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관 17명 중 절반 이상 고시 출신
- 전문성, 안정성 중시…한번 써본 사람 중용
- 정책과 인재 산실된 국가미래연구원
‘신동아’는 박근혜호(號)의 공동운명체가 된 파워 엘리트 100인을 선정해 그 면면을 살펴봤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대선 후보 경선과 대선 본선, 대통령직인수위 구성 등의 단계에서 다양한 인재풀이 형성됐다. 일부는 첫 조각(組閣)과 비서진 인선 과정에 자리를 잡았지만, 대부분은 ‘대기’ 모드에 들어갔다. 이들 역시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언젠가는 핵심 요직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선대위와 인수위에 참여했던 주요 인사들도 파워 엘리트 100인에 포함시켰다. 다만 가변적인 정치상황을 고려해 새누리당 국회의원 등 정치권의 박 대통령 인맥은 제외하고 청와대, 내각, 주요 권력기관장 등 정무직만을 대상으로 삼았음을 밝혀둔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 인선에 나타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전문성’과 ‘안정성’ 중시로 요약할 수 있다. 17개 부처 장관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시 출신의 정통 관료들로 채워졌고, 청와대 비서실에 포진한 비서관 중에도 관료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내각과 비서진 임명에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은 한번 써본 사람을 다시 중용하는 경우가 많다. 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김용준 위원장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 이어 국무총리로 발탁했다가 낙마하자, 지난해 총선 때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겼던 정홍원 총리를 다시 발탁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청와대와 내각에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내각에 인물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구실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장관급 인사는 17개 부처와 4개 위원회 등 총 21명인데, 이 가운데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 5명으로 전체의 4분의 1에 육박한다. 미래연은 청와대 비서진 등 고위공직자도 다수 배출했다. 지난 대선 기간에 박 대통령의 복지 등 주요 정책공약을 입안하고 새 정부의 조직개편을 주도한 인물들 역시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의 ‘콘텐츠’를 만든 국가미래연구원은 정책의 산실이자 인재의 산실이 됐다. 내각과 청와대에 포진해 박근혜 시대를 함께 열어갈 파워 엘리트 100인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
우리나라 국정 운영의 최고결정기구인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17개 부처 장관들은 해당 분야 정책 입안에서부터 집행까지 실질적으로 나라살림을 책임진 사령탑이다.
정홍원 국무총리
(69. 경남 하동. 진주사범-성균관대 법학과)
정홍원 국무총리는 3월 14일 서해 서북단 연평도를 찾았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 위협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비 태세를 점검하기 위한 행사였다. 정 총리는 주민과의 간담회에서 “북에서 도발성 발언을 계속 하다보니까 여러분이 불안해한다는 보도도 있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정부가 여러분의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고 했다. 정치권 한 인사는 이런 모습을 보고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떠올랐다”고 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쓰촨성 대지진 등의 현장을 누비며 “총리가 왔다. 기운 내라”고 외치는 등 민생 중심의 활동을 펼쳐 중국 국민에게 인기가 높았다.
정 총리도 취임 직후부터 민생현장을 방문하면서 서민의 삶을 보살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앞서 3월 2일에도 운동화를 신고 파란색 점퍼차림으로 숭례문 복원 공사장과 남대문시장, 종로소방서, 인사동 화재지역 등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30년 검사 생활을 한 그를 지난해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 4·11 총선 공천위원장으로 발탁했고, 새 정부 첫 총리를 맡겼다. 정 총리는 개성이 강하지 않은 온화하고 원만한 성품이다. 따라서 법치의 상징보다는 민생현장을 찾아 서민의 목소리를 듣고 격려하는 쪽이 더 어울린다는 말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맡아 공단이 법률취약계층을 위한 ‘친서민 법률복지기관’으로 자리 잡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63. 충북 청주. 경기고-서울대 경영학과)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부총리로 격상된 경제부처의 수장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낸 그는 ‘경제민주화=공정 경쟁’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현 부총리는 경제민주화가 화두에 올랐던 대선 전후에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 논의가 (정치권이) 의도한 것과 다르게 반(反)기업 정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경제민주화는 슬로건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소신과 비슷하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62. 경북 영덕. 경북고-서울대 응용수학과)
새 정부에서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는 박 대통령의 국정목표인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핵심 부처다. 미래부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는 박 대통령은 김종훈 미국 벨 연구소 소장을 야심차게 영입했으나 그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와 관련해 ‘정치권의 난맥상’을 비판하며 사퇴하자 자신의 싱크탱크에 참여했던 정보통신 전문가인 최문기 KAIST 경영과학과 교수를 대타로 기용했다. 그는 한국통신학회 부회장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비상임이사를 지낸 정보통신 전문가다. 국가미래연구원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바도 있다. 과학계에서는 최 장관이 전자와 과학 분야에 오랫동안 천착한 만큼 미래부의 핵심 기능인 정보통신기술(ICT) 융합과 과학 연구개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
(61. 서울. 서울고-서울대 철학과)
위덕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다 장관에 발탁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행시(22회)를 거쳐 교육부에서 행정사무관을 시작으로 기획관리실 교육정책기획관, 서울특별시 교육청 부교육감,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차례로 지냈다. 교육 관료 출신이 교육장관으로 발탁된 것은 교육부 사상 처음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60. 서울. 경기고-서울대 법학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 분야 핵심 브레인이다.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으로 참여했고, 인수위에서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도 지냈다. 외시(10회) 출신으로 1977년 외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외무부 북미1과장과 주(駐) 미국공사 등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외무부에서 주로 미국 관련 업무를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NSC 정책조정실장, 외교부 차관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내기도 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54. 서울. 용문고-고려대 정외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신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국가미래연구원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멤버다. 학계에서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평가한다. 남북관계에서 원칙적 입장을 중시하면서도 대화의 필요성도 동시에 강조해온 균형감 있는 학자로 통한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의 무게를 전반적으로 안보 쪽에 더 두는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만 류 장관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류 장관은 북한 핵실험 사태가 터진 직후에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핵보유국으로 가려는 북한의 행보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정책”이라며 “대북정책의 기조 자체를 바꿀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56. 서울. 경기고-성균관대 법학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새 정부에서 정홍원 총리,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성대 법학과 전성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황 장관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난제가 많다. 무엇보다 검찰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황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말과 구호가 아닌 실천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적당히 보여주고 위기만 넘겨보려는 진실성 없는 변화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거듭나는 개혁과 쇄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출신인 황 장관이 조직의 반발을 뚫고 강도 높은 개혁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황 장관이 청와대의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검찰 내부의 반발에 맞닥뜨려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64. 전북 전주. 서울고-육사 28기)
박근혜 대통령은 3월 22일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가 사퇴함에 따라 공석이 된 국방장관직에 김관진 현 장관을 유임시켰다. 이로써 김 장관은 국방부 창설 이래 첫 유임 장관이 됐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국가 안보 위기 상황에서 다시 정치적 논쟁과 청문회로 시간을 지체하기에는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위급한 상황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유임 배경을 설명했다.
육사 28기로 임관한 김 장관은 풍부한 야전경험과 정책경험을 가진 ‘강골 무인(武人)’ 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 장관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육사 한해 후배다.
홍남기 기획비서관 (53. 강원 춘천. 춘천고-한양대 경제학과)
홍남기 기획비서관은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으로 있으면서 인수위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된 것을 계기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행시 29회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해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과 정책실장 정책보좌관, 기획예산처 예산기준과장, 주미대사관 재경관을 역임한 예산통이다. 청와대 근무 당시 새로운 정책개발과 혁신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균 국정과제비서관 (51. 서울. 동대부고-한국외대 법학과)
오균 국정과제비서관은 국무총리실 국정운영1실 기획총괄정책관으로 있다가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로 파견돼 청와대 비서진 동참으로 이어졌다.
