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세출구조 확 바꿔 재원 마련 농협은 ‘농촌복지센터’ 역할 해야”

朴 정부 농정공약 총괄 이상무 FAO 한국협회장

  • 최영철 기자│ftdog@donga.com

    입력2013-03-21 16:0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전·현직 농림 관료 통틀어 ‘3대 천재’회자
    • “MB, 농정 공약 방치…농수산물 희생양 만들어”
    • “재해 피해 국가 예산으로 전액 보상해야”
    • “박 대통령은 허튼 약속 안 한다, 겪어봐서 안다”
    • “농협개혁 성공 여부는 회원 농협 변화에 달렸다”
    “세출구조 확 바꿔 재원 마련 농협은 ‘농촌복지센터’ 역할 해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 여러 언론매체가 신임 농림축산부(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로 이상무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 회장(64)을 첫손에 꼽았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농정 분야 핵심 파워엘리트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늘 맨 윗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만들어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을 맡아 농정 분야 공약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이 회장은 1971년 농림부 사무관으로 시작해 1998년 기획관리실장으로 퇴임하기까지 27년간 관료생활을 했다. 그 후 한국과 중국에서 대학 강단에 섰고, 동북아농업개발원장, FAO 필리핀 주재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FAO 한국협회장을 비롯해 세계농정연구원 이사장, 아·태농정포럼 의장, 아프리카·아시아농촌개발기구(AARDO) 극동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다.

    2008~09년엔 농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이하 농특위) 위원장을 지냈으며 2010년 12월에는 새누리당 국가미래연구원 농림수산식품분과 간사를 맡아 공약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를 거쳤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농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관료시절에 이미 농업경영학과 관련한 다수의 책과 논문을 쓰는 한편, 일본 도쿄대 농경제학과 초빙교수를 지냈다.

    이 회장은 지금도 농림축산부 전·현직 관료를 통틀어 ‘3대 천재’로 회자되며 ‘한국의 주요 농업정책은 다 그의 손을 거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퇴임 후 10여 년간 세계의 농촌을 기행하고 쓴 ‘파워 농촌으로 디자인하라’와 우리 농어업, 농산어촌의 역사를 만든 32인의 인생을 엮은 ‘내 일생 조국의 산들바다를 위하여’는 농어업 관련 종사자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지키지 못할 약속 안 한다’



    3월 6일 오전 박근혜 정부의 농정공약을 직접 만든 이상무 회장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안양시 FAO 한국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천재’라는 날선 이미지와는 달리 옷차림과 말씨가 소탈하면서도 선이 굵었다. 할 말은 하는 스타일.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히 지켰다. 말은 막힘이 없고 유려했다. 준비된 대본을 읽기라도 하듯 각종 통계와 근거, 시점을 정확히 제시하는 모습에서 ‘천재 맞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대선 당시 만든 공약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검토 이후 나온 국정과제에 차이가 많습니까.

    “(공약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구체화하고 추가된 부분도 있고요.”

    ▼ 박근혜 정부의 농정 공약 작업에는 어떻게 참가하게 됐습니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개인적으로 만나 농정 분야에 대한 의견을 나눈 후 수시로 자문을 해왔고, 2010년 12월부터는 국가미래연구원 농산식품 분과(전문가 17명)의 간사를 맡아 정책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대선 공약을 만들 때 기초 자료로 쓰였죠. 지난해 9월부터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을 맡아 이를 수정 보완했는데 박 후보께서 일일이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 때문에 선거일이 9일밖에 안 남은 시점까지 발표가 늦어져 애를 많이 태웠죠.”

    이 회장은 “박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농어촌 문제와 농수산 분야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농정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뚜렷했다”고 말했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어촌의 현실을 마음 아파하면서 농어촌 발전을 위한 제2의 새마을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국민행복의 선결과제로 식품안전과 식량안보를 꼽으며 농수산업이 제대로 잘되려면 첨단 과학기술과 IT산업이 융합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 농정 공약을 만드는 대원칙이 있었다면.

