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호

‘님비’와 자치단체 갈등에 하남 열병합발전소 좌초?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3-03-21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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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립 늦어지면 10만 입주민 ‘냉골’ 생활 불가피
    • 선동 → 풍산동 부지 이전 결정에 주민 반발
    • 강동구 인접지역 이전계획에 하남시-강동구 갈등
    • LH “3월 말까지 조정 안 되면 원안(풍산동)대로 건립”
    ‘님비’와 자치단체 갈등에 하남 열병합발전소 좌초?

    미사지구 풍산동 열병합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하남시민 2명이 지난해 10월 항의의 표시로 삭발하고 있다.

    경기 하남시 미사보금자리지구에 들어설 열병합발전소(이하 열원시설) 부지 선정 논란이 1년째 지속되고 있다.

    하남 열원시설은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미사보금자리지구 3만6000가구에 지역난방을 공급하기 위한 필수사업. 지구계획 변경과 집단에너지 사업 변경 등 관계부처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아 순항하던 하남 열원시설 건립은 예정 부지가 변경된 뒤 일부 주민이 “도심에 열원시설 건립은 안 된다”고 반대하고 나서면서 지난해 5월 이후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논란이 장기화하자 열원시설 사업자로 선정된 기업은 ‘사업 포기’까지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사업 지연에 따른 예상 손실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하남 열원시설 건립이 좌초하면 내년 6월 1000가구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미사보금자리지구에 입주할 예비 하남시민 10만 명은 난방은커녕 온수도 안 나오는 ‘얼음장 주택’에 살아야 할 형편이다. 이광준 미사보금자리지구 입주예정자 대표는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과한 욕심이냐”며 열원시설 부지 선정 논란이 하루빨리 종지부를 찍게 되기를 바랐다.

    입주자 비용 전가 우려

    하남 열원시설 부지 선정이 표류하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다. 표면적으로는 열원시설 부지가 당초 계획된 선동에서 풍산동으로 바뀌자 ‘우리집 뒷마당에는 안된다’며 하남 주민들이 반대하고, 다시 관계기관 논의를 거쳐 서울 강동구 인근으로 옮기려 하자 이번에는 강동구가 반발하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관련 기관이 사태가 악화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남시는 열원시설 부지가 선동에서 풍산동으로 이전되는 동안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다가 풍산동 주민이 반발하자 뒤늦게 당초 계획(선동)으로 환원할 것을 요청해 혼란을 부추겼다. 미사보금자리 시행사인 LH공사와 지구계획 승인권을 가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집단에너지 사업허가권을 가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기관도 ‘절차상 하자는 없었다. 이해당사자끼리 협의해 의견을 절충하라’며 제3자적 태도를 취한 탓에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부지 선정이 장기화하면서 다급해진 것은 사업자로 선정된 코원에너지서비스(이하 코원)와 내년 6월부터 미사보금자리주택에 입주할 입주 예정자들이다. 코원은 하남 열원시설 사업을 위해 수천억 원대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일으켰고, 이미 수백억 원대의 발전설비까지 주문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부지가 확정되지 않는 바람에 막대한 금융손실을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내년 6월 이후 순차적으로 입주할 예비 입주자들은 열원시설 건립이 늦어져 난방과 온수 공급이 안 되는 냉골에서 생활하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더욱이 열원시설 건립이 지연되면서 발생할 막대한 추가 비용이 입주자들에게 전가될 공산이 크다. 하남 열원시설 부지 선정을 둘러싼 논란은 선의로 시작한 사업도 ‘님비’ ‘수수방관’ ‘책임 떠넘기기’와 결합하면 좌초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권도 반대여론 합세

    하남 열원시설은 당초 미사지구 북측 선동 2만㎡(약 6000평) 부지에 열공급 시설만 갖춘 보조시설로 예정됐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열병합발전소에서 생산한 열을 공급받아 선동 열원시설에서 가열해 미사지구 주택에 공급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강동구가 협의 과정에서 “강동구 자체 열원시설이 필요하다”며 미사지구 열 공급에 난색을 표하면서 하남시 자체 열원시설 건설로 선회했다.