◆ 미래전략수석실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실도 신설 부서다.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 기능을 결합해 범국가차원의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원을 찾고, 기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짜게 된다.
최순홍 미래전략수석
(63. 서울. 경기고. 서강대 전자공학과)
최순홍 미래전략수석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호흡을 맞춰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역할을 하게 됐다. 박 대통령과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문인 최 수석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정보통신기술 전문가다. 지난 2004년에는 내부 정보기술(IT) 시스템 운영업무를 총괄하는 최고책임자 지위인 정보통신기술실장 자리까지 올랐다. 2007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신설한 사무국 내 신기술국장(Chief Information Technology Officer)을 맡아 지난해 8월까지 근무하면서 유엔의 IT 현대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장진규 과학기술비서관
(51. 충남 공주. 남강고-서울대 경제학과)
장진규 과학기술비서관은 1992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으로 들어가 20년 동안 자리를 지킨 과학자다. STEPI의 기술경제연구센터 소장, 신성장동력센터 소장, 부원장을 거쳐 2011년부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과학기술정책국장을 맡았다. 인수위에서는 교육과학분과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김용수 정보방송통신비서관
(50. 서울. 동성고-서울대 법학과)
김용수 정보방송통신비서관은 행시(31회) 출신으로 옛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방송통신진흥기획관을 지내다 인수위 여성·문화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을 지내 이번이 두 번째 청와대 근무다.
최홍진 기후환경비서관
(51. 대전. 보문고-연세대 화학공학과)
최홍진 기후환경비서관은 환경부 자원순환국장 출신으로 인수위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됐다가 비서실로 직행했다. 2009년에는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의 기후변화대응팀 팀장을 맡은 바 있어 보직을 제대로 찾아간 셈이다.
◆ 경제수석실
조원동 경제수석
(57. 충남 논산.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론’을 구체화하는 청와대 책임자는 조원동 경제수석이다. 조 수석은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등을 거친 엘리트 경제관료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또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 기획조정 분과에서 전문위원을 맡았고,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과 사무차장을 역임했다. 조 수석은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호흡을 잘 맞출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을 거쳤고, 현 부총리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재임 기간에 조 수석은 연구원 내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했다. 경제수석실에는 9개 수석실 가운데 가장 많은 5명의 비서관이 전문 분야별로 포진해 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의중을 실어 해당 경제부처와 정책을 조율한다.
주형환 경제금융비서관
(52. 서울. 덕수상고-서울대 경영학과)
기획재정부 차관보 등을 거친 주형환 경제금융비서관은 경제정책의 전략과 기획 분야 전문가로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행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기획재정부 성장기반정책관, 대외경제국장으로 일하며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과 대외경제 전략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대외경제국장 시절에는 지금도 매주 열리는 대외장관회의를 기획했다.
문재도 산업통상자원비서관
(54. 광주. 광주일고-서울대 경제학과)
문재도 산업통상자원비서관은 지식경제부 내 대표적인 국제통이다.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여러 차례 외국과의 원전 수주 협상을 주도했다. 주(駐) 제네바국제연합 사무처 공사참사관과 통상협력정책관, 자원개발원전정책 , 산업자원협력실장 등을 역임했다. 성품이 온화하면서도 깔끔한 일처리로 지경부 내에 따르는 후배가 많다.
김경식 국토교통해양비서관
(53. 대구. 성광고-한양대 경제학과)
김경식 국토교통해양비서관은 국토교통부의 전신인 건설교통부와 국토해양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건설교통부 기획담당관으로 근무한 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 파견 근무하기도 했다. 김 비서관은 2006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정책홍보관리본부장으로 재직하다 주중대사관 참사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국토정책국장과 건설수자원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정황근 농축산식품비서관
(53. 충남 천안. 대전고-서울대 농학과)
‘조금 손해 보고 살자’를 좌우명으로 삼은 정황근 농축산식품비서관은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국장으로서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청와대로 직행했다. 친환경농업정책과장, 혁신인사기획관, 대변인, 농촌정책국장, 농업정책국장 등을 역임했다.
최수규 중소기업비서관
(53. 전북 전주. 전주고-고려대 경영학과)
최수규 중소기업비서관도 중소기업청에서 인수위에 파견됐다가 비서관직에 올랐다. 중소기업청에서는 기술경영혁신본부장과 창업벤처국장 등을 지내며 중소기업 기술개발 등에 관심을 쏟아왔다.
◆ 교육문화수석실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55. 서울. 경복고-성균관대 경영학과)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은 이번이 세 번째 청와대 근무다. 행시(25회) 합격 후 공직생활 대부분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보냈다.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행정관과 관광체육비서관으로 일했다. 대(代)를 바꿔가며 행정관-비서관-수석비서관으로 단계를 밟아 올라갔다. 이명박 정부에서 문광부 제1차관을 지냈고, 2012년 4월부터 예술의전당 사장을 맡았다.
인수위에서 여성·문화분과 간사로 활동한 그는 박근혜 정부 첫 내각 인선 때에는 문광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모 수석은 “인수위 간사로 발탁되기 이전에 박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인 문화콘텐츠 사업 육성, 한류 확산 등을 주도할 적임자를 찾던 중 주변으로부터 모 수석의 업무 추진력을 전해 듣고 그를 발탁했다고 한다.
김재춘 교육비서관
(50. 광주. 서석고-서울대 교육학과)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다양한 교육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과도한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해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잠재력이 발휘되는 교육으로 전환, 학생들의 학원 의존도를 낮추고 학교교육에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남수 장관이 이끄는 교육부와 긴밀한 협력체제를 유지해 이를 추진할 청와대 부서가 교육비서관실이다.
모철민 수석이 문화관광 전문가인 만큼 교육 분야는 김재춘 교육비서관에게 크게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영남대 교수 출신인 김 비서관은 나승일 교육부 차관과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교육추진단 추진위원, 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전문위원으로 함께 활동한 데 이어 이번에 다시 교육개혁에 손발을 맞추게 됐다.
서미경 문화체육비서관
(44. 대구. 하양여고-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새누리당 관료 출신인 서미경 문화체육비서관은 당내에서 문화 및 언론 분야 전문가로 손꼽힌다. 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있으면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의원들의 상임위 전략 수립에도 간여했다. 1992년 민주자유당 공채 2기로 당료 생활을 시작해 당 재정국, 조직국, 여성국, 정책국 등을 두루 거쳤다. 정치에도 뜻을 둬 2008년 18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19대 총선 때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순위 33번을 받았으나 당선권에 들지 못했다. 청와대 비서관 중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과 함께 나이가 가장 적다.
류정아 관광진흥비서관
(50. 전북. 서울대 인류학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융합연구실장으로 있다가 청와대 비서실에 발탁된 류정아 관광진흥비서관은 프랑스 파리 국립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프로방스 지방의 전통축제 분석으로 사회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축제’를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 고용복지수석실
최성재 고용복지수석
(67. 경남 고성. 서울대 사회사업학과)
최성재 고용복지수석은 인수위 고용복지분과 간사에 이어 다시 한 번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고용·복지정책을 주도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최 수석은 박 대통령의 복지 구상 설계를 주도한 정책 브레인이다. 생애 과정을 나눠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100세 시대 일자리 정책’ 등 대표적인 복지 공약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대선 캠프에서는 공약개발을 전담하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편안한 삶 추진단’ 단장으로 활동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 만든 서울대 기숙사 ‘정영사’ 출신으로,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길다. 1986년부터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지내다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경실련 사회복지정책분과 위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장옥주 보건복지비서관
(54. 서울. 서문여고-이화여대 법학과)
장옥주 보건복지비서관은 대선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최 수석과 일을 같이 한 뒤 청와대에 나란히 입성했다. 행시 25회 출신으로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은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 2호다. 보건복지부에서 아동청소년정책실장과 저출산고령화사회정책실장을 거쳐 사회복지정책실장을 맡았다.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추진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청와대 입성 전까지 복지부 차관 후보로도 거론됐다.
