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우경화-親박근혜 사이 불안한 줄타기 속사정

일본 아베 정권 정밀 분석

  • 장제국 │동서대 총장 jchang@dongseo.ac.kr

    입력2013-03-21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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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아베 정권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당장 엔저(円低) 기조는 우리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독도와 관련해 우경화 행보를 가속화한다. 군대를 못 두게 한 헌법도 뜯어고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박근혜 정권을 향해선 연일 우애의 마음을 가득 담은 손길을 내민다. 아베 정권의 속사정은 뭘까.
    우경화-親박근혜 사이 불안한 줄타기 속사정

    F-15K전투기에서 내려다 본 독도.

    지난해 12월 16일 일본 중의원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은 맥없이 무너졌다. 2007년 9월 ‘건강상’의 이유로 총리 취임 1년 만에 자진 사퇴한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자민당 정권을 탄생시켰다.

    아베는 앞서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운동기간 내내 우익적인 발언으로 일관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일관계 최대 현안이던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민감성을 잘 알면서도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군대가 없는 일본의 안전보장 한계를 극복하려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동맹국 미국이 전쟁에 휘말리면 일본도 자동으로 개입하게 되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적 정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은 일방적인 발언들이었다.

    패권국, 군사대국으로?

    지난해 자민당 총재로 당선된 아베는 중의원선거에서 ‘일본을 되돌린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가 되돌리려는 일본이 과연 어떤 일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경제호황을 누린 1970~80년대 잘나가던 시절의 일본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정치·군사적으로 강력한 ‘어두웠던 시대’로 회귀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는 정치 레토릭이다.

    일본 정치인들을 만나 ‘아베가 말하는 과거의 일본이란 어떤 일본을 의미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민주당 정권이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일본을 원위치로 돌려놓겠다는 의미일 뿐 결코 우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럴 수도 있다. 어느 나라든 선거는 국내적 고려가 최우선이다.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일본 국민 대부분은 일본의 우경화를 원치 않는다. 비참한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살아 있다. 재무장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다수 유권자를 무시하고 함부로 ‘우경화’를 표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문구를 굳이 선거 슬로건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표면적으로 민주당의 실정(失政)을 공격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때가 되면 실제 마음에 두고 있는 ‘군사대국’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담으려 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자민당은 총의석의 61.2%(294석)에 해당하는 과반 의석을 획득했다. 연립내각을 구성한 공명당과 합한 의석수는 325석으로 개헌에 필요한 의석(3분의 2)을 일단 확보했다. 공명당은 전통적으로 ‘우익적 개헌’에 대해 부정적이라 향후 개헌 논의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수적인 조건은 갖춰졌다.

    이제 관심은 오는 7월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몇 석을 확보할 것인지로 모아진다. 자민당이 참의원선거에서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이시하라 신타로 대표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우익적 성향의 ‘유신의 회’나 보수 성향의 ‘모두의 당’과 힘을 합할 수 있다면 아베의 우향우 노선을 실행에 옮길 고속도로가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일한관계 낙관한다”

    한국의 언론 보도는 아베가 선거기간 내내 보여준 우익적 언동을 미루어 앞으로 한국에 상당히 거북한 대상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총리가 된 아베는 표면적으로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월 7일 일본 국회 질의에서 아베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질문에 “언제 참배하는지, 참배할지 참배하지 않을지를 지금 단계에서 언급하는 것은 자제하겠다”고 했다. 고노 담화 수정 의사에 대해서도 “이 문제는 스가 관방장관을 중심으로 역사학자들과의 전문가 회의를 통한 학술적인 관점에서 검토를 진행한다는 것이 내각의 입장”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지난해 12월 21일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체제도 제대로 못 갖춘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을 특사로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박 당선인 측 일정상의 이유로 특사 파견은 연기됐지만 아베가 무척 서두르는 자세를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이는 한국 새 정권과의 관계 개선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당초 국가 차원으로 격을 높여 시행하기로 한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도 종래대로 지방 차원에서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이것도 한국을 의식한 유화적 신호다.

    누카가 전 재무상이 이끈 일본 특사단은 1월 4일 박근혜 당선인을 만났다. 누카가 특사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과 면담 중 황 대표가 조만간 재일동포관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진해서 아베 총리와의 면담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성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국에 대한 아베 총리의 우호적 태도는 그의 최근 저서 ‘새로운 나라로’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일본은 오랫동안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흡수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류 붐은 절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나는 일한관계에 대해서는 낙관주의다”라고 썼다. 그는 2006년 첫 총리 재임 시절에도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아베는 왜 이렇게 말과 행동에서 모순을 보이는 걸까. 일각에선 이러한 모순이 7월 참의원선거를 의식한 ‘안전운전’에서 기인한다고 해석한다. 우경화에 부정적인 표심(票心)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국회 발언에서 극도로 신중을 기하고 있다. 또한 70%를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러한 분석이 맞다면 아베 내각의 현 기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하는 시점은 참의원선거에서 아베가 승리한 이후가 될 것이다. 헌법 개정 등 그간의 주장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과정이 초래할 동북아 긴장이 큰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아베의 본질적 성향은 그가 어떠한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역사인식은 저서와 국회 답변에서 엿볼 수 있다.

