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한 역시 서로를 상대로 심리전을 벌여왔다. 최근 한국은 ‘진실’을 휴전선 이북에 알리는 데 주력했고, 북한은 온라인 공간을 이용한 여론 왜곡에 공을 들였다. 북한이 3차 핵실험에 대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094호 채택 이후 공세적 언행에 나선 것도 심리전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3월 12일 “북한이 조선중앙방송 등 관영매체를 동원해 지속적, 전방위적으로 도발과 관련된 수사적(修辭的) 위협으로 한국에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면서 “심리전술에 국민이 동요하지 않기 바란다”고 했다.
대북 심리전은 북한 정권의 골간을 송곳으로 후비는 공작이다. 심리전에 대한 두려움은 북한이 더 크다. 심리전을 통해 김정은 집단을 주민과 분리해 정권의 기반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29) 씨가 대북심리전단 소속이다.
“北이 가장 겁내는 게 심리전”
북한은 김일성을 민족의 어버이로 받드는 신정(神政)국가 성격을 지녔다. 핵실험, 미사일 발사는 신정 유지에 필요한 부흥회 구실도 했다. 독재집단이 주민에게 ‘기적’을 보여주면서 사상적 방화벽을 다진 격이다.
이명박(MB) 정부 임기 만료일인 2월 24일까지 고위 안보 당국자로 일한 A씨는 “대북 심리전은 북한의 사상적 방화벽에 구멍을 뚫는, 우리가 가진 비대칭 무기”라고 강조했다.
“독자 핵개발, 미군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나오는데 현실성 없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에겐 핵 못지않은 비대칭 무기가 있다. 북한이 가장 겁내는 게 심리전이다. 핵으로도 막지 못하는 바이러스다. 북한 체제의 취약점은 ‘진실’이다. 북한 정권은 세계로부터 주민을 격리해 체제를 지켜왔다. 외부 세계의 진실, 내부의 진실이 알려지는 것은 핵으로 막지 못한다. 그것을 막을 백신이 없다. 구체적으로 공개할 순 없지만 MB 정부 5년 동안 북한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전을 많이 구사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대선 직전까지 남북 간에 소통이 이뤄졌으며 대선이 끝난 후에도 북한으로부터 ‘만나자’는 제의가 있었다고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접촉 때마다 심리전 중단을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MB 욕을 하지 않을 테니 삐라(전단) 살포를 막아달라는 식이었다. 남측의 ‘최고존엄’을 욕하지 않을 테니 우리의 최고존엄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삐라 살포를 포를 쏴서라도 막아야 할 일로 여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성탄절 트리 점등에도 발끈한다. 현재 신의주 라인(신의주~함흥·북위 40도)까지 북한 주민이 한국의 대북방송을 TV로 시청하는 게 가능해졌다. 수신이 잘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북한 주민이 공중파로 우리 방송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라디오의 경우 과거엔 주파수가 고정돼 있었지만, 요즘엔 장마당에서 중국산 라디오가 팔린다. 한국 콘텐츠가 담긴 USB, DVD도 활발하게 유통된다. 북측은 심리전 중단을 요구한 회담이 있었던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도 요구했다. 북측의 요구에 대해 민간단체에서 하는 일은 막기가 어렵다는 취지로 대응했다. 이명박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구차하게 그렇게 나온 것이다. 남북 간에 신뢰를 지켜야 하므로 접촉 사실을 밖으로 알리진 않았다.”
한국의 공작기관이 어떤 대북 심리전을 벌였는지, 혹은 벌이고 있는지는 비밀의 영역이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3월 15일 현재)는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서면 심리전단 살포, 확성기 방송, 전광판 운영 등 대북 심리전 수단을 가동하겠다고 3월 7일 밝혔다.
‘종이쪼가리’에 벌벌 떠는 격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심리전을 위해 북한군과 중공군을 대상으로 살포한 전단.
북한에서 TGIF(Twitter, Google, i-Phone, Facebook) 환경을 기대하는 건 아득해 보이지만, 북한 사회도 요즘 디지털 기기로 출렁인다.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만 보는 사람은 문화지체(文化遲滯·cultural lag)로 취급받는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최근엔 “아랫동네 꺼 있느냐”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아랫동네 꺼’는 한국 콘텐츠를 가리킨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 대도시의 EVD·DVD플레이어 가구 보급률은 90%에 달한다(EVD는 중국이 DVD에 맞서 만든 영상압축기술 표준이다. DVD에 담긴 콘텐츠는 EVD플레이어에서 구동할 수 있지만 EVD는 DVD플레이어에서 돌아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이 EVD·DVD플레이어를 이용해 매일 2시간가량 영상물을 시청한다고 한다. CD, DVD를 넣을 수 있으며 USB도 꽂을 수 있는 ‘노트텔’이라는 이름의 중국산 기기도 인기라고 한다.
A씨는 “탈북자 2만5000명이 보내주는 돈으로 먹고사는 인구가 10만 명이 넘는다. 이런 마당에 당국이 외부 정보 유입을 막기는 어렵다. 북측이 우리의 심리전에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전전긍긍한다. ‘종이쪼가리’ 보고 벌벌 떠는 격이다. 언뜻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 위력 있는 비대칭 무기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