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호

“쉬운 사랑은 믿음 가지 않아요”

스크린 복귀한 ‘4차원 소녀’ 최강희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3-05-23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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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와 엄마 아니었으면 연예인 꿈도 못 꿨죠”
    • 눈도 못 마주쳤는데…DJ 하며 소통 기술 터득
    • 자꾸 헹구는 게 童顔 비결…“스킨케어도 엄청 받아요”
    • “남자가 다가오면 잘라버려요, 무슨 결벽증인지…”
    • “마흔 전에 하고 싶은데…결혼이 무서워요”
    • “자만할 수 있는 작품 해보고 싶어”
    “쉬운 사랑은 믿음 가지 않아요”
    배우 최강희(36)를 처음 눈여겨본 건 1998년 방영된 KBS 드라마 ‘종이학’에서다. 고아원 동생들을 엄마처럼 보살피는 어른스러운 소녀를 연기했는데, 그 모습이 하도 자연스러워 진짜 여고생인 줄 알았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외모에 흠칫 놀랐다. 4월 29일 오후, 영화 ‘미나문방구’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티 없이 맑은 피부도, 깡마른 체구도, 선한 눈매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주는 주연배우요,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는 ‘4차원 소녀’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4차원 소녀’는 그를 따라다니는 애칭이다. 사회통념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감성의 결정체라는 의미다. 4차원 소녀이기에 어떤 질문을 해도 빤한 답을 내놓지는 않을 거란 기대가 그와의 만남을 설레게 했다. 첫 대면의 어색한 분위기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게 하는 ‘미나문방구’ 얘기가 나오자 금세 반전됐다.

    ‘미나문방구’는 아버지가 쓰러진 후 문방구를 처분하려고 주인이 된 미나(최강희 분)와 초등학교 교사인 강호(봉태규 분), 단골 초등학생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유쾌한 코미디 영화지만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이 곳곳에 숨어 있다. 무엇보다 최강희의 연기 변신이 압권. 영화 초반부, 구청 공무원 미나는 양다리를 걸친 애인을 폭행과 육두문자로 ‘응징’하는가 하면 병석에 누운 아버지에게 가시 돋친 말을 서슴지 않는다. 시쳇말로 이런 ‘왕싸가지’가 없다. 지금껏 살가운 이미지로 일관해온 그가 이토록 독하게 망가질 줄이야. 과연 어떤 작품에서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4차원 소녀다.

    문방구의 추억



    “쉬운 사랑은 믿음 가지 않아요”

    영화 ‘미나문방구’의 한 장면.

    ▼ 까칠한 다혈질 캐릭터로 나와 의외였어요.

    “저한테도 독한 면이 있다니까요(웃음). 촬영할 때 아이들한테도 다정다감하게 하지 않았어요.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어도 아이들이 순수해서 연기에 몰입하지 못할까봐 일부러 한발 물러나 있었죠.”

    ▼ 어린 시절 문방구의 추억이 있겠죠?

    “문방구가 특별히 좋았던 건 아니고 거기에 제일 갖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종합선물세트처럼 지우개와 연필, 연필깎이, 가위 같은 것들이 다 들어있는 상자요. 그걸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문방구집 아이들이 정말 부러웠죠. 그땐 문방구에 들어가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저희 동네 문방구는 가방도 팔고 이것저것 다 팔았어요. 그런 거 보면서 돈 모아서 엄마 사줘야지 그랬어요. 싸구려지만 엄마 생일에 선물한 기억이 나요.”

    ▼ 관객들이 영화 보면 동심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저도 연기하면서 어린 시절 추억이 많이 떠올랐어요. 봉태규 씨나 감독님이랑 촬영 끝나고 많은 얘기를 했어요. 낮에 찍는 신밖에 없어서 시간이 많이 남았거든요. 그때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는데, 저도 미나처럼 아버지를 오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들이 원래 감정 표현에 서툴잖아요. 그래서 미나도 아버지가 가족보다 단골손님인 아이들을 더 좋아한다고 오해한 거고.”

    ▼ 극 중에선 ‘방구’로 불리던데 어린 시절 별명이 뭔가요.

