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별 헤고 종이香 맡으며 감각하고 사유하다

숨어 있기 좋은 방 3選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3-03-20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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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레비전이 없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앉아 있었다.
    • 누구에게도 아늑한 밀실이 주어지지 않는 삶은 황량하다.
    • 텅 빈 방에서 박경리, 박완서의 문장을 음미한다.
    • 굳이 아득한 산중의 큰 사찰만이 힐링의 장소가 아님을 깨닫는다.
    별 헤고 종이香 맡으며 감각하고 사유하다
    깊은 밤, 베란다에 서서 담배를 피워 문다. 거실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한여름의 모기떼처럼 잉잉거린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쌀쌀하다. 그래서 베란다에 서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이 저녁 9시쯤이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래윗집 사정을 생각하면, 그리고 집에 담배 냄새 밴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점퍼라도 껴입고 한 손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든 채 아파트 주차장 끄트머리로 가서 쓰레기도 비우고, 그 역한 냄새를 조금이나마 상쇄하려는 듯 담배 한 대를 피워 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새벽 1시에 그런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다소 엽기적이기도 하고 청승맞기도 하다. 그래서 ‘용감하게도’ 베란다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피우면서, 베란다를 바라본다. 겨울을 간신히 버틴 화초 몇 분이 봄 햇살을 기다리며 베란다로 나와 있지만 아직 날은 쌀쌀하다. 새 학기를 맞아 상급학교로 진학한 아이들 책상이며 책장을 새것으로 바꿔주면서 그 방에 있던 낡은 가구를 다 내다버렸지만, 그래도 못질 서너 번이면 고쳐 쓸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어두컴컴한 구석에 세워둔 책장이, 배수를 위해 조금 기울어지게 설계된 베란다 바닥 때문에 우중충한 장승처럼 비스듬히 서 있다. 낮에 널어놓은 빨랫감은 마르지 않은 채 거꾸로 매달려 축 늘어져 있다.

    대여섯 걸음이면 충분한 베란다 한 폭! 이 정도만 해도 값으로 치면 3000만 원쯤 될지도 모르겠다. 뒷베란다까지 포함하면 5000만 원쯤? 성장기의 아이들이 언제나 신발을 마구 벗어놓는 현관 입구의 손바닥만한 공간도 2000만 원은 넘을 듯하고, 여기에 방 세 칸에 거실이며 부엌 쪽을 큼직큼직하게 계산해 7000만 원이요 8000만 원씩 잡으면 이 아파트의 4억 시세가 가늠된다. 요즘 시세는 어떻게 되지? 값이 올라도 걱정이고 내려도 걱정이라 동네 부동산 중개업소 전면 유리창에 나붙은 A4 용지 시세표에도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한 게 요즘의 심사라서 길쭉한 베란다 한 폭이 단순 계산으로 5000만 원이 넘을 수도 있는 이 기이한 ‘아파트족’의 삶을 담배 한 개비 태우면서 거듭 생각한다.

    담배 연기를 막기 위해 재빨리 문을 닫으며 거실로 들어서는데, 베란다에서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 들어온다. 거실이라, 그렇게 불리는 공간이다. 소파에 눕듯이 앉아 무심히 TV 리모컨을 누르고는 다시 집 안 여기저기를 훑어본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북쪽으로 난 작은 방에서 컸다. 그랬는데 벌써 중고교생이 되었으니 이 아이들에게 남을 어린 시절의 ‘방’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아내와 함께 쓰는 안방도 그 구조 자체가 어떤 틀을 강요한다. 그 안쪽 ‘부부 욕실’이라는 이름의 작은 공간은 목욕용품을 쟁여두는 창고가 된 지 오래다. 거실은, 아파트라는 사각의 공간에서 억지로 도출해낸 집합 장소다. 마치 일시적인 대합실 같다.

    휘청거리는 오후, 유폐된 처소



    누구에게도 아늑한 밀실이 주어지지 않는 이런 공간에서의 한 생애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럴 때 옛 시절을 추억하는 것은, 거짓 낭만에 빠질 위험이 상당하거니와, 그럼에도 그 옛날에는 다락방이 있었고 지하실이 있었고 동네에는 골목이 있고 공터가 있고 거기서 5분쯤 벗어나면 야산이 있고 들판도 있었는데, 이젠 그 안팎 모두가 아파트의 신전이 되었으니, 어디 숨을 만한 방 하나 없는 처지 아닌가.

