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세제 개혁, 무엇을? 왜? 어떻게?

소득세 단순화, 법인세 폐지, 재산 보유세 무겁게

  • 최광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choik01@chol.com

    입력2013-03-21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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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곡, 탈루… 개인소득세, ‘중심 세제’ 기능 못해
    • 법인세 폐지하고 소득세와 통합해야
    • 지하경제 양성화, ‘처방’ 전 실태 조사부터
    세제 개혁, 무엇을? 왜? 어떻게?
    “국가가 빈곤과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안정적인 정부, 예측 가능한 법률, 부당한 과세의 부재.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된다.”

    불후의 명저 ‘국부론’에서 이와 같이 갈파한 애덤 스미스가 부활해 한국의 세제를 평가한다면 뭐라 말할까. 분명 “부당한 과세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확대되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세수(稅收) 증대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이 부각되고 있다. 복지뿐만 아니라 방위 통일 교육 안전 등 세출 증대 요인이 발생하면 국민의 세 부담 증대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각종 세출 증대 정책에 대해선 모두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소상히 밝히며 생색을 내지만, 세 부담 증대 방안에 대해선 어물어물 대강대강이고, 어느 누구도 책임지고 국민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세출과 세입에 대한 이런 비대칭적 자세와 임기응변적 접근이 국가 정책을 그르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의 세제는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역대 정권 모두 ‘세제 개혁’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매해 대략 10회씩 세법을 개정해왔다. 하지만 실상은 ‘개혁’은커녕 ‘보완’이나 ‘개편’ 수준이었고, 그것도 대부분 조세 감면 혹은 세수 증대 방안에 불과했다. 참된 세제개혁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세 부담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분명 낮다. 하지만 세금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평불만은 다른 나라에 비해 크다. 왜 그럴까.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세제와 세정이 반듯하지 못하고 헝클어져 있다. 둘째, 세 부담에 상응하는 혜택을 정부로부터 받지 못한다. 셋째, 국민은 세 부담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도 그 근원을 잘 따져 보면 사실 세금에서 연유한 경우가 많다.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세제를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다.



    국세 14개, 지방세 11개, 도합 25개의 세목(稅目)으로 구성된 우리의 조세체계는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납세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납세와 징세의 비용이 높아진다. 또한 조세의 범위는 부적절하고 조세 체계는 불완전하다. 조세에 포함돼야 할 것(한국방송광고공사 광고수수료, 특별회계 및 기금 등에서 부과하는 각종 부담금, 사용료, 수수료 중 일부)이 빠져 있고, 동일한 과세 대상을 놓고 서로 다른 명칭의 세금이 부과된다.

    누락, 중복, 부당…

    특별회계와 연계돼 낭비를 조장하는 목적세도 문제다. 예산 과정에서 자원 배분을 둘러싼 마찰과 갈등을 줄이고 공공성 높은 사업을 위해 세금을 거둔다는 명분 아래 목적세가 조세 저항을 줄이는 장치로서만 기능하고 있다. 심지어 농어촌특별세의 경우 조세감면액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지구상의 세제 역사에 이런 전례를 찾아볼 수 없어 학자로서 창피할 지경이다. 25개 세목 중 절반 정도는 작명조차 잘못돼 있다.

    산적한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선진국과 달리 개인소득세가 ‘중심적 세제’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세수 중 소득세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평균이 26%인 데 반해 우리는 그 절반인 13%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득세 세수가 점하는 비중이 OECD국가 평균 9.4%인 데 비해 우리는 3.1%로 매우 낮다. 또한 소득이 있는 국민 중 40%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점은 중진국도 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소득세의 또 다른 문제점은 소득 유형별로 세 부담이 매우 불공평하다는 점이다. 근로소득·사업소득·자산소득 중에서 근로소득의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고 사업소득과 자산소득의 세 부담은 낮다. 자산소득, 특히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가 미흡하다는 점, 세무행정에 문제가 있어 사업소득의 탈루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소득세가 중심 세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소득 유형별로 세 부담 차이가 큰 주요 원인이다.

    근로소득이 다른 소득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세 부담을 떠안은 이유는 △조세감면이 근로소득보다는 다른 유형의 소득에 집중되어 있고 △‘유리지갑’으로 표현되듯 근로소득의 과세포착률이 다른 유형의 소득보다 현격히 높기 때문이다. 이런 불공평은 근로소득에 대한 세 부담 인하보다는, 재산소득과 사업소득에 대한 조세감면을 축소하고 과세포착률을 높여 이에 대한 세 부담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해소해야 한다.