    “어릴 때 별명은 주로 이름을 따서 만든 거예요. 저한테 매력이 없었나 봐요. 특별한 별명은 없고 ‘강강이’ ‘강강수월래’ ‘강냉이’처럼 ‘강’자로 시작되는 게 많았던 것 같아요.”

    ▼ 말괄량이, 우등생, 새침데기 중 어떤 캐릭터였나요.

    “그때도 독보적이었던 것 같아요. 좀 엉뚱했어요. 그다지 말괄량이도 아니었던 것 같고, 공부는 잘했을 리 없거니와 새침한 성격도 아니었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어요. 원래 난 공부랑 연이 없다는 걸, 하하.”

    ▼ 어떤 면에서 엉뚱했다는 건가요.

    “초등학생 시절 누구나 해보는 짝꿍이랑 책상에 줄긋기도 안 해봤고 6학년 내내 짝꿍이랑 잘 지냈어요. 수업시간엔 멍 때리면서 지내고, 방과 후 시간을 즐거워했던 것 같아요. 방과 후에 애들이랑 노는 것보다 혼자 쏘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고학년 때는 ‘촐랑이’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몰려다니기도 했는데 혼자 놀았던 게 기억에 더 많이 남아 있어요.”

    ▼ 혼자 뭐하고 놀았나요.

    “공사판 아저씨들이 집을 지으려고 벽돌을 잔뜩 쌓아놓잖아요. 어릴 땐 그걸 가지고 제 개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만날 조금씩 쌓아올렸는데 다음 날 아저씨들이 그걸 다시 가져가서 다른 데다 쌓았어요. 자기네가 쓸 것들을 제가 옮겨다놓은 거니까요. 그러면 제가 밤에 가서 다른 데다 쌓고, 다음 날 아저씨들이 그걸 또 가져가고…. 그런 일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시멘트가 없으면 3단 이상 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집 근처에서 삐라가 몇 번 눈에 띄어서 한동안 간첩 잡는다고 산을 열심히 돌아다녔죠.”

    ▼ 그때 삐라가 있었어요?

    “저학년 때 봤어요. 제가 살던 동네가 서울 북쪽인 구파발, 불광동 그쪽이었는데 삐라를 종종 주웠어요. 그래도 신고하지는 않았어요. 직접 간첩을 잡아서 경찰에 넘겨줄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산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수상한 게 있으면 적고.”

    선물가게와 말벌주

    ▼ 어머니가 어떤 태몽을 꾸셨을지 궁금하네요.

    “태몽을 안 꾸셨대요. 엄마가 절 가졌을 때 오란씨 CF가 유행했대요. 만날 오란씨 CF를 보면서 저런 딸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래서 제가 연예인이 됐나보다고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 어릴 적 꿈이 배우였나요.

    “연예인을 꿈꾸진 않았어요. 초등학교 때는 선물가게를 하고 싶었어요. 거기에 가지고 싶은 것이 다 있었으니까. 문방구랑 일맥상통하는데 선물가게에 있는 선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다른 꿈은 없었어요.”

    비록 선물가게 주인이 되진 못했지만 절반의 꿈은 이룬 듯하다.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 돌아올 때마다 선물을 챙겨주는 팬들이 그의 주위에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5월 5일 어린이날이 그의 생일이다.

    ▼ 그동안 팬에게서 받은 생일선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뭔가요.

    “으음…, 말벌주요. 팬이 울면서 ‘강짱 없이는 못살아’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선물을 건넸는데 술통에 말벌이 담겨 있었어요. 말벌주가 건강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저한테 주려고 직접 말벌을 잡아서 술통에 담아왔더라고요. 정말 무서웠는데 팬의 마음이 너무나 순수해서 그 앞에선 무서워할 수도 없었어요.”

    ▼ 맛이 어때요?

    “아직 못 먹었어요. 팬이 직접 잡은 거니까 고이 모셔두고 있어요(웃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연예인을 꿈꾼 적이 없다는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1995년 고3 때 연예계에 데뷔한다. 그해 ‘존슨즈 깨끗한 얼굴상’과 ‘미스 레모나 상큼상’을 연거푸 수상한 것이 계기였다.