    “박 대통령은 두 가지를 늘 강조했어요. ‘현장에 문제도 있고 해답도 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다’가 그것입니다. 현장성과 실효성, 실천 가능성이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었어요.”

    ▼ 공약집에 ‘희망농촌’ ‘파워농촌’이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습니다.

    “‘희망농촌’은 농어촌에는 실제로 희망이 있고 또 그 희망을 더욱 구체화하고 확산시켜야 한다는 염원을 담았고, ‘파워농촌’은 제가 2007년에 출간한 책 제목이자 저의 한결같은 소신이기도 합니다. 농어촌에 파워가 있어야 농어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 자원, 자본, 조직, 기술, 경영 등 모든 분야에서 농어촌이 파워를 가질 수 있도록 정책이 입안되고 실천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파워가 있는 곳에 사람도 모이고 돈도 모이죠. 농어촌에서 ‘웰빙’의 희망을 찾고, 진정한 파워가 생길 때 행복한 농어촌이 완성될 것입니다.”

    “농특위 부활해야”

    이 회장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선 선대본부 농어업정책위원장으로 공약을 만드는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에게 이명박 정부의 농정 분야 공과(功過)를 물었더니 관료 출신답지 않게 날선 답변이 돌아왔다.

    “실망스러운 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이후에 공약을 제대로 지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당시 슬로건이 ‘돈 버는 농어업, 살맛 나는 농어촌’이었는데 돈 버는 농어업 정책은 조금 신경을 쓰는 듯하다가 물가 문제만 나오면 농수산물부터 희생양으로 만들었습니다. 농어업 종사자로부터 원성을 샀죠. 살맛 나는 농어촌 공약은 사실상 방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농어업 분야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사안인 데다 당시에 꼭 시작할 필요도 없었는데 밀어붙였고, 농특위를 폐지한 것도 농어업인의 민심을 잃는 데 큰 몫을 했죠. 제가 농특위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하는 원망이나 푸념이 아닙니다. 농특위 부활은 농어민단체와 여야 간 합의로 국회에서 농특위 관련 법안을 처리하면 박 대통령께서 수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경제 2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농어업은 단순히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1차산업이 아니라 가공, 유통, 관광, 이런 종합산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별 농어가의 지역조직을 농어업 경영모델로 개발하고 발굴,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생각하는 ‘농어민이 잘사는 농촌’이란 실질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농어업이 실질적으로 수지가 맞고 재해로부터 충분히 보호를 받을 수 있어서 농어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농어촌이죠. 일자리와 소득원이 충분하게 마련돼 농어촌 주민의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된 곳, 기초생활이 보장될 뿐 아니라 부가가치를 높이고 경영비를 절감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곳, 기술과 능력을 갖춘 곳, 재해대책 시스템이 잘 가동되어 웬만한 자연재해를 입어도 재기할 수 있는 농어촌입니다.”

    ▼ 제2의 새마을운동을 강조했습니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정신개혁과 환경개선에 초점을 맞췄고 가난에서 벗어나 물질적으로 잘살아보자는 게 우선이었지만, 이 시점에서 요구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은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새마을정신의 재점화와 함께 소득 증대를 바탕으로 진정한 자립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그 위에서 문화적으로 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운동이 돼야 합니다.”

    ▼ 이번 정부와 지난 정부의 농가소득 향상 공약 간에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재해대책과 직불제가 강조된 것이겠죠. 특히 고령 저소득 농어가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도록 하는 직불제를 도입하고, 직불제 관련 예산을 농어업·농어촌 관련 예산의 30%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검토한 바 있습니다. 유럽 70%, 일본이 40% 정도에 달하는 점을 감안해 새 정부도 그 비중을 최대한 높이도록 노력할 겁니다.”

