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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동기와 기회가 만나 확신을 낳다

테러의 방정식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jbalanced@gmail.com

동기와 기회가 만나 확신을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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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은 확신범

폭파범 맥베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90분 만에 체포됐다. 오클라호마 고속도로 순찰대원이 자동차 번호판 없이 주행하던 그의 차량을 세워 검문하던 도중 자동차 안에 있던 불법 총기를 발견하고 체포했다.

6세 미만 어린이를 포함해 168명이나 죽게 만들었으면서도 맥베이는 억울한 민간인 피해를 막고자 연방 청사 건물을 폭파했다고 진술했다. 맥베이가 테러 대상으로 삼은 기준은 대표적인 연방 수사기관인 FBI, ATF, 마약수사국(DEA) 가운데 두 곳 이상이 입주한 건물이어야 했다. 애리조나 주에 살던 맥베이는 테러 대상을 애리조나, 미주리, 텍사스, 아칸소에서 찾았다. 처음엔 아칸소 주의 주도(州都)인 리틀록(Little Rock)의 40층 높이 연방 청사 건물을 생각했지만, 청사 바로 앞에 꽃가게가 있어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증언했다.

1994년 12월 맥베이는 오클라호마 연방 청사 건물을 사전 답사 목적으로 찾았다. 1977년 세워진 9층짜리 건물에 알프레드 P 뮤러 연방법원 판사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빌딩엔 DEA, ATF, 사회보장국과 육군 및 해병 모집단이 들어와 있었다. 맥베이가 뮤러 빌딩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이 건물 정면이 유리로 돼 있어 건물 폭파 모습이 시각적으로 극대화돼 전달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작용해서다. 또한 건물 바로 앞에 다른 건물이 없어 인근 민간 건물과 시민에게 피해를 덜 주리라고 생각했다.

맥베이는 범행 당일 버지니아 주의 슬로건이기도 한 ‘Sic Semper Tyrannis!’(폭군에게는 언제나 이렇게 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로마 시대 브루투스가 시저를 암살한 뒤 외쳤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링컨 전 대통령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 역시 범행 직후 자신의 일기장에 같은 문구를 적은 바 있다.



맥베이는 토머스 제퍼슨이 남긴 “자유라는 나무는 애국자와 폭군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체포될 당시에도 제퍼슨의 또 다른 명언인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할 때 자유가 있고,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면 폭정이 있다”는 슬로건이 적힌 자동차 범퍼 스티커를 갖고 있었다. 맥베이는 스티커 밑에 “지금부터 자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글귀를 덧붙여놓았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빼앗는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다”는 존 로크의 주장도 적었다. 자신의 행위가 옳다고 철저하게 믿은 확신범이었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그는 자신의 범행을 반성하지 않았다. 테러범들이 흔히 얘기하듯이, 마땅히 했어야 하는 행위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합리화하고 변명만 늘어놓았다. ‘연방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거대한 권력’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런 얘기도 했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국군대 병사를 보세요. 이들 누구 하나 개인적으로는 아무 죄도 없지만, 악의 제국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죄가 있는 겁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맥베이는 일부러 웨이코 참사 2주년인 4월 19일을 범행일로 골랐다. 이날은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로 기록되는 렉싱턴 및 콩코드 전투가 발발한 지 22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매년 4월 세 번째 월요일을 ‘애국자의 날’로 기념한다. 맥베이는 1997년 6월 2일 살인죄로 사형 판결을 받는다. 2001년 6월 11일 피해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극물 주사방법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38년 만에 처음 집행하는 사형이었다.

‘미국의 정신’ 바꾼 9·11

>맥베이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3개월 뒤인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를 경악게 한 사건이 벌어진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의 충격도 9·11 테러의 그것에는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진주만은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 본토, 그것도 미국의 심장인 뉴욕과 워싱턴이 직접 공격받는 테러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클라호마 참사가 내부의 적이 저지른 범행이라면 9·11 테러는 외부의 적에 의한 범죄였다. 19명의 알 카에다 테러범은 4대의 여객기를 공중 납치했다.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을 이륙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아메리칸항공 11편 여객기와 유나이티드항공의 175편 여객기가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오전 8시 46분과 오전 9시 3분 차례로 충돌했다. 두 빌딩은 두 시간도 채 못 돼 무너져 내렸다.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워싱턴의 덜레스 국제공항을 출발한 아메리칸항공 77편은 오전 9시 37분 미국 수도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 펜타곤으로 돌진했다. 펜타곤 서쪽 건물이 일부 파손됐다. 유나이티드항공 93편 여객기는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건물을 노렸다. 그러나 승객들이 납치범들과 격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항공기는 펜실베이니아 주 생스빌의 한적한 곳에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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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jbalance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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