    ▼ 왜 나간 건가요.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이거 얘기하면 진짜 안 믿을 텐데…, 친구가 제 사진을 보낸 거예요. 주위에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친구도 있었고, 저희 언니도 미스롯데선발대회 상위권에 올랐었어요. 그런 걸 많이 보고 자랐지만 저는 외모가 별로여서 학교 다닐 때는 연예인이 될 생각도 못해봤어요. 쫓아다니는 사람도 없었고요. 제 자신이 특출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 친구가 보기엔 특출했으니 사진을 보냈겠죠.

    “중학교 때 친구예요. 고등학교 때는 같은 학교를 안 다녔는데, 걔 이름이 양은식이라서 ‘양양이’라고 불렀어요. 전 ‘강강이’였고. 그 친구가 저를 예뻐했죠. 학교 때 친구들한테 예쁨 받았어요. 애들이 귀여워해줬거든요. 그 친구가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길래 제가 별말을 안 했죠. 그랬더니 가지고 있는 사진을 보낸다고 했는데 정말로 수학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보냈더라고요. 두 선발대회에 동시에. 존슨즈에서 대회 끝나고 수상자로 뽑혔다고 연락이 왔을 때 정말 신기했어요. 미스 레모나 선발대회에는 못 갈 뻔했어요. 창피한 일이지만 예선 치르기 전에 가출을 했거든요(웃음).

    엄마가 저를 연예인으로 만들고픈 꿈이 있었나봐요. 예쁜 옷을 사서 기다리고 있다고 삐삐에다 음성메시지를 남겨뒀더라고요. 비가 오는데 신촌역에서 아침까지 6시간 동안 저를 기다리셨죠. 엄마 만나 화해하고 그날 예선 보러 갔어요. 그렇게 2차, 3차 심사에 계속 올라가니까 잘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본선 때는 옷차림에도 신경 쓰고 아는 언니가 메이크업도 해줘서 상큼상을 받았죠.”

    “못해도 최강희다”

    ▼ 가출은 왜…? 엄마랑 싸웠나요.

    “그때가 사춘기였나 봐요. 가출해도 갈 데도 없었어요. 날라리도 아니었고. 며칠이나 가출했는지,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놀다가 날이 저문 것도 같고, 미스 레모나 선발대회에 가기 싫어서 애들이랑 놀러간 것도 같고, 그런 건 또렷이 생각나지 않는데 엄마가 삐삐 치고 아침까지 기다린 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미스 레모나 선발대회에서 상큼상을 받은 후 연기에 입문했다. 데뷔작은 1995년 방영된 KBS 청소년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 제작진은 그를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연기 경험 없는 ‘초짜’가 무슨 수로 그런 행운을 잡았을까. 자초지종은 이렇다.

    “미스 레모나 선발대회의 사회를 신동엽 씨와 이휘재 씨가 봤어요. 룰라와 박진영 씨가 게스트로 오고. MTM 관계자가 심사를 끝내고 연락처를 가져가기에 연예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결국 하는 것은 보조출연이었어요. 한동안 보조출연을 했는데 종일 기다려서 한 컷 찍더군요. 다이어리 쓰는 게 취미라 거기에 잔뜩 푸념을 늘어놨는데 깜박하고 그걸 버스에 놓고 내렸어요. 그 버스에 ‘신세대 보고서’ 팀이 탔다가 제 다이어리를 주워서 찾으러 오라고 연락해왔죠.

    갔더니 주인공 캐스팅이 안 된 상황이었는데 거짓말처럼 감독님이 ‘너 한번 입고 와봐’ 하면서 교복을 던져 주셨어요. 화장실 가서 입고 왔는데 제가 봐도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바로 오디션을 보고 다음 날부터 주인공으로 촬영을 시작했죠. 작가님이 청소년 드라마를 오래하신 분이에요. 감독님도 교양국에서 드라마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학교’를 기획하셨고요. 그분들 덕에 계속 오디션으로 배역을 따내면서 5~6년은 매니저 없이 보냈어요. 청소년 드라마와 ‘여고괴담’ 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쉬운 사랑은 믿음 가지 않아요”
    ▼ 대학은 왜 끝까지 안 다녔나요.