한창훈 고용노동비서관
(51. 충남 천안. 대전고-경희대 경제학과)
한창훈 고용노동비서관은 고용노동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전문 관료다. 노동부 시절 고용정책과정, 기획예산담당관, 법무담당관, 정보화담당관, 국제협력관 등 요직을 거쳤고, 고용노동부로 바뀐 뒤에는 인력수급정책관을 거쳐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겸 사무처장을 지냈다. 지난해 7월부터 고용정책실장을 지내다 새 정부 들어 청와대에 입성했다.
정영순 여성가족비서관
(61. 서울.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신으로 사회복지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한국아동복지학회 회장과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을 지냈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여성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인수위 여성·문화분과 전문위원을 거쳐 청와대에 입성했다. 정 비서관은 청와대 비서관 40명 중 가장 연장자다.
◆ 외교안보수석실
박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북핵 사태를 맞아 국정의 우선순위를 안보위기 관리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 외교-안보라인도 임명장을 받고 곧바로 비상대기체제에 돌입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에는 주철기 수석을 위시해 외교·국방·통일 등 3명의 비서관이 포진해 있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67. 강원 원주. 서울고-서울대 서양사학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34년간 외무 공직에서 활동한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사무총장 겸 부회장을 지냈다. 1972년 외시 6회로 공직에 입문한 후 주(駐)유엔대표부 참사관, 주포르투갈 참사관, 주유럽공동체(EC)대표부 공사, 주제네바대표부 차석대사, 주모로코 대사,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주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했다.
김형진 외교비서관
(52. 강원 춘천. 마포고-서울대 경제학과)
김형진 외교비서관도 외시 17회로 미국통 직업외교관이다. 외무부 주미 2등 서기관을 시작으로 외교통상부 북미 1과장, 주미 공사참사관, 북미국장 등을 거쳤다. 서기관 시절에는 청와대 파견근무를 했다. 또 중국에서도 1등 서기관을 지낸 바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에 중국통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외교안보수석실이 한반도 핵위기 속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을 모은다.
연제욱 국방비서관
(55. 서울. 배문고-육사 38기)
인수위에서 외교·통일·국방분과 전문위원을 지낸 연제욱 국방비서관은 예비역 육군소장으로,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을 지낸 경력이 있다. 국방부 사이버사령관, 정책기획관도 지냈다.
홍용표 통일비서관
(49. 서울. 경희고-연세대 정외과)
홍용표 통일비서관은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시작해 한양대 정외과 교수와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실장을 거쳤다. 대선 기간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 외교안보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대선 때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외교통일추진단 멤버로 참여했고, 인수위의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했다.
◆ 국가안보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65. 광주. 광주일고-육사 27기)
허태열 비서실장이 이끄는 비서실과 별도로 운영되는 국가안보실은 사실상 NSC에서 운영하던 기존의 위기관리센터가 개편된 조직이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대선 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아 박 대통령의 국방 관련 공약 작성을 총괄 지휘했다. 인수위에서도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를 맡았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국방장관을 지낸 그는 2007년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 ‘꼿꼿 장수’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는 후보 시절 수시로 통화하며 조언을 할 정도로 상호 신뢰가 깊다. 국가안보실장 산하에는 3명의 비서관이 있다.
김희철 위기관리비서관
(55. 경기 평택. 대신고-육사 37기)
김희철 위기관리비서관은 에비역 육군 소장으로 육군 훈련소 참모장, 육군대학 교수부장, 8군단 참모장, 육본 정책실장 등을 거쳤다.
김홍균 국제협력비서관
(52. 부산. 용산고-서울대 영문과)
김홍균 국제협력비서관은 외시(18회)를 수석으로 합격한 뒤 외교통상부에 근무하면서 두 차례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한 바 있다. 2002년 김영삼 정부 때 외교안보비서실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실에서 행정관 생활을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 전문위원도 거쳤다.
서용석 정보융합비서관
(54. 강원 인제. 배명고-육사 37기)
서용석 정보융합비서관은 김희철 위기관리비서관과 육사 동기로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서 비서관은 육군 제2작전사령부 정보처장, 육군 정보사 참모장, 합참 정보운영처장, 국군정보사령부 제1정보여단장 등 주로 정보 분야에서 일해온 대표적 군 정보통이다.
◆ 경호실
박흥렬 경호실장
(64. 부산. 부산고-육사 28기)
청와대 3실장 가운데 한 명인 박흥렬 경호실장은 육군참모총장(예비역 대장) 출신이다. 육군의 최고지휘관이던 박 실장이 대통령 경호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가자 격에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박 실장은 야전에서뿐 아니라 인사, 개혁, 혁신 관련 직책을 두루 거치면서 육군 지휘체계의 균형감을 갖췄고 육군 조직에 대한 깊은 이해도 갖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2005년 육군참모차장 시절에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호흡을 맞췄다.
| 박 근혜 정부 ‘인재풀’ |
대통령선거 때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에 참여했거나 대선 이후 꾸려진 대통령직인수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박근혜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언제든 ‘차출’될 수 있는 예비군과도 같다. 주요 인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선대위 주요인사
김종인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73. 서울. 중앙고-한국외대 독일어과)
안대희 전 정치쇄신위원장(58. 경남 함안. 경기고-서울대 법학과 중퇴)
김무성전 총괄선거대책본부장(62. 부산. 중동고-한양대 경영학과)
최외출전 기획조정특보(57. 경북 김천. 김천중앙고-영남대 지역사회개발학과)
권영세전 종합상황실장(54. 서울. 배재고-서울대 법학과)
이성헌전 국민소통본부장(55. 전남 영광. 명지고-연세대 체육교육학과)
김광두국가미래연구원장(66. 전남 나주. 광주일고-서강대 경제학과)
이상돈전 비대위원(62. 부산. 경기고-서울대 법학과)
지난해 11월 13일 세종시에서 열린 새누리당 세종시당선대위출범식.
2월 6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회의실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원회 3차 전체회의.