    한국 사회가 가파른 팽창과 발전의 신화를 쓰던 저 1970년대에 박완서는 ‘휘청거리는 오후’와 ‘도시의 흉년’을 통해 이미 대도시의 중산층 가옥문화가 상당히 폐쇄적으로 급변할 것임을 증언한 바 있다. 그때는 서울 도심에 ‘신흥 양옥집’이 들어섰고 강남에는 아파트가 기립하던 때였다. 박완서는 ‘휘청거리는 오후’에서 당시의 양옥집을 이렇게 묘사한다.

    별 헤고 종이香 맡으며 감각하고 사유하다

    햇살이 따사로운 봄이 마침내 찾아왔다.

    “집집마다 조그마하나마 뜨락을 가지고 있는 이 신흥 주택가는 지금 한창 장미철이다. 너도 나도 담장에 덩굴장미를 올려, 담장에 꽂힌 그 미운 쇠꼬챙이를 난만하게 핀 장미송이가 감쪽같이 뒤덮고 있다. 낮에 보면 그야말로 꽃동네다. 골목마다 달콤한 향기가 짙게 서려 있고 사방에서 꿀벌이 잉잉대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어느 집이고 ‘오오, 즐거운 나의 집’ 아니면 ‘우리집 낙원’이지 고통이나 불행이 있을 것 같은 집은 한 집도 없다.”

    그러나 겉보기에 그럴 뿐이라는 것이 소설가의 인식이다. 드높은 담장, 널찍한 마당, 청신한 정원수…. 그러나 도회의 삶은 폐쇄적인 구조로 점점 좁아지고 그렇게 하여 사람끼리의 대화, 심지어 가족끼리의 관계마저 심리적으로 서서히 단절된 것이 우리가 겪어온 산업화다. 그래도 그때는 옥수수나 감자를 넉넉히 삶아서 이웃끼리 나눠 먹기도 했으나 근래 들어 그런 것을 들고 저녁 9시쯤 아파트 윗집을 방문하면 혹시라도 신고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저마다 고독하게 자기들의 처소(혹은 아파트의 구석 방)에 유폐되었으되 이 또한 박완서가 오래전 ‘도시의 흉년’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 대목의 일직선 끝에 선명히 보인다.

    “집이 다만 넓기 위해서 넓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 구석 저 구석에 그득그득 들어찬 손때 묻지 않은 가구들도 빈집 같은 느낌을 한층 더했다. 고가한 것일 뿐, 몰취미한 것들이 한껏 난잡하게 집합하여 있을 뿐, 집합한 것끼리 서로 사귀어 관계를 맺을 맥락이 없었다. 그래서 그것들은 빈집에 인부가 막 부린 가구들처럼 뿔뿔이 있었다. 화려한 카펫은 그 위의 응접세트와 관계가 없고, 응접세트는 그 옆의 사방탁자와 관계가 없고, 사방탁자는 그 위의 도자기와 관계가 없었다. 가까이 모여 있을 뿐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무리 값비싸고 사치한 것들이라지만 이것들을 통일시켜 어떤 살아 있는 분위기를 만들 주인의 정신과 만나지지 못하니 잡동사니처럼 무의미했다.”