    “서일대학교 연극영화과, 한 곳에만 지원했는데 합격자 명단에 있더라고요. 의아했어요. 합격할 점수가 안 되거든요. 연기 경력이라곤 두 작품 한 것밖에 없었어요. 참고할 게 못 됐죠. 그곳에는 끼가 많은 애들이 있는데 꼭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은 것 같아 찜찜했어요. 뭔가를 못하면서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싫었고. 그래서 한 달도 채 안 다녔을 거예요. 전 원래 학교가 싫었어요. 고등학교도 싫었고, 중학교도 싫었고.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에선 학생 역할을 많이 했어요. 그것도 주로 우등생 역할을(웃음).”

    ▼ 교복 입고 연기하면 학교가 그리울 것 같은데.

    “학교 때 추억이 별로 없어요. 학교에 잘 나가지도 않았고.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수험생들에게 만날 그런 얘기를 했어요. 수능시험 당일이나 전날엔 공부해봤자 큰 도움이 안 되니까 ‘못해도 최강희다’라고 했죠. 시험에 떨어져도 최강희처럼 될 수 있으니까 낙담하지 말라는 의미로(웃음). 다들 잘하는 게 따로 있거든요. 신은 공평하기 때문에. 다만 그걸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하죠. 그런 얘기를 자주 했더니 그게 힘이 됐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대학생활을 제대로 못했지만 모범생을 연기하고 작품 속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그러다 보니까 학교가 그리워요. 대학도 가고 싶고.”

    ▼ 지금이라도 마음먹으면 갈 수 있잖아요.

    “지금도 특례로는 가고 싶지 않아요. 고3 수험생처럼 공부해서 대학생활도 해보고 싶고 연출 공부도 해보고 싶지만 제 나이의 동기생이 들어오는 것을 반길까 모르겠네요.”

    ▼ 연기에 재미를 느낀 건 언제부턴가요.

    “만날 ‘뒤늦게 느꼈다’고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느낀 것 같아요.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 중 ‘가을날의 동화’ 편으로 데뷔했는데 연기를 너무 못해서 감독님에게 욕을 엄청 먹었어요. ‘저걸 캐스팅하는 게 아니었어’부터 별의별 꾸중을 다 들었죠. 감독님이 무서워서 더는 욕먹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연기해야 잘하는 건지 모르니까 답답했어요.

    칭찬의 힘

    그러다 한번은 제가 막차시간마다 만나던 남자친구를 다시는 못 보는 상황을 연기하게 됐어요. 막차가 끊겼는데 제가 안 보이니까 남자친구는 절 찾으러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전 플랫폼 자판기 뒤에서 그 친구를 기다리다가 아무도 없으니까 무서워서 나가는 장면이었어요. 혼자서 끙끙 앓다가 마침 작가 언니가 계시기에 이걸 어떻게 연기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너, 재수 없게 하면 죽을 줄 알아’ 이러는 거예요. ‘내숭 떨지 말고, 얘는 진짜 무서운 거야. 그런데 남자친구가 왔으니 어떻겠어? 쑥스럽기도 하겠지!’라고 조언도 해주고요.

    그제야 어떻게 연기할지 감이 오기에 그 느낌을 생각하며 자판기 뒤에서 나오는데 감독님이 ‘컷!’ 하더니 ‘기가 막혀’ 그러는 거예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태프들이 박수를 쳐주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어요. 작가 언니도 ‘그 대본을 쓸 때 여자주인공이 내숭 떠는 캐릭터라 미워 보일 수 있었는데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줬고요. 그 회에서 칭찬을 두 번 정도 더 들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잘했다는 소리를 자꾸 듣고 싶더라고요.”

    ▼ 학교 다닐 때는 칭찬을 못 들었나요.

    “한 번도 칭찬받질 못했어요. 연기하면서 존재감이 생긴 거죠. 내가 존재하고 있구나, 공부도 못했고 아무도 쫓아다니질 않았고 선생님에게 혼나고 그랬으니까 잘한다는 말이 되게 크게 다가왔어요. 나도 쓸모가 있구나, 잘하는 것이 있구나,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 잘하고 싶더라고요.”