김진선전 취임준비위원장(67. 강원 동해. 북평고-동국대 행정학과)
변추석전 홍보팀장(57. 경남 마산. 용마고-중앙대 시각디자인학과)
박선규전 대변인(52. 전북 익산. 남강고-고려대 교육학과)
한광옥전 국민대통합위원장(71. 전북 전주. 중동고-서울대 영문학과)
김경재전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71. 전남 순천. 순천고-서울대 정치학과)
인요한전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 (54. 전남 순천. 연세대 의학과)
윤주경전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53. 충남 예산. 창덕여고-이화여대 화학과)
김중태전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73. 경북 의성. 경북고-서울대 정치학과 4년 제적)
옥동석전 국정기획조정분과위원(56. 경남 거제. 부산고-서울대 경제학과)
박효종전 정무분과 간사(66. 서울. 순심고-가톨릭대 신학부)
장 훈전 정무분과 위원(51. 인천. 여의도고-서울대 정치학과)
이승종전 법질서사회분과 위원(61. 전남 목포. 용산고-서울대 화학공학과)
박흥석전 경제1분과위원(68. 전남 해남. 문태고-목포교대)
홍기택전 경제1분과위원(61. 서울. 경기고-서강대 경제학과)
곽병선전 교육분과 간사(71. 중국 북간도. 청주사범-서울대 교육학과)
장순흥전 교육분과위원(59. 서울. 경복고-서울대 핵공학과)
안상훈전 고용복지분과위원(44. 서울. 압구정고-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56. 인천. 제물포고-연세대 정외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서 직책 없이 친박계를 이끌던 시절 ‘비서실장 격’으로 불렸던 ‘원조 친박’이다. 행시 23회 출신으로 총무처와 내무부에 근무했고, 김포시장을 두 차례 지냈다. 17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한 이후 내리 3선을 했다. 2006년 지방선거 때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을 지냈다. 지난 대선 때에는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직능본부장을 맡아 활동했고, 대통령취임준비위 부위원장을 거쳐 안전행정부 장관에 올랐다. 유 장관은 3월 13일 출입기자단과의 첫 오찬 간담회에서 “정당 공천제에 기초한 현 지방자치제도에 부작용이 많다. 내년 지방선거 이전까지 정치권과 협의해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초단체장 등의 공천 배제는 박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57. 서울. 서울고-서울대 무역학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3월 11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2006년 공무원을 마칠 때 ‘우리 문화부에 신세 진 것이 크다. 이 신세를 갚겠다’는 부채의식이 있었다. 그런 개인적인 숙제가 다시 (장관으로) 돌아오면서 공적인 숙제가 됐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밝힌 국정과제 가운데 문화부 소관 업무 파악에 몰두하고 있다. 가장 먼저 ‘대체 휴일제’를 추진할 의사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대체 휴일제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의 3대 국정과제보다는 훨씬 작은 부분”이라면서도 “국민이 잘 쉴 수 있어야 소비도 생긴다”며 추진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동필 농림축산부 장관
(58. 경북 의성. 대구고-영남대 축산경영학과)
이동필 농림축산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하고 산불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민생현장 방문을 통해 생활물가 안정을 위한 방안으로 유통단계 축소를 주문함에 따라 현재 최다 7단계인 유통단계를 4단계로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1980년 한국농촌경제원 책임연구원에서 시작해 원장에까지 오른, 농촌경제라는 한 우물을 파온 농림분야 전문가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57. 경북 경산. 부산고-서울대 무역학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행시 25회 출신으로 산업자원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쳐온 정통 관료다. 수출과장과 투자정책과장, 산업정책과장을 지냈고,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뒤 대통령비서실에도 잠시 근무했다. 이후 자원개발정책관과 산업경제정책관을 거쳐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윤 장관은 무엇보다 외교부로부터 넘겨받은 ‘통상교섭’ 업무를 성공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 앞에 놓여 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63. 전북 고창. 경기고-서울대 법학과)
현역 국회의원인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내각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3월 14일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해 사실상 물거품이 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과 관련,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진 장관은 “용산코레일 땅만 재개발하면 문제가 없는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민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하룻밤 사이에 서부이촌동까지 포함시켜버렸다”며 “오 전 시장이 잘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 장관은 지난 2004년부터 서울 용산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58. 부산. 부산여고-부산여대 지리교육학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을 지내다 깜짝 발탁됐다. 그는 1997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입사한 뒤 16년 동안 연구에 매진한 정통 학자 출신이다. 윤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기대하지 않은 직책에 내정돼서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해양수산부 폐지를 결정하자 열린 국회 한 세미나에 참석해 ‘해양수산부 존치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 그의 논지를 눈여겨본 박 대통령이 ‘수첩’에 메모해뒀다가 발탁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혼으로 치매를 앓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윤 장관은 ‘현대판 효녀 심청’으로도 알려져 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
(57. 충북 충주. 충주공전-한양대 기계공학과)
기술고시 출신으로 환경부에서 2004년까지 근무하다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심의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기상청 차장을 지낸 뒤 2008년부터 한양대 교수를 지냈다. 환경부를 떠난 지 9년 만에 장관으로 금의환향한 셈이다. 대선 때에는 환경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국민행복추진위 지속가능국가추진단장을 지냈다. 인수위에서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전문위원을 지낸 뒤 환경부 장관에 발탁했다. 그는 환경부 승격 이후 내부 출신으론 세 번째로 장관에 올랐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56. 전남 완도. 서울고-한국외대 영어과)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고용과 노동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 출신이다. 2008년에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냈고, 한국사회보장학회장과 한국연금학회장을 지냈다. 인수위에서 고용복지분과 전문위원을 거쳐 장관에 올랐다. 방 장관은 국정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47. 서울. 세화여고-서울대 외교학과)
정치인 출신으로 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지낸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군 가산점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조 장관은 3월 11일 취임식 이후 가진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군 복무한 사람에 대한 예우와 대우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 발의된 법 자체는 군 복무한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해결이 되지는 않는다. 군 복무에 소요된 시간과 노력을 제대로 보상할 수 있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논의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53. 서울. 서울고-연세대 경제학과)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부친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국방부 장관을 지낸 서종철 씨다. 부자가 각각 부녀 대통령을 보좌하는 장관에 오르는 특이한 기록을 갖게 됐다. 국가미래연구원 국토·부동산·해운·교통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인수위에서는 경제2분과 위원을 지냈다. 서 장관은 박 대통령의 핵심 부동산 정책인 ‘행복주택’과 ‘목돈 안 드는 전세’ 등의 추진을 위한 청사진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56. 충북 음성. 덕수상고-국제대 법학과)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관가에서 ‘고졸 신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은행 일과 대학 공부를 병행하는 주경야독으로 1982년 같은 해에 입법고시(6회)와 행정고시(26회)에 잇따라 합격했다.
공직생활은 경제기획원(EPB)의 핵심 조직인 경제기획국에서 시작해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등 예산과 재정분야 요직을 거쳤다. 2011년에는 기재부 예산실장으로 세계 금융위기 극복에 일조했고, 2차관도 지냈다.
김 실장은 법조계 출신인 정홍원 총리를 보좌해 각종 정책 현안들을 챙기고 부처 간 정책 갈등을 실무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은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기존 국무총리실이 국무조정실과 비서실(차관급)로 나뉘면서 신설된 직제다.
| 6대 권력기관장 |
박근혜 대통령은 남재준 국정원장 임명에 이어 3월 15일 국정원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꼽히는 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권력기관 ‘빅4’를 인선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사안은 지역별 안배다.
박 대통령은 영남과 호남을 모두 배제하고 서울 3명(남재준 국정원장·채동욱 검찰총장·이성한 경찰청장), 대전 1명(김덕중 국세청장)을 발탁함으로써 논란의 싹을 없앴다.
4대 권력기관에 이어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박근혜 정부에서는 ‘경제검찰’ ‘금융검찰’로 통하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의 역할과 기능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69. 서울. 배재고-육사)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40년간 군에 몸담은 예비역 4성 장군 출신으로,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국방안보분야 특보를 맡았다. 육군참모총장 재임 때 육군 장성진급 비리의혹사건 수사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 한평생 몸담았던 군을 떠났다. 당시 1군사령관으로 남 원장과 돈독한 사이였던 새누리당 정수성 의원(예비역 대장)은 그를 ‘군의 전설’이라고 표현했다.
