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호

얼어붙은 개성공단

對北 봉쇄의 득실과 효과

‘출구’ 고려 않은 초강수 “전쟁 중에도 대화 필요”

  • 홍순직 |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sjhong@hri.co.kr

    입력2016-02-19 09: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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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태우 정부 7·7선언 이전으로 후퇴
    • 인건비 연 1000억 원 유출 막아
    • 北 외자 유치에도 찬물
    • 中 협조 없으면 제재 효과 미약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촉발된 남북 간 긴장이 ‘강(强) 대 강’ 대결로 치달으면서 군사적 충돌을 우려할 수준으로 고조됐다. 한반도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는 것을 두고 ‘한·미·일 vs 북·중·러 신(新)냉전 구도’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과 관련해서는 남남갈등 조짐마저 보인다.
    이 같은 긴장 고조는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줬다. 2월 11일 뉴욕 장외시장에서 한국의 5년 만기 외화채권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전날보다 9bp 올라 지난해 9월 28일 이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 12일 코스닥 시장은 4년 6개월 만에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아시아 금융시장 전반에 걸친 충격이 주요 변수이긴 하지만, 개성공단 가동 중단과 북한의 폐쇄 및 남측 인원 추방 조치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한몫했다.



    2조 원, 20만의 생계

    개성공단은 한국 자본과 기술, 북한 노동력과 토지 등이 결합한 남북 상생의 경제공동체 실험장이면서 화해·협력의 상징이었다. 천안함·연평도 도발 상황에서도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과 가교 기능을 해온 마지막 연결고리였다.
    개성공단은 2003년 6월 착공해 2004년 12월 첫 제품을 생산한 후 중단되기 전까지 총 32억여 달러 상당의 제품을 생산했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124개 기업에서 북한 근로자 5만4763명, 한국 근로자 803명이 월 5000만 달러 상당의 제품을 생산했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피해상황을 2013년 4∼9월 북한에 의한 일시 중단 사례를 참조해 살펴보자. 한국의 피해는 직접 손실과 간접 손실로 나눠볼 수 있다. 직접 손실로는 정부와 민간기업 투자액 등이 있다.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민간기업 투자액은 5613억 원, 정부 투자액은 2588억 원이다. LH 1226억 원, 한국전력 480억 원, 산업단지공단 210억 원, KT 949억 원 등 직접 피해액은 총 1조191억 원에 달한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투자액이 1조6878억 원에 달한다고도 한다. 미반입 재고 자산 1937억 원, 원청·하도급 업체에 대한 납품 채무 2656억 원, 개성 현지 미수금 536억 원 등 5129억 원과 영업손실 등을 감안하면 한국의 피해액은 2조 원이 훨씬 넘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이 같은 직접 손실 외에 5000여 개 협력업체 근로자 12만4000여 명에 대한 고용 불안과 일자리 상실, 생산과 운송 등에 투입된 각종 산업 분야 내수 위축, 이전과 다른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대외 신인도 하락과 금융비용 증가와 같은 간접 손실도 만만치 않다.
    북한의 손실도 적지 않다. 개성공단에서 받던 인건비 연간 약 1억 달러를 비롯해 토지 임대료(지상물 보상비 포함 100만 평에 1600만 달러)와 각종 세금 등의 수입을 잃는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측에 전달된 현금은 총 6160억 원(약 5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다 5만4700여 명의 일자리 상실로 인해 3∼4인 가족을 기준으로 15만∼20만 명의 생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이 밖에도 마식령 스키장과 나진·선봉 등 김정은 체제 들어 역점을 둔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 등의 외화유치 노력과 해외 인력 송출 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돈줄 원천봉쇄”

    4차 핵실험 이후 한·미·일의 독자 대북 제재는 어느 때보다 강력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가 나오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단행됐다. 대북 제재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강경하고 단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일 독자 제재의 대부분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줄을 원천봉쇄한다는 내용이다.
    한국 정부는 2월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취했다. 선제적, 주도적으로 “혹독한 대가”를 주는 제재를 통해 ‘북한 혼내기’에 들어가면서 미국과 일본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고, 대북 제재에 소극적인 중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일본도 북한 국적자 입국 금지와 대북 송금 제한 확대 조치를 취했다. 북한으로의 현금 반입 신고 하한 금액을 기존 ‘100만 엔 초과’에서 ‘10만 엔 초과’로 강화했고 인도적 목적의 10만 엔 이하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북 송금을 금지했다. 
    미국은 상원에서 제재 법안을 통과시킨 지 이틀 만인 2월 12일(현지 시각) 하원 역시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외화 수입원인 특정 광물의 거래 차단뿐 아니라, 북한과 직접 불법 거래하거나 도움을 준 제3국 개인과 단체까지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조항도 포함돼 금융·경제 거래가 가장 많은 중국을 사실상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번 법안이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점과 북한만을 겨냥한 최초 제재 법안이란 점에서 미국 의회가 초당적·초강경 대응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법안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 공식 발효된다.
    한·미·일의 이 같은 전방위 대북 제재가 이란의 전례처럼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할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대북 제재는 중국의 적극적 협조가 있어야만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아서다. 한·미는 수 차례에 걸쳐 건설적 역할을 제안했으나, 중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제재에는 동참하지만 북한 정권의 붕괴나 주민 생활을 어렵게 하는 개별적 금융·무역 제재에는 부정적이다. 또한 북핵 문제 해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란은 원유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전체 수입의 약 70%에 달하는 터라 세컨더리 보이콧을 통해 원유 수출로 인한 수입 절반을 차단하면서 제재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북한 경제는 이란과 달리 소규모 경제로서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85∼90%에 달한다. 대부분의 대외무역을 중국에 의존하기에 한·미·일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적 영향력이 미약하다.
    또한 세컨더리 보이콧이 이란 제재법에서는 포괄적이고 강제적인 조항이었으나, 대북 제재법에선 미국 행정부에 재량권을 부여해 상황에 따라 운용토록 했다. 북한과 관련한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은 중국의 기업과 은행이 될 수 있는데, 이들은 미국 기업·은행들과 얽혀 있다. 특히 중국은 1조3000억 달러의 미국 채권을 보유한 최대 채권국이다. 자칫 중국의 목줄을 죄려다 미국이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시각이다. 집권 말기의 오바마 정부로서도 중국의 기업과 은행을 제재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안전판 사라져