    아무것도 없는 방을 찾아서

    이렇게 말하고 나니, 답답한 심정이다. 요컨대 어디 먼 곳으로 떠나서 숲 속을 걷고 새벽 안개와 더불어 명상을 하고 청신한 봄 기운을 쐬는 것을 ‘힐링’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마치고 돌아온 후의 삶에 뭔가 작은 변화의 기미라도 있어야 할 테지만, 삶이란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간단한 것이 못 된다. 더욱이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밋밋한 거실과 어두운 방과 어수선한 베란다를 마주하게 되면, 정녕코 힐링이라면 지금 이 몸이 거처하고 있는 일상의 공간 속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무망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더러 이 도심지 안에 그러한 피난처를 어렵사리 확보해놓은 처사들의 공간을 본 적이 있다. ‘신동아’연재를 통해 클래식 문화의 심연을 들여다본 초절정 클래식 고수 김갑수의 마포 작업실은 도시 중장년층의 로망을 현현한 압도적인 공간이거니와 누구라도 그 마포 작업실을 방문한다 하면 돌아설 때의 허망함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만한 공간, 아니 그 공간보다는 그곳을 가득 채운 수많은 음반과 책은 몇 천 만 원 들여서 며칠 상간에 뚝딱 장만할 만한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평생을 바쳐 고관대작이 되고, 또 누군가 악착같이 벌어 수십억 대 부자가 되고, 또 누군가 필생의 일념으로 학문의 대가가 된다고 하면 김갑수의 그 공간과 그 책들과 그 음반들은(특히 음반!) 이 헛헛한 대도시에서 성장한 소년이 필생의 수미일관으로 이룩한 고독한 성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1984년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쯤에 강북구 수유리의 허름한 집 방 하나를 온전히 책과 음반으로 채우고 짙은 커피 한 잔을 마시던 그를 기억한다.

    만약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빈 방이 낫지 않겠는가. 생의 귀한 시간을 온전히 바쳐 그 무언가를 모으고 아끼고 완상하며 살아온 경우가 아니라면, 차라리 텅 비워버리는 게 낫지 않은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새 봄이라, 단언컨대 굳게 다짐하고 명심한다면 사실 우리 주변에는 버릴 것이 너무나 많다. 물건의 쓰임새를 귀히 여기고 재활용이라는 사회적 숙제도 동시에 생각나는 바이지만, 그러나 잠시만 거실이며 방이며 베란다를 거듭 살펴보면 ‘참으로 나는 쓸모없는 것들과 더불어 힘겹게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당장 세간을 다 내다버릴 수는 없는 일! 그러니 찾아가보자. 빈 방을 찾아가보자. 아니, 그 무엇보다 텔레비전이라는 요상한 물건조차 들여놓지 않은, 그래서 그곳에 가면 억지로 텔레비전부터 켤 일이 없고 그리하여 ‘이왕이면…’ 하는 마음으로 휴대전화 전원도 꺼놓고 싶은, 그런 공간을 찾아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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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철강 창업자 엄춘보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세운 송암천문대.

    송암천문대의 별 헤는 방

    바야흐로 계절은 봄으로 이행 중이다. 낮의 햇살은 따사롭고 밤의 공기는 사뭇 떨린다. 곧 완연한 봄이 오면, 이 나라의 이상한 기후 변화로 인해 사실상의 여름으로 급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요즘의 이런 아주 짧디짧은 ‘간절기’란 너무나 귀한 시간이다. 오호라! 아직 겨울이 완전히 물러가지는 않았으니 1년 중 그 즐거움이 가장 좋다고 하는 별자리 탐사의 최적지가 서울 어디에서라도 1시간이면 넉넉히 도착하는 곳에 있다.

    한때는 모텔촌으로 번성했으나 지금은 예술가가 터를 잡고 지자체가 뜻을 모으고 무엇보다 한일철강의 창립자 엄춘보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깊은 골짜기를 아름답게 가꾼 장흥유원지가 그곳이다. 거기 송암천문대가 있다. 아이들과 예술 작품과 더불어 한나절을 뛰놀 수 있는 아트파크가 있고 그 맞은편에는 탤런트 임채무 씨가 1989년부터 ‘평생의 소원’으로 여겨 운영하고 있는 테마파크도 있다. 봄철의 간편한 나들이로 장흥 골짜기만한 곳이 없다. 게다가 산세가 뚜렷하고 그 정상에 천문대까지 있으니 그저 나들이를 했을 뿐인데 적어도 육신의 힐링까지도 욕심이 난다. 아, 물론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모텔도 아직은 군데군데 성업 중이다.