남 원장이 언제 어떻게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정 의원은 “어느 날 남 장군과 만나 평소와 다름없이 세계정세와 국가 안보에 대한 담론을 즐겼다. 그날은 특별히 ‘이 국가를 후손들에게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의기투합했고, 그 덕분에 박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날 이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두 사람은 박근혜 캠프 안보자문그룹에 들어갔다. 자문그룹에 4성 장군 출신은 두 명뿐으로, 남 원장이 좌장 역할을 맡고 정 의원이 뒤를 받쳤다고 한다.
채동욱 검찰총장
(54. 서울. 세종고-서울대 법학과)
채동욱 검찰총장은 ‘특수통’이다. 비자금 의혹을 비롯한 대형 경제사건을 주로 다뤘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수사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의혹,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의혹 사건 등을 처리했다. 그의 이 같은 경력은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사회지도층의 부패 척결 같은 ‘법치’에 부합할 뿐 아니라, 대기업 견제를 전제로 하는 경제민주화 의지를 실현하는 데도 걸맞다고 볼 수 있다.
채 총장은 원칙과 정도(正道)를 중시하면서도 조직의 인화를 강조해 ‘합리적 검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검찰 내분 사태로 한상대 전 총장이 퇴진한 후 2개월여 동안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맡아 조직을 안정시켰으며 지난해 12월 서울고검 검사장으로 임명됐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 육군 법무관으로 근무한 뒤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대검 수사기획관, 전주지검 검사장, 법무부 법무실장 등을 지냈다. 출신지는 서울이지만 원적은 전북이다.
이성한 경찰청장
(57. 서울. 홍익고-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성한 경찰청장은 새 정부의 경찰수장으로서 무난한 인물이란 평가다. 서울 출신이어서 권력기관장의 지역 안배 문제에서 자유롭고, 조직 내에서 탈권위, 화합형 인물로 꼽히는 까닭이다. 다만 ‘통솔형’보다는 ‘관리형’에 가까워 이 청장이 수사권조정 문제 등 경찰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경찰 내부에서 나온다.
이 청장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에 간부후보 31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수사, 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했으나 특히 외사 분야에 정통하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 경찰 관련 공약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정치외압에 따른 잦은 교체로 비판을 받았던 경찰청장의 임기 보장을 약속했다. 그러나 취임 후 20일 만인 3월 15일 김기용 경찰청장이 임기(2년)를 1년여 남기고 사의를 표명하자 이를 수리한 뒤 곧바로 이 청장을 후임으로 내정했다.
박 대통령은 3월 11일 새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해 앞으로 인사가 많을 텐데,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는 공공기관의 대대적인 인사 물갈이 예고이자, 박근혜 정부에서의 ‘MB(이명박) 색깔 빼기’로 받아들여졌다. 경찰청장 교체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김덕중 국세청장
(54. 대전. 대전고-중앙대 경제학과)
김덕중 국세청장은 징세법무국장 시절 악성 체납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숨긴 재산 무한추적팀’을 창설, 징수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다졌다.
김 청장의 조직 통솔 스타일은 ‘덕장(德將)형’이다. 국세청 직원들로부터 ‘함께 일 해보고 싶은 관리자 1순위’에 꼽히기도 했다. 국선도를 즐기며 유연한 성격과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하지만 업무처리는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평가다.
행시 27회로 세무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해 천안세무서장, 국세청 전산운영담당관, 청와대 파견 근무, 국세청 부동산거래관리과장, 서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세원관리국장·조사1국장, 대전지방국세청장, 국세청 기획조정관·징세법무국장,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을 거쳤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55. 서울. 휘문고-서울대 경제학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제1차관을 거친 경제금융통이다. 행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 금융정책과장, 국제금융심의관, 국제금융국장과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금융위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업무능력과 친화력을 겸비해 재정부 노동조합이 선정하는 ‘닮고 싶은 상사’에 지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5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 청와대 |
정무직의 ‘꽃’은 청와대다. 권력의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에는 장관급인 3실장(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경호실장)체제로 이뤄져 있다. 비서실장은 차관급인 9명의 수석비서관을 지휘해 분야별로 대통령을 보좌하고, 안보실장은 안보 분야를 총괄하고, 경호실장은 대통령 경호업무만 맡는다. 1급 비서관 40명은 비서실장실(5명)과 각 수석비서관실(32명), 국가안보실(3명)에 각각 포진해 있다. 경호실 직제는 별도의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편성돼 있다. 청와대 안에서 3실장의 지위는 표면상 동등하지만 아무래도 실질적인 힘은 비서실장에게 쏠린다. 9명의 수석비서관을 거느리고 있고, 37명의 비서관, 그리고 각 비서관실에 소속된 적게는 3~4명, 많게는 10명 안팎에 달하는 2급 이하 행정관들의 최종 지휘관이 비서실장이기 때문이다.
◆ 비서실장실
허태열 비서실장
(68. 경남 고성. 부산고-성균관대 법학과)
박근혜 대통령의 첫 비서실 진용을 이끌게 된 허태열 실장은 명목상 청와대의 2인자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와대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도록 해 허 실장에게 날개가 하나 더 달렸다. 허 실장은 행시(3회) 출신으로 경기도 의정부시장과 부천시장, 충북도지사를 지낸 뒤 부산에서 16~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거쳐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가 극심하게 대립했던 2008년 한나라당 지도부 경선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돼 친박계를 대변했다.
앞서 2007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박근혜 캠프에서 직능총괄본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친박계가 많은 부산에서도 ‘원조 친박’으로 통한다.
관료 특유의 진중함이 몸에 배어 있는 그는 겉으로 목소리를 전혀 내지 않고 ‘그림자 보좌’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지역 언론사의 한 정치부 기자는 “허 실장은 정치를 하면서도 자신의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은 사람”이라며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의견을 내지 않고 묵묵히 지시에 따를 스타일”이라고 귀띔했다. 또 “정권의 힘이 넘치는 정권 초기 청와대에 몸담고 있어도 주변의 어떤 청탁도 받지 않을 인물로, 그런 측면에서는 잡음 없이 비서실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서실장 직속으로 있는 비서관은 5명이다. 이들은 각 수석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비서실장에게 보고하고 지휘를 받는다. 필요에 따라서는 대통령에게 직보(直報)를 하거나, 직접 하명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비서실장 직속 비서관은 대통령 직속 비서관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이 때문에 수석비서관급 이상의 힘이 실리기도 한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다.
박 대통령은 1998년 자신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국회 보좌진으로 함께 일하던 ‘가신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청와대에 모두 입성시켜 문고리 주변에 배치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창당한 한국미래연합에 참여했던 전직 의원은 “그때도 박 대통령은 ‘4인방’(지난해 대선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춘상 보좌관 포함)에게 무한신뢰를 보내더라”며 “아마도 세 사람은 박근혜 정부 5년 내내 청와대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47. 경기 화성. 구로고-한양대 경영학과)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안살림을 챙기는 중책을 맡았다. 청와대 돈의 출납을 담당하고 과거에는 대통령의 비자금까지 관리했던 자리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까지는 차관급 총무수석비서관 직제였을 만큼 중요한 자리다.