    ▼ 작품을 고르는 남다른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골라요. 대본 보면 그려져요. 요거 이렇게 연기하면 사람들이 ‘이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기막히다’고 하겠구나 하고. ‘미나문방구’는 동심을 잊고 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이라서 좋았어요. 웃기면서도 울컥 하는 게 있어요. 아이들이 나오는 작품은 순수할수록 잘되는 것 같아요.”

    ▼ 감정이입이 잘되는 편인가요.

    “몰입은 잘되는데 감정 선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날이 갈수록 더해요. 그때그때 몰입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몰입 시기를 놓치면 끝이에요. 그동안 훌륭한 감독님을 많이 만났는데 감정을 잘 유지하게끔 배려해주는 감독님과 작업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 캐릭터에 빠져 있으면 작품 끝나고 거기에서 헤어나기가 힘들지 않나요.

    “보통은 힘들어요. 작품이 끝나면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요. 몇 주간은 정신을 못 차려요.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시간이 남으면 하려던 것들이 있는데 막상 쉴 때는 집에서 멍하니 있어요. 뭔가 대상도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을 느끼면서. 상대역을 한 배우가 새 작품에 들어간다고 하면 ‘작품 들어가는구나, 난 허전한데’ 이러면서…. 예전엔 쫑파티 때 엄청 울었어요.”

    ▼ 왜요?

    “아쉬워서요. ‘가을날의 동화’ 편이 끝난 뒤에는 엉엉 울었어요. 스태프들이 의아해하더라고요. 너무 우니까. 근데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게 되더라고요. 어떤 분이 ‘지금 울지 말고 이 사람들을 기억해주는 게 스태프들한테는 더 좋은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제는 그렇게 울지 않아요. 안 울어요.”

    취미 덕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데뷔 후 그는 스캔들이나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고, 어떤 작품을 하건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이런 그에게도 남모르는 슬럼프가 있었을까.

    “청소년 드라마를 연달아 할 때는 제가 연기 신동인 줄 알았어요. ‘난 타고났구나. 다른 애들보다 빨리 알아듣는다’고 자부했었죠. 다 못 알아듣는데 저만 알아듣는 거예요. 근데 ‘여고괴담’을 찍을 때 이미연 선배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난 데뷔 때 내가 천재인 줄 알았어. 또래들 안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지’라고. 그 말이 맞더라고요.

    ‘달콤한 나의 도시’를 하면서 깨달았어요. 그 드라마에서 정말 연기에 도통한 전공자들을 만났어요. 제가 가고 싶어 하는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연기자도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들었어요. 나만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나보다 빨리 알아들으니까 주눅이 좀 들더라고요. 전 이때가 아니면 연기가 안 나오는데 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오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제 자신이 작아 보였죠.”

    ▼ 어느 베테랑 배우가 ‘연기는 기술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기술을 앞세우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하던데.

    “저도 기술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들은 기술도 있고 감성도 풍부하더라고요. 그래서 엄청 부러웠어요.”

    올해로 18년째 배우로 살고 있지만 지금껏 연기만 고집해온 건 아니다. 2009년에는 그가 운영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쓴 글을 모아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포토에세이를 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2011~12년엔 라디오 프로그램 DJ로도 인기를 끌었다. 그는 KBS-2FM ‘최강희의 볼륨을 높여요’와 ‘최강희의 야간비행’을 진행하면서 “연기할 때와는 또 다른 편안함을 느꼈다. 그만두면서 많이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테킬라 즐기는 ‘4차원 소녀’

    “원래 낯을 좀 가려요. 사석에서 일대일로 만나면 눈도 잘 못 마주쳐요. 그래서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라디오 부스에서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고 소통하는 건 어렵지 않더라고요. 음악을 좋아해서 막 빠져들 정도로 재미있어요. 기자들과 인터뷰하면서 대답하는 것도 안 힘들어요. 이건 약속 같은 거라 그 자체를 즐겨요.”

    ▼ 프로필을 보니 취미가 글쓰기네요.

