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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 한호 수교 50주년 - 호주의 재발견

인문학 관점으로 본 호주의 역사

‘올리버 트위스트’ 후예들, 노벨상 10회 수상

  • 윤필립 시인, 호주전문 저널리스트 phillipsyd@daum.net

인문학 관점으로 본 호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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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스트레인지 프룻의 공연 ‘필드’.

‘호주는 정말 주인 없는 땅(Terra Nullius)이었을까.’

호주 땅에는 왜 영국인들이 들어가 살고 있을까. ‘아시아의 유럽’으로 불리는 호주의 역사는 그 말처럼 흥미롭다.

호주대륙에 원주민 애버리진(Aborigine)이 거주했던 시기는 약 3만8000년 전인 제 4빙하기로 추정된다. 원주민은 아시아대륙에서 인류 최초로 바다를 건너 이주한 민족이다. 그 후 해빙기가 시작되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호주대륙의 고립이 시작됐다.

일부 호주 역사학자들은 애버리진 역사가 6만~12만5000년을 헤아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통일된 언어(250개 이상의 언어 확인)와 문자가 없었던 애버리진 역사는 고고학적, 인류학적 연구대상일 뿐이다.

이뿐 아니라 2006년 인구조사에서 확인된 애버리진 숫자도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51만7000명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6만년 대비 0.004%에 해당되는 223년을 살아온 백인그룹을 중심으로 호주인의 정체성을 논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고대 애버리진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증거는 꾸준히 발굴되고 있다.



호주를 맨 처음 방문한 서양인은 멘도사로 추정된다(1521~1532). 그러나 멘도사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은 1606년에 호주 북부 해안을 통과한 루이스 토레스를 호주대륙을 방문한 최초의 서양인이라고 주장한다. 그 바다는 토레스 해협으로 불린다.

장구한 애버리진 역사와 17세기 초에 호주로 유입된 백인의 역사를 결합한 ‘진디워라박 운동(Jindiworabak Movement)’을 옹호하는 역사학자들은 “호주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영국은 물론이고 고대 유럽의 역사까지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인이 호주를 발견했다?’

언제부턴가 호주 대륙을 중국인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이를 입증하는 유물이 발견되어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호주 원주민(애버리진)이 중국 쪽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믿으면서 관련 증거를 찾고 있다.

폴 키팅 총리의 연설문을 쓰기도 했던 저명한 역사학자 돈 워슨 교수는 ‘캡틴 쿡은 호주를 발견하지 않았다(Captain Cook did not discover Australia)’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 “중국(명나라)의 환관 정화(鄭和)가 이끄는 62척의 거대한 선단이 1432년 호주 북쪽 해안에 정박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역사학자 매닝 클라크는 ‘호주의 역사(The History of Australia)’에 호주 대륙 발견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썼다. △1606년 스페인 해양탐험가 루이스 토레스 △1642년 네덜란드 상인 아벨 타스만 △1688년 영국인 해적 윌리엄 댐피어 △1770년 영국 해군 제임스 쿡. 이를 근거로 계산해보면, 정화의 호주대륙 발견(1432)은 루이스 토레스의 발견 시기보다 174년 빠르다. 또한 호주대륙을 대영제국 제임스3세의 식민지로 선포한 캡틴 쿡보다 338년이나 빠르다. 더욱이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한 1492년보다 60년 먼저였다.

인도 출신 불교도들과 힌두교도들도 금과 향료를 찾아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으로 진출했다. 그들은 불교를 전할 목적도 함께 갖고 있었는데, 15세기에 회교도들이 인도 북부를 침략하자 더 이상 호주대륙 쪽으로 남하하지 않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호주 진출의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인도네시아의 회교왕국들도 호주대륙으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듯 아시아 국가들이 비교적 손쉽게 차지할 수 있었던 호주대륙을 외면한 것은 마치 운명 같은 일이었다.

거기엔 터무니없는 미신도 한몫했다. 역시 매닝 클라크의 기록이다. “힌두교도들은 자바와 인도네시아 남쪽 바다에서 생기는 큰 소용돌이에 말려들 것을 두려워했고, 중국인들은 여인 왕국이 있다는 바닷속에 배를 빨아들이는 큰 구멍이 있다고 믿었다.”

그뿐이 아니다. 회교도들은 말세가 오기 직전에 나타난다는 적 그리스도들이 세운 왕국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호주대륙으로의 진출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 결과, 1788년에 호주대륙은 영국 차지가 되고 만다. 바로 그 시점에 런던에서 창간된 ‘더 타임스(The Times)’는 호주식민지 출범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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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 시인, 호주전문 저널리스트 phillipsyd@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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