며 수두꼬 책을 빌린다. 제임스도 물에서 나와 호주국기 문양의 천을 감고 있다. 천 하나가 수건도 되고 멋진 패션도구도 된다.

    다들 불을 피워놓은 곳으로 모여 뜨거운 차를 마신다. 한국 사람들도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하지만, 한여름 무더위에도 뜨거운 차를 마시는 이들을 나도 많이 닮아간다. 빌의 오렌지향이 들어 있는 초콜릿이 또 모두의 관심을 끈다. 손톱 밑에 새까만 때가 낀 손을 내밀며 그랜이 말한다. “나도 맛 좀 볼 수 있겠어?”

    그러나 빌은 못 들은 척한다. 설득력 있는 입심, 천연덕스러운 성격을 가진 그랜이지만 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로이는 몇 권을 가져 왔는지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다. 신티아와 제인은 언덕 아래 물 가까이에 텐트를 치고 식사 때가 되어서야 모닥불가로 왔다.

    “음식 냄새가 좋네, 무엇을 끓여?”

    세라가 로저의 음식을 보며 말하자 걸걸한 음성의 모린이 말을 받는다

    “총각냄새가 나고 음식 잘하는 여자가 아쉬워야 장가갈 마음도 생길 텐데, 로저는 어머니의 알뜰한 보살핌에 장가갈 생각을 안 해. 어머니 탓이야.”

    부모와 자식,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 되나보다. 이래도저래도 부모 탓이다. 어릴 때 막 날갯짓을 시작하는 새끼 비둘기가 바깥나들이를 하면, 아버지 비둘기가 문 앞을 지키며 새끼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성년이 된 자식이 부모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도록 하는 비둘기의 지혜다.

    나에게도 장성한 아이들이 있지만 부모는 자식이 나를 통해 선물로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맙고, 자식은 이 멋진 세상을 알게 인도해준 부모에게 고마운 것이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길 바라고, 같은 자식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들이 화제로 떠오른다.

    로이는 싱싱한 셀러리를 잘라 마른 완두콩과 말린 고기를 넣어 죽을 쑨다. 벌써 싱싱한 채소가 그립다. 그랜은 로이에게 셀러리를 얻어 코스코스(좁쌀 같은 곡식)와 말린 닭고기를 끓이던 깡통에 넣고 섞는다. 모두들 행복한 얼굴이다.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

    “결혼 초에 남편에게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고 물었었지. 나를 사랑할 때라는 대답을 바라면서, 그런데 남편이 맛있는 것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거예요. 서럽더라고요.”

    “신혼의 아내에게 좀 심했다. 토머스에게 실망했네. 지금도 그렇게 말해?”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달랠 줄 아는 제임스가 말을 거든다.

    “그 말이 맞지, 진실이야. 먹을 땐 누구나 행복하고, 배가 부르면 화도 안나.”

    이번엔 깡통에 남은 양념을 혀로 핥으며 그랜이 말한다.

    그런 행동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로이의 눈빛이 차갑다. 그 눈빛에 익숙한 그랜은 깡통을 뒤집어쓰고 계속 혀로 핥는다. 그녀를 누가 으리으리한 저택의 주인이라 할까? 로이와 그랜은 10년째 동거인으로 살고 있으며, 각기 딸이 하나씩 있다. 그랜은 약사다.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물려받은 재산이 많고, 전문의인 남편이 떠나며 두고 간 재산도 상당하다. 남의 말을 빌리면 그녀가 굴리는 주식만도 어머어마하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신티아와 제인을 뒤따라 그릇을 씻으러 개울로 내려갔다. 땅속의 흙에 걸러지고 햇빛에 살균된 약수다. 국립공원에선 호주자연산 나무만 자라게 하며 자연을 병들게 한다고 비누도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그랜처럼 그렇게 깨끗이 혓바닥으로 핥아내지 않아도 이미 깨끗하게 비운 그릇이다. 산짐승들이 먹고 병이 들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산행 중에는 음식 찌꺼기도 버릴 수 없다. 과일씨까지 다 먹거나 태우고, 비닐은 태우지 않고 가방에 넣어가지고 나온다. 소변도 물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를 찾아 해결하고 큰 볼일을 볼 때는 산짐승들이 배변을 파헤치지 못하게 플라스틱 삽(등산 필수품)으로 땅을 깊숙이 파서 묻어야 한다. 깊은 산골짜기라도 소나 말이 있는 산줄기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시드니 산속 바닷가엔 한국 낚시꾼들이 버린 한국 상표가 찍힌 라면 봉지와 소주병들이 굴러다닌다. 우리 등산 회원이 그 쓰레기를 담아 나오는 데 상당히 부끄러웠다.

    “이 비누는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 비누야. 내가 특별히 인터넷에서 찾아냈어.”

    수줍은 듯 비누를 내보이며 빌은 풍선대야에 물을 받아 설거지를 하고 간다.

    어둠이 잦아들며 물소리가 서두른다. 어둠에 초조해지긴 하지만 이런 호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평생 몇 번이나 있을까. 따뜻한 알몸을 찬물에 담그며 진저리를 친다. 길목에 있는 빌의 모기장으로 얼떨결에 눈길이 스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큰 남자가 모닥불을 향해 앉아있다. 모든 윤리와 풍습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융통성이 생기듯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을 미리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고요한 별들이 다시 가족을 그리워하게 한다. 호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과 새 자동차 기념 나들이를 떠났다. 가까운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으나 아이들을 부추겨 행선지를 바꾸어 날이 저물어서야 관광지에 도착했다. 호텔마다 만원이었다. 바닷가 언덕 위에 자동차를 세우고 남편 몰래 트렁크에 넣어온 담요와 침낭을 꺼내 숨겼다. 아들과 아버지는 잔디 위에서 자고 나와 딸은 차에서 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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