    “끼적이는 게 취미예요. 말 지어내는 걸 좋아해서 미니홈피를 애용해요. 어떤 일을 보고서 그것을 시적으로 지어낸다든지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것을 꾸준히 재미삼아 올렸더니 팬들이 이걸로 책을 내면 되겠다고 하더군요. ‘어머 그래’ 하다가 책을 냈죠.”

    ▼ 베스트셀러를 예상했나요.

    “그런 생각은 못 했는데 잘돼서 좋았죠. 그 책에는 써놓은 글의 5분의 1도 안 실었어요. 버려야 할 글도 많지만 책 한 권 분량은 더 나올 것 같아요. 영화 프로모션 끝나고 준비해보려고요.”

    한참 문답을 주고받다보니 그가 왜 4차원 소녀인지 알 듯하다. 보통사람은 흉내 내기 힘든 꾸밈없는 매력과 지금도 교복이 어울릴 법한 이 여자에게 그보다 잘 어울리는 애칭이 또 있으랴. 그도 4차원 소녀라는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좌우지간 평범하지 않다는 의미여서 좋단다.

    ▼ 평소에도 엉뚱하고 발랄한가요.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많이 바뀌었어요. 전에는 대인관계가 좀 좁고 방송 같은 데서 말실수를 해도 바보같이 꾸물거려서 4차원이라고들 했는데, 라디오 하면서 소통하는 것도 배우고 하다보니까 요즘은 사람들이 ‘4차원 아닌데’ 이래요(웃음).”

    ▼ 동료 연예인과 잘 어울리나요.

    “(개그우먼) 김숙, 송은이 씨랑 친하고 배우 류현경 씨하고도 친해요. 참, 오정세 씨 아세요? 많은 작품에 나왔지만 연기를 너무 잘해서 같은 사람인지 구분하기 힘든 배우예요. 오정세 씨하고도 친한데 저희가 다 같이는 못 모여요. 저는 송은이 씨랑도 잘 맞고, 류현경 씨랑도 잘 지내는데 다 같이 모이면 분위기가 이상해져요. 저마다 개성이 너무 뚜렷해서.”

    ▼ 가무를 즐기는 편인가요. 프로필에 특기가 춤이라고 돼 있더라고요. ‘7급 공무원’에서 선보인 댄스 실력도 보통이 아니던데.

    “제가 촬영 당일 아침에 짠 안무입니다, 하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리듬감을 알게 됐어요. 근데 춤이 특기는 아니에요. 프로필이 필요하다고 해서 예전에 막 적은 거예요.”

    ▼ 음주에는 소질이 있나요.

    “술은 2년 전에 이선균 씨한테 배웠어요. 그 덕분에 늘 즐기고 있어요. 요새는 시간이 남아서 더 하고.”

    ▼ 주량이 센가봐요.

    “주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어떨 땐 조금 마셔도 취하고 어떤 때는 남보다 많이 마셔도 안 취해요.”

    ▼ 어떤 술을 좋아하나요. 소맥?

    “소맥도 좋아하는데 테킬라에 강해요. 저도 몰랐는데 독주에 강하더라고요. 테킬라를 시키면 영화에서처럼 소금을 손등에 묻힌 다음 그걸 한 번씩 혀로 맛보면서 마시는데 재미있어요.”

    담백한 남자가 좋다

    “쉬운 사랑은 믿음 가지 않아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 최강 동안 미모를 유지하는 비결이라면.

    “엄마가 귀가 닳도록 하신 말씀이 있죠. ‘강희야, 잘 헹궈라.’ 엄마 피부가 저보다 더 좋아요. 진짜 무결점의 매끈한 피부예요. 제가 세수하고 있으면 엄마가 하도 더 헹구라고 해서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헹궜는데 맹물 세안이 얼굴에 그렇게 좋대요. 그것 말고는 없어요. 제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서 믿기진 않겠지만 촬영할 때는 스킨케어 엄청 받으러 다녀요.”

    ▼ ‘패셔니스타’로 꼽히던데 옷을 잘 입는 노하우가 있나요.

    “원래 옷 입어보는 걸 좋아해요. 옷 정리할 때마다 패션쇼를 하죠. 디자인이나 색상이 어울리게 이것저것 겹쳐 입고, 바꿔 입다보면 자신만의 연출법이 생기더라고요. 옷은 좋아해야 잘 입을 수 있죠.”