    어느 나라든 세제 개혁의 핵심은 소득세제 개혁이다. 소득세제 개편과 관련한 최근의 세계적 추세는 단순성을 지향한다. 필자는 이원평률소득세제(dual income flat rate tax) 도입을 제안한다. 이원평률소득세제란 누진세율 대신 한 세율로만 과세하는 평률세제(flat rate tax)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에 대해 각기 다른 세율로 차등 과세하는 이원소득과세(dual income tax)를 합친 것이다. 현재 러시아를 포함한 20여 개 나라가 평률세제를 도입하고 있고, 주로 북유럽 국가들이 이원소득과세를 채택하고 있다.

    소득세에서 누진세를 없애자는 이런 주장에 대해 일각에선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지적하는데, 그건 오해다. 예를 들어보자. 연간 소득 2000만 원까지 세금을 면제해주고 소득세율을 20%로 단순화하면, 연간 소득 3000만 원인 A는 200만 원((3000만 원-2000만 원)×0.2), 연간 소득 1억 원인 B는 1600만원(1억 원-2000만 원)×0.2)을 세금으로 낸다. A가 낸 세금은 전체 소득의 6.7%(200만 원÷3000만 원×100)이고 B는 16%(1600만 원÷1억 원×100)다. 즉,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낸 결과가 나온다. 이원평률소득세제를 도입하면 각종 조세특례제도를 그대로 둘 이유가 없으며 이에 따라 세제가 아주 단순해져 효율성이 크게 증대되며 세무행정은 간편해진다.

    법인세-소득세 통합 검토할 만

    현행 25개 세목 중 형평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세금이 법인세다. 일반 국민은 법인세를 ‘부자(인 기업)가 내는 세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맞는 말이 되기 위해서는 △주주만이 법인세를 부담해야 하고 △모든 주주는 부자여야 한다. 많은 학자가 법인세의 실질적 부담 주체가 주주, 근로자, 납품업자, 소비자 중 누구인지 연구해왔지만 아직 주주라는 확실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주주 중에는 소위 ‘오너’와 같은 부자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많은 국민도 소액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기업 현장에서는 법인세를 줄이기 위한 목적에서 자원 배분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자기 자본을 사용할 수 있는 데도 법인세 감면을 위해 남의 돈을 빌린다(이자는 비용으로 간주돼 법인세 감면 대상이 된다).

    따라서 법인세를 폐지하고 이를 소득세와 통합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법인의 원천소득에 대해 과세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법인의 원천소득을 주주에 귀속시켜 개인소득세를 징수하면 세수가 오히려 증대되고, 세 부담의 형평성이 제고되며, 기업운용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재산세에 대한 과세 합리화도 절실하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재산 취득 및 이전과 관련한 거래과세, 그리고 재산 보유와 관련한 보유과세 중 거래과세의 비중이 매우 높아 효율성과 형평성 둘 다 문제가 심각하다. 둘째, 비과세 및 감면이 남발되고 있어 자산 유형 간 형평성이 낮아지고 엄청난 자원 배분 왜곡이 초래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거래과세의 비중이 낮아야 재산이 활발하게 유통돼 경제활동이 촉진된다. 거래과세보다 보유과세가 무겁다면 자산의 가격 상승이 억제될 뿐만 아니라 자산의 분산이 촉진돼 형평성이 높아진다. 선진국의 경우 보유과세 비중이 90% 이상이고 거래과세는 거의 미미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보유과세 비중이 20%에 불과하다.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과세는 강화하고,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록면허세 등 거래과세는 대폭 인하해야 한다. 특히 국가가 연간 거둬들이는 자동차세 징수액이 토지와 건물에 대한 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 징수액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것은 자동차 세금이 과도하고 부동산 세금이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다음으로 재화와 용역에 대한 소비과세를 합리화해야 한다. 도입된 지 35년이 지난 부가가치세는 이론적으로야 체납이나 탈루가 일어날 수 없지만, 납세자들이 매출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듯 현실에서는 세금 탈루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연간 매출액이 4800만 원 미만인 소규모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간이과세제도는 우리 세정과 세제 문제의 근원이므로 조속히 폐지돼야 한다. 소득도 아닌 매출이 월 400만 원 이하인 사업이 어떻게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 임차료, 인건비, 각종 공과금만 따져도 월 400만 원 매출로는 수지타산이 맞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개인사업자 500만 명 중 약 35%가 간이과세자다. 이는 곧 상당수의 간이과세자가 외형을 속여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음은 물론, 소득세도 탈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맥주와 위스키 세금이 같다?

