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발표한 8집 앨범 ‘렌토(Lento)’를 들고 국내 공연을 위해 모처럼 한국에 머물고 있는 나윤선을 만났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달리 그는 자주 수줍어했고, 말을 재미나게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질문마다 꾸밈없는 생각을 조곤조곤 풀어놓았다.
▼ 차이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 말러 같은 이들이 섰던 150년 된 무대에서 기립박수를 그처럼 오래 받는 기분은 어땠나요.
“사실 기억이 안 나요. 앙코르를 몇 번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기립박수가 길었던 건 나중에 잡지 기사를 보고 알았어요. 샤틀레는 클래식 공연을 많이 하는 곳이라 재즈 뮤지션에겐 설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무척 떨렸어요. 앙코르 하는 동안 관객들이 계속 서서 박수 쳤던 것 같기도 하고요.”
유럽 최정상 재즈 가수
이날 공연엔 동성결혼 찬성으로 요즘 프랑스에서 이슈의 중심에 선 크리스티앙 토비라 법무부 장관이 찾아와 눈물을 흘렸고, 유명 영화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공연”이라며 “나윤선의 음악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해 화제가 됐다. 나윤선은 “총리 부인과 함께 무대 뒤로 찾아온 토비라 장관이 막 울어서 나도 같이 울었다”며 웃었다.
▼ 샤틀레극장은 파리 유학 시절부터 꿈의 무대였겠죠?
“어휴, 꿈도 못 꿨던 곳이에요. 역사적으로도 파리지앵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곳이거든요. 거기 선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죠.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근데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전석 매진이었거든요. 극장에서 좋아하더라고요. 앞으로 매년 샤틀레에서 공연하기로 했어요.”
나윤선은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다. 7집 ‘세임 걸(Same Girl)’은 10만 장 이상 팔렸고, 1~6집도 10만 장 가까이 나갔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벨기에 노르웨이 재즈 차트 1위를 석권했고, 얼마 전엔 프랑스 아마존닷컴 재즈 음반 순위 1~3위를 모두 자신의 앨범으로 채웠다. 2011년에는 13개국에서 180여 회 공연을, 2012년에는 25개국에서 200여 회 공연을 했다. 8집 앨범을 발표한 지난 3월에만 22번의 공연을 열었다. 최근 프랑스 최대 재즈 매거진 ‘재즈맨(Jazzman)’은 “슈퍼스타 나윤선이 ‘렌토’로 곧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며 극찬했다. 기자가 “1집 앨범 때부터 팬이다”라고 하자 ‘슈퍼스타’는 두 눈이 동그래져서는 “절 아세요? 어떻게 아세요?” 하고 반문한다.
▼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받는 가수잖아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전화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왜? 나를 왜?’ 했어요. 사람들이 절 잘 모를 텐데…. 예정된 곡이 ‘아리랑판타지’여서 부른 것 같아요.”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그는 국회의사당 무대에서 안숙선, 인순이, 최정원과 함께 재일교포 음악가 양방언의 ‘아리랑판타지’를 불렀다. ‘렌토’ 발표를 앞두고 바쁜 때라 취임식 전날 귀국해 그 다음 날 출국했다고 한다. 이 무대 직후 인터넷에는 ‘미모의 가수 나윤선은 누구?’라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제가 대중매체에 나오지 않으니까 길거리에서 절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알아봐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신기해요. ‘정말 절 아시나요?’ 하고 여쭤보고 싶고요.”
현재 주목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의 소유자 -르몽드, 2011
진정한 목소리의 기적이 빚어낸 위대한 예술 -보그, 2010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공연을 봤다. 마술 같은 한 요정이 나를 홀렸고, 눈물나게 감동시켰다. 나윤선이었다. -나탈리 드세, 프랑스 최고의 소프라노 성악가
나윤선의 노래를 직접 들려줄 수 없는 노릇이라 주요 평론을 옮겨 적었다. 그는 깨끗한 음색과 한계가 없는 가창력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는 한양대 음대 교수를 지낸 나영수 전 국립합창단장이고, 어머니는 1세대 뮤지컬 배우 김미정 씨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부적인 재능과 이를 뒷받침할 환경을 갖췄으나, 정작 노래를 시작한 건 26세 때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후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