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건설업계 ‘손톱 밑 가시’ 이번엔 뽑아야”

현장 제언

  • 정승화 │대한전문건설협회 경영지원본부장

    입력2013-03-21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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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공정행위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해야
    •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제도 개선 시급
    •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제도 보완해 실효성 높이자
    • 하도급업체와 건설업자 죽이는 ‘환산재해율’
    “건설업계 ‘손톱 밑 가시’ 이번엔 뽑아야”

    종합건설업체들의 불공정행위로 하도급업체인 전문건설업체들이 고사 위기에 있다.

    사람은 꿈과 희망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전문건설업체들은 미래의 꿈과 희망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다. 그 동안 전문건설업계는 건설공사의 시공을 직접 담당하며 국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해왔지만, 합당한 평가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건설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정치권의 시각도 ‘토건산업’으로 폄하하는 등 부정적이라 건설경기 활성화 같은 부양책 마련은 복지 우선 정책에 밀려나 있다.

    특히 건설근로자의 고용 주체인 전문건설업체들은 정부의 취약계층 보호정책 강화(4대 보험 적용 확대, 8시간 작업시간 준수, 임금지급 보증제도 도입 추진 등)로 공사원가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게다가 종합건설업체들의 불공정행위로 인해 수익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부는 경제·사회 분야에서 심화되는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동반성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하도급업체들이 절실히 바라는 것은 외면한 채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건설업계는 지난 2월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건설경제 민주화를 위한 정책건의 과제’를 제출한 바 있다.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장기간의 주택·건설경기 침체로 공사물량이 급감하고 있다. 여기에 최저가 낙찰제 시행, 실적공사비 적용 확대, 표준품셈 하향 조정 등으로 공사예정가격이 삭감돼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특히 쌍용건설, 풍림산업, 벽산건설 등 중견 건설업체들의 잇따른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신청으로 이들의 하도급에 의존하는 전문건설업체들은 연쇄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1년 동안 441개 전문건설업체가 부도를 내거나 도산했다. 전년보다 87% 급증한 43개 업체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는가 하면, 기업경영이 어려워 자진 폐업한 업체가 2503개사에 달한다. 이렇게 심각한 상태에 처하게 된 원인은 글로벌 경제위기 등 외부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행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종합-원도급, 전문-하도급’이라는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건설 방식이 30년 이상 지속돼 왔다. 그러면서 원도급자의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이 고착화하고, 원·하도급 건설업체 간 불균형이 심화해 건설산업의 공생·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종합건설업체는 고정비 부담 때문에 시공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보유하지 않고 있어 도급받은 공사를 전문건설업체에 맡긴다. 그런데 하도급 전 과정에 걸쳐 초저가 하도급, 부당 특약설정, 대금 미지급·지연지급, 계약 외 추가공사비 불인정 등 불공정 행위가 만연해 있다. 전문건설업계는 고착화한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불공정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제도 개선,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제도 실효성 확보, 공공공사 분리발주 활성화, 산재 은폐 근절대책 마련 등 ‘손톱 밑 가시’를 뽑아달라고 건의했다.

    원도급자의 도덕적 해이

    대통령직인수위는 2월 19일 ‘현장의 손톱 밑 가시’ 개선대책을 내놓았다. 먼저, 부당한 단가 인하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올해 상반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개정을 추진하고, 직권조사 등을 통해 불공정 행위를 중점 감시하기로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다. 국내 하도급법에선 IT(정보통신)·SW(소프트웨어)산업의 기술자료 탈취 및 유용 행위에 대해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시행되고 있다.

    “건설업계 ‘손톱 밑 가시’ 이번엔 뽑아야”

    전문건설협회가 지난해 11월 원도급업체와 하도급업체의 상생을 바라는 행사를 열었다.

    지난해 총선 이후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하도급법 개정 법안 8건이 발의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적용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과잉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 3월 11일에는 공청회도 열렸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모든 불공정행위에 대해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지나친 규제 강화, 소송 남발이 우려된다면 하도급업체의 피해가 심각한 부당 하도급대금 결정(하도급법 제4조)과 부당감액 행위(제11조)에 대한 배상 제도라도 먼저 도입해야 한다. 하도급자 선정 및 하도급계약 이행과정에서 하도급 대금을 초저가로 결정하기 위해 고의로 재입찰하는 행위와 정당한 사유 없이 하도급 대금을 감액하는 사례는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표적 불공정 행위다.

    이로 인한 하도급자의 피해배상 제도는 전무한 실정이다. 원도급자의 불공정행위는 불평등 거래관계의 특성상 은밀히 이뤄지고 있어 적발하기가 어렵다. 적발되더라도 처벌은 미약한 실정이다. 따라서 원도급자가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이나 부당감액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손톱 밑 가시’는 B2B전자어음(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이하 외담대) 제도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 완화, 연쇄부도 등 어음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01년부터 외담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외담대는 원도급사의 보증으로 하도급사에 대출해주는 형식이다. 지급 의무는 원도급사에 있지만 만기 미결제해도 어음처럼 부도 처리되지 않고 연체 처리돼 신용에만 다소 불이익이 있을 뿐이다. 이는 원도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원도급사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인수위는 “외담대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완책으로 매출채권보험제도에 건설업을 단계적·선별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라며 올해 9월까지 보상 시스템 구축을 마무리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정부가 운영하는 매출채권보험제도는 제조업 중심으로 돼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 금융지원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으나, 이번에 인수위가 개선안을 마련함에 따라 외담대로 공사대금을 수령하는 하도급 전문건설업체에는 그나마 희망을 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한정된 재원으로 운영되는 매출채권보험 제도만으로는 외담대 제도의 근본적 문제 해결은 어렵다. 발행자격 및 만기 미결제 업체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도 병행해서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하도급법에서 상환청구권이 있는 외담대는 어음대체 결제 수단에서 제외토록 하는 등 제도적 보완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 공사 분리발주 법제화