    개별 재화나 용역에 대한 세금으로는 주세(술), 담배소비세(담배), 교통·에너지·환경세(휘발유), 개별소비세(화장품 귀금속 모피 자동차 경마장 골프장 카지노 유흥음식점 등으로 과거 특별소비세) 등이 있다. 이 소비과세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세율이 체계적이지 않고 일관성이 전혀 없다. 가구에 대한 세율이 20%인 데 반해 자동차에 대한 세율은 5%나 10%이고, 청주에 대한 세율이 30%다. 같은 세제 내에서도 세율이 매우 불합리한 경우가 많다. 맥주와 위스키의 세율이 70%로 똑같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모든 재화에 대해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종가세·가격×해당 세율)하는 데 반해, 담배와 유류에 대해서만 정액으로 과세(종량세)하는 것도 잘못이다.

    흔히 조세는 세법으로 표현되는 조세제도와 이를 집행하는 세무행정으로 구분된다. 조세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세무행정, 즉 세정이다. 입법으로 결정된 세제는 세무행정을 통해 국민 부담이 실질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무행정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조세행정에 대한 납세자의 신뢰는 가히 절대적이다. 그 주된 요인은 세무행정의 과학화에 기인한다. 세무행정의 과학화란 전산망 확충, DB 구축 같은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납세자와 징세자가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갖고 이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상대에게 정직하게 설득하는 것, 그리고 자의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기장(記帳)이 모든 납세 행위의 근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열심히 기장해봤자 인정받지 못해서는 곤란하다. 불성실 기장자가 득을 보는 일은 더더욱 곤란하다. 혹자는 우리 국민이 기장을 싫어하기 때문에 기장에 의한 납부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데 한국은 문맹률이 가장 낮고 교육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든다. 납세자들이 기장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방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는 신고율·표준율에 의한 징세를 포기하고, ‘기장에 의한 신고’를 세무 행정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복지 재원 조달과 관련해서만 중요한 게 아니고, 모든 나라에서 재정 당국자들을 괴롭혀온 정책과제다. 지하경제가 번창해도 우리의 정책 대응은 늘 적절하지 못했거나 미약했다. 지하경제 척결은 늘 언급돼왔지만, 우리나라 지하경제의 제반 양상이 구체적으로 어떠하고 양상별로 그 내용과 규모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대책을 세운 적이 없다.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지하경제 규모에 대한 ‘추정’은 이뤄져왔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기초자료조차 조사된 적이 없다. 그러면서 “양성화하겠다”고 한다. 새 정부가 진정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복지 재원의 일부를 충당하고자 한다면 먼저 지하경제의 양상에 대해 범부처 차원에서 민관이 협동해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해야 한다.

    과학과 예술의 결합

    조세의 1차적 기능은 국가의 재정활동에 필요한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조세는 민간 부문에 직간접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조세 정책을 통해 주요 정책목표 달성을 도모할 수는 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정책목표를 달성하려다 세제만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지고 조세의 부담 공평성이 크게 저하돼왔다. 부동산 투기 억제, 향락산업 규제, 인구의 도시집중 억제 등은 세제 하나로 달성할 수 없다. 많은 문제가 세제 외적 요인에서 발생하는데, 세제상의 조치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본래의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고 세제만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조세정책이 다른 경제정책과 연계성을 갖도록 해야 하지만, 여타의 정책목표 때문에 세제가 혹사돼 세제 자체의 왜곡이 초래돼선 안 된다.

    몇몇 정권에서 세제개혁을 검토한 적은 있으나 한 번도 제대로 추진한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첫째는 지도자의 무지와 지도력 부족이다. 재정 운용이야말로 국가 운영의 요체인데 이를 인식한 지도자가 없었으며, 재정의 중심에 있는 세제를 반듯하게 만들겠다고 결심한 지도자가 지금까지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세수 결함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똑똑한 세제 공무원들이 세제 개혁에 나서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가 이것이다.

    세제 개혁, 무엇을? 왜? 어떻게?
    최광

    1947년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메릴랜드대 박사(경제학)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예산정책처 초대처장

    現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저서 : ‘한국재정 40년사’‘경제원리와 경제정책’‘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정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10조~20조 원의 세수를 손에 쥐고 세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 중요성과 국민의 높은 관심을 감안할 때 세제개혁위원회는 기획재정부가 관장하는 현행 세제발전심의회보다 격상시켜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보장해 제대로 세제 개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세정책은 경제이론, 세법이론, 회계이론이라는 과학(science)을 근거로 한 정치적 예술(art)이다. 학문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요소와 정치적 역량 발휘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예술적 요소가 잘 조화될 때 조세정책과 세무행정 개혁은 성공할 수 있고, 국민복지는 증진될 수 있다. 전문가는 과학에 바탕해 획기적 세제개혁안을 제시하고, 정치권은 예술적 정치력을 발휘해 세계 최고의 세제를 완성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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