    먼저, A급 전범에 대한 인식이다.

    아베는 A급 전범 판결을 받은 사람이라 해도 국내법적으로는 무죄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어느 나라든 국가를 위해 순직한 사람에 대해 국가지도자가 존중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 “외국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선거 후보 기자회견에서는 “(첫) 총리 재임 시 참배를 하지 못했던 것이 통한스럽기 짝이 없다”라고 했다.

    내재적 관점으로 본 일본

    둘째, 아베는 일본이 이제 보통국가로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본은 60년에 걸쳐 자유민주주의와 기본적인 인권, 그리고 법률의 지배 아래 겸허하게 국제공헌에 힘써왔다”고 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중국에 21번이나 사죄한 바 있고, 또한 중국 경제발전에 힘을 보태기 위해 3조 엔이 넘는 지원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이젠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자격이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한국과 중국의 일반적 인식과는 괴리가 크다.

    일본이 처한 현실을 ‘내재적 관점’에서 설명해보자. 일본은 20년 동안의 경기침체와 잦은 정권교체로 국가적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 올해만 해도 재정적자가 국민총생산(GDP)의 6.9%인 33조9000억 엔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공공부채는 위험 수준인 GDP의 230%에 육박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때 잘나가던 소니, 파나소닉과 같은 대기업들도 세계시장에서 급속히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도산한 기업이 1000개가 넘는다. 동일본대지진은 정부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를 산산조각낸 일대 사건이었다. 효과적으로 대처해줄 것으로 믿었던 정부가 무능력으로 일관하자 국민은 망연자실했다. 이는 전후 일본의 강력한 동력이었던 ‘엘리트 중심의 선단호송식 모델’의 수명이 다했음을 말해주는 징표다. 끝없이 불거진 도쿄전력 등 거대기업의 정경유착 비리, 그리고 조직을 국민보다 우선시하는 공기업의 구태는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커다란 좌절감을 맛보게 했다. 신뢰의 ‘일본 시스템’이 상당부분 허상이었음을 동일본대지진을 겪으며 직접 목도한 것이다.

    우경화-親박근혜 사이 불안한 줄타기 속사정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정치 부문의 혼란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일본 총리의 재임기간이 1년을 넘지 못할 정도로 정권 교체가 빈번했다. 2006년부터 보더라도 아베 1년, 후쿠다 11개월, 아소 1년, 하토야마 8개월, 간 1년 3개월, 노다 15개월이었다. 그러다보니 ‘아무것도 결정 못하는 정치’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민주당 정권은 ‘정치주도’라는 슬로건 아래 그간 국가 브레인 역할을 했던 엘리트 관료들을 배제했다. 모든 것을 정치논리로 접근하다보니 정책의 일관성이나 정합성에서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다.

    외교에서도 전후 정책기조였던 ‘국방은 미국에 맡기고 경제를 우선한다’는 ‘요시다 독트린’이 오히려 창조외교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화된 틈을 타 북한은 핵개발을 하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일본 내에선 안보환경이 전에 없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자력으로 별다른 대응을 못하는 현실에 대해 자조감이 커지고 있다.

    ‘국가에 대한 생각’

    중국의 급속한 부상도 일본에는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이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등극한 것은 일본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 같은 해 중국 어선들과 센카쿠 해역에서 충돌했을 때 일본은 중국인 용의자들을 일본 법정에 세우지 못하고 전원 중국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수모로 비쳤다. 일본은 거친 모습으로 굴기하는 중국을 실질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중국의 ‘도발’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과거사 문제가 일본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으로 하여금 ‘더 이상 이웃나라에 밀릴 수 없다’는 인식을 낳게 했다. 한국은 독도 문제를 역사인식 문제로 보는 반면, 일본은 이웃하는 나라와 있을 수 있는 영토분쟁으로 인식한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전 일본의 입장은 ‘한국은 한국의 입장이 있고 일본은 일본의 입장이 있으니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한국이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라는 정도였다. 독도 방문 후에는 ‘양보할 수 없는 영토 문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뭔가 돌파구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 그 돌파구가 ‘강한 일본’의 희구다. ‘강한 일본’이란 지금의 내우외환 상황에 강력하게 대처할 능력을 가진 일본을 의미한다. 우선 침체일로의 경제를 재건해 다시금 ‘일등 경제대국’으로 되돌릴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안보 문제에서도 중국과 북한의 도발에 강력히 대처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불가결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끌려만 다니던 한국 및 중국과의 역사, 영토 갈등에서도 뚜렷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베는 일본이 내우외환에 처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분석했다. 전후 50년간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과도한 ‘경제우선정책’으로 인해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국민이 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질주하다보니 삶의 중요한 판단 기준을 오직 ‘물질적 득실’에 두게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족 간 유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애착, 국가에 대한 생각이 결여됐다고 본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국가에 대한 생각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국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려면 ‘민족주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베는 일본인의 국가관 결여가 자학(自虐)사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그간 가해자라는 원죄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도 무조건 수용했던 과거의 관습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확실한 물증이 없으므로 일제의 강제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중국 난징 학살에 대해서도 ‘구체적 증거가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세 가지 딜레마

