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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학자 출신이 공 세울 욕심에 남북정상회담 망쳐”

임태희<前 대통령실장> ‘MB정부 국정백서’ 강력 반박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관료, 학자 출신이 공 세울 욕심에 남북정상회담 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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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숙청된 후 남북관계는 더 악화된다. 2011년 2월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북한군 대표단은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후 MB 정부는 세 번째로 정상회담을 시도한다. MB가 2011년 5월 베를린 연설에서 이듬해 3월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남북이 베이징, 선양 등지에서 접촉했다. 세 번째 시도는 북측이 폭로전에 나서면서 일부 내용이 공개됐다. 2011년 6월 9일 조선중앙통신은 이렇게 보도했다.

“그(김천식 당시 통일부 정책실장)는 우리와 만나자마자 이번 비밀접촉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와 인준에 의해 마련됐다고 하면서 그 의미를 부각시켰다. (김태효 당시 대통령대외전략비서관이) 시간이 매우 급하다고 하면서 대통령의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했다는 일정계획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접촉이 결렬상태에 이르자 김태효의 지시에 따라 홍창화(국정원 국장)가 트렁크에서 돈봉투를 꺼내들자 김태효는 그것을 받아 우리 손에 쥐여주려고 하였다. 우리가 즉시 쳐던지자 김태효는 얼굴이 벌게져 안절부절 못하였으며, 홍창화는 어색한 동작으로 트렁크에 황급히 돈봉투를 걷어 넣고 우리 대표들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협상에 관여한 인사들은 하나같이 이런 주장이 거짓이라고 했다. 김태효 전 대통령대외전략비서관은 2월 17일자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이 참 간도 크다. 우선 그 내용 자체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리고 녹취록을 공개할 거면 다 하지 왜 못했겠나. 그랬으면 북한이 오히려 굉장히 곤란한 처지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시도 때는 2011년 6월 판문점, 8월 평양, 이듬해 3월(핵안보정상회의 때) 서울 등 연쇄 정상회담 시간표가 논의됐으나 천안함 관련 사과 문제와 북한의 무리한 요구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논의는 회피하면서 물적 대가만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안에는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쪽과 “원칙을 갖고 ‘갑을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쪽이 나뉘어 있었다. 실제로 ‘파벌’을 구성한 적은 없으므로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지만 편의상 기사에선 ‘대화파’ ‘원칙파’로 표현하기로 한다. 김태효 전 기획관(“북한의 전략적 목표에 봉사하느니 정상회담을 안 하는 게 오히려 나았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남북관계가 불편하더라도 북한의 앵벌이나 갈취 관행을 고쳐야 한다”)은 원칙파였다. 재임 시절 남북 간에 벌어진 일과 관련해 함구하고 있는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강경한 쪽이었다. 임태희 전 실장,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등은 ‘대화파’였다.

‘남북정상회담, 그 실패의 기록’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원칙을 지킨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악습을 근본적으로 바꿀 계기를 마련한 것인지, 아니면 남북관계 진전의 호기를 놓친 실책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남북 간에 은밀하게 벌어졌던 일들을 세밀하게 복기하고 전략적 실패는 없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일은 박근혜 정부의 몫이다. 이를 위해 MB 정부 정상회담 ‘실패의 기록’이 가감 없이 새 정부에 넘겨져야 한다. 박 대통령이 꿈꾸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의 출발점도 결국은 과거 정부에서 남북 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팩트 파인딩’이라고 본다.”(2월 26일자 ‘동아일보’ 칼럼 ‘남북정상회담, 그 실패의 기록’에서 인용)

첫 접촉만 성사 직전까지

세 차례 정상회담 추진 시도 중 성사에 근접한 것은 임태희 전 실장이 김양건 부장을 만난 첫 번째 접촉이다.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도 북한의 통일전선부 쪽을 통해 이뤄진 바 있다. 정상회담 비밀접촉의 주역인 임 전 실장은 1월 9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털어놨다. 그는 작심하고 증언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입 다물고 있으면 남북관계가 더 악화될 것 같았다. 실제로 있었던 일과는 다른 얘기가 언론에 사실처럼 보도되면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우려돼 내가 한 일의 팩트를 공개하기로 했다.”

북측이 정상회담 대가로 현물 5억~6억 달러를 요구했고, 남측이 제안을 거절하자 협상이 결렬됐으며, 이듬해 천안함 도발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그것이다.



“엉터리 얘기를 하고 있다”

신동아 2월호는 “북한은 모욕적 협상 응했다, 뒷돈 요구한 적도 없다”는 제목으로 그의 증언을 기사로 실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을 포함해 6개 항목에서 협의를 완료했다. 실무만 남은 상황에서 깨졌다. MB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납북자·국군포로 ○명과 함께 돌아왔을 것이다. 부처 간 불협화음이 있었다. 회담장소를 평양 혹은 판문점으로 바꾸자고 하면 얘기가 되겠느냐? 협상이 깨지는 과정에서의 팩트를 분명히 해두는 것은 앞으로의 남북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남북이 다시 대화를 시작할 때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모욕적 협상 응했다”는 증언은 국정백서의 갑을 관계 언급과 일치하지만 “뒷돈 요구한 적도 없다”는 발언은 국정백서의 내용과 충돌한다. 원칙파에 속한 인사들은 북측이 정상회담과 관련해 물적 대가를 요구해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같은 정부에서 일한 고위 인사들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진실은 뭘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2월 14일 동아일보와의 퇴임 인터뷰에서 남북 비밀접촉의 일단을 처음으로 직접 공개했다. 동아일보 2월 18일자 “납북자 송환 등 합의… 北 ‘6억 달러 현물’ 요구로 물거품” 제하 기사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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