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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중퇴 옷가게 점원 세계 패스트패션 황제로

아만시오 오르테가 인디텍스 회장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중학 중퇴 옷가게 점원 세계 패스트패션 황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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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세 때 중학교를 중퇴하고 옷가게 점원이 됐다. 낙후된 유통 과정이 의류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음을 간파했다. 중개상을 안 거치고 직접 소재를 구입해 생산 기간을 단축하면 ‘패스트패션’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주문 즉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같은. 이 전략에 따라 1975년 스페인 시골 마을에 ‘자라’ 매장을 개업한 이래 오늘날 8개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 의류회사로 성장시켰다. 세계 3위의 巨富로 떠오른 아만시오 오르테가 인디텍스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스페인의 유일한 안전자산은 자라(Zara)다.”-영국 일간지‘가디언’

“자라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압도적인 유통회사다.”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 패션 디렉터 다니엘 피에트

한국에서 한때 의류산업은 ‘아픔과 눈물’을 상징했다. 10대 소녀들이 실밥 먼지가 풀풀 날리는 손바닥만한 공장에서 주먹밥을 먹어가며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힘들게 재봉틀을 돌려 수출 한국의 역군 노릇을 했다. 이런 광경이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이제 눈물을 흘리며 일하던 어린 노동자가 한국 소녀들에서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등지의 소녀들로 바뀌었을 뿐 의류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영세한 산업구조는 아직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마트폰, 컴퓨터, 평판TV를 만드는 첨단 전자회사와 원자재 가격 급등을 앞세운 정유회사들이 세계 대기업 순위의 최상위층을 독차지하는 상황에서 사양산업에 가까운 의류를 만들어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일을 가능케 한 사람이 있다. 지난 1월 말 현재 전 세계 약 90개국에서 무려 1751개의 매장을 보유한 의류 브랜드 ‘자라’의 창업자인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77) 인디텍스 회장이다. 자라의 모회사이자 캐주얼 브랜드 ‘풀 앤드 베어’, 속옷 브랜드 ‘오이쇼’등 모두 8개 의류 브랜드를 거느린 인디텍스는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매출이 2011년 대비 17% 증가한 113억6200만 유로를 기록했다. 지난해 스페인 주식시장에서 인디텍스 주가는 무려 70% 상승했다. 인디텍스는 오랫동안 스페인 증시 시가총액 1위를 지켜온 최대 통신회사 텔레포니카, 최대 은행 산탄데르를 뛰어넘고 스페인 최대 기업으로 등극한 지 오래다.



블룸버그는 이처럼 자라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지난해 말 현재 오르테가 회장의 순 자산이 586억 달러에 이르러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478억 달러)을 제쳤다고 보도했다. 오르테가 회장은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에 이어 세계 3위 부자다.

유럽 재정위기 후 비틀대고 있는 스페인 경제 사정을 감안하면 자라의 선전은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스페인 정부는 디폴트(default·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태)를 선언하고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스페인 최대 갑부의 자산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불어나고 있는 것. 경제 전문가들이 “인디텍스의 놀라운 성장이 스페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있다. 자라야말로 스페인 유일의 안전자산”이라고 칭송하는 이유다.

‘자라’의 탄생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은 1936년 3월 스페인의 중소도시 레온에서 가난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 북서부의 궁핍한 시골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중학생이던 13세에 학교를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소년 오르테가는 동네 옷가게에 배달원으로 취직해 푼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런데 명석한 두뇌를 지닌 소년은 옷가게 주인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고작 시골 농민을 대상으로 싸구려 옷을 팔 따름인데 생산과 유통 과정이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이다. 원단을 원단 생산업자가 아니라 중개상을 거쳐 사들이는 것도 번거로워 보였다. 자신이라면 이런 복잡하고 낙후된 생산·유통과정을 개선해 더 빠르고 더 값싸게 옷을 만들어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옷가게 점원으로 13년을 일한 오르테가는 26세가 되던 1972년 갈리시아 지방의 소도시 라 코루냐에서 약혼녀와 함께 자신의 옷가게를 처음 열었다. 옷가게 주인이 된 오르테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원단업자에게 직접 소재를 구입한 것이었다. 원단 구매, 옷 제작, 완성품 옷 판매 과정에 지나치게 많은 중개상이 개입한 탓에 제작기간과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이지만 한철 입은 후 유행이 지나면 미련 없이 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가격이 저렴한 옷, 즉 맥도날드 햄버거와 같은 옷이라는 의미의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신제품이 신속하게 출시되자 오르테가의 가게는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오르테가 회장은 1975년 자신의 옷가게 이름을 ‘자라’라고 지었다. 원래 그는 브랜드 이름을 ‘조르바(Zorba)’로 짓고 싶었으나 이 이름을 선점한 회사가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자라를 택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름에 상관없이 승승장구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스페인 내 매장을 늘리는 데 주력했던 오르테가는 1988년부터는 옆 나라 포르투갈을 시발로 미국 프랑스 멕시코 그리스 벨기에 스웨덴 등에 잇따라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

왜 패스트패션인가

패션의 유행은 빛의 속도로 변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옷이 낡고 해져서 옷을 버렸지만, 이제는 낡아서가 아니라 유행이 지났기 때문에 옷을 버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반 패션 상품의 제작 기간은 너무 길다. 일반적인 의류는 상품 기획에서 디자인, 제조, 유통, 매장 출시까지 약 6개월이 걸린다. 지금 유행하는 옷이 6개월 전에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유행이 빨리 변하고 세계 각국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속출하는 마당에 6개월 전의 유행이나 기후 예측이 잘 맞아떨어질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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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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