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바이롱 광산에서 기술자들이 탐사활동을 펴고 있다.
호주로 가는 한국 기업의 열에 아홉은 자원 관련 비즈니스를 일군다. 한국전력공사(KEPCO·이하 한전)도 대표적인 자원 개발 기업 가운데 하나다. 책임 소재를 떠나 한전은 지난 9·15 정전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존재의 중요성을 알렸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생활에 큰 불편을 겪은 국민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정확한 수요 예측과 연료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한전이 호주 자원 개발에 나서는 이유도 이와 관련돼 있다. 첫째는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용 연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광산 운영으로 수익을 창출해 전기요금 인상폭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한전은 아시아를 비롯해 중동,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18개국에서 39개 사업을 벌이며 글로벌 한전의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 가운데 자원 개발 부문에서는 호주 등 4개국에서 10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가가치 체인 전 부문 주도
2007년 호주 코카투 사에 투자한 이래 한전은 물라벤(Moolarben) 광산 개발에 참여했고, 인도네시아 아다로 에너지사 지분 인수 등으로 발전용 유연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약 6억t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라벤 광산에서는 지난해부터 생산을 시작해, 매년 250만t을 한전이 직접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7월, 한전의 자원 개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획이 그어졌다. 매장량 4억2000만t의 호주 바이롱 유연탄 광산을 4190억원에 단독 인수한 것이다. 이 광산은 호주의 주요 탄전 지대인 뉴사우스웨일스 주 시드니 분지에 있는데, 세계 3위의 유연탄 수출기업인 호주 앵글로 아메리칸 사 소유였다. 그 결과 유연탄 자주개발률(이미 확보한 양)이 34%로 높아졌다.
바이롱 광산 인수로 한전은 해외 자원 개발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유연탄 광산 경영권을 확보하고, 탐사·개발·생산·판매 등 부가가치 체인(value chain) 전 부문을 주도하게 됐다. 한전은 이곳에서 2016년부터 30년간 열량 7050kcal/㎏ 이상의 고품질 유연탄을 연평균 750만t 규모로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계기로 한전이 유연탄 가격 수용자의 지위에서 벗어나 공급시장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발전연료 가격이 급변하면서 생기는 손실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추가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또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이 돼 국민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자주개발률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그 물량을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의미는 좀 더 복잡하다. 석탄으로 발전을 할 경우 그 비용의 70%는 연료에서 나온다. 그런데 석탄 연료 가격이 많이 상승한다고 해서 전기요금을 그만큼 올릴 수는 없다. 전기요금을 정부가 통제하기 때문이다. 또 연료 가격이 상승했다고 해서 그만큼 전기요금을 올릴 경우 국가 경제나 소비자에게 충격을 주게 된다. 그래서 해외 자원에 투자하면 석탄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을 그만큼 덜 받게 되기 때문에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다.”(이도식 한전 호주법인 사장)
바이롱 광산을 인수할 때 앵글로 아메리칸 사가 동시에 매각하는 5개 광산에 대해 발전용탄 수요자인 한전과 제철용탄 수요자인 포스코, 호주의 광산개발 기업인 코카투 사가 전략적 컨소시엄을 구성해 패키지로 입찰에 참여한 것도 흥미롭다. 이들 기업은 가격 경쟁력보다 각사의 강점을 활용하고 치밀한 입찰전략을 구사해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 인도 등의 자원기업들을 따돌렸다.
“처음에 입찰에 참여했다가 떨어졌다. 그 프로젝트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낮은 가격에 제안서를 냈던 거다. 그런데 이후 재입찰 의향서를 제출해, 다시 기회를 얻었다. 두번째 입찰에서는 코카투, 포스코와 함께 다른 곳에서 제시하지 않은 방식인 패키지 전략을 마련했다. 5개 광산의 각각의 자산 가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전체 인수 가격을 제시했을 때 낙찰이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이도식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