    자체 열원시설을 지으려면 가스와 송전시설, 변전소까지 함께 지어야 하기에 예정보다 훨씬 넓은 부지가 필요했다. 미사지구 택지조성을 맡은 LH공사는 선동에서 3㎞ 정도 떨어진 미사지구 남쪽 풍산동 4만4973㎡(약 1만3600평)에 난방용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열병합발전소를 건립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에 따라 하남 열원시설은 난방용 열 가열과정에 발생하는 수증기를 활용해 전기까지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남 열원시설 사업자로 선정된 코원은 2011년 7월 전력수급 주무부서인 지식경제부로부터 사업승인을 받았다. 국토해양부도 지난해 4월 LH가 열원시설 이전배치 계획을 반영해 신청한 미사지구 개발계획 변경을 승인했다. 이후 코원은 지난해 7월 지식경제부로부터 발전용량을 288.1MW에서 398.9MW로 증설하는 사업계획 변경을 승인받았다. 발전용량이 증설된 것은 발전효율 측면을 고려했기 때문.

    관련부처 승인 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됐지만 미사지구 열원시설 건립은 주민 반대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일부 주민들이 열병합발전소가 들어설 풍산동이 미사보금자리지구에서 보면 남쪽 하단이지만, 하남시 전체로는 시 중심에 가깝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선 것.

    ‘님비’와 자치단체 갈등에 하남 열병합발전소 좌초?

    미사보금자리지구(왼쪽)와 하남 열병합발전소 조감도.

    주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자 열원시설 건립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10일 개최하려던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는 반대 여론에 밀려 무산됐고, 일부 시민들은 ‘청정화력발전소대책시민모임’(청화대)을 만들어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벌였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주민 여론이 악화되자 지역 정치인들도 반대하는 주민 편에 서서 발전소 부지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남시는 2011년 5월 지경부에 집단에너지 사업허가 의견을, 12월엔 국토부에 지구계획 변경 관련 의견을 냈다. 이때까지 하남시는 ‘경관과 안전을 고려하고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을 추진해달라’는 원론적 입장만 취했을 뿐, 부지 이전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인접 주민들이 집단으로 민원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자 ‘입지를 종합적으로 검토 분석해 민원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고,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한 지난해 5월 이후에는 지경부에 ‘당초계획 부지(선동)로의 환원을 요청하며, 부지면적 증가와 시설용량 증설 등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남시-강동구 갈등으로 확대

    하남시가 당초 계획 부지로 환원을 요청한 것은 지난해 7월, 국토부가 부지를 풍산동으로 옮기는 내용이 포함된 하남 미사지구계획 4차 변경안을 승인 고시한 시점은 그로부터 석 달 앞선 4월이었다. 주민 반대가 거세지자 하남시가 이를 의식해 뒤늦게 부지 환원을 요청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지구계획 변경(2012년 4월)과 집단에너지 사업 변경(2012년 7월)이 모두 끝난 뒤 이 지역 정치인들은 시민들과 열병합발전소 건립 반대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교범 하남시장과 이현재 국회의원 등이 규탄대회에 참가했다.

    반대 여론이 일자 하남이 지역구인 이현재 의원은 지난해 12월 7일 지경부와 국토부, LH공사 등과 합동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국토부는 “사전 동의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사업진행 절차에 이상이 없다”고 밝혔고, 지경부도 “발전소 사업 허가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12월 14일 주민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가 다시 열렸다. 그러나 이날 공청회 역시 일부 단체의 출입 저지로 무산됐다. 대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로 선임된 이현재 의원은 올 1월 14일 국토부, 지식경제부, LH공사, 코원 등 관련기관을 다시 소집해 두 번째 합동대책회의를 했다. 이날 회의에서 민원을 해소하고 미사지구 열 공급 차질을 막기 위해 이미 승인이 난 풍산동 대신 새 이전 부지를 물색할 것을 합의했다.