    양주시 장흥면 계명산. 형제봉 자락에 들어선 송암천문대. 평북 용천 출생으로 광복 후 월남해 6·25전쟁이 끝난 뒤 서울에서 제철소 대리점을 시작으로 한평생 철강 산업에 매진한 엄춘보 회장이 2007년에 400억 원 가까운 사재를 털어 마련한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버리고 몇 걸음 올라가면 먼저 스페이스 센터가 나온다. 이 센터 안에 챌린저 러닝센터와 플라네타리움이 있다. 러닝센터는 1986년 발사 직후 폭발한 미국 챌린저호의 비운을 새기고 희생된 탑승자를 기리기 위해 유가족이 설립한 교육시설이다. 그 콘텐츠가 만만치 않다. 플라네타리움은 지름 15m 크기의 돔 스크린으로 사이버 우주여행과 밤하늘의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콘텐츠다.

    그리고 해발 443m 정상으로 올라간다. 그곳에 이르려면 ‘알비레오 알파’를 타야 한다. 저 아득한 밤하늘, 페르세우스 자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쌍둥이 별 이름인데, 실은 산 정상에 이르는 케이블카 명칭이다. ‘알비에로 알파’를 탑승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대체로 꼬마들과 그 가족들은 케이블카의 맨 앞에 선다. 그러면 케이블카가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면서 산 정상에 완만히 오르는 동안 산뜻한 멀미를 즐길 수 있다. 그런 가족을 위해 앞자리를 양보한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보게 되는데, 그 또한 절경이다. 저 멀리 인수봉과 사패산, 도봉산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장흥 일대 골짜기의 사람 사는 풍경도 들어온다.

    천문대 주관측실에는 600㎜급 반사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천문연구원과 표준과학연구원이 공동 제작한 순수 국내 기술의 망원경이다. 토성이 어른 손톱 크기로 관측되는데, 진정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런 크기로 본다는 자체가 어마어마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모두 7종류 13개의 천체망원경이 있고 더러 어떤 사람들은 그냥 눈으로 보나 망원경으로 보나 큰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제발 그런 터무니없는 얘기를 아이들한테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망원경 중의 하나로 시리우스 별을 본다. 아직 봄이 무르익지 않아 겨울밤의 별들이 완연하다. 지식과 유머를 겸비한 천문대 연구원의 말에 따라 북극성을 찾고 오리온 별자리를 찾고 쌍둥이자리, 큰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시리우스 별을 본다. 별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산문으로 알퐁스 도데의 ‘별’이 생각난다. 그는 이렇게 썼다.

    “만일 한 번만이라도 한데서 밤을 새워본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인간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는,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적막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시리우스 별을 본다. 큰개자리 α성의 고유한 이름이다. 동양에서는 천랑성(天狼星)이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세이리오스(‘타는 듯한’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 시리우스는 겨울 밤하늘에서 유난히 밝은 빛을 내뿜는다. 서양 사람들은 밝은 빛의 눈을 가진 늑대에 비유하여 ‘Dog Star’라고도 한다. 그 시리우스 빛을 한참이나 본 후 다시 ‘알비레오 알파’를 타고 내려온다.

    송암천문대에는 숙박이 가능한 방들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시설은 이 나라 곳곳에 있는 워크숍 센터와 흡사하다. 크기가 적절하게 배분된 방들이 산을 면하여 늘어서 있는데, 그래도 놀라운 점이 하나 있다. 텔레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의 스마트폰 일상과 압도적인 통신 기술을 생각한다면 텔레비전이 없다고 해서 TV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안테나를 발기시켜 한사코 텔레비전을 보자고 하면 못 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천문대의 생각은 다르다. 굳이 이곳까지 와서 텔레비전을 봐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을 텅 빈 방은 던지고 있다. 그 방 안에 한참을 머문다. 심심하다. 눈 둘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뀐다. 먼 데를 본다. 산들이 첩첩하다. 다시 방 안을 본다. 텅 비어 있다. 가만히 앉아본다. 굳이 아득한 산중의 큰 사찰만이 힐링의 장소가 아님을 깨닫는다.

    별 헤고 종이香 맡으며 감각하고 사유하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지지향’의 박경리 방.

