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g 작업하면 풀어준다더니…검사가 약속을 안 지켜요”
- “본인이 본인을 제보했다”고 결론 내린 경찰
- 북한 의사, “노트북, 사진기 주면 필로폰 줄게”
- 검찰, “수사한 사건에 대해 일일이 확인해줄 수 없다”
“야당은 검찰이 자체적으로 투약자 및 판매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검거하기가 힘이 든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검찰 및 수사기관에 사건을 제보하고 자신들은 그 대가로 수사기관의 비호를 받습니다. 수사기관에선 이런저런 이유로 마약 전과자를 잡아놓고 더 큰 사건을 만들어 오면 풀어준다는 식으로 협상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없는 사건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범인이 바뀌기도 합니다.”
기사가 나간 뒤 최근까지 많은 마약관계자가 ‘신동아’를 찾았다. 그들은 저마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호소하거나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마약수사기관의 수사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제보했다. 그중 몇몇 사례는 수사나 재판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신동아’는 그렇게 접한 사건에 대해 그동안 취재를 진행했는데, 그중 2개의 사례를 소개한다. 검찰이 어떤 식으로 마약 수사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와 국정원과 경찰이 관련된 한 마약사건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다.
검사실에 앉아서 ‘작업’
부산에 살고 있는 정OO(49)씨는 9월20일 청주지방검찰청에 구속됐다. 마약(필로폰) 2g을 지인인 김OO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100만원을 받고 교부한 혐의다. 그는 구속된 김씨와 화상면회를 하기 위해 경남의 한 구치소를 찾았다가 현장에서 긴급체포됐다. 그러나 정씨는 현재 “(검찰의 마약 교부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기자는 정씨의 주장을 듣기 위해 지난 10월10일 청주교도소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정씨의 말이다.
“처음 잡혀서 검사실에 가니 검사와 수사관들이 저에게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약사건 하나 작업하면 풀어주겠다. 그러려면 일단 (구속된) 김씨에게 마약을 준 걸 인정해야 한다. 작업만 끝나면 바로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1500만원가량을 써서 필로폰 10g을 중국에서 들여온 뒤 이를 제보해 사건화해주고 관련자 2명을 구속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런데 일이 끝나자 검찰은 ‘태도가 불량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갑자기 못 풀어준다고 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약을 줬다는 허위자백도 하지 않았죠.”
구속된 김씨는 처음에는 자신에게 마약을 교부한 사람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지목했다가 무슨 이유인지 수사 도중 “사실은 정씨 물건이다”라고 진술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는 오락가락한 김씨의 진술을 확인하기 위한 대질신문이 이뤄지지 않았다. 정씨는 “어차피 작업 하나 하면 나가기로 검사와 약속이 돼 있었기 때문에 대질신문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1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에서 수사관이 인형과 팝콘으로 위장해 들여오다 인천공항세관에 적발된 필로폰을 살펴보고 있다.
정씨는 “나는 검찰이 요구하는 대로 다 해줬다. 작업도 해줬고 그 과정에서 돈도 많이 썼다. 검찰은 처음에는 3건 정도 작업하면 풀어준다고 하다가, 비교적 사건이 큰 외화밀반입건을 제안하자 성공하면 바로 풀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작업이 성공하고 나니 검찰이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정씨는 최근 가족들에게 “기소된 이후인 10월13일 검사가 나를 부르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재판이 시작되면 보석신청을 하라고 했다. 법원에 잘 얘기해서 도와주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동아’는 정씨와 정씨 주변 인물들의 주장, 특히 작업이 성공할 경우 정씨를 풀어주기로 검찰이 약속을 했었는지 등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청주지검 담당 검사실에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검사실에서는 “수사 내용을 언론에 얘기할 수 없다는 게 검사님의 생각이다”라고만 답했다.
경찰이 진술 조작?
경찰에 검거된 마약사범들
2007년 5월21일, 박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국정원의 마약담당 수사관 A씨에게 마약사건을 제보했다. “50g짜리 필로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검거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박씨 자신이 직접 거래를 하는 식으로 상황을 연출해 마약거래 현장을 확인하고 마약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박씨는 이 사건을 수사할 곳으로 경기도의 한 경찰서를 지목했다. 수사관 A씨는 박씨의 말대로 움직였고, 경찰 수사관들을 동원해 서울 서대문구의 한 주택가에서 필로폰 50g(시가 약 2억원)을 소지하고 있던 차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박씨는 처음 수사관 A씨에게 사건을 제보할 당시 “차씨가 가지고 있는 마약은 마약 전과가 있는 최OO씨가 차씨에게 맡겨놓은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수사과정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피의자였던 차씨가 필로폰 50g의 주인이 제보자인 박씨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차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제보자인 박씨는 자신이 교부한 마약에 대해 자신이 직접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 셈이 된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차씨의 진술대로 흘러갔고 결국 박씨는 투약혐의까지 포함되면서 실형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련된 기록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기자는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1,2심 재판에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증거들도 일부 있었다.
차씨는 검거 초기 경찰조사에서 마약의 주인에 대한 진술을 한 차례 번복한 사실이 있었다. 처음에는 마약의 주인이 제보자인 박씨가 아니라 (박씨가 국정원에 밝혔던 것처럼) 최씨라고 진술했던 것이다. 2007년 5월22일 작성된 첫 수사보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2007년 5월21일 21시44분경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OOO-OO 201호에서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위반(향정)으로 긴급체포된 차OO에게 검거 당시 소지하고 있던 필로폰 50g의 출처에 대하여 추궁하자 최OO이라는 사람에게 필로폰을 구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던 중,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사실대로 말을 하겠다고 하며 같은 달 22일 17시경 ‘사실은 박OO에게 받은 것이다’라는 진술에 따라 긴급으로….”