    LH공사는 1월 말 이전 후보지 3곳을 선정했다. 1안은 풍산동 부지에서 500m 떨어진 LH하남사업본부 부지 인근, 2안은 1안에서 도로를 건넌 곳이다. 3안은 1안과 2안보다 서울 강동구 경계에 더 가까운 곳이다. LH가 이 같은 이전안을 제시하자 이번엔 강동구가 발끈했다. 강동구 의원들이 “강동구와 가까운 곳에 열원시설을 짓지 말라”며 들고 일어난 것. 강동구의원들은 LH를 항의 방문하는 한편 하남 열병합발전소 이전 반대 촉구를 결의하고 나섰다. 그러나 2월 20일 하남시는 강동구에 가장 가까운 ‘3안’을 택해 LH에 통보했다. 하남시 내부 반발에서 한발 나아가 하남시와 강동구의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하남 열원시설이 당초 강동구 열원을 이용하는 보조열원으로 계획됐다가 자체 열원으로 바뀌게 된 원인 제공자가 강동구라는 점이다. 자체 열원시설로 확충하려다보니 부지 확대를 위해 선동에서 풍산동으로 옮기게 됐고, 이 때문에 주민 반발로 다시 이전 부지를 물색하다 강동구 인접지역이 후보지 중 한 곳으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사안이 지자체 간 대결 국면으로 전개되자 LH와 코원은 더욱 난처한 처지가 됐다. 하남 주민의 반발로 9개월을 허비한 끝에 또 논란에 휩싸이게 돼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미사보금자리에 입주할 주민들에게 열 공급을 제때 못할 우려가 현실화했기 때문. 3월 말까지 건립 부지가 확정되더라도 환경영향평가와 건축허가 등 후속 인허가 절차를 밟는 데 9개월 정도 소요되고, 열원시설을 짓는 데 24개월이 필요해 준공은 일러야 2015년 12월에나 가능하다. 미사보금자리지구에는 2014년 6월 1000가구가 입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5년 6월에는 1만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내년에 입주할 1000가구에는 임시로 이동식 보일러를 가동해 열 공급이 가능하지만, 1만 가구가 입주할 2015년 6월 이후에는 이마저 여의치 않다.

    3월 말 부지 확정될까?

    사정이 이렇게 되자 ‘냉골 아파트’에서 살게 된 미사지구 입주 예정자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입주 예정자 대표들은 LH를 항의 방문하고, 지역구 이현재 의원을 찾아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부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자 관련기관들이 이견 조정을 위해 나섰다. 국토부는 절충안을 마련하기 위해 3월 8일 관련기관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하남시와 강동구의 입장차가 워낙 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나마 ‘한 발씩 양보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처음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함께 자리하는 것조차 꺼렸지만, 이제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처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며 “조만간 절충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열원시설을 이전하라는 하남 주민의 요구에 부응해온 하남시와 이현재 의원은 입장에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 의원은 “열원시설을 시 중심에 짓겠다는 것을 일부 주민이 반대해 다른 부지로 이전 추진 중”이라며 “강동구에서 문제를 삼고 있지만, 하남 행정구역 내에서 벌이는 일인 데다 도로 방음벽 등으로 (경계가) 분리돼 있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하남시와 LH공사 등이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 조정하고 있는 만큼 곧 이전 부지가 확정돼 시설을 착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LH공사 관계자는 “45만 인구의 강동구에서 민원이 폭주하고 있어 하남시가 강동구 인접 부지 이전을 고수할 경우 합의에 이르기 어려울 것”이라며 “3월 말까지 이전 부지 협의가 안 되면 국토부가 승인한 원안대로 풍산동에 지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미사지구 입주 예정자들의 소박한 소망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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