    문향 가득한 ‘종이의 고향’

    텔레비전이 없는 곳이라, 옳거니, 무릎을 치며 한 군데 더 찾아가기로 한다. 사실 이맘때의 가족 외출이란 그 콘텐츠가 마땅치 않다. 한겨울이라면 스키장을 찾을 것이요, 한여름이면 해변으로 질주할 터인데 3월은 봄의 유록색도 아직 멀었고 가을의 단풍마저도 먼, ‘간절기’의 황사가 오히려 일상인 때다. 신학기라 아이들을 먼 데까지 데리고 다닐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주말의 한나절 나들이마저 생략한다면 얼마나 삭막한 3월이겠는가. 가뜩이나 건조한 날씨에 황사까지 몰려오는 3월 아닌가. 어떤 점에서는 교외로 나들이를 나가는 정도가 최적인 때인데, 이런 때에도 힐링을 잠시나마 체험해보려 텔레비전 없는 방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서울에서 서북방, 저 멀리 개성이나 임진각을 지향하되,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자유로를 따라 30여 분 달려가면 파주출판도시가 나오고 그 중심 건물이 되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 텔레비전 없는 방이 있다.

    이름하여 지지향(紙之鄕)! 종이의 향기 가득한, 종이의 고향이라는 뜻인데 있을 것은 다 있는 중형 규모의 근사한 게스트하우스지만 유독 한 가지, 텔레비전은 어느 곳에도 없다.

    텔레비전은 없고 대신 책이 그득하다. 로비에는 TV 대신 12칸 높이의 책 기둥이 서 있다. 그 안에 책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근사한 로비 장식과 책을 배경으로 늘씬한 모델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아날로그향이 그득한 호텔 로비에서 패션 화보를 찍는 중이다. 도시 곳곳의 호텔 로비를 잠식하고 있는 시끌벅적한 소음과 화려한 미디어 장치가 없다. 그래서 로비이기는 해도 책을 한 권쯤 읽을 만큼 안온하다.

    객실이 구비된 층으로 올라가면 마음이 더욱 차분해진다. 2∼5층에 모두 79개 객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5층에 가면 복도 한가득 책이 있고 방에도 물론 책이 가득하다. 거듭 말하지만 텔레비전은 없다. 책이 있고 잠시 멈춰진 시간이 있고 창밖으로는 책을 만들어내는 파주출판도시의 건축 작품들이 서 있다. 이런 곳에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 어느 곳에서도 당신은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지지향! 이런 곳이라면 마땅히 사람의 시간을 빼앗고 생각할 기능을 빼앗는 텔레비전 대신 책으로 은은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한 사람은 유서 깊은 인문예술 전문 출판사 열화당의 대표이자 파주출판도시의 이사장으로 벅찬 일을 도맡아 해온 이기웅 선생이다. 도심 어디에도 사유할 곳이 없다. 사무실에서도, 거리에서도 심지어 저마다의 집에서도. 우리는 사유할 공간이 없다. 책 읽을 곳마저 강탈당하고 있다. 그러니 이곳, 책을 만드는 도시에서만큼은 사유하고 성찰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기웅 선생의 취지다. 안내를 맡은 지지향의 총지배인 최성식 씨도 전문 호텔리어가 아니라 사진과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는 사유할 공간이 사라져가는 급박한 디지털 시대에 지지향 같은 공간이 하나쯤 있다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고 말했다.

    그 취지를 추존하여 나는 5층 객실 중 하나, ‘박경리 방’에 한동안 머물렀다. 이번이 두 번째다. 오래전에는 다른 방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5층의 방마다 한국 문학과 사상의 수준을 드높인 작가와 사상가들의 고명이 붙어 있다. 501호에는 함석헌 선생의 이름이 붙어 있고 508호에는 박완서 선생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이청준의 방도 있고 김훈의 방도 있다. 그중 하나, 박경리 선생의 작품과 유품이 있는 방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이미 읽은 ‘토지’이건만, 몇 쪽이라도 다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별 헤고 종이香 맡으며 감각하고 사유하다

    황토 구들방의 그을린 아궁이.

    이런 행위는 굳이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정도 되면 텔레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낮은 차원의 문답이 된다. 저물어가는 파주 북변의 황혼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낮춰 박경리며 함석헌이며 박완서의 문장 하나를 음미하는 것은, 텔레비전의 유무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안온한 방 하나 갖기를 소망하는 대도시 사람 누구라도 당장 실행할 만한 힐링이다. 만약 당신이 하루쯤 머문다면 잠시 지지향을 벗어나 출판도시를 산책하면서 헌책방 ‘보물섬’이나 고서점 ‘이가고서’를 둘러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지지향이다. 텔레비전이 없는 방에서 당신은 방금 헌책방에서 골라온 책을 펴놓고 하룻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이런 힐링이 따로 없다.