    중국과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평화헌법 개정이라는 능동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자민당이 내놓은 ‘일본국 헌법 개정초안’은 9조 2항에 국방군 창설을 명시했다. 이는 전후 헌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통째로 흔드는 것이다. 이에 더해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정권의 중요한 방침”이라면서 이를 실행에 옮길 법적 제도적 장치를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하지 않으면 일본은 심대한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아베가 경제부흥을 위해 내놓은 정책이 ‘아베노믹스’다. 과감한 금융완화, 재정의 기동성 강화, 성장 전략이라는 3개의 축을 중심에 둔다. 엔화를 찍어내 엔저와 인플레이션을 유도하고 공공투자를 늘려 시장에 돈이 돌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일단 효과를 내고 있다. 주가가 1만 엔대로 치솟고 있다. 엔화 가치 폭락으로 일본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일본 재계는 이를 환영하면서 아베 정권이 요구하는 임금인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는 전문가도 많지만 ‘잃어버린 20년’ 동안 아무런 희망을 못 보여준 역대 정권에 비해 아베는 뭔가 모를 ‘희망’과 ‘기대’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대세다. 아베는 전후(戰後)체제에서 탈피해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실질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딜레마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첫째, 민족주의를 고양시키면 이웃나라와 필연적으로 역사 문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로 한국과의 마찰은 이미 심각해졌다. 한국 정부가 이런 문제에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둘째, 한국 및 중국과의 마찰 심화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G2로 등극한 중국을 관리해나가야 하는 미국이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마찰을 환영할 리 없다. 중국과 일본이 군사적 충돌로 치달을 경우 동북아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다. 아베가 원하는, 센카쿠열도 영토분쟁을 염두에 둔 미일동맹 강화는 미국의 계산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말 워싱턴에서 열린 오바마-아베 정상회담에 대해 일본 언론은 ‘일미동맹 완전 회복’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반면 미국 주요 언론은 아베 정부의 역사인식이 초래할 수 있는 이웃국가들과의 마찰과 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우려를 부각해 보도했다.

    내려놓으면 얻는다

    셋째, 아베는 한중 분리 대응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아베가 한국에 유화적 태도를 보인 것은 한국과 중국을 분리해서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작동한 것일 수 있다. 일본으로서는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선호할 만하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역사인식은 중국의 그것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처지에서 보면, 지금과 같이 일본이 우익적 역사관으로 한국과 계속해서 마찰을 빚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나아가서 아베가 재무장의 길을 선택한다면 중국으로서는 한국이라는 ‘정신적 동지’를 얻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신뢰’를 외교의 기초로 삼고 있다. 3·1절 기념식에서도 박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역사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 이뤄질 때, 공동 번영의 미래도 함께 열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일본이 취해야 할 역사인식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방침은 아베 총리의 방향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7월 참의원선거를 의식해 한국에 유화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아베 외교는 한국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아베의 ‘일본을 되돌린다’와 박근혜의 ‘신뢰’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낼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경화-親박근혜 사이 불안한 줄타기 속사정
    장제국

    1964년 부산 출생

    미국 조지워싱턴대 학사·석사(정치학), 일본 게이오대 박사(정치학)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한일포럼 운영위원

    미국 변호사

    現 동서대 총장


    이런 의미에서 아베 정권은 기로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일본이 직면한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이를 위해 ‘내재적 논리’에 기초한 ‘새로운 전후체제’를 구축해 동북아에서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아니면 유럽의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피해국인 한국에 대한 역사인식을 바르게 정립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 틀 짜기’를 모색할 수 있다.

    어렵겠지만 아베가 희망하는 나라는 오직 후자의 길을 택할 때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집을 내려놓으면 더 큰 것을 얻는 법이다. 정직한 과거사 청산은 훨씬 홀가분하게 ‘강한 일본’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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