‘정치인 박근혜’를 보좌할 때 주로 공약과 정책을 챙겼던 경제학 박사 출신의 이 비서관에게 청와대 안살림을 맡긴 것은 다소 의외로 여겨진다. 다만 역대 정권 청와대의 총무비서관들이 여러 번 돈문제로 말썽을 일으켰던 점을 감안하면 그만큼 박 대통령의 믿음이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비서관은 6·7·10대 국회의원을 지낸 원로 정치인 예춘호 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의 아들인 예종석 한양대 교수의 제자다. 박 대통령과의 연결 끈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호성 1부속비서관
(44. 서울. 경기고-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정호성 1부속비서관은 대학원을 마칠 때 지도교수의 소개로 막 정치를 시작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과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외부로 내보내는 메시지를 담당한 그는 정무적 감각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집무실 입구에 자리 잡아 대통령의 청와대 내부 일정을 관리하는 1부속비서관은 ‘문고리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심지어 국무총리가 독대할 때나 비서실장이 보고를 할 때도 부속실을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각료나 참모들을 호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 때까지 1부속실장 직제였던 1부속비서관은 대통령으로 통하는 ‘문고리’를 쥐고 있어 갖가지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때에는 핵심 측근인 김희중 1부속실장이 저축은행에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권력을 행사하기 쉬운 만큼 자칫 대통령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자리보다 바른 몸가짐이 요구되는 자리다. 정호성 비서관은 국회에 있을 때에도 사람을 가려서 만났다고 한다.
안봉근 2부속비서관
(47. 경북 경산. 진량고-대구대 중문학과)
이전 정부의 청와대 2부속실은 대통령 부인의 일정을 챙기고 행사준비를 하는 부서였다. 하지만 독신 여성 대통령이 입성하면서 한때 폐지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박 대통령의 각별한 지시로 존속되면서 민원을 챙기는 업무로 바뀌었다. 안봉근 2부속비서관은 대통령에게 직접 올라오는 민원을 담당하게 됐다. 그는 박 대통령이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갔을 때 그 지역구 의원이었던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을 수행하다가 박근혜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안 비서관은 지난해 대선 직전까지는 박 대통령을 근접수행하면서 경호도 겸했다. 박 대통령이 2006년 5월 지방선거 지원유세 당시 면도칼 테러를 당했을 때에도 곁에 있었다. 박 대통령을 대신해 경조사를 챙기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지난 대선 때는 일정을 담당했다. 안 비서관은 ‘정치인 박근혜’를 수행하던 시절 ‘안 부장’으로 통했다. 새누리당의 웬만한 중진급 의원도 그를 통해야 박 대통령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새누리당의 한 3선 의원은 “박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기 전에 안 부장에게 지금 심기가 어떤지 물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
(50. 전남 영암. 광주일고-서강대 국문학과)
‘가신 3인방’은 아니지만 비서실장 직속으로 박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된 두 명의 핵심 참모가 있다.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과 우경하 의전비서관이 그들이다.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대학동문이자 몇 안 되는 호남인맥이다. 그는 정호성 비서관과 함께 박 대통령의 대외 메시지를 다듬는 명콤비였다. 청와대에서 정 비서관은 내부 일정 담당으로 업무를 바꿨고, 조 비서관은 주특기를 살려 대통령 연설문 작성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5년부터 연설문을 만들기 시작해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캠프의 정책메시지팀에서 활동했고, 지난해 중앙선대위에서는 메시지팀장을 맡았다.
대학 시절 운동권 논객으로도 활동했던 조 비서관의 글쓰기 능력은 정치권에서 정평이 나 있다. 박 대통령의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패배 승복 연설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메시지 작성자의 문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치지도자나 대통령과의 교감이 없으면 명문(名文)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조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의중을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경선 당시 합동연설에서 조 비서관이 이명박 후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원고 초안에 집어넣었다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그렇게 해서 저랑 같이 가시겠어요?”라는 따끔한 질책을 받은 일이 있다. 이후 조 비서관은 토론회 등에 내보낼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점이 ‘네거티브 배제’였다고 한다.
우경하 의전비서관
(52. 경북 안동. 중대부고-한국외대 영어과)
우경하 의전비서관도 박 대통령을 거의 매일 곁에서 보좌한다. 비서실장 직속 의전비서관은 경호실과 협력해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내외 모든 행사의 일정을 조율하고 동선을 짠다. 청와대 안에서 치르는 행사는 의전비서관실이 직접 담당하고, 청와대 밖에 나가는 일정은 담당 정부부처의 보고를 받아 취합해 조율한다. 해외 행사는 외교부 의전장실과 협의한다.이런 업무의 특성상 간혹 예외는 있었지만 의전비서관은 대부분 외교부 출신이 맡아왔다. 우 비서관도 외시 20회 출신으로 외교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외교부 지역협력과장, 통상교섭본부 지역통상국장 등을 거쳤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첫 의전비서관으로 여성이 기용될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대통령의 생각을 잘 살펴 행사의 의미가 살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 하지만 굳이 의전비서관의 성별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박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외교부에서 우 비서관을 천거했다고 한다.
김동극 인사팀장
(51. 경북 영주. 서라벌고-서울대 사회교육학과)
1급 비서관은 아니지만 비서실장 직속 2급 선임행정관 중에 업무 성격이 수석비서관급에 맞먹는 일을 하는 인물이 있다. 김동극 인사팀장이다. 청와대 인사팀장은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겸임한 협의체 형식의 인사위원회에서 정부 인사를 실무적으로 이끈다.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정부조직법에 근거해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직의 수는 자그마치 6000~7000개에 달한다. 대통령은 내각, 헌법기관, 정부투자기관·산하기관 등 공공기관, 특정직(검찰·경찰 고위직)에 대한 임면권을 갖는데, 3급(부이사관) 이상 고위공무원에 대해 실질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한다. 장관급, 차관급, 실·국장, 1~3급 등 중앙부처 공무원만 1200명에 달하고 차관급 이상 핵심 자리도 350개 안팎이다.이처럼 방대한 인사자료를 청와대가 모두 챙기지는 않는다. 웬만한 자리는 안전행정부와 각 부처에서 다루고 청와대는 고위직과 핵심 보직 인사에 전념한다. 이를 위해 노무현 정부 청와대 시절까지는 인사수석비서관을 뒀다. 김 팀장은 2급 행정관이지만 수석비서관급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김 팀장은 정부에서 손꼽히는 공직 인사 베테랑이다. 그의 이력서에는 ‘인사’라는 단어가 계속 이어진다. 총무처 인사국 인사기획과 행정사무관을 시작으로 행정자치부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과장·인사정책국 정책총괄과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인사수석비서관실 인사관리행정관을 거쳐 중앙인사위원회 고위공무원지원국장, 행정안전부 인사실 성과후생관·인력개발관·인사정책관을 역임했다.