    논밭예술학교의 텅 빈 방

    내친김에, 지지향에서 10여 분 더 북향하여 달려가면 헤이리가 나온다. 자칫 문화 속물주의로 변질될 수도 있는 ‘예술마을 헤이리’가 그래도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은 헤이리의 몇 사람, 그들의 각별한 공간 때문이다.

    이를테면 황인용의 ‘카메라타’는 카페촌이면서 조잡한 공예품 판매점으로 전락할지도 모를 헤이리의 품격을 그나마 지키고 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논밭예술학교’가 있다. 거대한, 그러나 싱싱한, 무 하나가 입구를 지키고 선 건물이다. 이 절묘한 공간 안에 갤러리도 있고 카페도 있는데, 무엇보다 독특한 감각의 방이 세 칸이나 있어 구경하는 것 자체가 신선한 즐거움이 되는 곳이다. 아, 물론 이곳에도 텔레비전은 없다.

    1990년대 패션 산업의 선두주자였으며 2000년대 문화 후원의 정답을 줄기차게 써온 ‘쌈지농부’의 천호균 대표가 마련한 ‘농부 미학’의 한 거점이다. 그는 2009년에 패션 브랜드 ‘쌈지’를 매각하고 2010년부터는 서울형 예비사회적 기업인 쌈지농부를 설립해 도시 농부의 한 전형을 일구고 있다.

    그는 말한다. “쌈지농부는 ‘친환경’ ‘생긴대로’ ‘토종’을 핵심으로 한다. 농산물에 담겨 있는 생명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사회적 기업 흙살림의 이태근 대표와 공동 작업을 오래했고 서울시와도 협력 사업을 하고 있다. 그 거점이 이곳 논밭예술학교다.”

    논밭예술학교는 아트디렉터 최정화를 비롯해 미술작가 7명이 공동으로 논의하되 저마다 맡은 공간을 독특하게 디자인하여 꾸며져 있다. 기본 콘셉트는 ‘농사가 예술이다’는 것! 그것에 바탕을 두고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가 꾸며졌고 그 안에서는 ‘쌈지농부’가 벌이는 유기농 생태 농업과 관련된 요리, 강좌, 세미나, 전시 등이 벌어진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경사가 가파른 대지, 건축물을 올리기에는 결함이 많은 곳이지만 바로 그 점을 역발상으로 활용해 세 칸의 방이 서로 이어져 있으되 각각 독립하여 있다. 모든 방이 저마다의 외부를 가지고 있다. 이는 마치 그 옛날 가난한 동네의 집들이 그래도 입구가 따로 있고 대문도 따로 있던 것을 연상케 한다. 오늘날 계단식이든 복도식이든 판에 박힌 아파트의 대문이나 그 구조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강운 작가의 ‘하늘’ 방은 푸른 하늘과 바람이 모티프다. 천장이 높고 다락방도 있다. 작가의 작품이 방을 더욱 청신하게 만든다. ‘소금’ 방은 이미경 작가가 디자인했다. 언뜻 보기에 비좁은 방인데 그 안을 원목 큐브로 가득 채웠다. 그래서 더 좁아 보이지만 여러 층위를 구성하는 큐브들이 다양한 감각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진경 작가와 박형진 시인이 함께 구상하고 만든 ‘풀벌레 소리’ 방이 있다. 놀랍게도 황토 구들방이다. ‘풀벌레 소리’ 방에 들어서면 먼저 부엌이 나온다. 그 옛날 가난한 동네의 부엌을 닮았다. 부엌살림이 단출하게 놓여 있다. 아궁이는 벌써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실제로 이 방은 나무 장작을 정성껏 태워서 온돌 난방을 한다. 그래서 방의 아랫목도 그 옛날의 방처럼 검게 타 있다. 간이 다락방 위에까지 황토 구들방 냄새가 배어 있다. 이런 구조와 냄새는 아주 각별하다.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냄새이며 오래 전에 사라져버린 다락방이다.

    물론 이 방들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나는 텔레비전이 없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한참이나 머물러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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