    인수위는 또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건설산업 종합정보망(KISCON)과 연계해 보증서 발급 여부를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직권조사 등을 통해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것.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제도는 원도급업체의 부도나 하도급대금 미지급 등으로 하도급자가 연쇄도산하거나 자금난 초래, 부실공사 유발 등을 방지하기 위해 1997년부터 도입·시행되고 있다. 건설공사 하도급 계약 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교부를 공사 관계 법령에서 의무화하고 있다.

    원도급자의 부도 등 하도급대금 지급불능 사유가 발생할 경우 공사 대금을 확보할 수 없어 하도급업체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또한 종합건설업체의 법정관리 신청 증가로 하도급업체뿐 아니라 자재·장비업체가 대금을 받지 못하고 건설근로자가 임금을 받지 못해 생존권을 위협받는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피해가 심각하다. 보증서 발급·교부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로 하도급대금지급보증서 미교부 사례는 다소 줄어들 수 있겠으나, 이 제도의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해 보증서 면제대상 축소와 보증기관의 개별 약관에서 제한적으로 운영하는 보증책임 요건의 법제화도 조속히 보완돼야 한다.

    공공 공사 분리발주 법제화도 시급하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인 중소기업 보호육성 및 사회 취약계층 보호 등을 위해 인수위는 공공 공사 분리발주 원칙 법제화(500억 원 이상 공사)를 마무리하고올해 상반기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건설공사의 분리발주를 원칙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전문건설업체들은 수차에 걸친 도급에서 비롯되는 누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공사품질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공정거래 행위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계약법령(국가계약법 시행령 제68조)은 분할발주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한다. 발주기관은 사후감사 지적 등을 우려해 극히 예외적으로만 분리발주하다보니 전문공사의 분리발주 실적이 매우 저조하다.

    분리발주는 직접 시공을 담당하는 중소 전문건설업체에는 시공책임을 부여하는 반면, 그에 상응하는 공사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성장기반 구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장점이 많은 제도다. 이 제도를 활성화하려면 모든 공사에 대해 분리발주를 의무화하고 분리발주 대상 공사도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도와 함께 점차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경미한 재해는 논외로

    인수위에서는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산재(産災) 은폐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산재 예방 지표를 개발하고, 시설공사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에 (P·Q)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정부는 건설업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매년 1000대 건설사를 대상으로 1년간 발생한 산업재해에 대해 환산재해율을 산정해 건설공사 입·낙찰에 영향을 미치는 P.Q 및 적격심사의 신인도 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원도급자는 재해 예방 노력을 통해 산업재해를 줄이려 하기보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이를 은폐해 재해율을 낮추고 있다. 또한 신인도 평가에서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하도급자에게 자비로 공상처리토록 강요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중앙회회장 표재석)에서 발표한 산업재해 처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1217개 응답 업체 중 산재사고 발생 현장은 264곳이고 총 747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으며 그중 497건(66.5%)을 공상처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상처리되면 하도급자는 경제적·시간적·정신적 부담이 가중되고, 건설근로자는 산재보험 혜택은 물론 근로자재해보상보험도 적용받을 수 없게 된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환산재해율 산정제도가 산재 은폐를 조장하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건설업에 대한 사회적 불신풍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농부의 심정으로 ‘3不’ 해소를

    인수위의 개선안이 산재 예방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사업주에게 과실 없는 재해와 경미한(4주 미만) 재해는 환산재해율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 이를 통해 원도급자의 산재 은폐 강요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고, 건설현장의 안전 의식을 높여야 선진국 수준의 재해율을 달성하고 건설 근로자의 생명·신체 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이번 인수위에서 개선안을 도출하지는 못했지만 ‘원도급자 법정관리 시 하도급 근로자 노임 우선변제’ 같은, 중소 건설업체들의 ‘손톱 밑 가시’를 조속히 뺄 수 있는 제도를 국회와 정부에서 다시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젠 실행이 남았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은 역대 정부에서 ‘상생’ 등 이름을 달리해 수없이 강조해왔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해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실천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새 정부는 3불(불합리 불평등 불공정) 해소 등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실천해나감에 있어 농부와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한다.

    농번기에 저수지의 물이 아래 논까지 제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수로를 잘 만들어야 한다. 또 막힌 곳이 없는지 살펴 고인 물이 있으면 물꼬를 터줘야 추수할 때 귀한 알곡을 거둘 수 있다. 그렇듯 결실을 고루 나누면서 조화롭게 성장해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정한 룰을 만들고, 참여 주체들이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 활동도 필요하다. 또한 적절한 규제와 조정자로서 임무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도급 전문건설업체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왜 고통 속에서 절규하고 있는지 귀 기울이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가 조성될 것이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도 당당하게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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