    재해 방치는 직무유기

    ▼ 새 정부의 직불제가 지난 정부의 그것과 다른가요? 직불금 제도가 농민들로 하여금 쌀농사를 기피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쌀 생산기반을 유지하려면 직불금을 올려야 해요. 직불금 제도의 요체는 개별 농어가의 기준 소득을 정해놓고 그보다 못한 농어가에 개별적으로 모자라는 차액만큼 직불금으로 주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소득을 객관적으로 추정하기 어려워 제도 시행이 중단되다시피 했죠. 품목 중심의 현행 직불제는 형평에도 맞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판단되니 단계적으로 품목 중립적인 경영안정 직불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밭작물에 대해서도 대상 품목을 확대할 뿐 아니라 지목 제한을 해제해 2모작 사료작물 등과 하천부지를 이용한 밭농사에까지 확대해야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공익형 직불제를 개발해 직접적으로 농민의 소득을 보완하자는 얘기죠.”

    ▼ 농어촌의 주거·의료·교육 여건 개선도 공약 중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인수위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을 보면 △공동생활 홈 조성 △마을 리모델링 추진 △마을회관 급식시설 설치 △가사 도우미 지원 확대 △농어촌 상수도 보급 확대 △도시가스 배관 확대 △농어촌 의료 시설·장비 확충 △농어촌 환경 개선 △농어촌 취약지 거점의료기관 육성 △지속 가능한 농어촌 학교 시스템 구축 △농어촌 고교 출신자 지원 확대 등이 있죠. 이런 것들은 농어가 소득이 증대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일종의 인프라들이니까 반드시 국가가 해줘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함께 농정공약에선 ‘맞춤 복지’를 강조했다. “현실에 맞는 맞춤형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누리당은 공약에서 ‘산재보험 수준의 안전재해 보장제도를 도입하고 국민연금보험료 지원시 기준 소득을 현행 79만 원에서 대폭 현실화하는 한편, 건강보험료는 현행 50% 일률 지원방식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의 재해대책이 농민의 피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재해 현장에 가보면 정말 화가 치밀죠. 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 태풍 피해지역 세 군데를 다녀온 후 분개했습니다. 농어업인이 자기 책임이 아닌 천재지변으로 인해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것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라는 게 제 소신이자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대선 때 처음 발표한 공약이 재해대책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죠.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농어민들이 가입하기 어렵다거나 피해 조사가 너무 늦게 이뤄지는 바람에 피해를 본 농수산물이 때를 놓쳐버리게 된다거나 하는 문제를 세심하게 검토해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인수위에 요청한 바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보험이 아니라 재해 피해액을 국가 예산으로 전액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출구조 확 바꿔 재원 마련 농협은 ‘농촌복지센터’ 역할 해야”

    제4차 식품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한 이상무 FAO 한국협회 회장(앞줄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 이명박 정부가 한중 FTA를 추진한 데 대해 비판했는데, 향후 농어업인의 피해의식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정책 대안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FTA를 신중하게 추진한다는 기본 접근방식이 중요하죠. 이미 협상을 시작한 한중 FTA는 피해가 최소화하도록 정말 노력해야 합니다. 농어업인의 피해의식을 덜어주려면 농어업인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게 선결과제죠. 협상과정을 가급적 투명하게 하면서 농어업인의 의견을 협상과정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해야 하죠. FTA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FTA 피해보상 이행기금 조성을 확대하고 적절하게 피해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역설했는데.

    “축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먼저 환경오염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고, 가축질병 방역과 피해보상도 적절하게 시스템화해야 합니다. 사료가격 등 축산업 생산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서도 적절한 안정제도가 정립돼야 하고요. 수요 창출과 시장 개척, 제품 개발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축산물의 유통 개선과 가격안정 대책도 적절하게 강구돼야 할 것입니다. 축산식품의 안전 문제도 빼놓을 수 없고요.”

    “관세화로 쌀산업 무너질 수도”

    인수위가 정한 국정과제에는 이 회장이 말한 부분이 그대로 반영됐다. 축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선진국형 도축·가공·유통 일관시스템 구축과 계열화 확립, 소비자가격 인하 유도를 위한 농협 관리운영 점포 대폭 확대도 들어 있다. 농가는 생산, 지역 축협은 수집·공급, 농협중앙회는 도축·가공·유통·판매를 담당하는 협동조합형 패커(packer·일괄처리업자)의 육성도 주요 항목이다.

