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소피아 로렌 + 오프라 윈프리 월가 뒤흔드는 ‘미다스의 입’

마리아 바티로모 CNBC 앵커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입력2013-09-23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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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남자들로 가득 찬 뉴욕증권거래소에 주식 시황을 방송사 스튜디오가 아닌 객장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여기자가 등장했다.
    • 보수적인 월가는 이 젊은 여성을 무시하고 배척하려 들었다.
    •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보폭을 넓혀갔고 10여 년 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전문 방송 앵커로 거듭났다. 각국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계자, 유명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앞다퉈 그에게 인터뷰를 자청한다.
    소피아 로렌 + 오프라 윈프리 월가 뒤흔드는 ‘미다스의 입’

    8월 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영화 ‘잡스’ 시사회에 참석한 바티로모.

    “나를 인터뷰해주기를 바라는 언론인은 마리아 바티로모뿐이다.” - 비크람 팬디트 전 씨티그룹 CEO

    “바티로모 앵커가 방송에서 언급한 기업의 63%는 방송 후 1분 안에 주가가 10% 이상 상승했다.” - 제프리 부스 카네기멜론대 교수

    “바티로모의 성공 비결은 끊임없이 취재원을 확보하는 데 있다.” - 마크 호프먼 CNBC CEO

    새로운 여성 방송인에게 쏟아진 세계 거물들의 찬사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런 극찬을 한 걸까. 경제·금융 분야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문화예술계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남성 위주라는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리아 바티로모(46)는 월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제전문 케이블방송 CNBC(Consumer News and Business Channel)의 간판 앵커다. 똑 소리나는 깔끔한 진행 실력에 글래머 배우 소피아 로렌을 연상케 하는 외모, 베스트 드레서로 꼽힐 정도의 패션 센스까지 갖춰 시청자들과 월가 금융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자신의 유명세를 한껏 활용해 저명한 최고경영자(CEO)나 지도자들과의 굵직굵직한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재능이 돋보인다.



    1991년 설립된 CNBC는 전 세계에 걸쳐 4억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8월 말 현재 미국 9624만 가구의 84.3%인 8113만 가구가 CNBC를 시청한다. 케이블 방송임에도 CNBC의 영향력은 ABC, NBC, CBS 3대 공중파 회사와 맞먹는다. 3대 공중파 회사가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는 일반 뉴스에서와 달리 CNBC가 독보적 위치를 지닌 경제전문 뉴스 부문에서는 CNBC에 대항할 만한 경쟁자가 없다. 바티로모는 CNBC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매일 2시간에 걸쳐 뉴욕 주식시장 마감 시황을 전달하는 ‘클로징벨(Closing Bell)’을 2002년부터 단독 진행하고 있다.

    1993년 CNBC에 입사한 후 20년 동안 한 회사에서 방송 외길을 걸어온 바티로모는 “여성의 성공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자신만만하다. 화려하고 섹시한 외모 뒤에 가려진 승부근성과 열정으로 경제계의 유명인사가 된 그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자.

    월가의 ‘머니 허니’

    바티로모는 1967년 뉴욕 브루클린의 이탈리아계 밀집 동네 다이커 하이츠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토박이 뉴요커답게 맨해튼의 뉴욕대에 진학했다. 뉴욕대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경제학을 부전공한 그는 1988년 CNN 비즈니스 뉴스에 입사해 처음에는 방송 진행이 아닌 제작과 편집을 했다.

    1993년, 출범 2년의 신생회사 CNBC로 옮긴 바티로모는 ‘마켓워치(Market Watch)’ ‘스콱박스(Squawk Box)’와 같은 아침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분위기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바티로모가 방송사 스튜디오가 아닌, 붐비고 시끄러운 NYSE 객장에서 처음 보도할 때만 해도 월가의 많은 이가 여성 방송인을 불편해했다. 바티로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여성의 NYSE 진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결혼이나 출산을 하거나 기자 생활을 접을 수도 있었지만 내 직업을 사랑했기에 방송 일을 계속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얼마 안 가 시청자들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경제 뉴스를 실시간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바티로모에게 매료됐다.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그는 시청자와 월가로부터 ‘머니 허니(Money Honey)’ ‘이코노 베이브(Econo Babe)’라는 애칭을 얻었고 곧 CNBC의 간판 진행자로 부상했다. 방송인 바티로모의 상품성을 알아본 CNBC는 2002년 입사 10년이 채 못된 그에게 간판 프로그램 ‘클로징벨’의 진행을 맡겼다.