    현재 남북한 간 군 통신선과 적십자·통일부 채널이 단절된 상태다. 민간 교류와 영유아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최근의 이러한 한반도 긴장 고조 국면은 짧아도 5월까지는 지속될 것 같다. 대북 제재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비롯해 3∼4월 한미연합군사훈련, 4월 한국 국회의원 총선거, 김일성 생일(4월 15일, 북한에서는 ‘태양절’이라고 한다), 5월 북한 당대회 등 남북한의 정치·군사적 일정으로 대화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한·미는 올해 연합군사훈련을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할 예정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1월 22∼30일, 184명 대상)에 따르면 의미 있는 남북 고위급회담에 대해 전문가 대부분(91.3%)이 2016년 하반기 이후에나 열릴 것이며, 20.1%는 2018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다시 말해 전문가 5명 중 1명은 박근혜 정부 임기 내 고위급회담 재개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개성공단 중단 조치 이후 설문조사를 했다면 부정적인 응답이 더 많았을 것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대화와 압박’ 병행에서 ‘비핵화와 압박’ 위주로 전환하는 것 같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초강력 제재로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이다. 앞서 언급했듯,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한 모두 ‘강 대 강’의 태도로 일관해 긴장이 고조되면 예상치 못한 군사적 충돌마저 우려된다. 다만 지난해 8월 목함지뢰 사건 이후 북한의 전격적 대화 제의로 8·25 합의가 이뤄진 것처럼 하반기에 어느 한쪽의 제의로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남북관계 불안정은 남북경협 전망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개성공단은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경제제재 조치 이후에도 유일하게 이어가던 남북경협 사업이었다. 정부가 개성공단 재가동 조건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우려 해소’를 내걸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은 “핵 보유국으로서 핵 문제는 남북 간 협의 사항이 아니며, 핵실험은 자주권과 민족 생존권을 수호하고 담보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경제 교류의 마지막 보루이던 개성공단이 재가동되지 않는다면 남북경협은 1988년 노태우 정부의 7·7 특별선언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설사 개성공단이 다시 열린다 해도 2013년과 이번의 학습효과로 인해 과연 얼마나 많은 기업이 이전과 같이 개성 진출에 총력을 기울일지 의문이다.


    개성의 군사기지화

    북한 핵으로 촉발된 한반도 긴장 국면은 남북한 모두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긴장 국면이 확산되거나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은 어렵겠지만 ‘전쟁 중에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하루빨리 공식·비공식, 다자 간·양자 간 다양한 대화 채널을 가동해 긴장 완화 모멘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개성공단은 단순한 공업단지가 아니다. 중단 사태 장기화로 이 지역이 다시 군사기지로 되돌아가면 남북경협 중단 차원을 넘어 한반도가 정치·군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의 전면적 대립과 준전시 상태로 고착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피해 구제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산업단지의 대체 부지 제공 검토, 자금 지원과 세금 징수 유예 등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기업과 정부의 피해 산정 기준이 다를뿐더러 피해 구제 조치가 기업이 실제로 감내해야 하는 손실과는 큰 격차가 있다. 남북경제협력사업보험의 보상 한계(70억 원)와 보험 미가입 업체들의 자금난 등을 감안해 실질적 피해보상 대책 마련과 정책 집행이 요구된다.
    대북정책은 즉흥적이 아닌 중장기 관점에서 설계·추진돼야 하며, 입구(入口)론적 시각과 주변국 협조를 유도하는 외교전략 또한 요구된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경고와 제재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대북정책의 목적은 한반도의 평화 유지와 민족 통합에 있음을 염두에 두고 상호 교류와 의존성 확대 방향으로 분위기를 조성해나가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또한 대북 강경책과 제재는 언제나 출구(出口)를 염두에 두고 실시해야 한다. 너무 강한 전제조건을 내세우면 나중에 되돌릴 명분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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