김 팀장은 행안부 인사정책관으로 있을 때 대통령직인수위에 차출돼 이정현 당선인 정무팀장(현 청와대 정무수석)을 도와 새 정부의 내각 구성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3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과 정홍원 국무총리(앞줄 오른쪽)가 새 정부 장관 13명이 참석한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정무수석실
이정현 정무수석
(55. 전남 곡성. 살레시오고-동국대 정외과)
허태열 비서실장 산하 9개 수석비서관실 가운데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힘이 가장 많이 실릴 곳은 정무수석실이다. 박 대통령의 복심인 이정현 정무수석이 버티고 있는 까닭이다. 박 대통령이 “참 헌신적인 분”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운 이 수석의 실질적인 힘은 허태열 실장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청와대 안에서 ‘왕(王) 수석’이란 얘기가 나온다. 역대 정부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은 그 자리에 누가 앉는지에 따라 위상이 달랐다.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들은 가장 막강했던 정무수석으로 김영삼(YS) 대통령 시절의 이원종 정무수석을 기억한다. ‘상도동 가신’ 출신인 그는 집권당인 신한국당 소속 중진 국회의원들을 장악해 공천에도 간여했고, YS의 차남 현철 씨와 함께 정부 요직 인사를 좌지우지했다고 한다. 이정현 수석은 18대 국회 때 단 한 번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경력밖에 없어 새누리당의 쟁쟁한 중진들에게 휘둘릴 수도 있다. 다만 ‘대통령의 의중’을 등에 업을 경우 여당의 당직 인선이나 지도부 경선에까지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원종 전 정무수석도 정치경력은 짧았지만 YS의 신임이 든든한 배경이 됐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에서 ‘무관의 미래 권력’으로 통할 때 이정현 수석은 ‘박근혜의 입’ ‘대변인 격’으로 불렸다. 그만큼 기자들과 소통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윤창중 대변인 등 청와대의 홍보라인이 ‘불통’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이 수석이 홍보 기능도 일정 부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디어오늘’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청와대에서 소통이 가장 잘되는 인사’를 묻는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이남기 홍보수석과 윤창중·김행 대변인보다 이정현 수석과 소통하고 있다는 기자가 월등히 많았다. 청와대의 대(對)언론 소통이 홍보라인이 아닌 정무라인에서 더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정현 수석은 정치인 출신이라 소통과정에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듯하다”며 “홍보라인의 다른 사람들은 이 수석의 기법이나 재량권을 배워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김선동 정무비서관
(50. 강원 원주. 고려대사대부고-고려대 정외과)
통상 새 정권이 출범할 때 청와대에 입성하는 참모진은 두 부류다. 대선 승리에 기여한 공신들로 정치인이나 자문 학자, 언론인 출신이 한 그룹을 형성한다. 다른 그룹은 전문가적 능력을 갖춘 관료(군·검찰·경찰 등 포함) 출신이다.
정부 중앙부처에서는 새 정권이 들어서면 대통령직인수위 단계에서부터 나중에 청와대로 파견할 직원을 선발해 내보낸다. 이번에도 인수위에 파견됐던 공무원 중 상당수가 그대로 청와대로 들어갔다. 정치권 출신과 관료 출신의 비율은 정권 초반에는 대개 반반이다가 점차 관료의 수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정무수석실 산하 4명의 비서관 중에도 2명은 정치인이고 한 명은 관료, 또 한 명은 경찰 출신이다.
김선동 정무비서관은 전직 국회의원으로서 이례적으로 1급 비서관을 맡았다. 김 비서관은 꼭 20년 전에 정무수석실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 1992년 대선 때 YS 캠프에서 활동한 뒤 이듬해 30세의 나이로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으로 입성했다. 이후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 보좌역, 한승수 전 총리의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이끌 때 당 대표실 부실장을 지내며 친박계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18대 총선 때 민주통합당 텃밭인 서울 도봉을에서 금배지를 처음 달았으나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민주당 유인태 의원과 리턴매치를 벌여 패했다. 대선 때는 직능종합상황실장과 종교특별본부장을 동시에 맡아 역량을 발휘했다. 20년을 돌고 돌아 다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입성한 김 비서관이 여의도를 상대로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
(52. 경북 성주. 청구고-경북대 사회학과 3년 수료)
정무수석실에서 국민과의 인터넷 소통을 주로 담당할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도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과거 통일민주당 전문위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후 민자당 조직국 부장, 국회 정책연구위원, 한나라당 정책위 보좌역, 국회부의장 비서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전략기획팀장 및 전략기획보좌역 등을 두루 거쳤다.
신 비서관이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유승민 의원, 김무성 전 의원 등 ‘원조 친박’들이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그를 끌어들인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종합상황실 부실장으로 핵심적 역할을 했고, 이번 대선에선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있으면서 여론조사와 판세 분석을 담당했다. 여론을 살피고 국민과의 소통을 담당했던 역할이 국민소통비서관으로 발탁된 배경이다.
박동훈 행정자치비서관
(53. 강원 횡성. 용문고-성균관대 행정학과)
박동훈 행정자치비서관은 행시(28회) 출신으로 지방행정 및 국가행정, 지방자치 등의 분야에 정통하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국장으로 있으면서 이번 대통령직인수위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전문위원으로 발탁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자치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지냈기 때문에 이번이 두 번째 청와대 입성이다.
강신명 사회안전비서관
(49. 경남 합천. 청구고-경찰대)
치안감인 강신명 사회안전비서관은 경찰대 2기 선두주자 중 한 명으로, 경찰에서는 대표적인 정보통으로 통한다. 총경 시절에 경찰청 정보2과장과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관리부 정보1과장을 지냈고, 치안감이 된 후 경찰청 정보국장을 지냈다. 경북지방경찰청장으로 있다가 이번에 경찰과의 연계업무 등을 담당하는 사회안전비서관에 발탁됐다.
◆ 민정수석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과거 정부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검찰 권력을 적절히 활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통제하는 곳이기 때문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했다. 민정수석실은 그동안 민심을 듣는 청취기관이자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을 관리하고, 공직의 기강을 잡는 사정기관이었다. 아울러 정부 고위직 인사를 검증하기도 했다. 검찰·경찰 업무 조정과 권력기관 개혁 역시 민정수석실의 몫이다
과거 민정수석을 맡았던 인물들만 봐도 ‘힘 있는 부서’로서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이다. 권재진 전 서울고검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 장관이 됐다. 언제나 집권자의 최측근이 민정수석실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에선 민정수석실에 어느 정도 역할을 부여할지를 놓고 항상 고민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선 민정수석실에 조직개편의 메스를 대고 일단 그 역할을 크게 축소시켰다. 먼저 사정과 인사 기능을 떼어냈다. 대신 국민 여론과 민심을 청취하고 중요한 민원을 공론화하는 기능에 집중토록 했다. ‘민생정부’를 내세운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곽상도 민정수석
(54. 대구. 대건고-성균관대 법학과)
새 정부 청와대의 민정업무를 이끌 인물로 곽상도 민정수석이 내정되자 검찰 내부에서조차 그가 누구인지 신상 파악에 분주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곽 수석의 검찰 마지막 직책이 서울고검 검사였고, 검사장에 오르지 못한 채 변호사 개업을 했기 때문이다.
또 검찰 내부에서 소수파인 성균관대 법대 출신이기 때문에 그의 발탁 배경을 놓고 구구한 억측이 나돌았다. 성대 법학과 동문인 정홍원 국무총리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천거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많았다. 곽 수석은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법·정치 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대통령직인수위 정무분과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곽 수석이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알면서도 학연 등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판단해 발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중희 민정비서관
(46. 충북 괴산. 강릉고-고려대 법학과)
민정수석 산하에는 4명의 비서관이 있다. 이 중 민정비서관이 ‘꽃’이다. 민정비서관은 검찰을 상대한다. 주요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에 간접적으로 간여하기 때문에 정권 운영 차원에서도 역할이 중요하다.
이외에도 민심 동향 파악, 주요 국정 조정 등의 기능을 갖고 국가정보원을 비롯해 감사원, 국세청, 경찰청,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힘 있는 기관에서 공무원을 파견받아 소관 업무를 감독·조정하는 자리다. 이중희 민정비서관의 역할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 비서관은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춘천지검 강릉지청, 법무부 검찰1과, 영월지청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을 거쳐 인천지검 부장검사로 있으면서 법무부 금융부실책임조사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곽상도 수석이 그를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과정에서 현직에서 물러난 다른 변호사를 천거한 모 친박계 인사와 힘겨루기가 벌어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친박계 인사가 이 비서관 기용을 반대한 명분은 박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현직 검사의 청와대 파견 금지’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당시 현직 검사가 청와대에 근무할 경우 청와대가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비판을 감안해 그 같은 공약을 했다. 이 때문에 이 비서관은 청와대를 떠나면 검찰에 복귀하지 않기로 하고 민정비서관을 맡았다는 전언이다. 이 비서관을 제외한 나머지 민정수석실 산하 비서관 3명은 곽 수석과 마찬가지로 모두 대통령직인수위 출신이다. 이 비서관도 곽 수석의 추천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민정수석실 내부의 호흡이 잘 맞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51. 대구. 성광고-서울대 법학과)
조응천 비서관은 주요 공직자들의 인사자료를 관리하고 공직 임명 때 인사검증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해군법무관을 시작으로 대구지검 공안부 부장검사,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거쳤으며 김·장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발탁돼 법질서·사회안전분과에서 일했다. 곽 수석과는 대구 동향이다.