    바티로모는 회사의 기대에 부응했다. 2002년 CNN은 바티로모가 방송 중 우호적으로 언급한 기업의 80% 이상이 당일 주가가 올랐다며 바티로모 효과가 상당하다고 보도했다. 제프리 부스 카네기멜론대 교수도 논문에서 “바티로모가 언급한 기업의 63%가 방송 1분 안에 주가가 10% 이상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월가에서는 그의 영향력을 빗댄 ‘마리아 효과(Maria Effect)’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분석이 전문인 월가 애널리스트들조차 그의 방송 원고를 사전 입수하기 위해 막후 경쟁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바티로모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과시한 첫 번째 사건은 2005년 7월 씨티그룹 샌포드 웨일 CEO 겸 회장의 사퇴 소식을 단독 보도한 일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그 위상이 많이 바랬지만 당시 씨티그룹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최대의 금융회사였다. 트래블러스와의 합병을 주도하며 씨티그룹을 세계 1위 금융회사로 만든 웨일 회장 역시 1990년대 중반부터 월가 황제로 군림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온 인물이다.

    정기적으로 주요 CEO들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며 탄탄한 인맥을 쌓아가던 바티로모는 웨일 회장의 사퇴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했다. 월가가 술렁였고 씨티그룹은 펄쩍 뛰며 부인했다. 하지만 몇 달 뒤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특히 웨일 회장이 사모펀드 기업을 차리기 위해 물러난다는 씨티 측 해명과 달리 그가 회사 내 권력다툼에서 밀려 자신이 만든 회사로부터 내쫓겼다는 사실은 월가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연준 의장에 강펀치

    소피아 로렌 + 오프라 윈프리 월가 뒤흔드는 ‘미다스의 입’

    2007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바티로모 앵커가 ‘아시아 신흥 경제대국의 비즈니스 마인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티로모가 오늘날과 같은 거물이 된 결정적 계기는 2006년 5월 1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준) 의장의 발언을 특종 보도한 것이다. 이날 세계 금융시장은 오로지 바티로모의 입에 의해서만 움직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뉴욕 주식시장 마감을 1시간 정도 남겨놓은 이날 오후 3시경 CNBC는 긴급 자막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버냉키, ‘언론이 지난주 나의 의회 증언을 오해하고 있다’” “버냉키, ‘나는 비둘기파(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매파와 달리 경기 부양을 중시하는 중앙은행 관계자들을 일컫는 말)가 아니라 정책을 유연하게 집행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자막이 화면을 바쁘게 수놓은 후 갑자기 시카고 선물거래소에 있는 바티로모가 등장했다. 평소라면 뉴욕 인근 뉴저지 주 CNBC 본사에서 주식시황 마감 뉴스를 전했을 그가 왜 시카고에 행차해 ‘클로징벨’을 진행했을까.

    바티로모는 예의 톤이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틀 전인 4월 29일 저녁 워싱턴에서 벤 버냉키 연준 의장과 저녁을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버냉키가 내게 ‘언론이 내가 의회에서 한 발언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보도했다.

    취임 후 불과 석 달을 보낸 초보 연준 의장 버냉키는 4월 말 의회 증언에서 금리인상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며 경기 부양에 주력할 뜻을 밝혔다. 미국의 새 ‘경제대통령’이 금리인상 중단을 시사했다는 점은 고유가와 달러 약세 등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당시 뉴욕증시 상승을 이끌어온 최대 원동력이었다. 그런 발언을 버냉키 의장이 강하게 부인했다니 어찌 소용돌이가 없었으랴. 그것도 바티로모가 주식시장 마감 직전 뉴욕도 아닌 시카고에 나타난다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해가며 보도하니 금융시장에 난리가 났다. 이날 장중 6년 만에 처음으로 1만1400선 위로 올라섰던 다우지수는 곧바로 하락 반전해 직전 거래일 대비 하락세로 장을 마쳤다. 이는 다음 날 아시아와 유럽 주식시장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2006년 4월 29일 백악관 공식 만찬에 초대된 바티로모는 우연히 버냉키 의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 18년의 재임기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비이성적 과열’과 같은 모호한 수사로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전임자 앨런 그린스펀과 달리 수줍은 학자 출신의 버냉키 의장은 아직 언론을 상대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노회한 그린스펀과 달리 새 연준 수장이 ‘초짜’임을 직감한 바티로모는 버냉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순진한 버냉키 의장은 바티로모에게 말려들었고 결국 “금리인상과 관련해 금융시장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야 말았다.

