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완기(학술원 회원)
신용하(울산대 석좌교수)
김중순(고려사이버대 총장)
김학준(단국대 이사장)
정영수(인하대 부총장)
주익종(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
이옥순(인도문화연구소장)
진행 이종은(국민대 교수)

●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우선 정진석 교수의 발표와 관련해서 한두 마디 덧붙여보고자 합니다. 정 교수가 발표에서 함께 거론하고 있는 구한말의 서재필 박사와 일제강점기의 인촌에 의한 신문 창간은 세계 신문의 역사에서 살펴볼 때 독특한 유형, 어떤 의미에선 ‘한국적인 유형’을 창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유럽이나 미국의 신문 대부분은 1차적으로 개인적, 상업주의적 동기에서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발행됐습니다. 그에 비해서 서재필의 ‘독립신문’이나 인촌의 ‘동아일보’는 “취리하려 하랴는 게 아닌”(‘독립신문’ 창간 논설의 인용) 비상업적인 동기에서, 1차적으로는 나라의 ‘개화’와 ‘독립’이라는 민족적, 계몽주의적 동기에서 창간됐습니다. 이 사실은 비교 언론학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강조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이 어디까지나 개인적 상업주의적 동기에서 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랜 일간신문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에서조차 20세기 초반까지도 신문과 신문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매우 낮았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석학 막스 베버(Max Weber)조차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한 공개 강연(‘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문기자의 존재를 인도의 사성(四姓) 맨 밑에 있는 ‘파리아’(천민) 계급으로 취급하던 현상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한 실정에 비춰본다면 일찍부터 이 나라에선 언론인이 ‘무관의 제왕’ ‘사회의 목탁’으로서 높은 사회적 위신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은 ‘독립신문’이나 ‘동아일보’의 존재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를 넘어서 정 교수의 발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동아일보 창간의, 그러한 이상주의적인 동기에 못지않게 그를 위한 현실주의적 전제가 되는 신문사 운영의 안정을 위해 한국 최초의 신문 기업 CEO, 인촌의 탁월한 경영수완과 인재관리능력을 부각했다는 점입니다.

동아일보사.
전란이 잦았던 유럽 대륙에선 70년 고희(古稀)의 수(壽)를 누린 신문조차 독일에는 단 하나도 없고, 프랑스에도 ‘르 피가로’ 한 개의 예외를 빼고는 전무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언론 산업에서 시대를 ‘살아남는다(survival)’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언론기업에선 장수했다는 것이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돼야 할 하나의 가치며 성취라 하는 것이 이해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