    그의 지인들은 그를 “작품 속에서나, 일상 속에서나 사랑스러운 여자”라고 평한다. 팬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런 그가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지금까지 싱글로 사는 이유가 뭘까.

    ▼ 독신주의자?

    “그런 것 같진 않아요. 근데 친구들이 저더러 ‘맥 커터(脈과 cutter를 합친 신조어로 ‘맥을 끊는 사람’을 뜻한다)’래요. 남자가 다가오면 잘라버린다고. 왜 그러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왜 이런 결벽증이 생긴 건지 불안해요. 얼렁뚱땅 살게 될까봐 싫어요. 그렇게 막 쉽게 이뤄지는 사랑엔 믿음이 안 가요.”

    ▼ 시간을 갖고 지켜본 뒤 마음을 여는 스타일인가요.

    “아뇨.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둘 다 동시에 좋아해서 사귄 것 같아요. 만약 전 마음에 없는데 상대가 절 먼저 좋아하면 잘라내요. 그렇게 잘랐을 때 오래 좋아하는 애들이 없더라고요. 좋아하는 감정을 그렇게 쉽게 접을 수 있는 사람이면 다른 애한테도 금방 꽂힐 수 있기 때문에 신뢰가 잘 안 가요.”

    ▼ 이상형이 있나요.

    “요즘엔 그냥 담백한 사람이 좋아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이선균 씨가 연기한 캐릭터요. ‘7급 공무원’으로 치면 주원이보다 찬성이 같은 사람이 좋아요.”

    2009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그는 “3번의 연애 경험이 있다. 일반인 남자친구와 4년간 교제했고, 두 명의 연예인과 사귀었다”고 고백했다. 사랑이 현재 진행형인지 묻자 “공백기가 5년째”라는 답이 돌아온다.

    ▼ 연예인과도 사귀었다면서요.

    “두 번 사귀어봤어요. 사귀는 둥 마는 둥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정식으로 사귄 건 두 명이에요. 연예인하고 연애하는 건 별로인 것 같아요. 재미는 있겠죠. 잘생기고 매력 있고…. 연예인이 매력이 있잖아요. 근데 이제는 연예인이 싫어요. 연예인이 아닌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하하.”

    10년 안에 연출에 도전하고파

    “쉬운 사랑은 믿음 가지 않아요”
    ▼ 마흔 살 되기 전에 결혼할 건가요.

    “결혼을 한다면 그러고 싶어요. 제가 많이 좋아하는 배우 장영남 씨가 ‘40세 되기 전에 결혼하는 게 목표였다’고 그래서 저도 따라 하는 거예요. 결혼생활이 하도 행복해 보이기에.”

    ▼ 사랑에 빠지면 다 거나요.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푹 빠지죠. 사랑에 다 거는 스타일이에요. 근데 결혼은 엄두도 못 내봤어요. 그냥 막연하게 결혼이 좀 무서워요.”

    40대가 되기 전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뜸 “얼마 안 남았네, 무서워…” 했다. 그러고 보니 불혹의 고지가 4년 남았다. 4년은 금방 답이 나오지 않는 시간인지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연다.

    “아무래도 마흔 살 안에는 못 이룰 것 같아요. 연출을 해보고 싶거든요. 10년 안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자신이 칭찬할 만한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수치심은 많은데 자만심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자만할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러운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 ‘미나문방구’도 자만할 정도는 아니었나요.

    “살짝 봤는데 자만심은 못 느꼈어요. 원래 자기 작품은 만족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작품을 보고 자만심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재미없게 느껴질까봐 걱정되기도 하는데 겸허한 마음으로 대중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어요.”

    ▼ 지나친 과소평가네요. ‘최강희가 출연하면 기대된다’고들 하던데.

    “이제 알아요. 투자가 잘되더라고요. 제가 출연하면 BP(Break-even Point·손익분기점)는 꼭 넘긴대요, 하하.”

    최강희의 9번째 영화 ‘미나문방구’는 5월 16일 개봉했다. 이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꼭 손수건을 준비해 가시길.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울컥하게 만드니 이왕이면 구석자리에서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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