그러나 경찰-검찰 수사과정에서 차씨가 처음에는 박씨가 아닌 최씨를 마약의 주인으로 진술했었다는 점은 거의 부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은 2007년 6월23일 작성된 수사보고서에서 차씨의 최초 진술을 일부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차씨가 첫 수사에서 상선(마약의 주인)으로 진술했던 최씨의 이름이 느닷없이 ‘허무인(김수로)’으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경찰서에서 차○○가 허무인(김수로)을 상선으로 지목하며 매우 고민하다가 결심한 듯 박○○와 관련된 사실을 자백할 당시 차○○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적이었으며….”(2007년 6월23일 경찰 수사보고)
필로폰
너무 늦은 국정원의 확인서
애초 박씨로부터 사건을 제보받아 수사에 나섰던 국정원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제보자 박씨는 자신이 제보한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구속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국정원 측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박씨의 정보제공으로 사건이 이뤄졌으며 박씨가 제보 당시 마약의 주인은 최씨라고 진술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박씨는 확인서 요청이 제보자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박씨의 요청을 거부했다. 사건과 관련된 자료가 전혀 없다는 이유였다.
국정원은 박씨가 행정소송 등을 통해 끈질기게 확인서를 요구하고 나서야 짧은 확인서를 써줬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2심 재판이 끝나고 대법원 판결(2008년 5월29일)을 일주일 앞둔 시점(2008년 5월20일)이었다. 당시 국정원이 발행한 확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민원인(제보자 박OO)이 2007년 5월21일 우리 院(국가정보원) A수사관에게 차OO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사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검거하게 한 것은 사실임을 밝힙니다.”
그러나 당시 확인서에는 가장 중요한, 박씨가 제보 당시 마약의 주인을 최씨라고 알려줬다는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씨는 “이것만 확인해줬다면 재판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제보자의 진술과 피의자의 첫 진술이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단순한 정보제공 사실만 확인해줬다. 그것도 대법원 판결을 일주일 남겨놓은 상황에서…”라고 주장했다.
이 확인서를 받은 이후에도 박씨는 국정원을 상대로 계속 사실관계 확인을 요구했다. 그리고 결국 국정원은 처음 제보를 받았던 수사관 A씨 명의의 확인서를 다시 보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1년 뒤의 일이었다. 수사관 A씨는 2009년 5월21일 작성한 확인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제보자 박씨에게) ‘차OO가 가지고 있는 필로폰 50g은 어디에서 받은 것이냐’고 묻자, 박씨는 ‘최OO이라는 사람한테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하면서…내가 (검거한 뒤) 차OO에게 ‘마약을 어디에서 공급받았느냐. 최OO에게 공급받은 게 아니냐’고 추궁하자 답변을 피한 채 (차OO가) ‘필로폰 100g 정도를 받을 데가 있는데 100g 압수하면 현장에서 풀어줄 수 있느냐’고 제안해와 나와 마약반 형사는 ‘공적으로 올려 형을 감해줄 수는 있으나 현장에서 풀어줄 수는 없다’고 답변하자 차OO는 더 이상 언급을 회피하였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수사관 A씨는 최근 ‘신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솔직히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사건이었다. ‘자기 물건을 자기가 제보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나도 경찰과 검찰에 여러 번 항의했었다. 경찰반장한테 ‘그렇게 수사하면 안 된다’고 했다. 담당 검사도 만나서 ‘말이 안 된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인 내가 정보업무와 관련해 확인서를 써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수사는 분명 잘못됐다. 개인적으로는 (제보자인) 박씨에게 미안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염색하면 안 나온다?
피의자였던 차씨는 마약 50g의 주인이 최씨가 아닌 박씨라고 진술을 번복한 뒤 “박씨와 30여 일간 7번에 걸쳐 마약을 투약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사결과 박씨의 머리카락에서는 필로폰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마약사범의 경우 소변으로는 7~10일, 머리카락으로는 대략 6개월~1년, 음모 등 체모로는 5~6년까지 마약투약 사실이 확인된다. 따라서 만약 최근 30여 일 사이 마약을 투약한 게 맞다면, 소변은 몰라도 머리카락에서는 마약성분이 검출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머리카락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았음에도 박씨의 투약은 범죄사실에 포함됐다. 그것은 당시 박씨의 머리카락을 검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증언 때문이었다. 국과수가 “(제보자) 박씨가 염색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럴 경우 마약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힌 게 이유가 됐다.
그러나 당시 국과수의 판단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현재 마약을 수사하는 기관과 학자들은 염색이나 탈색 등의 방법으로는 머리카락에서 마약성분을 제거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최근에도 미국, 중국에서 들어온 마약성분을 없앤다는 크림 형태의 약품이 은밀히 유통되고 있어 수사기관이 확인에 나섰지만,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경찰청 마약팀의 한 관계자는 “염색한 털이라고 해도 여러 차례 세척한 후 검사하면 마약 성분을 추출해낼 수 있다”며 국과수와는 다른 의견을 보였다.
경찰·검찰의 수사와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혹시 간과되거나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 있었다면 이는 뒤늦게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신동아’가 위 사건들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신의진 박사의 말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마약수사 방식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피의자를 통해 범죄를 만들어서 수사한다거나,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로 수사한다거나, 아직 도입이 확정되지 않은 플리바게닝이 비정상적으로 활용된다거나 하는 것 모두 문제라고 봅니다. 만약 수사기관이 증거를 조작한 게 사실이라면 이건 처벌대상이 됩니다. 사람을 활용해 사람을 잡는 식이 아닌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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