이혜진 법무비서관
(50. 부산. 데레사여고-부산대)
법무비서관에도 당초에는 대구 출신인 변환철 중앙대 법대 교수가 내정됐으나 민정라인이 대구·경북(TK) 일색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막판에 바뀌었다. 이혜진 법무비서관은 인수위에서 법질서·사회안전분과 간사로 활동했다. 그는 사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판사나 검사에 임용되지 않고 줄곧 부산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박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도 없기 때문에 인수위 당시에도 ‘깜짝 발탁’으로 화제가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는 청와대 법무비서관 자리가 막강했다. 당시 무소속 박주선 의원이 법무비서관 자리에 있으면서 인사비서관과 민정비서관의 역할까지 함께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법무비서관의 역할이 법원 관련 업무로 제한돼 있다.
임종훈 민원비서관
(60. 경기 수원. 성남고-서울대 법학과)
임종훈 비서관은 청와대 국민 신문고 등에 올라오는 일반 민원을 접수해 해당 부처에 넘겨주고 처리 결과를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입법고시 2회 출신으로 30년 가까이 국회 사무처에서 잔뼈가 굵으면서 의정행정의 달인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 국회 입법조사처장 등을 지냈고,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 경력도 있다.
지난해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경기 수원정에 출마했으나 민주당 김진표 의원에게 패했다. 인수위에서는 살림을 총괄하는 행정실장직을 수행했다.
◆ 홍보수석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출범 초기부터 다소 잡음이 있었다. 의외의 인물이 홍보라인에 포진한 데다, 비서관 내정자가 인사 내용에 불만을 품고 출근을 하지 않아 다른 인물로 대체되는 소동도 일어났다.
이남기 홍보수석
(64. 전남 영암. 살레시오고-성균관대 신방과)
이남기 홍보수석은 국내 토크쇼의 원조 격인 ‘쟈니윤 쇼’를 연출한 예능 프로듀서(PD) 출신으로 39년간 방송 외길을 걸었다. 쟈니윤 씨는 박근혜 대선 캠프의 재외국민본부장이었다.
역대 정부에서 정치인이나 기자 출신이 주로 기용됐던 홍보수석직에 예능PD 출신이 발탁된 것은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대언론 공보 기능보다는 ‘PI(Presidential Identity·대통령 이미지)’ 제고에 초점을 맞춘 인선이란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대선 TV토론을 앞두고 외곽에서 박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면서 언론관, 홍보관에 대해 교감을 나눈 것이 발탁 배경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정권 실세인 이정현 정무수석과 광주 살레시오고 동문이란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최형두 홍보기획비서관
(51. 경남 고성. 서울대 사회학과)
최형두 비서관은 문화일보 워싱턴특파원과 논설위원을 거쳐 지난해부터 국무총리실 공보실장으로 재직했다. 그동안 전문성을 잘 발휘했다는 평을 들었고, 신임 정홍원 총리와도 함께 일할 것으로 알려졌다가 갑자기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옮겼다. 정권 홍보를 기획하는 이 자리에 당초 이종원 조선일보 전 부국장이 내정됐지만 본인이 막판에 고사했다.
백기승 국정홍보비서관
(56. 서울. 경동고-연세대 정외과)
백기승 비서관은 과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입’으로 통했던 홍보전문가로 박근혜 정부에 폭넓게 포진한 ‘대우맨’ 가운데 한 명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공보기획단장을 맡았고, 지난해 대선에선 중앙선대위의 ‘실세’ 공보위원이었다. 대선 당시 백 비서관이 활동했던 ‘마포팀’은 공보라인 인사들로 구성돼 박 대통령인의 유세 일정과 동선을 짰다. 그는 지난해 초까지 박 대통령의 모친인 육영수 여사가 설립한 육영재단의 이사를 맡기도 했다. 그는 “경제는 김우중에게서, 정치는 박근혜에게서 배웠다”고 말하곤 한다.
윤창중 대변인
(57. 충남 논산. 경동고-고려대 화학과)
청와대 대변인은 남녀 투톱 체제다. 언론인 출신의 윤창중 대변인은 이번이 두 번째 청와대 입성이다. 노태우 정부 말기인 1992년 초 세계일보 정치부 기자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변신했다가 이듬해 3월 복귀했다. 1997년 대선 때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서 언론담당 보좌역으로 일하다 문화일보로 적을 옮겨 다시 언론계로 돌아왔다. 인수위 대변인에 ‘깜짝’ 발탁됐지만 ‘밀봉 인사’ ‘깜깜이 인수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행 대변인
(54. 서울. 홍익대사대부속여고-연세대 식품영양학과)
김행 대변인은 여론조사 전문가로, 새누리당 전신인 민주자유당 산하 한국사회개발연구소 조사부장과 중앙일보 여론조사팀장으로 일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정몽준 후보가 창당한 국민통합21의 대변인을 맡아 여론조사를 통한 정몽준-노무현 후보단일화의 여론조사 전략을 총괄했다. 이후 의류사업을 하다가 소셜네트워크 뉴스 서비스 ‘위키트리’를 공동창업해 부회장으로 재직했다. 부산일보 출신인 민주당 배재정 의원은 “위키트리는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지시로 부산일보가 주도해 만든 소셜뉴스 전문회사”라며 “대변인 임명으로 미뤄볼 때 그가 대선과정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지난 대선 당시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수논객으로 활약했다.
최상화 춘추관장 (49. 경남 사천. 사천농고-진주산업대)
최상화 춘추관장은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에 머물며 300명 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한나라당 당료 출신인 그는 2006년에 당 대변인행정실장 직무대행을 맡아 기자들을 상대한 경험이 있다. 이후 당 환경노동위 전문위원, 대표최고위원 보좌역, 직능국장을 거쳤고 박근혜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에서 실무추진단장을 맡았다.
◆ 국정기획수석실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은 박근혜 정부에서 신설됐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의제의 추진역량을 강화하고 진행 상태를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55. 대전. 대전고-성균관대 행정학과)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로 있다가 인수위의 총괄간사 겸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로 발탁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은 인수위에서 새 정부 조직과 주요 국정과제의 기초를 닦았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초대 국정기획수석 0순위로 거론됐다.
그는 박 대통령이 대선 기간 제시했던 각종 정책 공약사항을 점검하고 세부 추진계획 및 재원 조달 방안 마련 등을 포함한 국정 로드맵 작성을 주도하게 된다. 이를 위한 세부 정부조직 개편도 그의 몫이다.
유 수석은 정치권과 인연이 없었지만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에게서 박 대통령을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신 교수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만든 공부모임의 멤버다. 청와대 비서실의 정치적 힘이 이정현 정무수석에게 쏠려 있다면, 정책적인 무게 중심은 유 수석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국정기획수석 아래는 9개 수석 가운데 가장 적은 단 두 명의 비서관만 있다. 한 사람은 기획재정부, 다른 한 사람은 국무총리실에서 줄곧 근무한 해당 분야의 전문 관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