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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 | 선각자 인촌을 말한다

간디와 민족독립 교감한 최초의 신문 경영인

주제발표 ④ 인촌과 언론

  •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언론사

간디와 민족독립 교감한 최초의 신문 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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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창간 직후부터 총독부의 탄압과 사내의 갈등을 동시에 겪어야 했다. 필화와 논전이 벌어지는 회오리바람에 휩싸이고 위태로운 태풍의 눈이 되었다. 창간 논설기자였던 김명식은 “근대적 의미와 색채를 가진 필화와 논전”이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회고했다.

간디에게 보낸 편지

가치관이 혼돈되고 사상적으로도 방황하는 시기였다. 3·1운동 후 민족주의 사상이 팽배했으므로 일본 당국은 이를 극히 경계했고, 한편으로 청년들은 진보적인 사고로 노년층 또는 유림과 대립하는 형국이었다. 동아일보 내부에서도 청년층과 노년층의 세대 차이에 의한 갈등이 있었다. 김성수가 제4대 사장에 취임하는 1924년에는 기존의 민족주의를 비롯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각종 사조가 유입되고 있었다.

그 무렵에는 창간 초에 주식 제1회 불입금의 일부로 들어온 10여만원이 거의 다 없어졌다. 김성수 개인으로도 이때가 대단히 어려운 시기였다. 그가 일으킨 경성방직이 아직 공장도 세우기 전에 때마침 몰아친 경제공황으로 뜻밖의 큰 손실을 보아서 도산 지경에 이르는 사태에 처했던 것이다.

김성수가 직면한 또 다른 어려움은 총독부의 언론탄압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창간 후 보름 만인 4월15일자(제13호)가 첫 발매금지를 당했고, 이어서 1920년에 19회, 1921년부터 1923년까지는 매년 16회의 압수, 1924년과 1925년에는 각각 68회와 67회의 압수를 당했다. 총독부 경무국이 남긴 비밀 자료집에 수록된 연도별 압수기사 건수를 보면 김성수가 사장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가장 많은 압수를 기록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수 사장이 인도 독립운동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이 밝혀졌다. 총독부의 검열 기준을 적극적으로 위배한 것이다. 김성수의 편지는 인도의 ‘간디기념재단’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과 인도는 식민 치하를 벗어나려 했던 동병상련의 정신적 유대를 가진 나라였다. 김성수가 간디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시 신문이 어떤 방법을 활용하여 독립정신을 펼치려 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문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도의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저항운동의 사례가 될 수 있었다. 그 중심에 간디가 있었다. 조선에도 간디와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열망했다. 동아일보는 그래서 간디의 독립운동을 우리의 처지와 대비하여 보도했다.

총독부도 이 같은 사실을 일찍부터 꿰뚫어보고 있었다. 김성수가 간디에게 편지를 띄운 날은 1926년 10월26일로 편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신은 인도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우리 조선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지도자이며 당신이 성공하면 우리는 기쁨을 나누고, 실패하면 우리는 슬픔을 느낍니다. 세상의 정의가 당신을 지지하기 때문에 당신의 이상이 실현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간디의 답장은 11월26일에 작성되었는데, 해가 바뀐 1927년 1월5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다. 조선의 독립을 되찾으라는 메시지 ‘조선은 조선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는 제목이었다. 답장은 짧았으나 김성수는 그가 인도의 독립운동에 헌신하게 된 약력과 공적을 상세히 소개하여 행간에 담긴 의미를 전달했다.

일제 치하의 민족운동과 문화운동 사상운동 등은 거의 대부분 신문 또는 언론인과 관련이 있었다. 김성수는 경영 일선에 나설 때는 물론이고 ‘취체역’ 또는 ‘고문’으로 물러앉은 때라도 동아일보 사주로서 책임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중요한 결정은 그의 승인을 거쳐야 했던 최고 경영인이었다.

김성수는 탁월한 경영 수완과 인재 포용력으로 험난한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아일보를 이끌어왔다. 주주대표가 되어 신문사를 일으켜 세웠고,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막중한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의 업적은 동아일보에 그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이래 오늘날까지 한국 언론의 전통 수립과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 세력의 중심에 있었다.

김성수는 언론 경영인으로 항일, 문화적 민족주의, 건국, 민주화의 큰 흐름을 이끌었던 거목이다. 암흑의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의 혼란기를 거쳐 195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35년간 언론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면서 때로는 후견인으로 언론 발전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신동아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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