    바티로모는 시카고로 날아갔다. 주말을 지나 맞은 5월의 첫 거래일인 1일 시카고 선물거래소를 배경으로 ‘버냉키 의장이 추가 금리인상을 시사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후폭풍은 컸다. 월가뿐 아니라 연준 본부가 위치한 워싱턴도 들썩거렸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중앙은행 관계자, 그것도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는 연준 의장은 발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하물며 버냉키 의장은 미국의 기준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FOMC(공개시장위원회) 회의나 의회 증언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언론 인터뷰, 그것도 특정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는다는 연준의 전통도 깼다. 연준 내부는 물론 그를 임명한 조지 부시 행정부와 특종을 빼앗긴 다른 언론매체 등에서 거센 비난이 일었다.

    결국 버냉키는 “CNBC와의 인터뷰는 실수였다. 앞으로 공식적인 통로로만 금융시장과 의사소통하겠다”고 사과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버냉키는 체면을 구겼지만 이 사건은 바티로모라는 인물이 월가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사람들이 그를 왜 ‘월가를 움직이는 미다스의 입’라고 부르는지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씨티 임원 낙마 스캔들 연루

    버냉키 의장 발언 보도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07년 1월 바티로모는 또다시 유명세를 치렀다. 갑작스럽게 사임한 씨티그룹 자산관리부문 최고책임자 토드 톰슨의 낙마 배경에 바티로모가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이 대서특필했기 때문이다.

    45세의 젊은 나이에 탁월한 영업 능력과 잘생긴 외모까지 두루 갖춰 월가의 차세대 황제를 꿈꾸던 토드 톰슨은 바티로모와 부적절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 와중에 바티로모와 관련된 일에 회사 돈을 과도하게 쓴 사실이 드러나 찰스 프린스 당시 씨티그룹 CEO로부터 축출됐다.

    톰슨이 바티로모에게 쏟은 관심은 유별났다. 그는 자신이 졸업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와튼 MBA스쿨에 리더십 자문 이사회를 만들고 이사회 멤버로 바티로모를 추천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시로 바티로모와 단독 인터뷰를 하거나 값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회사의 주요 정보도 알려줬다. 2005년 8월 바티로모와의 인터뷰에서 씨티그룹이 자산관리 부문을 레그메이슨의 브로커리지 부문과 맞교환하기로 했다는 특급 비밀을 누설한 것이 그런 예다.

    톰슨과 바티로모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2006년 11월부터. 씨티그룹 경영진과 함께 회사 전용기를 이용해 아시아로 출장을 간 톰슨이 돌아오는 비행기에 바티로모를 초청해 단둘이 전용기를 이용했다. 이 사건은 곧 월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CNBC는 당시 바티로모가 홍콩에서 열린 CNBC의 아시아 비즈니스 리더스 어워즈에 참석하기 위해 아시아를 찾았으며, 전용기 이용은 회사의 사전 허가를 받은 일이었고, 이 사실을 사전에 씨티그룹과도 논의했다며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 군색한 변명이었지만 바티로모를 보호하려는 CNBC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럼에도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전용기 구설에 휘말린 지 한 달 만에 톰슨의 휘하에 있던 씨티그룹의 계열사 스미스바니 증권이 바티로모가 진행자 후보로 거론되던 선댄스 채널의 새 TV 프로그램 ‘더 그린’에 무려 500만 달러(약 56억 원)의 거액을 후원하는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바티로모는 이 프로그램에서 기업의 환경기술 혁신을 분석하는 일을 맡을 예정이었다. 톰슨은 씨티그룹이 친환경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돈만 밝힌다’는 월가 금융회사 특유의 탐욕스러운 이미지를 누그러뜨릴 수 있기에 협찬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씨티그룹 경영진은 분노했다.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전부터 여러 차례 바티로모에게 과도한 지출을 하는 톰슨이 못마땅했던 찰스 프린스 씨티그룹 CEO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곧장 그를 해고했다. 프린스와 톰슨은 샌포드 웨일 전 회장에게 발탁된 ‘동지’였지만 프린스는 개의치 않았다. 톰슨은 “바티로모처럼 연예인 못지않은 인지도를 지닌 유명 앵커와 만나는 일은 고급 고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나의 자산관리 사업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바티로모와의 관계가 그를 파멸로 몰아간 셈이다.