    ▼ 요즘 돼지 돈수가 급격히 증가해 고기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농가에서 살처분 얘기까지 나오는데 해결책이 없겠습니까.

    “옥수수 사료가 비싸면 돼지 농사를 적게 짓고 그러면 고기 값이 올라가죠. 그러다 옥수수 농사가 잘되면 사료가격이 떨어지고 돼지를 많이 키워 고기 가격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옥수수 수요가 늘고 사료 가격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돼지 사육 수가 줄어들고 가격은 또 오르고…. 이게 콘 호그 사이클(Corn-hog Cycle)이라고 해서 경기변동론의 기초예요. 우리의 경우 보통 2~3년에 한 번씩 사이클이 반복되는데 지난 10년 동안은 자연조건 때문인지, 정부 정책 때문인지 한 번의 파동도 없이 호황 국면이 계속됐어요. 이럴 때 정부가 가격을 잡겠다고 나서면 안 됩니다. 시장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야 해요.”

    ▼ 직불금 확대, 맞춤형 재해대책, 자유무역협정 대응 확대 등은 모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박 대통령은 계속 ‘증세 없는 공약 실천’을 주장하는데, 이게 가능할까요.

    “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조달 문제는 공약 작업 초기부터 가장 중요하게 거론됐어요. 박 대통령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안 하는 분입니다. 겪어봐서 알아요. 공약 실천에 소요되는 재원 추정과 그 재원의 조달 방안은 기초단계에서부터 필수적인 검토사항이었죠. 박 대통령은 재원조달 방안이 불투명하거나 실현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공약에서 뺐습니다.

    공약 실천을 위한 예산 확보는 정부의 세출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현재의 예산항목을 전면 재검토해 불요불급하거나 특혜성, 선심성이라고 간주되는 예산은 과감하게 삭감해 여유 재원을 마련할 겁니다. 공약 실천 과제도 우선순위와 추진 일정을 감안해 재조정할 것이고, 이를 적절히 중장기 재정계획에 반영한 다음 연도별 예산에 반영하도록 할 것으로 봅니다.”

    ▼ 2014년 말이면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끝납니다. 대책이 있습니까.

    “쌀 관세화는 지금까지 2번 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더는 유예를 받기 어렵죠. 여러 사정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관세화는 관세율을 비롯해 주요 사항에 관해 쌀 수출국들과 협상을 거쳐야 하는데, 이게 새 정부의 당면 과제 중 하나입니다. 협상에 임하기 전에 국민적 공감대 형성, 정치권의 합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관세화가 시작되면 이렇든 저렇든 국영 무역체제가 민간 무역체제로 바뀌고 수입제한이 없어지므로 쌀 수입은 당연히 늘어날 겁니다. 정책 대비가 필요합니다.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최소시장접근(MMA) 명목으로 허용된 물량은 저율관세(TRQ)로 계속 수입량이 조금씩 늘어날 것이고, 우리 무역 관행으로 볼 때 이중계약이나 품목변경 등의 기회주의적 행태로 인해 시장교란 효과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우려도 있습니다. 잘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 쌀 산업이 무너지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심각하게 대처해야 할 사안입니다.”

    “회원 농협 환골탈태해야”

    “세출구조 확 바꿔 재원 마련 농협은 ‘농촌복지센터’ 역할 해야”
    ▼ 농협은 우리 농정의 큰 축입니다. 농협이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개혁을 시작한 지 만 1년이 넘었는데 평가를 한다면.

    “지난 1년간 농협 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부문으로 분리된 조직의 조기 정착이었죠. 정부 지원자금 부족분 해소, 농협중앙회에 대한 상호 출자제한 및 기업집단 지정 해소 등 어려운 과제가 있었습니다. 경제사업 부문에 대한 신규 투자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있지만, 조직의 안정화와 예측하지 못했던 시행착오들을 해소해나가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앞으로 판매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등의 당초 목적과 취지가 달성되도록 후속 지원 및 관련 조치를 계획했던 대로 실천해가는 게 중요하죠. 궁극적으로 농산물 유통사업을 개선해 농업인의 실익이 증대되고 농촌 환경 변화에 부응한 사업의 확대로 농업인의 복지를 향상한다는 농협 본연의 기능을 실현해야 합니다.”

    ▼ 농협 개혁의 핵심은 경제사업의 활성화입니다. 여기에 회원 농협의 몫이 있다면.

    “2020년까지 조합원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50% 이상 팔아주는 판매농협 구현이 경제사업 활성화의 목표였죠. 경제사업 활성화의 성공은 중앙회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고, 산지 회원 농협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입니다. 회원 농협들이 서로 역량의 차이가 있다 해도 산지의 생산을 조직화하고 육성하는 기능은 당연히 회원 농협이 해줘야 합니다.”

    ▼ 유통단계 축소는 경제사업 활성화의 핵이자 농가소득을 늘리는 지름길입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올해 6월 문을 여는 안성농식품물류센터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전국 5개소에 순차적으로 설립되는 물류센터를 통해 유통단계를 축소하고 중간 유통마진을 최소화한다는 게 농협의 계획이죠. 하지만 물류센터 건립과 정착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시대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그 중요성과 기능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죠. 따라서 농산물 유통에도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첨단 IT 기술과 인프라를 이용해 사이버 물류센터를 만들 수도 있고 그곳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를 하게 하는 방법도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 새 정부의 농업정책 파트너로서 농협은 어떤 길을 가야 합니까.

    “우선 회원 농협이 농촌지역의 경제복지센터 역할을 수행해야 하겠죠. 특히 노인복지와 지역공동체 유지, 농촌 사회적기업 육성 지원, 농촌 환경보전 등에 주도적으로 나서줘야 합니다.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농촌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협동조합형 기업 육성을 통해 농촌의 일자리 창출을 돕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꾸는 기능도 맡아야 하고요. 농협이 제2의 새마을운동 실천주체가 돼야 한다는 의미죠.

    이렇듯 회원 농협이 본연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선 임직원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농민 조합원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지역농협, 지역축협으로 거듭 나야 하죠. 농협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 즉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한 농어촌을 실현하려면 회원 농협의 조직과 지배구조, 사업 추진과 예산 집행 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과감한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선심, 특혜는 이제 그만”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집과 인수위 토론회에서 “농업은 우리의 소중한 먹거리를 책임지는 생명산업이고 또 안보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인수위 국정과제에는 국내 생산기반 확대를 통해 자급률을 제고하고 식량위기 사전대응 시스템을 확립하는 한편, ‘자주율’개념을 도입해 해외개발·비축 등 안정적 해외공급 기반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5% 안팎인데 그나마 쌀(83%)을 제외하면 3.4%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국제연합식량기구에서 10여 년 가까이 활동해온 이 회장은 “식량자급률이 계속 떨어지는 것은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국민 식량의 안정적 확보 공급은 국가의 원초적 의무이기도 하므로 결코 이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죠. 하지만 농업인 1인당 평균 150평(약 495㎡) 정도의 경지면적을 가진 나라에서 늘어나는 각종 농축산물(사료곡물 포함)을 자급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죠. 그게 합리적 판단입니다. 식량자급률 하락의 원인은 생산과 공급의 구조적 감소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에서 개인의 늘어나는 수요를 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죠. 자급률을 무턱대고 높여야 한다고 주장할 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최대한의 자급률을 목표로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회장은 우리 농정이 발전하기 위한 대전제를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우리 농정이 발전하려면 정책 시안이 나오는 단계부터, 지방의 일선 행정조직 단계부터 현실을 충분히 감안해야 하며, 이해당사자 간의 협상과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농정은 더 이상 농업인이나 농촌 주민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하므로 국민 전체의 공감을 얻지 못한 지역이기주의나 집단이기주의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되죠. 정치성, 선심성 특혜와 나눠 먹기식 예산 관행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야 합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