    월가는 뒤집혔지만 바티로모는 초연했다. “나와 톰슨의 관계는 개인적이지 않다. 오로지 일에만 국한돼 있다. 나의 행동에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프린스 CEO가 나와 톰슨의 관계를 악의적인 의도로 부풀렸다”고 반박했다.

    CNBC도 마찬가지였다. “바티로모는 존경할 만한 언론인이며 그의 행동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거듭 두둔했다. 지난 2월 컴캐스트가 CNBC의 모회사 NBC 유니버설 인수를 완료하기 전 오랫동안 CNBC와 NBC 유니버설을 보유하고 있던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CEO까지 나서 바티로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윤리 논란 비웃는 유명세

    두 차례의 대형 스캔들 이후 미국 주류 언론은 유명 인사와 맺은 개인적 친분을 활용해 특종을 보도하는 바티로모의 업무 스타일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취재원과 지나치게 밀착된 그의 보도는 공정성과 신뢰도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바티로모의 명성과 인기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투자자들은 그가 언급하는 종목을 주시하고 있고, CNBC와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여전히 높다. 현재 바티로모는 ‘클로징벨’ 외에도 주말마다 ‘바티로모의 월가 리포트’를 진행한다. CNBC의 모회사 NBC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투데이’와 ‘NBC 나이트 뉴스’에도 얼굴을 자주 내밀고 있으며, ‘유에스투데이’ ‘비즈니스위크’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에도 정기적으로 자기 이름을 내건 칼럼을 게재하는 등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월스트리트 2’ ‘인사이드잡’ ‘아비트라지’ 등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전후의 월가를 묘사한 각종 영화에도 실명으로 등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린스 CEO는 토드 톰슨을 해고한 지 열 달 뒤인 2007년 11월 실적 부진으로 낙마하고 말았다. 바티로모는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프린스 CEO의 사임 소식을 전했다.

    바티로모의 유명세와 영향력은 월가 바깥으로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매년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서 주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세계 경제경영 분야 거물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2009년 3월 영국을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바쁜 해외순방 일정을 쪼개 런던으로 날아온 바티로모와 인터뷰를 했다.

    2007년 10월 세계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이 CNBC와 정면 대결하기 위해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라는 경제전문 방송 채널을 개국했지만, 이 채널은 CNBC와 바티로모의 아성에 밀려 아직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머독은 설립한 지 약 20년 만에 공중파를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한 폭스뉴스의 역사를 경제뉴스 부문에서도 재현한다는 목표로 줄곧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공을 들였으나 이 채널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시청자는 많지 않다.

    바티로모는 경제 전문가답게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상품화하는 수완도 지녔다. 정확하게 공개된 적은 없지만 그의 연봉은 수백만 달러가 넘는다는 게 정설이다. 1999년 결혼한 남편 조너선 스타인버그도 한 금융회사 창업자의 아들로 상당한 부자다. 그럼에도 바티로모는 2007년 1월 자신의 별명인 ‘머니 허니’를 어린이용 TV쇼, 게임, 티셔츠, 가방 등에 사용하기 위해 상표로 등록했다. 오프라 윈프리, 마샤 스튜어트와 같은 ‘독립기업가 겸 방송진행자’의 길을 가기 위한 수순이다. 온갖 논란 속에서도 월가의 존재 이유인 돈의 논리를 철저히 따르며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그가 경제전문 방송계의 오프라 윈프리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소피아 로렌 + 오프라 윈프리 월가 뒤흔드는 ‘미다스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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